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에 새 사람(고후 5:11-21)
  • 2013.10.28 19:13:29
  •  새해가 되면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집에 새 달력을 걸어 놓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새로운 교훈 새로운 기구 편성 등 모든 것을 새롭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우리에게 얼만 새로움을 가져다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대개의 사람들은 새 것을 좋아합니다. 옷도 새 옷, 신도 새 신, 집도 새 집, 차도 새 차, 새 사상, 새 지식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새로워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새해가 될 때마다 새로운 다짐과 결심을 하여 봅니다. 이러기를 우리 가운데는 20년, 30년···60년, 70년을 하였을 것입니다. 

     ‘새해!’ 하면 어딘지 모르게 우리의 가슴을 부풀게 합니다. 새 일도 시작해 봅니다. 새 습관을 가져 보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있듯이 며칠이 가지 못해서 전의 생활을 되풀이하는 경우를 하도 많이 봅니다. 

     왜 우리의 결심이 며칠을 가지 못합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새해가 되면 사람도 새로워집니까? 세 옷을 입으면 새로워집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속 사람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주인은 우리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처럼 우리 사람은 두 가지 면이 있습니다. 겉 사람이 있고 속 사람이 있습니다. 겉 사람은 보이는 사람이고 속 사람은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겉 사람은 후패합니다. 사실 새해를 맞아도 따지고 보면 그만큼 모든 것이 노쇠 현상을 나타냅니다. 검은 머리에는 흰 머리가 생깁니다. 곧던 허리가 굽어집니다. 밝던 눈이 어두워집니다. 밝던 귀도 멀어집니다. 분명하던 목소리도 어눌해 집니다. 곱던 얼굴은 주름살이 생깁니다. 총명하던 머리도 희미해집니다. 

     겉 사람은 이렇게 후패하여집니다. 새해가 되어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속 사람, 보이지 않는 사람은 날로 새롭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 까닭은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간의 근본 문제는 사회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기본 욕구는 그 속으로부터 온전히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 여러 곳에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가령 에스겔서 36장 26절에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의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우리의 굳은 마음이 변하여 부드러운 마음, 온유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도행전에도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묻는 많은 사람들을 향하여 “회개하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6장 13절에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라”고 권면합니다. 

     골로새서 3장 9 - 10절에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디도서 3장 5절에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본성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새 차원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 우리가 돼지를 깨끗이 목욕시켜 가지고 말쑥한 옷을 입히고 아름다운 리본을 달고 진주 목걸이를 걸어서 여러분의 안방에 들여 놓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잠깐 밖에 나갔다 돌아와 보면 아까 그 돼지는 자기 우리로 뛰어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왜요? 돼지를 목욕시키고 옷도 입혔고 장식품도 달아 놓았지만 결국은 그 본성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욕은 시켰어도 돼지 그대로 있습니다. 진주 목걸이를 걸었어도 여전히 돼지입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문화주택에 살고 갖은 문화시설을 이용하며 살지만 그 속 사람은 돼지나 개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환경은 변하였지만 사람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새 사람이 되는 것은 새로운 성품과 새로운 마음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8장에 보면 사귀들렸던 청년이 새 사람이 되어서 옷을 바로 입고 예수님께 순종한 일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세리장 삭개오가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살기가 등등한 청년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변화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 때에 한 번은 한 젊은 법관이 예수님께 뛰어나와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 오순절 때에 베드로가 훌륭한 설교를 한 후에 성경에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묻기를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아도 빌립보 감옥에서 간수가 바울과 실라더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습니까”고 물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도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이것은 오래 전의 질문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새로운 질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당면한 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면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과거 수세기 동안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도덕적으로 혹은 교육적인 노력으로 새 사람을 만들 수 있는 줄로 알고 힘써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의 환경이나 노력으로 새 사람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새 사람이 되기 원하는 유대인 관원 니고데모에게 새로운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다시 나야 한다고 하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예수님께서 이 진리를 말씀하시기 전에는 새 사람이 되는 가능성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기에 학식 많고 경험 많고 상당한 지위에 있는 니고데모도 이해를 못하고 어리석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아, 새 사람이 되려면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나와야 합니까? ” 하고 물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그저 우리가 바리새인 하면 보통 생각대로의 외식(外飾)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이런 선입관이 있지만 그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지를 않았습니다. 바리새인 중에는 물론 좋지 못한 사람도 있었지만 실상 그들은 양심적으로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애쓴 사람들입니다. 수입의 10분의 1을 꼭 드렸습니다.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한 주일에 이틀은 금식하였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은 꼭 성전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구나 니고데모는 유대인 관원이라고 한 것을 보면 70인 공회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사회에서 퍽 덕망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도 새사람이 되는 진리를 몰랐습니다. 

     어떻게 하면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17절을 보세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 새 사람이 되려면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에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어떻게 영접할 수 있습니까? 먼저는 내가 얼마나 악한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그 죄를 자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아버지를 멀리 떠났던 이들이 이제 뉘우치고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옛 생활을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시고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그를 영접하는 사람들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하였습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온전히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내 마음 중심에 영접하면 그밖의 일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새 사람이 되는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주 안에서 새 사람되었으면 어떤 방면으로 나타납니까? 

     ① 골로새서 3장 9 - 10절에 보면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생활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새 사람이 되었으면 옛날 사람의 생활, 어두운 생활, 더러운 생활 그 행위는 벗어버리고 밝고 깨끗한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나무가 좋으면 열매가 좋은 법입니다.” 그 생활의 열매를 보면 새 사람된 증거를 알 수 있습니다. 

     생활 뿐만이 아닙니다. 그 지식까지 새로워집니다. 일반적으로 지식은 그 행위를 지배합니다. 새 사람은 잘못된 지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식을 가집니다. 사실 오늘 이처럼 시대가 문명하고 새로워졌다고 하지마는 아직도 낡은 사상과 지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쓸데없는 미신에 매여 있는 사람은 얼마나 많습니까? 아직도 어떤 사람은 결혼식할 때 날을 받고 사주팔자를 보고··· 병원에 입원할 때 4층을 싫어하고(호텔에 투숙할 때도) 여러분 ! 이런 것 다 쓸데없는 미신입니다. 

     아직도 어떤 사람은 남존여비(男尊女妃)의 사상에 사로잡혀 있는 분이 있어서 여자를 천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가정에선 딸을 계속해서 다섯을 낳았습니다. 매번 아들을 기다리면서 낳는다는 것이 딸만 다섯을 낳았습니다. 딸은 아무리 많이 낳아도 소용없다는 생각이 강한 집이었습니다. 애기 어머니는 또 퍽 미안하고 죄송하게 생각하였었습니다. 그런데 또 임신을 하여 해산 달이 가까워 오는데 얼마나 그 마음이 긴장했었는지 모릅니다. 해산을 하고 아들이기를 바랐지만 그만 그애도 역시 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산모는 기절을 해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낡은 사상을 벗어버리고 새 사상을 입어야 합니다. 관존민비의 사상 또한 그러합니다. 황금만능주의 사상도 썩은 사상입니다. 관권주의도 그렇습니다. 과학만능의 사상도 바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새해에 옛 사람과 그 행위, 그 지식, 그 사상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서 그 행위나 지식, 사상이 새로워져 가겠습니다. 

     ② 골로새서 3장 1 - 2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하였습니다. 새 사람은 위엣 것을 찾습니다. 위엣 것을 생각합니다. 사람이 무엇을 찾느냐 그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됨을 압니다.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하다”고 하였습니다. 새 사람은 위엣 것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습니다. 

     ③ 고린도후서 5장 14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강권”함을 받습니다. 남편을 섬기는 것이 법에 의해서입니까? 사랑에 의해서입니까?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리어 수고하였습니다. 

     ④ 새 사람은 새 사람의 열매를 맺습니다. 옛 사람의 열매는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한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새 사람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새 시대는 새 사람이 요구됩니다. 누가 새 사람입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그 마음에 영접하여 성령으로 새롭게 된 사람입니다. 새해 첫 주일 저녁 우리 모두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이 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나라를 다스리는 위정자들이 옛 생활과 사상을, 부정과 부패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정치인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 : 17). 

     부활하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이 새해에 새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를 영접하세요. 

     여러분의 가정이 새로워지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을 왕좌에 모시세요. 

     이 나라가 새로워지기를 원합니까? 모든 퇴폐한 풍조와 부정과 부패를 일소하기 원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합시다. 주 안에서는 모두가 새로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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