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여! 어리석었습니다(눅12:13-21)
  • 2013.08.27 06:56:48
  •  벌써 1999년 마지막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이 시간, 지난 1년 동안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면 참으로 사건 사고가 많았던 한해였고, 특히 많이 회복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가시지 않은 경제 위기로 불안과 염려 속에서 연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해에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희망차고 보람있는 새해가 되어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한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간에 예수님께서 본문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밭에 소출이 많아 큰 곡간을 짓기로 결심했습니다.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그리고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기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리하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20절) 
    부자는 번영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죽게 되었습니다.
    만일 이 사람이 오늘 우리 사회에 산다면 사회적 명성과 존경을 독차지한 사람이요,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어리석은 자'라고 결론을 내리고 계십니다. 그토록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었고 부를 누리며 살던 사람인데, 어찌하여 예수님은 이 부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신 것처럼 나도 어리석은 자는 아닙니까?

    첫째로, 나에게는 종말이 없는것처럼 살아오지는 않았습니까? v 자기에게 '끝'이 있다는 것을 종종 잊고 사는데 인간의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대개 부요하고 권세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 인생의 마지막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어리석은 자의 종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이 1999년의 마지막 주일이듯이 사람에게는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건강해도 병들어 죽을 날이 있습니다. 성공해도 그 성공이 언제까지 가는 것이 아닙니다. 넘어질 날이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도 떨어질 날이 있습니다. 아무리 재산을 모아 손에 움켜쥐어도 내놓을 날이 있습니다. 시작이 있었던 것처럼 그 끝이 있습니다. 인생의 종착점은 누구에게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어차피 가야 할 인생들입니다. 
    인생의 시작을 내 마음대로 한 것이 아니듯 끝나는 날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코스에서 "끝나라"는 명령이 있으면 끝나야 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음 앞에 서야하고, 죽음과 만나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하여금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시39:4-6절)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종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사람은 사는 날이 얼마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9-10,11절)라고 간구했습니다. 
    고로, 지혜가 무엇입니까? 
    지혜란 '우리의 사는 날이 얼마인가'를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4장 14절에도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최후를 알고 최후를 대비하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고, 풀잎의 이슬처럼 사라지는 존재라는 것을 한 순간도 잊지 말고, 성도답게, 지혜롭게 사십시다. 지난 1년간 어리석은 부자처럼 벌고, 모으고, 쌓아두는데만 마음을 썼다면, 이제는 종말을 바라보는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부름의 날을 대비하며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내가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 고달픈 세상을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적어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지, 자기 인생의 목적은 알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부자는 사는 목적을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데 두었습니다. 그래서 어리석고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것은 동물적 가치관입니다. 자기의 기쁨과 만족만 생각하며 사는 것은 사람이 취할 가치관이 아닙니다. 동물이나 그렇게 삽니다. 그런데 이 부자의 독백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이 부자가 왜 어리석습니까? 
    이 부자는 모든 것을 다 자기 것으로 알았습니다. 심지어 영혼도 자기의 소유로 알았습니다. 똑똑한 체 하지만 얼마나 멍청합니까? 사람이 무엇을 영원히 가질 수 있단 말입니까?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만을 위해 사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이 어리석음이 깊을수록 종말은 더욱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오늘 말씀의 교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한 해도 다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스스로 이런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난 1년을 무슨 목적으로 살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여러분은 어떤 대답을 준비하셨습니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다운 가치 기준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이 가치 기준이 바로 서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 [톨스토이]는 '인생의 목적이 자기 안일과 행복에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순간 견딜 수 없으리만큼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 반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을 목적이라고 생각하여 보라. 그 순간, 당신은 영구한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송년 주일입니다. 
    우리는 1년의 종말을 보면서 인생의 종말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어리석은 자와 같은 종말이 되지 않도록 삶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이 시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에게 봉사하며 살도록 창조되어진 존재입니다. 
    아담은 창조된 뒤 하나님으로부터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어도 좋다'(창2:16절)는 말씀이전에 '에덴 동산을 다스리고 지키는 임무'를 먼저 부여받았고(창2:15절), 하와는 아담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창조되었습니다.(창2:18절) 남자나 여자나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존재를 위해 봉사하도록 인간은 창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은 부자는 전혀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실패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1999년 한 해 동안 남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할애했고 물질을 할애했습니까? 이제는 나만을 위하여 살지 말고 이웃을 생각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사후를 위해 무엇인가 남기며 살아왓습니까?
    그는 아무 것도 한 일 없이 부끄럽게 죽었습니다. 죽은 후의 자기 존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간은 돌아갈 존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나 돌아갈 날을 아시고 하늘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습니다. 
    어차피 가야할 인생이고, 어차피 재산은 두고 가야할 것입니다. 
    다 남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죽은 다음에 남의 것이 되면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만, 내가 살아 있을 때 남에게 준다면 선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준다해도 영원히 가지고 누릴 그러한 것으로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남의 것이 될 것을 미리 주는 것뿐 아닙니까? 생명이 있을 때 성도답게 선하게 써야 할 줄로 압니다.

    ※ 17명의 사람을 인정 사정도 없이 살해한 살인마 [김대두]가 사형언도를 받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에 지난 죄를 회개하고, 어차피 죽을 몸, 자기의 성한 눈과 콩팥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되면 사람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선행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을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인 것입니다.

    ※ [앤드류 카네기]는 어려서부터 너무 고생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사업한 결과 대 재벌가가 되었고, 교회와 사회를 위하여 무려 2,555억 원이나 되는 돈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늘 "돈을 남기고 죽는 것은 수치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하며, 다 쓰고 죽어야 한다"고 공언을 했고,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남을 부러워하며 사는 사람이요, 가장 고독한 사람은 할 일 없는 사람이며, 가장 고상한 사람은 남을 섬기고 봉사하며 사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난 1년 동안 남을 위하여 살지 못했다면 우리가 살아온 1년의 세월은 죄악의 세월입니다. 남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죄악의 세월을 살아온 것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와 이웃을 위하여 봉사해야 할 몸인데, 그렇지 못하고 허탄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고 귀한 재물을 자기만의 쾌락을 위해 소비했다면 아무리 바쁘게 살았어도 우리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 해가 끝나면 새 해가 오듯이 우리의 인생이 끝나면 영원한 인생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앞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 위탁받은 시간이며 재능과 물질, 모든 주신 은사의 사용에 대하여 심판을 받아야 할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어리석은 부자처럼 인생의 종말을 맞기 전에 지혜롭게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처럼 언제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며 살아가십시다. 바울은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딤후4:6-8절) 했습니다. 자기가 떠날 기약이 가까운 것을 인식하면서, 최후까지 경주장에서 뛰고 달리는 선수와 같이 살았던 바울입니다.

    지나온 세월이 어리석게 산 세월이었는지 지혜롭게 산 세월이었는지는 우리 스스로가 잘 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지혜로운 삶이었다면 더욱 정진하고, 어리석은 삶이었다고 생각되면 철저하게 회개하고 다가오는 새해에는 종말을 바라보며 지혜롭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장차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잘 살았다', '잘했다'는 하나님의 칭찬과 함께, 영광의 면류관이 여러분 앞에 예비 되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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