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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두 증인의 활동은 7년 대환란의 절반을 지나는 이정표가 됩니다. 그래서 이 두 증인이 누구냐에 대한 관심이 많습니다. 두 증인은 본장에서는 대 환난기의 전반부에 나타나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바 있는 작은 책의 비밀을 선포할 추수의 사명을 감당할... 말하자면 말세의 늦은 비 사역을 감당하여 외치는 자입니다. 이 두 증인은 엄청난 능력이 주어진 자들이나 사명을 마칠 때에 순교하게 됩니다. 그리고 두 증인 순교 후 거룩한 성이 이방인에게 마흔 두 달 동안 짓밟히는 수욕의 기간이 전개되는데 이 기간은 짐승의 통치기간이며 둘째 화가 지나가고 셋째화인 일곱째 나팔이 불려지는 때이기도 합니다.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1절에서 요한은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다.”고 했는데 지팡이 같은 갈대는 길이를 재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성경을 의미합니다. 성경을 헬라어로는 캐논(canan)이라고 부르는데 목수가 사용하는 자와 같은 기능을 하며.... 사물을 곧게 만들거나 또는 어떤 사물이 일직선은지 아닌지의 여부를 측정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신앙과 행위의 규칙으로 받아 드려진 교리를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였고 전체적으로는 신구약 66권을 의미하는데 신구약66권이야말로 우리 기독교의 신앙과 행위의 가장 기준이 되는 책으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행위를 재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경을 읽고, 내가 얼마나 성경대로 살고 있는가.... 자기를 측량해 봄으로써 자신의 신앙정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측량 자의 역할을 하는 지팡이 같은 갈대란 성도들을 말씀으로 측량하는 잣대를 가리키며 두 증인은 바로 이 성경의 내용을 전하는 사명을 가지고 마지막 시대에 보냄을 받은 것입니다.
말씀의 측량은 선지자들의 입의 말씀을 통해서 이루었으며 종종 그 열매는 회개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항상 심판을 앞두고 언제나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회개를 외치게 했죠. 이 지구의 종말을 고하는 세 번째 화인 심판을 진행하기 전에도 하나님은 두 중인을 보내어 회개를 촉구합니다. 10절에서는 이들을 “두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란 곧 이들이 전하다가 순교할 메시지인 셈입니다.
이 두 증인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 요한에게 측량을 명령한 천사는 그 척량의 범위를 지정해 주는데 2절에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고 했죠. 측량 받을 대상자를 분명히 했습니다. 이들은 곧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인데 이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곧이어 받은 명령이 있는데 성전 밖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합니다. “성전 밖 마당”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전통적으로 성전은 제사장들의 뜰, 유대 남자들의 뜰, 유대 여자들의 뜰, 이방인의 뜰로 구분되어 있는데, 성전 밖 마당이란 이방인의 뜰을 의미합니다. 이방인들도 나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 놓은 공간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성전에 오는 경우는 아주 예외적이니까 점차로 게으른 유대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형식적으로 왔다는 종교적 표시만 내는 게으른 유대인들은 이 마당만 밟고 바쁘다는 핑개로 그냥 나가버리곤 했죠. 그래서 이들에 대해서 분노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 장소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1: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따라서 2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알곡과 쭉정이를 완전히 분리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측량은 1260일간 계속될 것인데 이는 7년 대환란의 전반 3년 반을 의미합니다. 이 척량에 합격된 자들은 계7:14절에 있는 말씀처럼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희게 씻은 자들”로 등과 기름을 준비하여 신랑을 맞을 신부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죠.
측량하지 말라는 명령은 앞으로 두 증인에 의해 증거 될 메시지는 결코 불신자들이나 세상의 구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를 회개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은 교회를 걱정하는 분들에 의해서 이런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게 아니라 교회 안의 사람들에게 회개의 복음을 다시금 촉구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 안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용서와 자비, 사랑의 하나님만 알고 있어서 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가 강하게 울려 퍼져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죠. 여러분.... 그러니 두 증인의 사명은 용서의 하나님, 자비,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심판 전에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지를 전하다가 두 증인이 순교당합니다. 누구한테요? 이 두 증인이 어디서 메시지를 전파합니까? 교회 안에서요.... 바로 교인들에 한해서요. 저는 이 두 증인을 순교하게 만든 장본인들이 마당만 밟는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자기들 속을 끍어 놓느냐 이 말입니다. 이 때까지 교회 잘 다녔는데 네가 뭔데 자기들을 이방인 취급하느냐... 이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의해 순교당한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외부 세계에 의해서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간혹 그런 일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예외적입니다. 교회가 망하고, 문을 닫고, 분쟁에 휩싸이는 것은 다 내부의 문제 때문입니다. 내부에 적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아주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에 이정도 하겠습니다.
계속 2절에서 말씀합니다.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측량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별도의 조치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이방인은 성전을 밟아본 경험이 있는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무리를 의미합니다. 단9:27절 말씀에서 “짐승이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장차 인류의 종말에 예루살렘 성이 적그리스도에 의해 후 3년 반 동안 통치를 받으며 종교적 핍박을 받을 것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3절은 두 증인이 등장하는데 이 두 증인이 누구냐에 대한 견해가 분분합니다. 첫째, 배옷을 입는데 이 배옷은 회개의 상징물입니다. 따라서 앞에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심판 전에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 메시지의 주 내용이라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둘 째, 그들은 일반적인 사역자들과는 달리 권세가 부여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권세가 부여된 목적은 사명의 기간 동안 그들을 지키기 위한 것이고, 말씀의 권위를 더하기 위한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권세인가 하면..... 5-6절에...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엄청난 권세지요? 이들이 누구인가? 어떤 신학자는 애녹과 엘리야라고 합니다. 사람들 치고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 두 인물은 죽지 않고 승천한 사람들이니까 그들이 마지막 시대에 다시 두 증인으로 와서 순교하게 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다시 오신 엘리야는 말라기에 보니까 세례요한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해석이 조금 억지가 있습니다. 그럼 과연 이 두 증인은 누구인가? 4절에 보니 주님 앞에 서 있는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했습니다. 촛대는 교회를 상징하는 표현이죠. 계1:20절에서 “일곱 촛대는 일 곱 교회니라” 고 말씀해주고 있고 촛대란 성전에 불을 켜 놓은 등 받침대로 성령이 임재하시는 교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신부의 단장에 관심이 없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신다고 했습니다. 무서운 경고의 말씀입니다. 이 촛대가 옮겨지면 그 교회는 영적 흑암에 사로잡힌 교회가 되어 성령의 역사가 그치고 사탄이 활개 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또 ‘두 감람나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성경적인 해답이 스가랴 4장에 나옵니다. “두 감람나무란” 두 감람나무 두 자지” 란 뜻으로 이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스가랴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는 기름부은 자들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두 감람나무란 종말에 하나님에 의하여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능력의 인을 받아 3년 6개월 간 1260일의 예언의 사역을 이룰 것이라고 하는 뜻이죠. 아마도 마지막 시대에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아주 뛰어난 종들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입의 불로 원수를 소멸하고” “하늘을 닫아 예언하는 날 동안 비오지 못하게 하고” “물이 변하여 피 되게 하는” 이런 능력을 나타내는데 이런 것으로 보아 두 증인은 모세처럼 위대하고, 엘리야처럼 능력있는 그런 위대한 종들일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 두 증인의 표현 중 “이 땅에 주 앞에 섰는 자.” “이 선지자” 라는 표현들은 종말의 추수기에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사역을 감당할 종들을 상징하는데 이들이 1269일 동안 예언을 마친 후 짐승과의 전쟁에서 순교하는 것들을 볼 때 대 환난 전반부에 진리를 외칠 종들로서 늦은 비 사역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한 사람이면 되지, 왜 두 명이냐.... 두 사람은 법적 증인의 수요, 그들을 신격화 하며, 사이비 이단의 교주로 빠지지 않도록 서로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도록 두 증인이 되었다...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교회는 항상 권위가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잘못됩니다. 두 증인의 개념은 “소돔과 고모라성에 나타난 두 천사(창19:1), 여리고 성의 두 정탐꾼(수2:11). 둘씩 둘씩 파송 받은 주 제자(막6:7). 주님의 부활장소에 나타난 두 천사(눅24:5). 승천하실 때의 두 천사(행1:10).”... 등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제 7절부터 10절까지의 내용은 두 증인의 순교의 내용입니다. 두 증인은 1260일간의 예언을 마치면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더불어 전쟁을 한다고 했습니다. 사명이 우선이며 사명을 마치기 전에는 순교하지 못합니다. 사명이 끝나니 짐승과 싸움이 시작되는데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죽일 터이라”고 했습니다. 260일간의 예언의 사역이 끝나면 그들에게 주어졌던 권능도 사라집니다. 예언을 할 수 있도록 주신 권능이기 때문에 예언이 끝나면 자연히 회수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결과 두 증인은 적그리스도의 공격을 받아 순교하기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순교로써 예언을 마치는 일은 두 증인들에게는 무한한 영광이 됩니다. 이들은 계6:11절에서 순교자의 수효를 채우는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제단 아래에서 “우리 피를 신원 하여 달라”고 외친 순교자들에게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고 하셨음을 우리가 기억합니다. 바로 두 증인의 순교가 순교자의 수효를 채우게 되는 것이므로 대단한 영광이며 이들의 순교는 하나님께서 심판의 시기로 예정하신 그 시기가 이르렀음을 알리시는 예언의 성취요 신호인 것입니다.
두 증인의 순교는 1260일간의 예언 사역의 끝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전 3년 반의 마지막 시기가 되는 것이다. 두 증인의 순교로 이 땅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는 이 지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음녀 교회와 이방 종교만이 남아서 인류들에게 음행의 포도주를 먹이는 일로 적그리스도에게 신적 경배를 하며 타락의 끝을 향해 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환란의 시기에 악한 사단이 득세하여 진정한 성도와 그렇지 못한 사람이 갈리게 될 것입니다. 마당만 밟는 신앙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적그리스도는 후 3년 반 기간 중 성전 밖 마당에 속한 모든 사람들... 이들 중에는 불신자와 불충성하는 성도들을 포함하죠. 이들은 다 적그리스도를 숭배하며 거짓 종교인들로 세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쭉정이인지 알맹이인지 모른다고 안심할 게 아닙니다. 늘 알곡성도가 되기에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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