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와 함께 하는 생활(여호수아 1:1-9)
  • 2013.10.29 06:59:07
  •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새해 첫 주일 아침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의 위대한 영도자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의 인도하에 애굽을 떠났고, 홍해를 기적으로 건넜고, 광야에서 40년간을 지났습니다. 요단강 건너편 모압 평야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불행히도 위대한 영도자 모세는 느보산에 올라가서 가나안의 온 땅을 바라보면서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약속한 땅까지 이끌고 나가야할 젊은 하나님의 종 여호수아는 어깨가 무거움을 느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벼운 불안까지 생겼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직접 불러서 말씀하셨습니다.

    1.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요단을 건너 내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땅으로 가라.’
    이스라엘 민족은 모압 평야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요단을 건너가서 가나안 땅, 약속의 땅을 점령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그때의 이스라엘 민족의 형편을 살펴보면 그들 가운데는 모압 지방에 그대로 진을 치고 거기에 머물러 있기를 원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위대한 영도자 모세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로 많은 고생을 하여 왔는데 이제는 좀 쉬었으면 좋겠다. 아마 이렇게 생각한 사람도 상당히 있었을 줄 압니다. 더구나 그때 마침 요단강에는 홍수로 물이 많아 건너가기도 어려웠습니다. 건너간다고 해도 거기에는 가나안 7족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주 장대해서 그 땅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쌓아올린 성곽은 높고 그들이 웅거하는 산악은 험해서 설사 요단강을 건너간다고 해도 쉽게 그 땅을 차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상당히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루우벤 지파와 갓 지파, 그리고 므낫세 지파는 요단강 이 편에서 이미 붓깃의 허락을 받은 때 인줄 압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요단강을 건너야겠다는 의욕이 적어진 때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향하여 명령하셨습니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라. 그리고 내가 그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건져 내시었습니다. 40년 동안이라는 긴 세월을 광야에서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모압 평지까지 인도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는 모압 평지에 머물러 있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요단강 물이 높아졌고 가나안 땅의 거민이 강하다고 하여도 그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 땅을 점령하고 이 앞으로 위대한 민족이 되고, 그 곳에 위대한 나라를 세워서 제사장 나라를 삼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셨습니다. 그래서 모압까지 인도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과 경륜은 이스라엘 민족이 모압 지방까지 오고 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까지 가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을 완전히 점령하고 완전한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요단을 빨리 건너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북한에서 피난오신 27명의 성도가 우리 한 목사님을 중심으로 하여 모이기를 시작하여 오늘의 영락교회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동안 6.25동란을 겪었고 4.19학생혁명, 5.16군사혁명 국내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우리 교회를 이곳까지 인도해 주셨고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사실 여호수아처럼 저에게도 두려운 생각과 무거운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분명히 듣습니다.

    “이제 너는 이 모든 성도들과 함께 일어나라” 우리 온 성도가 함께 일어나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금년 우리 교회의 표어를 로마서 12장 11절로 정했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금년에는 우리 모두가 일어나야 겠습니다. 당회원 여러분, 일어나야 합니다. 제직 회원 여러분이 일어나야 겠습니다. 구역 책임지신 여러분, 일어나야 겠습니다. 교회 학교 교사 여러분, 성가대원 여러분, 우리 평신도 여러분, 일어나야 겠습니다. 부지런히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러 나서야 겠습니다. 지금의 상태에서 만족할 것이 아니라 더욱 알차게 일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5천만 이 겨레를 복음화 하는 일에 선봉이 되어야 겠습니다.

    금년에는 우리 가운데 한 분이라도 앉아서 구경하는 분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여러분은 이렇게 아침 예배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내가 일할 수 있는 데서 봉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남녀 전도회에 가입해서 전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녀 전도회에 오셔서 봉사할 수 있습니다. 청년과 대학생도 회에 입회해서 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서반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십일조하여 성도의 의무를 다해야 겠습니다. 아무튼 금년에 우리는 다 함께 일어나서 내가 교회를 위하여 할 일이 무엇인가? 내가 사회를 위하여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보아야 겠습니다. 우리 영락교회 온 교우가 다 이렇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함께 일어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앞으로 더욱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2.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용기와 담력은 군인의 생명입니다. 군인으로써 용기가 없고 담대하지 못하면 군인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담대해야 할 이유는 요단 건너 편에는 가나안 7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성곽은 튼튼하고 사는 곳은 험악하였습니다. 더구나 가나안에는 그때 아람 자손인 키가 큰 장사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전에 모세의 생존시에 이스라엘 12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뽑아서 40일간 가나안을 정탐하게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온 지경을 다 정탐하고 난 뒤에 돌아와 보고를 하였습니다. 열 두 사람 중에 열 사람은 퍽 절망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가나안에 거하는 사람을 보고 우리를 보니까 우리는 메뚜기보다 못합니다. 우리가 그 땅을 점령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와 반대였습니다. 아주 희망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서로 상반되는 보고를 한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절망적인 보고를 한 사람들은 외부적인 조건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희망적인 보고를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배후에 그들과 같이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를 이 시간 뿐만 아니라 계속적으로는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거듭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세기 15:1)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두려워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열왕기하 6:16)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하나님께서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3.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라.”
    주와 함께 하는 생활은 승리하는 생활입니다. 우리가 강해서가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므로 우리를 이기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생활 할 때에도 아말렉과 싸우는 데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피곤해서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승하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함으로 승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청년 요셉이 애굽에서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어떻게 이겼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므로, 하나님 앞에서 살므로 이겼습니다. 그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으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여 주셨습니다. 종래는 크게 승리하여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가 어떻게 바벨론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살 수 있었고 문자 그대로 불 가운데서와 사자굴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이겼습니다.
    소년 다윗이 어떻게 백전노장(百戰老將)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므로 이겼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그런 역경 속에서도 승리적인 생애를 보낼 수 있었습니까? 그의 간증 그대로 질그릇과 같은 그가 보배이신 주님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의 찬송처럼
    “제 힘만 의지하면은 패할 수 밖에 없으나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운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 자 없으니 반드시 이기리로다“
    우리는 약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를 당할 자 이 땅 위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민족에게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하리라” “네가 갈 때 나도 가고, 너희가 요단을 건널 때 나도 같이 건너고 너희가 싸울 때 내가 같이 싸우고 네 힘이 약할 때 내가 네게 힘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4. 주와 함께 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여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내 생각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서 그대로 따라가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살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날 때 주님도 우리를 떠나십니다.
    삼손이 범죄할 때 주님이 떠났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범할 때 주님이 떠났습니다. 비극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면, 그 말씀 따라 순종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고 그 길이 평탄하게 될 것입니다. 전에 에녹은 365년을 산 사람인데 그는 평생을 하루같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 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이 성공하는 해가 되기를 원합니까?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세요. 
    승리하는 해가 되기 원하십니까?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세요. 
    평화로운 해가 되기 원하십니까?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을 하세요. 
    소망이 넘치기 바랍니까? 주님과 함께 할 때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금년 벽두에 우리에게 다 함께 일어나 요단을 건너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하여 주실 것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세상을 떠나면서 한 말은 “내게 있어서 가장 좋았던 한 마디 말씀은 마태복음 28장 20절 하반절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이었다”고 하였습니다.
    금년 1년 아니 여러분의 평생이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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