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하늘과 새땅을 바라보는 교회(사65:17-25,벧후3:8-13)
  • 2013.04.11 06:40:59
  •   범죄한 인생은 만물의 파괴자로 전락됩니다.  범죄한 인간의 역사는 타락의 역사요, 전쟁의 역사요, 파괴
    의 역사요, 파멸의 역사일 뿐입니다.  인간이 머무는 곳곳마다 참혹한 파괴와 파멸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파괴되고, 대기는 오염되고, 산천은 헐벗게 됩니다.  인간의 이념과 정치 체제와 경제구조와 
    그 어떤 강력한 기구라 할지라도 역사를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새롭게 하려는 모든 노력은 무력합
    니다.  아무리 개선하고 개정하고 개조해 보아도 더 많은 모순 점과 부조리와 고통으로 끝날 뿐입니다.
        모두가 새롭게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이미 새롭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지구는 고통 중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인간이나 자연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회를 아름다운 사회로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이념을 가
    지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도처에 많이 있습니다. 윤리적 사회를 위하여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펴는 분들이 있
    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복지분야에서 열심히 뛰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연을 아름
    답게 보전하기 위한 환경운동을 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청소년을 바르게 지도하기 위하여 청소년보호운동을 
    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는 길거리에 방황하는 자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돌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이 사회는 제대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금
    에 일어나는 우리 나라 정치 행태를 보면서 일본 사람들은 우리 정치마당을 아주 흥미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
    다고 합니다. 사회가 아무리 혼탁하고 더러워도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깨끗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바르지 
    못한 이 사회를 향한 우리의 사명이 있다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면서도 하늘 나라를 소망하고 사는 것이요, 하늘에 소망을 가지고 살지만 그 소망
    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만들어 인간에게 선물하셨던 에덴동산입니다. 에덴이란 의미는 기쁨, 쾌락, 즐거
    움을 말한다.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 그런 동산이 에덴 동산이다. 에스겔은 에덴동산을 '하나님의  동
    산'이라고 불렀고, 사51;3절에서 이사야는 "여호와의 동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것을 보면, 에덴 동산은 약육강식이 없는 사회였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나타난 수치가 없
    는 사회였습니다. 인간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다시 회복시키는 운
    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거창한 사명이 바로 교회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사명
    이 있는데도 이 사명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그리고 너무 이상적인 죽어서 가는 천국만을 소망하기 때문
    에 우리는 때로 이 사회를 비관적으로만 보거나 아무런 가치없는 것으로만 보기 때문에 이 땅위에서의 할 일
    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보니 우리는 에덴 동산을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잃어버린 후에 그
    것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아름다운 동산을 다른 곳에 빼앗겨버리고 말았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다녀 보아도 우리만큼 동산이 많은 나라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울창한 숲이 있는 것
    도 아닙니다. 아름다운 강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대구 근교만 하더라도 참으로 동산이 즐비하게 많습니다.

        이름하여 "앞산 가든" "가야 가든" "제주 가든" "두류 가든" "푸른 동산" "팔공산 가든" 등등입니다. 
    여기서 '가든'이란 영어입니다. 어떤 연세 많은 장로님이 가끔 제게 간판의 이름에 대해서 물어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가든"이란 무슨 뜻입니까?' '가든 이란 정원, 또는 동산이란 뜻입니다'라고 대답을 드렸더니 
    그 장로님의 말씀이 그러면 이름을 잘못 지은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참으로 많은 동
    산에 둘려 쌓여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 좋은 이름이 불고기 집에 빼앗기고 해물 집에 빼앗기고 아파트에 빼앗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곳에 빼앗긴 이름을 교회가 찾아 나서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회를 에덴으로 만들어가야 할 책임이 있습
    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도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천국을 향한 소망을 갖고 산다하더라도 하나
    님은 항상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가라고 명하십니다. 
    우리가 이 땅위에서 만들어가야 할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어떻게 이런 나라가 이 땅위에 가능하겠
    습니까?  
        오늘 본문 이사야 65장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학개  스가랴의 격려로 성전
    이 중건된 이후에도 가난과 곤궁과 환난의 연속으로 낙심과 좌절의 분위기가 만연해진 이스라엘에게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씀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사실 우리가 임종 때나 장례식 때 고별찬송으로 잘 부르는 찬송가 '하늘가는 밝은 길이' 는 1892년 한
    국에 와서 49년간 선교사로 일한 윌리엄 스왈랜이 작사한 곡입니다. 당시 우리 나라 국민들은 너무도 가난하
    고 비참했습니다. 특히 한국여인들의 고통이 극에 달한 것을 보고 스왈렌 선교사님은 백성들의 한 맺힌 눈물
    을 달래줄 노랫말을 지은 것입니다.
        
      그는 스코틀랜드 '애니로리'라는 애환의 민요곡에 이 가사를 담아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노래는 
    한국여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어둠 속에서도 빛을 볼 수 있다." 는 위로의 메시지를 주었습니
    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통을 받으며 삶의 애환에 시달리는 모습을 바라보시면서 약속한 것이 하나
    님이 새롭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말씀 17-19절 상반절을 보면,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
    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
    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에덴이란 이름의 뜻이 기쁨과 즐거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창조하신 것을 
    통해서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이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백성들이 사는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동산
    으로 인하여 하나님은 즐거움을 창조하며 기쁨으로 삼으신다고 했습니다. 그 속에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는 주
    의 백성들을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워야 한다는 사명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합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결국 하나님을 믿는 주의 백성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일삼는 인간들로서는 새로운 것을 창
    조할 수 없습니다. 18절에 보면 "너희는 나의 창조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영원히 기뻐할 것이라고"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신다는 것은 결국 세상을 다스
    리는 주체자인 인간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 인간이 새로워지는 방법은 세상 윤리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교육으로 되지 않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철학이나 좋은 강연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EBS 교육 방송으로 통하여 김용옥 박사가 노자사상을 강의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
    다. 노자 사상이 아무리 훌륭하다해도 그것으로 세상이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이 
    새롭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새로워지려고 해도 이미 우리는 죄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그 
    죄를 해결하지 않는 한 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워진 자들만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
    습니다. 즉 하나님 나를 갈망하며 사는 사람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서 사는 자들만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사랑도 사랑할 줄 아는 자가 사랑합니다. 아름다운 세상도 아름다운 세상이 어떤 세상인
    지를 정확히 아는 자만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가 새롭게 된다고 했습니다. 새롭게 된 자들이 있는 곳에 아름다운 에덴 동
    산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위에 백성들이 
    억압받고 고통 당하며 가난하고 질병에 시달리며 애통하는 자들에게 새로운 하나님 나를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갑시다. 

       19절에 보면 새 나라가 되면, 즉 하나님 나라가 되면 첫 번째로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
    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
    리는 불의한 법으로 애매한 사람들이 고통을 받거나 권력에 눌려 못가진 것만으로 억울한 일을 당하여 울부짖
    는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여종 사라와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광야에서 방
    성대곡하며 울고 있을 때 그 울음소리를 들으시고 그에게 찾아가 주셨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찾아온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셨습니다.  
    마가복음10장에 보면 예수님이 여리고를 지나가실 때 소경 바디매오가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간절하게 무를 때에 주위 사람들은 조용하라고 하면서 그를 오히려 꾸짖었으나 우리 예수님은 그를 불러 
    그의 믿음을 보시고 소원을 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소망하는 하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라면 이 땅에서의 울음소리를 외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직의 아픔과 질병의 고통과 돈이 없어 병원에 갈 수 
    없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에 나앉게 된 사람들의 한숨짓는 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는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
    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 결국 하나
    님 나라는 억울하게 죽는 일이 없겠고, 전쟁으로 인한 살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절하는 일이 발
    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들
    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강도를 만나 죽는 사건, 시체가 토막이 난 채로 강에나 산에 버려진 사건, 어른의 
    전쟁으로 인하여 아이들이 죽어가고, 어른들의 실수와 죄로 말미암아 어린아이들이 무참하게 죽어 가는 세상
    은 빨리 새롭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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