• 성결한 마음으로 (여호수아 3장 14-17)
  • 2012.12.29 16:15:26
  •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가로막고 있는 요단강 지경까지 도달했습니다. 이제 저 강만 건너가면 가나안 땅을 밟게 됩니다. 멀리 강 건너 어렴풋이 여리고 성읍이 보이는 듯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기다렸던 약속의 땅이었습니까? 여기까지 오지 못하고 한 세대가 다 떠나버렸습니다. 다 죽어버렸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이전세대에 속한 자들로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불볕더위로 살이 타고 밤에는 추위로 벌벌 떨던 광야, 불뱀과 전갈이 득실거리던 사막 한가운데에서 온갖 고생을 다 하다가 그만 이리 죽고 저리 죽고 했습니다. 날마다 죽어 넘어지는 동료들의 시체 썩는 냄새를 맡으며 오로지 저기 강 건너 꿈의 땅 가나안 땅만 바라고 살아온 인고의 세월이 지금 요단강 지경에 다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회인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요단강을 건너고 싶습니다.

     

    그런데 요단강의 수위는 한껏 높아 있습니다. 우기가 끝난 4월 봄이 되어 보리 추수기가 되었는데 최북단 헤르몬산의 눈이 녹아 흘러내려와 급류를 이루는 바람에 폭은 넓고 수심은 깊고 물살은 급해져 있습니다. 배나 뗏목이나 다리라도 만들어야 할 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수아 총사령관은 참 이상한 명령을 내립니다. 첫째, 삼가 욕심을 절제해 스스로 성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수 3:5)” 둘째,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강에 뛰어들면 그 뒤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가 있는 곳을 떠나 그 뒤를 따르라... (수 3:3)” 아니, 저 강을 건너려면 도강할 도구를 만들라고 명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지, 성결해지고 언약궤를 뒤따라가라니.... 듣는 사람들의 귀를 의심할 지경입니다. 요단을 건너는 것이 무슨 제의나 정결례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치된 순종을 보였습니다.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까?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단강을 건넌 후에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에도 여호수아가 전혀 엉뚱한 지시를 했는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치된 순종을 보였습니다. 난공불락의 가나안 성을 함락하는데 전략 같은 것은 없고 그냥 성을 매일 한 바뀌씩 돌고 마지막날에는 일곱바뀌를 돌아라.... 이게 끝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치된 순종을 보였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했습니다. 장애물인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넜으며, 여리고성을 손 하나 안 되고 무너뜨리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시끄러운 백성들이었습니까? 모세가 무엇을 지시할 때마다 시끄러웠던 백성들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훈련시키셨습니다. 가장 필요한 때를 위하여 하나님이 훈련시키시고,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그 결과 가나안 땅을 차지할 때가 되니까 이렇게 일치된 순종의 모습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너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결하라고 지시하셨습니까? 성결한 인격, 성결한 삶은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깨끗케 하시는 사역을 통하여 합당한 성결함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령하신 것처럼 영적으로 성결하여지기를 구하고 또한 그렇게 성결해진 영혼을 죄로 더럽히지 않도록 성결한 생활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이 우리 삶에 역사하실 공간을 준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합니다. ‘내 삶에 기적을 베풀어 주옵소서!’ ‘내 질병에 기적을 베풀어 주옵소서!’ 이런 것들은 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 전에 자신의 삶에 하나님이  역사하실만한 공간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디서 역사하시라고요?  집에 사람이 찾아와도 집 청소를 하는데 아무 준비도 없이 하나님을 초청합니까?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얀 면사포를 입은 신부는 순결을 자랑으로 삼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신부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성결한 모습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을 영접했다고 모든 신앙의 끝이 아닙니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시작되지만 훈련으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 교인이 됐다고 해서 완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 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려면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 합니다. 성결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1,80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화가 ‘후쿠사이’에 얽힌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후쿠사이에게 한 친구가 찾아와 “수탉을 그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후쿠사이는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말합니다. 일주일 후에 다시 찾아 갔더니 이번에는 “이주일 후에 오라”고 합니다. 이주일 후에 찾아 갔더니 “두 달 후에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것이 1년이 되었습니다. 1년이 되는 날 친구를 찾아갔을 때 또 미루려고 하자 어이가 없어진 친구는 버럭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 친구의 화난 모습에 후쿠사이는 말없이 종이와 붓을 가져와 일순간에 수탉을 그렸습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완벽하게 그려진 수탉이었습니다. 그림은 좋았지만, 친구는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이렇게 잘 그릴 수 있는 것을 왜 1년이나 기다리게 해?”하며 따졌습니다. 후쿠사이는 말없이 친구를 화실로 데려 갔습니다. 그곳에는 후쿠사이가 1년 동안 습작한 ‘수탉 그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예술가로 살아가려는 사람은 예술적인 재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재능만으로는 부족하죠. 예술은 끊임없이 훈련하고 노력할 때 완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로서 끊임없이 성결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주를 향하여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성결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2장 21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라고 말씀하며 성결한 자를 하나님이 쓰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담비라는 동물을 아시나요? 족제비 같이 생긴 동물인데 그 속성상 그렇게 깨끗한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특별히 북유럽에 사는 흰 담비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털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더러움을 용납하지 않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끊기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흰 담비의 이러한 속성을 이용해 흰 담비를 잡는다고 합니다. 즉 흰 담비가 사는 굴 입구에 숯검정을 칠해놓고 숲속에서 놀고 있는 흰 담비를 굴속으로 모는데 굴 입구에 다다른 흰 담비는 그 굴에 들어가다가 자신의 흰 털을 더럽히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고 합니다. 일개 미물도 깨끗함을 위해 목숨을 포기하는데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성결을 위해 날마다 자신을 닦고 또 닦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성결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회개하면서 기도로 죄 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덕목을 위해 경건에 이르도록 훈련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예배하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여느 때나 마찬가지로 새해에도 우리 앞에는 건너기 어려운 요단강이 버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 강을 건널 것입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경건을 명하신 것처럼 우리도 인간적인 잔꾀를 부리기 전 스스로 거룩해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정과 편법으로 손쉽게 강을 건널 것처럼 보이나 이내 풍파가 불어 닥쳐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하지만 성결해져서 말씀을 청종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기적과 같이 강을 건너가게 될 것입니다. 목표가 저기 있는데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요단강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십니까? 성결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복된 새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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