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와 효도(엡 6 : 1 - 3)
  • 조회 수: 240, 2013.07.20 20:51:03
  •  셀 실바스타 의 아름다운 동화 《너무와 소년》의 글에 있는 아주 귀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인 고목이 있었습니다.  이 나무에 매일 찾아오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나무를 매우 좋아했 
    고 나무도 소년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소년이 자라서 돈이 필요한 때가 되었습니다.  소년이 
    나무에게 찾아와서  돈이 필요한데  의논을 합니다. 
      그러자 나무는 소년에게  나의 가지에 열려 있는 사과를 따 팔아서 돈을 만들면 되지  소년은 기쁨으로 사 
    과를 팔아서 돈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기뻤으며 나무도 행복하였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소년은 거처할 집이 필요하였습니다.  나무에게 와서 근심스레 말했습니다.  그러자 
     나무는 나의 몸인 가지를 잘라서 집을 지으면 되지  말합니다.  소년은 나뭇가지를 잘라 거처할 집을 마련 
    했습니다.  그래서 소년은 기뻤으며 너무도 행복하였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소년은 청년이 되고 나무는 이제 더욱 고목이 됩니다.  청년이 먼 곳을 항해하 
    고 싶으나 배가 없습니다.  또 나무에게 와서 조심스럽게 의논하였습니다.  그러자 나무는 말합니다.   내 
    몸의 등걸을 잘라서 배를 만들면 되지  청년은 나무의 뿌리만 남기고 둥치로 배를 만들었습니다.  청년은 참 
    으로 기뻤고 나무 역시 행복하였습니다. 
      청년은 오랫동안 바다에서 풍랑과 싸우며 항해를 하다가 드디어 노인이 되어 고향으로 되돌아옵니다.  동 
    네 밖 입구에 베어진 그 옛날의 고목 등걸을 봅니다.  그때까지 그대로 나무는 있었습니다.  피곤한 노인은 
    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참으로 오랜만에 기쁨의 쉼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행복하였습니다.   
       
      여기서 나무는 바로 어머니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모든 것을 주고도 잘라주고도 그리하여 결국 뿌리만 남 
    은 고목이 되어도 소년이 기쁘다면, 즉 자식이 기쁘다면 그저 행복해 지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물론 잘릴 때 그 아픔은 어떠했겠으며, 그 청청하던 가지와 잎 그리고 열매가 없어질 때 얼마나 쓸쓸했겠으며, 
    추한 등걸만으로 남을 때의 부끄러움은 얼마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소년이 기쁠 때, 자식이 기쁘다면 행복해지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우리들 
    의 영원한 고향이자 안식이며 품입니다.  노인이 되어 죽음이 와도 어머니의 품을 그리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은 우리들의 영원한 뿌리입니다. 
       
      고종황제의 밀사 역할까지 했던 미국인 헐버트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전통적인 경로사상 
    이 가장 완벽하게 된 나라는 조선 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미국공사로 한국에 와서 근무한 적이 있던 샌즈라 
    는 사람은 회고록에서  나의 노년을 위해 조선 땅에서 태어나고 싶다 라고 쓰고 있습니다. 
      1884년 최초의 의료선교사로 이 땅에 입국한 알렌의사는  노인사이와 망인(亡人)사이가 단절되지 아니하 
    고 연결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죽는 것이 두렵지 않는 즐거운 노인 천국이 조선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몇 가지 경로사상을 소개해 봅니다. 
      ① 문성이라 하는 것은 아침에 일어나거나 저녁에 잠들 때 아들과 며느리로부터 문안을 받는 전통입니다. 
      ② 새 과일이나 별식이 생기면 반드시 부모가 드신 후에 자식이 먹을 수 있습니다. 
      ③ 주부의 권리를 상징하는 뒤주열쇠가 안방차지는 늙어 죽을 때까지 맏며느리에  게 물려주지 않습니다. 
      ④ 외출 후에 돌아오면 마을노인을 일일이 찾아 인사를 드렸습니다. 
      ⑤ 말을 타고 길을 가다가 노인을 만나면 반드시 말에서 내려 두 손을 읍하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⑥ 집안에 잔치가 있으면 마을노인을 모셔다가 상석에 앉혔습니다. 
      ⑦ 마을에서 소나 돼지를 잡으면 배장이라 하여 내장을 그 마을노인에게 골고루 나누어야만 했습니다. 
      ⑧ 부모가 늙으면 벼슬자리를 고향 가까이 옮겨주고 부모를 봉양케 하였고, 부모가 와병하면 그 봉양을 
        위해서 유급휴직을 시켜  주었습니다. 
      동서고금을 통해서 노인을 이처럼 우대한 나라가 세상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형편을 보면 사정이 도대체 말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노인 천국이었던 나라가 노인 
    지옥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연세 많으신 노인이 자식에게 짐이 된다고 APT에서 뛰어내려 자살합니다.   
    제주도 효도관광을 가서 노인을 버리고 외국으로 훌쩍 이민을 떠나는 자식도 있으며, 병도 없는데 강제로 입 
    원시켜 격리 수용하는 최신판 고려장이 때로 있습니다. 
       
      이제 우리 기독교는 과연 어떤 종교인가를 생각해 보면서 효도에 대한 바른 의미를 살펴보고 은혜를 나누 
    고자 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쉽게 기독교를 불효의 종교라 말합니다. 
      지금은 그 인식이 조금씩 달라져 가고 있으나, 한국선교 초기에는 극심하게 기독교를 불효의 종교라고 박 
    해를 하였습니다. 제사문제 때문에 그랬습니다. 
      사실 불효로 따진다면 불교는 더합니다.  불교에의 출가는 완전히 떠나는 것으로 부모가 죽든지 살든지 전 
    혀 관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국불교의 큰스님이라고 하는 성철스님이 출가할 때 울면서 따라오시는 어머니 
    에게 돌을 던지면서 쫓아오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는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까? 
      살아 계신 어머님께 돌을 던지는 종교는 괜찮고 돌아가신 분 제사 안 지내는 기독교는 불효라  이거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이제 잘 들으세요.  불효가 아닌 증거를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십계명을 보아서 기독교는 불효가 아닙니다. 
      1계명에서 4계명까지도 하나님을 섬기는 도리에 관한 계명이며, 5계명에서 10계명까지는 인간과 인간사이 
    에 지켜야할 도리를 규정한 계명인데, 그 첫 번째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출20:12절에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 
    리라 고 했습니다. 
      보세요!  이 세상 모든 법의 모법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그 십계명에 못박아둔 효도를 두고 감히 기독교 
    를 불효의 종교라 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 효도에 관한 성경 말씀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출21:15절에는  자기 아비와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고 말씀하셨고, 잠23:22절에는  네 부모를 
    즐겁게 하여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고 하셨고, 심지어 잠30:17에는 말씀하시길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새끼에게 먹히리라 고 까지 했습니다. 
      그밖에도 허다합니다.  만일 기독교가 불효의 종교라고 생각되는 분 계시면 성경 66권을 다 읽어보시고 말 
    씀하시길 바랍니다.  그 어디에도 불효해도 괜찮다는 구절이 있는가 말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효성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30년간 나사렛생활은 홀어머니 마리아를 섬기는 생활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입 속이 가랑잎처럼 말라 가는 상황 속에서도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 
    아의 여생을 부탁하시는 매우 감동적인 장면을 우린 압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의 효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마음을 편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잠17:1절에 보면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 
    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최상의 효도입니다.  나이 들면 어린이가 된다는 말과 같이 아주 작 
    은 일에도 섭섭하게 생각하십니다.   기력이 쇠하여지고 경제력이 없어져서 자식에게 의지하여 살게 되면 석 
    양이 서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럴 때에는 진수성찬을 드려도 마음이 편하지 못하며 효도가 될 수 없습니다.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큰아들은 부자요.  둘째아들은 작은 가게를 경영합니다.  둘째아들 
    은 생활이 넉넉치 못합니다.  잘사는 큰아들이 어머니를 모십니다.  진수성찬으로 대접하지만 어머니는 늘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둘째 아들집에 가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큰아들은 불평을 하면서 가난한 동생 
    집에 가서 폐를 끼치지 말고 계속 자기 집에 계시라고 합니다. 
      그때 어머니는 말씀하십니다.   너는 온갖 좋은 것으로 차려 주지만 네 동생은 밤마다 내 등을 긁어 준단 
    다 고 했답니다.  좋은 옷, 좋은 음식, 효도관광이 진정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옛날부터 부모를 섬기는 것을 봉양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봉양이라는 것은 부모의 뜻을 헤아려 살피는 
    양지(良知)보다 못하다고 합니다.  단순히 좋은 옷, 좋은 음식을 드리는 봉양은 부모의 뜻을 살펴서 기쁘게 
    해드리고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양지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둘째, 믿지 않는 부모를 구원해야 합니다.   
      기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구원입니다.  믿지 않는 부모님이 계신다면 그 영혼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 
    야 합니다.  이것이 최대의 효도방법입니다. 
      때로 처녀 때 신앙 생활하던 분들이 결혼해서 쉬고 계시는 분을 만나면 우리 시부모님께서 돌아가시면 다 
    시 교회에 나가겠다고 하는 분을 봅니다.  오늘 본문 1절에는  주안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라 고 했습니다.   
    주님을 떠나서 효도하는 것은 영적으로 불효가 됩니다.   
      믿지 않는 부모 영혼구원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며 무지 애를 쓰는 젊은이들은 많이 보았습니다.  얼마나 
    신앙이 멋있는지 모릅니다. 
       
      셋째, 생전에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세상 떠난 후에 제사만 잘 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 합니다. 
      어느 믿는 며느리가 믿지 않는 집에 시집와서 예수 믿는다고 시아버지로부터 몹시 핍박을 받았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산제사를 드리라는 성경말씀이 문득 생각나서 13년동안 매달 초하루에 진수성찬을 차려서 
    시아버지에게 산제사를 드렸답니다. 아버님께서 돌아가시면 아무리 잘 차려 드려도 못 잡수실 테니까 생전에 
    드시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랬더니 그 정성에 시아버지가 감동되어 교회에 나오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세요!  성도 가정에서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장례를 모셔야 할 때 한쪽에서는 유교식으로 불 
    교식으로 그리고 기독교식으로 하자고 난리를 칩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당장 집 
    에 돌아가셔서 산제사를 한번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넷째, 추도예배를 잘 드려야합니다.   
      히11:4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유교보다, 불교보다 더 
    나은 제사가 기독교의 제사입니다. 
       
      죠지리틀은 죠지타운 대학의 축구코치였습니다.  합숙훈련 중에 어느 선수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 
    가 왔습니다.   
      그 선수는 일주일 휴가를 얻어 고향에 가서 장례를 치르고 이틀만에 달려 왔습니다.  이토록 빨리 온 이 
    유를 물으니 내일 축구결승전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선수는 어리고 경험도 부족한 후보선수였는데 꼭 출전할 수 있도록 애원을 해서 부득이 출전시켰습니 
    다.  놀랍게 그 후보선수의 눈부신 활약으로 팀이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죠지리틀 코치가 그 이유를 물었 
    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신기에 가깝게 잘 할 수 있었느냐? 
      그러자 그 선수는 말합니다.  네 저의 아버님은 장님이어서 평소 제 경기를 볼 수 없었으나 오늘은 아버 
    지께서 천국에 가셔서 제 경기를 처음으로 볼 수 있게 되었으므로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뛰었 
    습니다. 고 대답합니다. 
      추도예배는 천국에서 부모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 집사님께서 믿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집안에 장손이라 제사문제 
    가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사실 이 문제 때문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목 
    사님께 상의를 합니다.  추도예배를 드리고 싶은데 집안반대가 너무 심해서 그 동안 못했노라합니다.  그 
    래서 목사님께서 그 집사님에게 이번 한번 해보자! 그리고는 음식에서부터 모든 준비를 잘 하도록 권면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날 추도예배를 드리려 갑니다.  집안 가득히 손님들이 계시는데 갓을 쓴 노인으로부터 해서 굉 
    장한 집안식구들이 모였습니다. 
      은혜롭게 예배를 드리고 최고로 준비한 식탁에서 식사를 나눕니다. 단지 절만 안했다 뿐이지 그야말로 정 
    성을 다한 예배와 준비를 보시고는 집안어른들이 감동했습니다. 기독교 제사도 괜찮다고 앞으로 이렇게 해도 
    된다고 허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부모님들 하늘나라에 가셔야합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들께서 자손들을 위해서 하늘나 
    라에서 무슨 기도를 하고 계실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불효를 회개해야합니다.   
      어버이는 열 아들을 한 손으로 기를 수 있으나 열 아들은 그 어버이 봉양을 서로 서로 미루기만 했던 
    지난날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병들었을 때에 기나긴 밤을 지세우던 어머니, 그 어머니께서 몸져누울 때 우리들은 곁에서 하룻 
    밤도 지세우지 못했던 불효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어디나 계실 수 없어서 대신 우리 가정에 부모님을 보내 주셨다는 이스라엘 격언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효도하지 못하는 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집하며 성전에 나와 예배하는 어리 
    석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천평 저울에 온 세상을 한쪽에 올려놓고 떠 한쪽에는 어버이의 사랑을 올려놓으면 과연 어느 쪽으로 기울 
    어질까요?  어버이의 사랑이 더 무겁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살아 계시는 어버이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그림자이심을 깨달아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돌아가서 회개 
    한 후에 돌아와서 예배를 드려야 그 예배를 열납하실 줄로 믿습니다. 
      1962년 2월 10일 여수 남초등학교 졸업식 때의 일이었습니다.  회색 스웨터에 낡은 바지를 입은 중년부인 
    이 장한 어머니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부인이 단상에 올라가 상장을 받자 장내는 박수소리로 떠날 듯 
    했고, 졸업하는 그 딸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이야기는 그 부인의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모녀가 살고 있는 섬은 집이 세 
    채 밖에 안 되는 외딴 섬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딸이 여덟살이 되자, 남편에게 딸을 육지에서 공부시키자고 
    어렵게 말을 꺼내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여자가 공부해서 뭘 하나 그리고 20리 바닷길을 어떻게 다니느냐 고 하면서 한사코 반대 
    했습니다.  그 섬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은 그때까지 아무도 없었으니까 말입니다. 그 어머니는 이 섬이 까 
    막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고 남편 몰래 딸을 육지의 초등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그로부터 6년, 어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오나 매일 꼭두새벽에 일어나 험한 물건을 손수 노를 저어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어머니의 정성은 지극했습니다.  그렇게 6년을 하루같이 노를 저어온 뱃길이 무 
    려 3만 3천리나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졸업식장은 온통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부끄럽지만 대학을 실패하고 1년간 재수하면서 동두천에서 4Km 떨어진 시골에서 서울로 1년간 학원 
    에 다니면서 공부했습니다.  저희 어머니는 새벽 4시면 일어나 새벽밥을 지어 도시락을 싸 주셨고 1년을 새 
    벽에 일어나 4Km을 걸어서 읍내까지 가서 서울 가는 기차를 타고 1년간 통학을 하였습니다.
      저녁에 읍내에 도착하면 저의 동네에 가는 버스가 저녁10시면 끊어지고 걸어서 또 밤길을 가야만 합니다.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는 저녁 밥상을 차려 주시면서 제가 좋아하는 사과 한 개를 꼭 상위에 놓아주시곤 하 
    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어머니가 최고라 하겠지요?  저는 지금도 하늘나라에 계시는 저의 어머니의 사랑이 이 세상 
    보다 더 무겁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효도의 종교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땅에 떨어진 효를 다시 거두어 올리는 굳 
    센 결단이 있으시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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