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어나 빛을 발하라(사60:1-3)
  • 2013.04.09 22:02:48
  • 이번에 두레공동체훈련(D.C.D)에 참가하여 많은 은혜와 사랑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체험하는 너무나도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교회로 돌아오니 속초에 계신 친구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래서 '이번 훈련이 너무나도 은혜스러운 시간이었다'고 자랑삼아 말씀드리니, 목사님께서 대뜸 "삶의 변화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변화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아도 생활의 변화가 없다면, 그 훈련은 그져 훈련으로 끝날 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7장에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고,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다"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아도, 몸으로 행하는 것이 없고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음에 커다란 감동을 받고 사랑을 깨달았다면,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후5:17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영접하고 믿으면 생활속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전의 모습은 지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했다면,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의 삶 속에는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가? 병든 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한즉, 그 병이 깨끗이 치료되는 놀라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주위에 환경이나 상황들도 변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제 그 환경속에서 오늘 나는 또 다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신 할 수 있는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는 확신과 그 확신속에서 얻어지는 기쁨과 감사가 제 마음속에서 넘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을 너무 의식하던 저의 지난날의 모습은 이제 점차 깨어져 가고 있고,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나도 이웃을 진정으로 섬기고 사랑해야겠다는 결심이 가슴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사랑을 소유했기에 내 마음속에 '믿음의 여유'가 싹이 트고 있습니다. 

    주위 환경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지만, 내 자신은 변해가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번 훈련기간동안에 제가 가장 크게 깨닫고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어나 빛을 발하자"는 것입니다. 비행기는 날아다닐 때 비행기입니다. 땅에서만 굴러 다니는 것은 비행기가 아닙니다. 이렇듯 사랑은 실천되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입니다. 

    주님은 제 심령속에 말씀해 주셨습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마5:14이하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빛을 발한다는 것은, 이웃에게 '착한 행실의 본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즉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빛을 발하며 사는 것입니다. 

    빛은 말 아래 감추어 두지 않습니다. 빛은 언제나 등경위에 둡니다. 빛의 속성은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 자루의 촛불은 자신의 몸을 녹여가면서 어두움을 환히 밝힙니다. 주위 환경이 아무리 어두워도 아니,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그 빛은 더욱 더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자신의 몸을 녹여가는 한 자루의 촛불처럼,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 작은 빛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을 믿는 심령은 이미, '세상의 빛'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내가 진정, 내 마음속에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였다면, 나는 이미 세상을 밝히는 빛인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환히 비추는 작은 빛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일어나 빛을 발하라"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현실이라는 문제앞에 당면하면, 안주하려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문제의 벽이 너무나 높고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그져 주저 앉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경영학과를 졸업한 두 사람이 대형백화점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회사에서 자신들에게, 당연히 자신들이 전공한 일을 맡기리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첫날부터 엘리베이터 안내원이라는 보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내가 뭐 엘리베이터 안내원이나 하려고 이 회사에 취직한 줄 아나"하고는 그 회사를 그만 두었고, 또 한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비록 보잘 것 없는 일이었지만, 그 일에 최선을 다하며 손님들을 정중히 안내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비록 엘리베이터 안내원이었지만, 그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손님들과 쉽게 접하면서 그들의 심리를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점차 보직이 바뀌고 승진이 되면서 뛰어난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결국에는 그 회사 '최고경영자'의 자리까지 앉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생각되더라도, 불평 불만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바로 빛을 발하며 사는 자의 모습입니다. 

    또 이와는 반대로, 너무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그 문제를 피하거나 주저 앉으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고전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힘겹게 느껴지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주십니다. 우리가 격는 시험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인정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구약에 나오는 욥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욥은 고난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고 자녀들을 잃고, 몸은 병이 들고 아내는 그에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으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욥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욥에게 주어진 이 시련과 고난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련이었습니다. 욥 정도라면, 이같은 시련은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시험을 해도 좋다고 허락하신 것입니다. 

    욥기 1장에 보면, 가만히 있는 사단에게 여호와께서 먼저 묻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그랬더니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말씀하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이 말씀이 무슨 말씀입니까? 욥은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믿음의 사람이 욥이었습니다. 

    사단이 가하는 그 참기 힘든 고난조차도, 능히 이겨낼 줄로 하나님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시련은, 우리가 능히 이겨낼 수 있는 시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앞에 고난이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만큼, 우리의 믿음을 '인정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우리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고난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미쁘시사 시험 당할 즈음에 피할 길까지 주셔서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무슨일이 주어지든지 간에, 포기하거나 주저 앉지 말고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보다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채워주십니다. '일어나 빛을 발하는 자'는, 아무리 보잘것없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자이며, 아무리 힘에 벅찬 일이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입니다. 그리할 때, 성도로서 어두운 세상을 환히 비추는 빛이 되어 살아가게 됩니다. 

    이같은 사실을 깨닫고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할찌라도 결코 좌절하지 말고, 믿음으로 힘차게 일어나서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에는 어두움과 캄캄함이 자욱합니다. 썩어 없어질 육신의 일들이 세상에 가득차 있습니다. 잠시라도 우리가 신앙을 접어두고 곁눈질한다면, 금새 우리는 어둠속에서 헤메이는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는 믿음위에 굳게 서서 어둠의 일들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엡5:11에는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고 했고, 엡4:22에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어둠의 생각과 일들을 오직 믿음으로 벗어버려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서 죽은 자들입니다. 우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악한 생각과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탐심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함께 달려 죽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내 안에 예수님께서 사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사60:2에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어둠이 자욱하고, 그 어둠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지만,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임하게 됩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어둠의 긴 터널을 통과하더라도 결코 해를 입지 않을 것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때로 우리는 캄캄한 인생 길을 나 홀로 걸어간다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은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 되십니다. 우리는 그 빛되신 주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리 어두워도 한줄기의 빛이 비추기만 하면, 그 어두움은 금새 사라져 버립니다. 빛을 감출수 있는 어둠은 세상에 없습니다. 단지 빛에 의하여 어둠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기 위하여, 빛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요1:5절에서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강팍하였으면 직접 빛을 보면서도 빛으로 인식하지 못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고, 빛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 빛을 소유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8:12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이제 주 안에서 생명의 빛을 얻은 자입니다. 그러기에 빛의 자녀답게 행하며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롬13:12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했습니다. 갑옷은 전쟁에서 나가 싸울 때 적으로부터 생명을 보호하는 소중한 장비입니다. 우리는 모두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사단과 싸우는 영적 전투에서 우리의 생명과 몸을 보호하는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고 빛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일어나 빛을 발하며 살아야 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빛은 '사랑의 빛'입니다. 예수님이 빛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시면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죄에서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이 빛이 되셨던 것처럼, 우리도 작은 빛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죄인들을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내 이웃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빛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생활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셨습니다(요13:4-15). 또한 마20:28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고, 죄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사랑의 빛'이 되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죽기까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사랑의 빛을 간직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사랑의 빛을 우리도 간직하고 살아야 합니다. 아니, 예수님을 믿는 자는 이미 사랑의 빛을 소유한 자입니다. 

    사랑의 빛을 소유한 자는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소금은 짜야 소금이듯이, 빛은 드러나야 빛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마5:14-15). 

    등불은 비추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등경 위에 둡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고 우리 속에 예수님의 빛, 그 '사랑의 빛'을 간직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빛을 숨기는 자가 아니라 드러내고 나타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사랑 다음으로 중요한 계명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입으로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 받기를 원합니다. 사랑이 없어 메마른 심령이 되고, 사랑이 없어 절망에 빠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굶주려 웃음을 잃고 살아갑니다. 사랑받기 원하지만 사랑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먼저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믿습니까? 세상이 가져다 줄 수도 없고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예수님의 사랑을 이미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안에 주신 이 사랑을 가지고 이웃에게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다. 

    웃음을 잃고 메마른 심령속에 사랑을 심어주고 기쁨을 선사해야 합니다. 

    먼저, 작은 것부터 하나 하나 실천하십시오. 지나가는 이웃을 만나면, 그냥 스쳐 지나가지 말고,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먼저 웃으면서 인사하십시오. 내 힘으로 무엇인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기꺼이 진심으로 도와 주십시오. 사랑은 행동입니다. 

    이처럼,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어두운 세상을 환히 비추는 '빛'이 되어 사는 자입니다. 이제 우리는 '일어나 사랑의 빛을 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도, 삶에 찢기고 눌려서 주저 앉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때 그 때마다, 우리곁에 다가오셔서 새 힘을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아2:10,13).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어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그 어떠한 고난이 우리앞에 닥쳐도,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따뜻한 음성을 듣고, 나와 늘 함께 동행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새 힘을 얻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고, 일어나 사랑의 빛을 발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며, 어두운 세상이 보다 광명한 세상으로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바라기는 예수님이 주신 사랑을 가지고 진실한 마음으로 이웃을 섬기며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어서,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이웃들에게는 기쁨과 평강을 선사하는 '작은 사랑의 빛'이 되어 세상을 환히 밝히는 성도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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