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하늘 새땅 새백성(사65:25)
  • 2013.04.11 06:44:43
  • 유대인 가운데 세계적인 임상심리학자 브리즈니츠(Shlomo Breznitz)는 인간의 <희망>에 대한 연구발표를 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육군의 훈련병을 대상으로 해서 조사를 끝냈습니다. 훈련병들을 4개조로 나누어서 완전군장을 하고 20Km 행군을 시키는데, 제 1조에게는 출발할 때 행군거리를 예고하고 매 5Km마다 앞으로 얼마의 거리가 남았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제 2조는 "지금부터 먼 거리를 행군하겠다"라고만 가르쳐 주었습니다. 제 3조에게는 "15Km를 행군한다"라고 말해 주었다가,14Km 지점에서 "20Km를 행군한다"라고 변경 통지를 하였고, 제 4조에게는 "25Km를 행군하겠다"고 말했다가,14Km 지점에서 "20Km로 오늘의 행군을 단축한다"라고 발표하였습니다. 
      이 훈련병들이 그 상황에 따라 받은 스트레스를 브리즈니츠는 이렇게 보고합니다. 20Km 행군이라고 하는 정확한 거리와 중간지점에서 남은 거리를 정확히 알게한 제 1조가 스트레스를 가장 적게 받았고, 행군 거리도 모르고 참가한 제 2조가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사자의 예상을 뒤엎은 사실은 25Km를 행군할 줄 알고 시작한 병사들, 곧 예상한 거리보다 짧게 행군한 4조가 예상한 거리보다 더 길게 행군한 병사들, 곧 15Km를 행군할 줄 알다가 5Km가 더 늘어난 3조보다 훨씬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상했던 거리보다 단축되었다는 말에 긴장이 풀리고 피로가 갑자기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을 통해 브리즈니츠는 <희망>이라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필요한 것이지를 증명하였습니다.  희망을 정확하게 가지고 사는 생활과 막연하게 가지는 경우와는 그 스트레스나 인내력에 있어서, 그리고 성취하는 면에 있어서 큰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 <희망은 인간을 강하게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네 인간이 얼마나 희망이라는 것이 필요한 존재인줄을 브리즈니츠의 연구 이전에 먼저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메시지를 주시면서 암울한 현실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지 않도록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가 메시지를 전파할 당시에는 맞지 않는 모습입니다. 역대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그 수많은 왕들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제 더 이상 그러한 왕들에게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멸망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새로운 소망을 주십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계속해서 던져주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메시야 왕국 다윗 왕국이 일어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날을 약속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정확한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 다같이 본문 17절을 읽어봅시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오늘 우리는 새로운 천년의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또 우리를 위하여 펼쳐나가실 새로운 천년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올해의 우리의 표어를 <새 하늘 새 땅 새 백성>이라고 정했습니다. 새 하늘 새 땅 새 백성이라고 하면 도대체 어느 때 주어지는 것인가 하는 고민을 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천국을 보여주는 단어인데, 새 천년을 시작하면서 새 하늘 새 땅 새 백성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하고 말입니다.
     성경에는 천국의 개념이 세 가지로 구분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현재적 의미의 천국입니다. 우리의 왕이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다스리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주님의 통치를 받는 모든 영역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요, 새 백성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죽은 후에 가는 천국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당신은 천국에 갈 확신이 있습니까?"라고 묻는 천국이 여기 해당됩니다. 세 번째는 종말론적인 천국입니다. 이것은 완성된 천국입니다. 우리 주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지는 우리의 죽은 후에 나뉘었던 영과 육이 다시 하나가 될 때 이루어지는 천국입니다. 이런 세 가지 천국의 개념을 통해 새 하늘 새 땅 새 백성이라는 표어를 생각하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주님은 무엇을 하실 것인지 나타납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곧 그들에게 예루살렘에서의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졌을 때, 에스라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새 백성답게 살려고 몸부림쳤는지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제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면서 우리들도 지나간 과거들은 다 묻어둡시다. 그리고 이제 새 백성으로서의 삶에 몸부림치는 2000년 시작이 되기를 바랍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하늘 새 땅 새 백성의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이러한 새 하늘 새 땅 새 백성으로의 다짐과 함께 우리에게 펼쳐질 그 선지자 이사야를 통한 예고를 듣기를 원합니다.
      새 하늘 새 땅에서 새 백성된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살펴보면서 소망을 가지고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1.이제 새로운 기쁨이 있을 것입니다. 
     18절을 다같이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우리에게 새로운 기쁨을 예고해 줍니다. 이 새로운 기쁨에 대해 한 세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봅시다.
     먼저 무엇 때문에 기뻐합니까?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창조하시는 그 일들 때문입니다.
     여기 창조한다는 단어는 역시 창세기 1장에서 나타나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해 나가신다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이제 우리를 위해 새로운 천년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해 나가십니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은 위대하신 일들을 시작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을 보는 눈이 열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바라볼 때 거기에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새 백성으로 만들어 가실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가장 귀한 것을 준비하시고 만들어 가십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면 참된 만족 참된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들어 놓는 것을 바라보고 있으면 괜찮은 것 같아도 문제 투성입니다. 
       이제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면서 17절 처음에 나타나는 것처럼 보십시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십시오. 단순히 여러분의 형편만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의 우리를 위해 행하시는 일들을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이 새로운 천년에 하나님께 눈을 두고 산다면 그 하나님의 하시는 이들로 인해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기쁨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잠시 누리는 기쁨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원한 기쁨입니다.  전도서를 통해 보여주는 솔로몬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사업을 크게 하면 기쁠 것 같습니까? 일시적으로는 부자가 된 기분으로 기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네 인생을 피곤하게만 만들뿐입니다.  집을 지으면 기쁨이 영원하겠습니까? 처음에는 기쁘겠지요. 하지만 조금 지나면 그 집 때문에 머리 아픈 일들이 생깁니다.  자동차를 새로 사도 처음에는 기쁘지만, 얼마가 지나면 자동차 때문에 속상한 일들이 더 많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들로 인한 기쁨은 영원한 기쁨입니다. 잠시 누리는 기쁨만을 바라보면서 살다가 솔로몬처럼 훗날 바람을 잡으려 따라다닌 헛된 생애를 후회하지 않도록,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는 누구에게 그 기쁨이 주어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입니다. 한 마디로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들, 주의 자녀들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주의 백성된 우리들을 기쁨으로 삼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 곧 주안에 있는 자들에게 기쁨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새로운 천년에 주님밖에 사는 삶을 계속 산다면 새로운 천년 아니라 새로운 만년이 온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안에 사는 삶을 산다면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는 것들로 인한 기쁨, 그 영원한 기쁨 넘쳐날 것입니다. 이제 이런 새로운 기쁨이 새 천년을 시작하면서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새로운 삶을 예고합니다.
     19-20절을 다시 봅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새로운 삶에 대한 하나의 표현 방법입니다.  에스라 9장과 10장을 보면 에스라가 울며 기도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이유는 그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새 백성들이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데 과거 열조들이 범했던 범죄를 또 다시 범하자 기가 막혀 앉아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천년이라는 날이 찾아온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새 하늘 새 땅 새 백성>이라는 표어를 잡은 것도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삶이 있어야 합니다.  자기는 하나도 변하지 않으면서 남들이 변화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내가 변해야 합니다. 내가 변하여 새로운 삶, 새 백성으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에스라와 같이 새 백성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다짐하며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복된 삶을 허락하십니다. 여기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장면은 우리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행복의 길에 대한 당시적 묘사입니다.
     어린아이들에게 행복을 소개하기 위해 우리는 맛있는 것도 많고, 장난감도 좋은 것이 많다는 둥 그렇게 묘사하는 것처럼, 이사야 당시 우리에게 가장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를 묘사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바라기는 날마다 주의 말씀을 따라 변화된 삶을 통해 새 하늘 새 땅 새 백성으로서 누리는 새로운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샬롬의 은혜가 예고됩니다.
     21-23절 말씀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에 사는 하나님의 새로운 백성들이 누리게 될 샬롬의 상태입니다. 새 백성들이 수고한 것들을 이방인들이 와서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합니다. 새 백성들이 거하는 성을 다른 이들이 쳐들어와서 살지를 못합니다. 수고하여 생산한 것들이 재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수고하고 애를 쓴 것들이 이방인들에 의해 짓밟힘을 당하고 그들의 수고한 것들을 다 빼앗겼습니다. 샬롬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다시 생각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제는 결코 이방인들에 의해 혹은 재난에 의해 그들의 수고한 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는 새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진정한 샬롬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지나간 날들 동안 그토록 수고하고 애를 썼는데, 도대체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샬롬을 잃은 상태가 아니었습니까? 어떤 분은 주일도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서 열심히 일을 했는데 자식들이 갖다가 다 허비해 버립니다. 혹은 약값으로 병원비로 다 내보냅니다. 아니 돈은 남아있어도 다른 것들을 다 빼앗아 가시므로 도대체 사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그냥 돈 모으는 벌레가 되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는 여러분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는 새 백성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진정한 샬롬을 회복하여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수고한대로 귀한 열매가 있는 상태, 23절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것처럼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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