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버이 주일(엡6:1∼3)
  • 조회 수: 343, 2013.07.20 21:20:38
  •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0.도입
    1.주 안에서 순종하라. 
    2.공경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 
    3.공경하고 순종할 때 얻는 유익은?
    4.적용.결론
      
    0. 도입/ 현대사회는 약속으로 이루어진 사회, 가장 철저하게 이행. 실천- 은행
    성경은 하나의 거대한 약속 덩어리라 할 수 있다. 신약, 구약
    언약으로도 부르는데/ 아담-노아-아브라함-다윗-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짐.
    성경 중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삶의 원칙이자 기준이 가장 명확하게 압축되어 표현되어 있다. 십계명이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주신 사랑의 표현이자, 섬세한 배려이다. 인생사에 만나는 모든 영적문제, 도덕적 윤리적인 갈등을 십계명에 대입하면 풀려진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계명을 통하여 자신을 뜻을 계시하시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 기준이 없게 된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3차 선교여행후 로마의 감옥에서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회람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의 한 지체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마땅한지를 가르쳐준다. 행20: 에베소교회 장로들과의 이별현장 
    에베소서 6:1~3 바울이 구약의 십계명 중 제5계명을 거의 그대로 인용함으로 자녀들이 부모를 향해 가져야 할 자세를 강조하였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지 3개월이 경과/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음. 전제조건이자 서론 19:1~6 / 5, 6 내 언약을 지키면 내 소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개-중심으로 한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다. 한 부부가 서로 아이를 낳고 살아도 혼인신고를 하지 아니하면 불법이며 부정한 관계와 다름없다.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불안한 동거생활이다. 그러나 혼인신고를 하고 정상적인 관계를 맺게되면 온전한 합법적인 관계이다. 혼인예식은 부차적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서로가  계약 즉, 약속을 맺었다. 지워지지 아니하는 문서로 증거로 세운 언약이었다.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자세히 생각하면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성경에 계명에 네 자녀를 사랑하라 계명은 없다. ? 그것은 강조하지 않아도 자연히 본능적으로 선천적으로 흘러나오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내리 사랑은 아무리 강퍅하고 무감각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 실천된다. 
    *장로님/ 아이들 한번 안아 줄줄 모르고 지냈다. 냉정했다. 손자를 보고 나니까 달라지더라. 눈에 삼삼하고 그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더라. 할머니 허리가 휘어지는 줄도 모르고 손자를 업고 달래는 것은 제 힘으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리 사랑이라는 엄청난 힘이 사람들 속에 숨어 있다. 신문지상에 아버지. 어머니 가출은 있다. / 할머니가 손자들을 버리고 가출 기사는 본적이 없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모 자식과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를 깨닫게 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한다. 내리 사랑은 그저 퍼부어 주시고 쏟아붓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원천이시며 화신이시다. 아가페 사랑-희생적인 헌신적인 사랑.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기까지 하시는 사랑이다.  제5계명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다.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마음과 수고를 알아차리는데는 적어도 30~4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데는 자신의 의지를 쳐서 꺽어야만 가능하다.  인간은 생래적으로 권위에 대해 거부하며 저항하는 마음이 있다. 죄인으로서 어쩔수 없는 한계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스스로의 본능적인 욕구로 가능한 사랑이 아니다.  부모님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자신을 위해 희생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스스로 깨달아 알기에는 역부족이다. 또한 
    *자신보다 조금 윗 사람 혹은 직분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 처음부터 공손하고 순종하기는 쉽지 않다. 예수님께서 비유하신 탕자의 이야기/ 둘째 아들도 아버지로부터 빨리 독립하고 싶어서 안달을 내었던 사람이었다. 자신도 자기의 몫을 달라. 나도 성인으로 대우해 달라. 아버지 그늘에서 지내는 것이 이젠 싫다. 사람은 권위에 대해서 순복하는 것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안된다. 즉, 힘쓰고 애쓰고 노력해야 가능한 하다. 부모를 공경하며 순종하는 것도 동일하다. 진정으로 부모를 공경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 입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이미 궤도를 상실한 기차와 다름없다. 목표가 어긋나 있다.  

    1.1 주 안에서 순종하라.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되 주 안에서 순종하라.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최우선순위에 모시고 그 다음으로 네 부모님께 순종하라. 하나님 순종과 부모 순종이 서로 정면으로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가? 결론적으로 답한다면 없다. 십계명 중에서 1~4계명은 대신관계, 5~10 대인관계/ 그중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져야 할 가장 처음 만나는 대상이 - 부모이며 가장 우선적으로 섬기며 순종해야 한다. 자녀가 부모를 어떻게 대하며 섬기는가를 통하여 그 사람이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는지를 알게 된다. 십계명은 어느 한 계명이라도 전체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서로 연합되어 있다.
    마15:4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예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너희들이 부모에게 다해야 할 공경이나 섬김을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면 다 끝났다고 한다. 
    고르반 제도/ 자신이 부모를 섬겨야 하는데 공교롭게도 하나님께 우선적으로 섬겨야 되어 하나님께 섬긴다면서 고르반이라 선언하면 부모를 섬기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그들은 생각했다. 예수님은 그와 같은 행동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셨다. 
    *예수님 당대에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인간은 원초적으로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면 어떻게하든지 간에 피할려고 한다. 오늘날 구원의 길 비유/ 넓은 길-좁은 길.
    왜냐하면 부모님을 섬기는 것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서로 분리시킬 수 없다. 서로 연합되어 있다. 그와 같은 경우가 생기더라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원말씀 그대로 지키는 것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부가적인 규칙들이 더 많았다. 
    *십계명이 10가지 조문으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규정해 놓았다면 그 외에 부가적인 규칙들이 613개의 부칙이 더 많다.   

    2.1.공경하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 
    부모를 공경해야 할 절대적인 이유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권위자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매라는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서라도 아이들을 교훈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다. 그 외에 교사는 부모로부터 위임받아서 교훈한다.  공경/ 강조형이다. 절대형, 명령형,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여겨야 한다.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것은 십중팔구 하나님과 이웃을 무시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다. 아무리 자신에게 잘 대해 주더라도 속지 말라 악한 친구는 하나님의 교훈을 거스린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집권했을 때에 장로들이 와서 물었다. 앞으로 이 나라를 이렇게 통치했으면 합니다. 건의-여로보암은 친구들의 말을 듣고 더 강하게 철권정치를 하겠다고 선언.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나라가 둘로 분열됨. 아버지 솔로몬 사후에 그를 교훈할 연로한 장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극히 순종하고 받드는 아버지와 같은 측근을 옆에 두지 못했다. 솔로몬의 실책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말년에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함으로 인해서 자녀들에게 아무리 좋은 지도를  해도 제대로 먹혀들지 못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려고 했을 때에 이삭이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보다 달리기를 못했을까? 입이 없었을까? 왜 성경은 침묵하고 있는가?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에 거의 100% 순종했다는 증거이다. 이삭의 삶을 한마디로 압축한다면 하나님께 순종=부모님께 순종,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절대적인 순종으로 심지어는 자신을 제물로까지 바칠려고 한 행동을 보면서 이삭은 충격을 받았을 것에 틀림없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행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바로 이런 것이구나하고 또한 자신도 그와 같은 삶을 믿음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했다.

    3.1공경하고 순종할 때 얻는 유익은?
    에베소서는 약속있는 첫 계명이다. 출애굽기에서는 네가 땅에서 장수하는 길이다.
    잠언에서는 무수한 축복의 말씀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모습을 표현했다. 
    잠 1:8 부모님께 순종/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네 부모의 명령을 지키고 떠나지 말라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목에 매라  
    렘35:18~19 레갑족속/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그 모든 훈계를 지키며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였도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우리의 삶의 모든 행동은 믿음을 바탕을 한다. 자신이 부인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말이나 행동이나 삶의 전 영역에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드러낸다. 그러한 우리의 믿음의 행동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실천하게 되면은 하나님의 복이 있다. 
    이 땅에서 장수/ 하나님의 은혜이다. 아브라함이 .... ....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약속으로 받은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가나안 땅을 네게 주리라-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복이다. 생명이 길리라-그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시편은 백발이 영화, 노화가 하나님의 은혜/ 언젠가 우리는 부모가 될 것이다. 물론 책임도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더 가까이 체험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더 큰 은혜이다. 왜냐하면 삶에 여유를 가지며 관조하는 그 즐거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상상만해도 설레이지 않는가? 그때 누리게 될 행복이 느껴진다.    

     4. 적용.결론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가족의 개념을 새롭게 가르쳐준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우리는 그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한가족 공동체이다. 교회는 신자에게 모태와 같다.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한다. 성경은 말하기를 자기의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만 사랑하고 베풀고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이방인들도 다 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게 요구하시는 것은 이 세상의 기준이나 정도를 뛰어넘어야 한다. 
    모 집사님에게 누님과 같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나 아부성의 말이 결코 아니다. 그 속에는 저의 목회철학과 방향이 담겨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한가족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 인종을 뛰어넘어 지역을 초월하여 계층을 막론하고 그리스도인이다라고 하면 매우 반갑고 친숙함을 느낀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인한 약속의 공동체의 일원이요,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며 같은 길을 걷는 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한 지붕 밑에서 살며 한 솥밥을 먹는 가족들이다. 영의 양식인 말씀으로 하나되었다. 우리 교회는 많은 사람이 있지 않다. 저는 연세드신 분을 우리의 아버지로 어머니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연배가 드신 분들을 형님으로 연하의 분들은 아우로 여기고 서로 사랑하고 아낀다면 얼마나 행복한 공동체-교회의 아름다움이 되겠는가?  혹 교회에서 친절을 베푸는 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어떤 분들은 지나친 경계를 긋고 일정한 범위와 한계 내에서는 여간 자신을 개방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피해의식-상처, 자존심을 상하는 것으로 여긴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신 하나님의 기관이요 그의 몸이다. 서로 하나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가 어떤 곳인지 모르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천주교는 영세를 받으면 대부를 선정해 준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그처럼 서로 아껴주고 섬겨주고 존경하고 순종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여간 복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그와 같은 역할을 대신해 주기를 원하신다. 비밀이 많은 것은 좋지 않다. 그리스도인은 지극히 단순한 삶을 산다. 서로 이해하고 용납함이 가장 풍성한 곳이 자정이다. 
    *극악무도한 살인범/모두가 그를 죽여 마땅하다. 아무도 그를 사람취급하지 않는다. 단 한사람-어머니만은 그를 위해 눈물 흘리며 안타까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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