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1-3/ 안식일의 의미
요즘 휴식을 뜻하는 말인 케렌시아라는 단어가 유행인데... 대략 이런 표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나만의 휴식공간 케렌시아, 나 홀로 즐기는 휴식 케렌시아, 케렌시아 투어, 케렌시아 풀빌라.... 광고 카피에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어인 '케렌시아(Querencia)'는 피난처, 안식처, 귀소본능을 뜻하는데... 사실은 투우 전문용어입니다. 투우 잘 알지요? 소하고 인간하고 싸우는 게임... 이 투우가 진행되는 동안 소는 스스로 위협을 피할 수 있는 경기장의 특정 장소를 머릿속에 표시해두고 그곳을 케렌시아로 삼는다고 합니다. 이 장소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투우가 본능적으로 살펴서 자신의 케렌시아로 삼는 것이죠. 이곳에서 소는 숨을 고르며 죽을 힘을 다해 마지막 에너지를 모읍니다. 소가 투우사와 싸우다보면 소는 때때로 극심한 흥분과 공포에 빠지게 되고, 붉은 천을 향해 미친 듯이 돌진하면서 때로는 뒷덜미엔 투우사가 내리꽂은 창이 그대로 매달려 있기도 합니다. 이대로 탈진 직전까지 내달리던 소는 피범벅이 된 채 어딘가로 달려갑니다. 그곳에서 잠시 멈추어 서서 잠시 숨을 고르는데 그런 다음에 힘을 모으고 다시 투우사에게 돌진합니다. 싸움을 위해 피곤을 털고 힘을 축적하는 그 곳을 바로 케렌시아라고 부릅니다.
대문호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투우 경기를 이해하기 위해 수백 번이 넘도록 투우장을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소설 ‘오후의 죽음’에서 말하기를 “케렌시아가 있으면 소는 말할 수 없이 강해진다. 케렌시아가 있는 이상 투우사는 소를 넘어뜨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투우 경기를 하던 소는 케렌시아에 가기만 하면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곳은 소만 아는 자리요, 지친 소의 안식처요 피난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투우사가 소를 이기려고 한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첫째, 케렌시아를 찾는 일이고 둘째, 소가 그곳에 가지 못하도록 막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이런 케렌시아가 있습니다.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마귀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우리의 케렌시아로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일입니다. 주일예배의 자리요 매일 엎드리는 기도의 자리입니다. 그 중에 제일 중요한 자리가 바로 주일예배입니다. 사실 주일은 안식일 재정과 상관이 깊습니다. 엿 새 동안에는 네 일을 힘써 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구별하여 안식일이라 지정해주셨습니다. 안식이라는 말은 쉼의 의미가 강하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처음부터 강력하게 요구하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소득의 1/10이요, 그 다음에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시간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앙인들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그 무게만큼 중요한 것이 주일성수입니다. 혹자는 안식일은 율법적인 것이지 은혜의 시대에 사는 우리가 지켜야 할 날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하겠습니다. 율법시대에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의 시간을 책임지시고, 지금은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시간을 책임져야 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우리의 시간입니까? 이렇게 따져보면 안식일이나 주일이나 그 개념에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우선 안식일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창세기 2:1-3에 나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이때는 아직 인간에게 안식일을 지켜라는 명시적 계명은 없었고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기록입니다. 그러나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하는 것은 다른 모든 창조가 인간을 위한 것이었듯이 하나님께서 일 주일 중의 하루를 분명히 안식일로 따로 떼어 제정한 것은 우리 인간을 위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사람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최초의 계명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을 때 나타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 즉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20:8-11)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는 중심 메시지 역시 창조시의 하나님의 안식을 기념하고 동참하는 의미에서 안식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재정도 하나님이시오, 최초로 안식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이 안식일 지키기는 하나님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보면 하나님을 위한 것이나 사실 이 안식일 제도는 우리에게 복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복이 뭐냐.... 바로 안식, 휴식이라는 개념이죠.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욕심을 내어서 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6일 일할 거 7일 일하면 수확량이 더 늘어나고, 안식년 지키지 않고 땅을 열심히 돌리면 얼마나 더 유익이겠느냐.... 이런 욕심어린 마음이 안식일, 안식년을 범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안식에 대한 불순종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70년 동안이나 바벨론 종살이를 하면서 강제로 안식을 시키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포로 이후 이스라엘 회복에 있어서 예루살렘 성 중건, 성전 재건축... 이러한 일들을 하면서 안식일 회복도 강하게 추진했습니다. 예루살렘 회복을 위해 힘쓴 느헤미야서를 보면 안식일에 물건 팔고 안식일을 더럽힌 자들을 책망하면서 “자신을 정결케 하고 성문을 지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는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하고 고백하는 표시로 안식일을 지켜 살라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안식일 회복이 이스라엘의 포로역사의 핵심이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나중 일을 걱정하며 불안해합니다. 이런 것들은 시간을 주님의 것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훈련이 되지 않아서입니다. 우리가 죽을 것처럼 힘든 일을 겪더라도 더러는 시간이 해결해 주는 걸 많이 경험하셨을 겁니다. 시간이 약이 되는 경우입니다. 물론 이 또한 주님의 은혜입니다.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상처를 아물게 하시고 충격 받은 마음과 생각을 회복시키십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시간을 통해 우리를 살리십니다. 매 순간 하나님의 때를 살고 있다고 고백한다면 시간에 있어서 더 이상 부족할 게 없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6일 동안 세상에서 전투하듯이 살아오다가 주일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성도의 모습 자체가 싸우다 지치고, 창에 찔리고, 피가 나고, 곧 쓰러질 것 같은 그 몸으로 케렌시아에 와서 거친 숨을 다스리고, 흥분을 가라앉히고, 에너지와 힘을 모으고 마지막 싸움을 준비하는 투우의 모습과 아주 흡사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이 주일을 허무러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라는 말도 있듯이 여러분....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 더 예배의 자리로 나오셔서 용기를 얻고,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배에서 성공한다면 세상에서 백전백승의 승리를 거두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