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속있는 첫 계명 2 (엡 6:1-3)
  • 조회 수: 216, 2013.07.20 21:17:07
  •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기초단위는 가정입니다.
    따라서 가정이 튼튼하면 그 사회는 튼튼한 사회가 되고, 가정이 흔들리면 그 
    사회전체가 흔들린다고 우리는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
    지금 여러분의 가정은 튼튼합니까 ?
    가정이 튼튼하기 위해서는 그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가족관계가 무엇보다도 
    건실해야 합니다.
    부부관계와 부모와 자식관계 !
    그 관계가 모두 건실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느 가정을 가보면 부부가 서로 그렇게 사랑하고 존경하고 아껴줄 수가 없
    습니다.
    그런 부부를 만날 때 우리는 도전과 감격을 동시에 받습니다.

    반면에 어떤 부부는 서로 빈정대는 부부가 있습니다.
    서로 욕하고 서로 헐뜯는 부부 !   
    그런 부부가 적지 않습니다.

    또 어떤 가정을 가보면 자녀들이 그렇게 예의바를 수가 없습니다.
    자녀를 위한 사랑이 행동 하나 하나에 잔뜩 묻어있습니다.
    웃음이 가득합니다.
    기쁨이 가득합니다.
    자녀와 부모 사이에 대화가 그렇게 풍성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가정도 많이 있습니다.
    자녀와 대화가 단절한 가정 !   
    왜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지 않습니까 ?
    자녀들도 그렇게 버릇이 나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집에 가보면 공기가 싸늘합니다.
    오래 머물기가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성도 여러분 !
    크리스챤 가정이란 어떤 곳이어야 합니까 ?
    적어도 크리스챤 가정이라면 이 땅에서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천국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건실하게 만들어 갈 
    수가 있을 것인가 ?
    오늘 말씀은 그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에게 교훈의 멧시지를 주고 있습니다.

    가정은 두 가지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횡적인 구조입니다.
    즉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의 구조는 종적인 구조입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그것입니다.
    믿음의 가정이라면 여기 이 횡적인 관계와 종적인 관계가 만나는 교차지점
    에 예수 그리스도 !   
    그 분께서 자리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
    무슨 말씀입니까 ?
    부부 사이에도 그 중심되는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 !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그 중심되는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 !
    그 분께서 자리하시도록 그리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부부가 삶의 중심되는 자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지 못할 때 자녀들의 삶 
    중심에도 예수님께서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 관계는 매우 상호밀접한 관계입니다.
    그 관계는 결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부부 !
    사랑과 신뢰와 존경이 넘쳐나는 부부 !
    그런 부부 사이에서 자라나는 자녀가 잘못될 수는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이기적이고 위선적이고 거친 부모들 밑에서 자라나는 자녀가 잘
    되는 경우는 지극히 드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
    우리는 흔히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
    성도 여러분 !
    무슨 기도입니까 ?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 아닙니까 ?

    그런데 그런 역사가 아무데서나 일어나겠습니까 ?
    그저 그렇게 기도만 하면 그런 역사가 우리 삶의 현장 어디에서나 일어나겠
    느냐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편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 있는 곳 !
    바로 거기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
    지금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짝사랑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
    짝사랑 !
    그것이 상대의 가슴에 얼마나 커다란 상처를 내는지 모릅니다.
    짝사랑을 해본 사람은 그 상처가 얼마나 큰지 잘 압니다.

    그러기에 성도 여러분 !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십시오 !
    하나님의 뜻은 바로 그런 사람의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시간 이곳에 모이신 여러분 모두의 삶의 현장에서 그런 역사가 이루어지
    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이제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
       자녀들아 !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
    거기 그리 말씀하십니다.

    2절 말씀은 무엇입니까 ?
    부모를 공경하는 것 !
    그것은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약속은 무엇입니까 ?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 !
    그런 자녀는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한다고 3절 말씀이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
       네 부모를 공경하라 !
    여기 이 말씀은 여기에서 처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 가르침은 구약시대부터 일관되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말
    씀입니다.
    보시지요 !
    출 20:12 말씀입니다.    구약성경 113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

    어디 그 뿐인 줄 아십니까 ?
    신 5:16 말씀도 보시지요 !   구약성경 270면.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

    성도 여러분 !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네 부모을 공경하라고 수시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어떻습니다.
    기독교를 도무지 예의도 없는 종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상도 몰라보는 종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햅니다.
    지금도 방금 확인을 하셨지만 기독교는 결코 조상을 몰라보는 종교가 아닙
    니다.
    그 어느 종교보다도 조상의 존재를 인정하고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에다가 약속까지 걸어놓으셨습니다.
    그처럼 적극적이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보고 조상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정죄하
    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
    문제의 핵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
    바로 제사에 있지 않습니까 ?

    우리는 여기에서 제사와 기독교 !
    그 문제를 심도있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사를 미풍양속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짐승보다 못한 놈 취급을 합니다.
    제사를 지내야 효도요, 그래야만 인간다운 인간으로 생각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
    우리는 여기에서 제사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자 이전에 중국에서는 하(夏)나라 때와 상(相)나라 때에 정식으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그 당시에는 부모에게 제사를 지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뛰어난 황제에게만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렇게 좀 특출난 황제만을 위해서 지내던 제사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왕
    가에서는 보편화됩니다.
    그러던 것이 점차 평민들 사이에 '왕들의 조상만 훌륭하냐 우리 부모도 훌륭
    하다'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제사는 평민들 사이에서도 행해지게 되었
    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제사가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게 된 것은 그 때보다 훨씬 후대
    인 송(宋)나라 때부터였습니다.
    유교학자였던 주자가 자신의 철학인 성리학을 통해서 조상에게 반드시 제사
    를 지내야 한다고 강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나 신라시대 때에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
    니다.
    그 때도 모든 왕은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왕을 위해서만 제사가 행해졌습니다.

    잘 아시는대로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성행했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 일은 없습니다.
    오늘날도 불교를 국교로 정한 태국같은 나라에서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절에 가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은 무속과 불교가 
    뒤섞이면서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 나라에서 제사가 성행하게 된 것은 이 태조에 의해서 조선이 건국되고 
    유교를 국교로 선포하면서부터입니다.
    주자가 가르친 성리학이 그 때부터 이 나라에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세종대왕 같은 왕은 조상에 대한 제사를 대대적으로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
    결국은 무엇입니까 ?
    제사 !   그것은 중국의 풍속이었습니다.
    그것은 원래부터가 한국의 것이 아닙니다.
    제사 !   그것은 결코 이 나라의 미풍양속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것은 단지 중국의 유교에 묻어서 들어온 하나의 외국풍속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상놈이라는 말 속에는 사대주의 사상이 묻
    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천주교에서는 왜 제사를 막지 않는가 ?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 처음으로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 !
    그 때 천주교는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초기 천주교 신자들은 집 안에 있는 신주들을 불태웠고 제사를 공식
    적으로 금했습니다.
    그로 인한 박해사건이 1801년에 일어난 신해(辛亥)박해사건입니다.

    그러다가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20세기 초에 와서 천주교가 새로운 입장
    을 취하게 됩니다.
    1939년 12월 18일에 로마교황청이 새로운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새로운 입장이라고 하는 것은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에서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와 일본이 동맹을 맺었지 않습니까 ?
    그 때 일본의 압력에 이기지 못해서 로마 교황청은 신사참배나 조상숭배는 
    종교적인 의미가 없는 하나의 시민적인 행사라고 발표한 것입니다.
    제사는 조상에 대한 하나의 '효의 표시'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로마교황청의 그 말 한 마디로 이제까지 있었던 천주교 신자 만여명의 죽음
    이 헛된 죽음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제사문제와 관련해서 어찌해야 할 것인가 ?
    그 문제와 관련해서 우리는 십계명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
    제 1 계명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이지 않습니까 ?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예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제 2 계명은 무엇입니까 ?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섬기지 말라 !
    그것 아닙니까 ?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제 1,2 계명이 이것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
    겠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말씀이지 않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를 그 어떤 다른 문제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십니
    다.
    하나님은 당신만이 예배의 대상이기를 고집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이 여기저기 나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도무지 참지 못하십니다.
    그래서 구약의 역사를 보십시오 !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여기저기 나뉘어질 때마다 하나님께서 어찌하셨
    습니까 ?
    매우 치셨지 않습니까 ?

    사랑하는 영암의 성도 여러분 !
    그래서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주 안에서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모순종 !
    그것은 무엇입니까 ?
    부모님들께서 살아계실 때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가장 귀한 이정표를 제시해 주고 있는 사람이 룻이라
    는 여인입니다.
    그녀는 남편도 없었습니다.
    자기 고향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어머니 하나 따라서 어머니의 나라가 나의 나라요 어머니의 하나님
    이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며 어머니를 극진히 공경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를 주 안에서 극진히 공경했던 룻 !
    그 여인의 나중 모습이 무엇입니까 ?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그 여인의 이름이 오르지 않았습니까 ?

    성도 여러분 !
    이렇습니다.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라 !
    그것은 약속있는 계명입니다.
    그 약속이 무엇입니까 ?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약속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약하고 병든 부모님 때문에 힘들어 하시는 성도님 계십니까 ?
    生의 마지막 순간까지 잘 해드리십시오 !
    지금 무능한 부모님들 때문에 가시밭 인생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래도 잘 해드리십시오 !

    지금 시어머니와 관계가 불편합니까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그런 관계 !   
    빨리 청산하십시오 !
    작은 아이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우리 주님 말씀하셨습
    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것 !
    그것은 곧 우리가 주님께 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
       모든 것을 주께 하듯 하라 !
    바로 그 말씀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행하는 우리의 모든 행위는 곧 하나님께 행하는 것입니
    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
    우리의 부모 !
    정말 극진히 공경해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이 날을 기해 우리 안에 새로운 다짐이 있기를 원합니다.
    돌아가신 다음에 잘 해드린다고 괜히 법석을 떨지 말고 !
    돌아가신 다음에 땅을 치며 통곡을 하지 말고 !
    살아계실 때 !
    우리 부모님들이 살아계실 때 우리 잘 해드립시다.
    주 안에서 우리 정말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합시다.
    거기에 다르는 약속 !
    그 약속을 유업으로 받아 누리시는 우리 영암의 자녀들 모두가 되기를 주님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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