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116:05-14/ 감사생활의 비결
  • 조회 수: 440, 2013.10.30 21:29:54
  • 오늘 아침 우리는 시편에 있는 말씀 몇 절을 읽었습니다. 이 시는 누가 썼는지 자세히 알 길이 없지마는 이 시를 읽을 때 감사의 정이 차고 넘치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시를 쓴 사람은 그 마음 속에 감사와 감격에 북받쳐서 이런 시를 쓰게 된 줄 압니다. 

    이 사람은 아마 어려운 형편에 빠져서 거의 소망이 없는 그런 자리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런 곤경에서 하나님이 건져 주셔서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를 얼마나 후대하시나 하는 것을 기억하고 자기의 영혼을 사망에서 그 눈을 눈물에서 그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신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른 생각하면 “아, 그거 뭐 그런 어려운 자리에서 그런 사망의 골짜기에서 구원을 받았으니까 감사한 일이야 당연하지!”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한번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는데 어떤 작은 촌에 들리게 되셨습니다. 거기서 문둥병 환자 열 명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멀리서 보고 소리높여 외쳤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다만 하신 말씀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옛날 문둥병자들이 혹 병이 낫게 되면 나았다고 하는 증명서를 제사장들에게 받아와야 일반 사회인들과 자유롭게 사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사장들에게 가서 몸을 보이라”고 하신 그 말씀 가운데는 “네 몸이 곧 나을 것이라” 하는 그런 뜻이 내포되어 있는 줄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문둥병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는 곧 그 자리에서 예루살렘에 가서 제사장들에게 나아갔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는 도중에 그 추악한 병이 온전히 나았습니다.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다 깨끗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을 깨달아서 예수님을 찾아와 하나님을 찬송하며 예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다 나음을 받았지마는 그 은혜를 깨닫고 돌아와서 감사를 드린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아홉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감사를 드리지 아니하였습니다. 

    감사 생활의 첫째 비결은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옛말 가운데도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은혜 가운데 감사할 줄 아는 은혜는 보기 드문 은혜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씨는 우리 크리스천의 세 가지 큰 덕을 가르친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 보면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한다” 했는데 자기로서는 하나 더 꼭 넣을 것이 있다고 하면서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크리스천들이 은혜를 구하는 이는 많지마는 받은바 은혜에 대하여 그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심히 적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특별히 명심하지 아니하면 이 아홉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옛날 다윗의 시 가운데 보면 자기의 영혼을 깨우치며 하는 말이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송하여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또 이것 보세요! 이 열 사람 가운데 아홉 사람은 은혜를 잊어버렸으므로 감사하지 못했는데 이상한 것은 아홉 사람 전부가 다 유대인입니다.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고 주님께 와서 감사드린 사람은 누군고 하니 사마리아인 입니다. 

    여러분!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을 비교해 보면 어떤 사람이 더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까?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도 유대인이요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고 감사할 수 있을 만한 사람도 유대인이 아닙니까? 

    이 유대인들로 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들입니다. 모세의 율법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여러 선지자들의 교훈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매 안식일에는 회당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법을 따라서 예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유대인 아홉 가운데 아홉 전부가 주님의 그 크신 은혜를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이 더 잘 잊어버립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합니다. 아마 은혜를 받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만성이 되어서 그저 의례히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같이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하여 내 영혼을 늘 깨우치지 아니하면 안 되겠습니다. 

    더구나 가만히 보면 적은 은혜는 우리가 기억도 하고 감사도 하기 쉽지만 큰 은혜는 받아도 잊어버리기가 쉽고 은혜를 은혜인 줄 모르게 되는 때가 많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우리가 적은 은혜는 쉽게 잊어버릴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큰 은혜야 어떻게 잊어버릴 수 있겠는가?’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실 큰 은혜일수록 잊어버립니다. 

    캄캄한 방안에 불을 켜 주는 분이 있으면 감사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밝은 햇빛으로 비춰 주시는 것, 아침마다 감사드리는 분 몇 분이나 됩니까? 

    잠시라도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우리들이 순간 순간 이렇게 신선한 공기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큰 은혜일수록 잊어버리기가 쉽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문자 그대로 여기 말하는 문둥병자와 같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십자가의 은혜를 늘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립니까?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늘 조심하지 아니하면 이 큰 은혜를 잊어버려 감사생활 하지 못하기가 쉽습니다. 감사생활의 첫째 비결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잊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 생활의 둘째 비결은 무엇입니까? 

    받은바 은혜를 깨달으면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이 큰 은혜를 만분지일이라도 보답하려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이로다.”

    내가 이렇게 큰 은혜를 받았으니 어떻게 하면, 또 무엇으로 그 큰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는 사람은 자연히 감사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어떻게 일평생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안 다음부터는 늘 감사한 생활 감격에 넘친 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요? 

    디모데전서 1장 12 - 15절까지 읽을 때 자세히 들어보세요.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니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사도 바울은 자기와 같이 훼방자였고 핍박자였던 사람이 이렇게 주님께서 긍휼하심을 베풀어서 귀한 직분까지 맡겨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다고, 그러므로 자기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겠다고,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고 해보겠다고 하는 보답의 심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주님 때문에 어려움을 당해도 오히려 영광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수고를 하면서도 자기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일하면서 자세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 은혜로라.”

    감사의 마음이 없는 사람은 무엇 조금 하면 자세합니다. “아, 내가 이렇게 하였는데 ···”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나서 아마 감당할 수 없는 벅찬 심정이었던 모양입니다. 이와 같은 깊은 감격의 믿음은 그로 하여금 교회를 봉사하며 만인을 봉사하는 봉사자로 만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림을 받아서 안하려야 안할 수 없는 감격이 늘 그에게 넘쳤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를 강권하였습니다. 즐거워하는 자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로 함께 우는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감격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게끔 만든 것입니다. 

    이와같은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감격스러운 믿음은 바울로 하여금 말로 다할 수 없는 수난 속에서도 항상 승리의 생활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합시다! 참 신앙생활이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격스러운 마음 가운데서 만분지일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려고 하는 노력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와같은 믿음은 모든 선지자들과 모든 참된 성도들의 공통한 신앙의 특성입니다. 

    요한 일서 3장 16절에 보면 사도 요한이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그 사랑을 알고 우리도 그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감격,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사도 요한으로 하여금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의 사도를 만든 것입니다. 

     어거스틴도 한번 회개한 다음에는 그 일생을 통하여 이렇게 감격스러운 믿음 속에서 살았습니다. “내가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인데! 그리스도께서 내 죄를 용서하시고 이렇게 구원하여 주셨으니 내가 이 큰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어거스틴에게는 늘 감사와 감격이 차고 넘쳤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라면 조금도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생각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근심이 있다면 “하나님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는 근심 밖에는 없어야 하겠습니다. 은혜에 감격한 가운데 감사한 마음으로 보답할 길을 찾는 근심이 성도에게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 믿는 사람들은 세상의 다른 근심은 할 것도 없거니와 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근심하지 말 것입니다. 혹 생기면 주님께 맡겨 버리십시오.

    그런데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근심이 있습니다. 이 근심은 보다 간절하게 보다 변명하게 하며 보다 분하게 하며 보다 두렵게 하며 보다 사모하게 하며 보다 열심있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하여 무엇으로 보답할꼬 근심하는 사람은 이런 간절한 태도로 보다 더 잘하고 보다 더 사모하게 하고 죄를 범하면 보다 더 분해하고 전보다 더 열심히 하려는 생활로 나타납니다. 

    이와같은 신앙은 자연히 봉사와 희생을 가져옵니다. 

    ① 죽은 생명을 아무쪼록 몇이라도 더 구하려고 안타까워합니다. 이번에 우리 한 목사님이 서독 백림에서 참석하신 세계복음화 대회는 왜 그렇게 굉장한 경비를 들여가면서 모임을 가집니까?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는 죽을 심령 구하기 위해서 입니다. 다른 목적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②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려고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주님의 맡은 것 정성껏 합니다. 여러분! 금년도 거의 다 지나가는데 우리가 맡은 일 얼마나 정성 드렸습니까?

    ③ 더구나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고 근심하는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께 대한 봉사, 희생, 신앙 생활을 힘써 하면서도 늘 부족해 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내가 이만큼 했으면 됐지.” 그런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번 감사 주간을 당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다시 기억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망극하신 은혜를 만분지일이라도 보답하려는 간절한 마음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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