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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에는 해 입은 여자, 그리고 이 여자에게서 태어날 아들, 그리고 붉은 용에 대해서 살펴본 바가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정리를 하자면 여자는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강력한 이스라엘의 교회를 상징하며, 그가 낳게 될 아들은 사역자들이며, 붉은 용은 사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자를 교회로 해석하는 것은 성경에는서 하나님이 항상 이스라엘, 혹은 교회를 신부로 표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17장에 보면 음녀가 등장합니다. 이 음녀도 교회를 상징합니다. 그런데 마귀와 짝 맺은 교회여서 음녀라고 표현했는데 자세한 것은 17장에 가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니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과 싸우나...” 라고 되어 있습니다. 7절부터 12절까지는 천사장 미가엘과 용과 벌이는 하늘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의 주된 목적은 지금까지 공중권세를 잡은 사단을 쫓아내기 위한 것입니다. 전쟁의 장소가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지상에서의 실제적인 전쟁이 아니라 영적인 전쟁이라는 의미입니다. 본 단락은 두 개의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하나는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그의 사자들과 싸우는 모습입니다. 싸움의 결과 용과 그 사자들은 싸움에서 패배하고 지상으로 쫓겨났습니다. 지상에 쫓겨났다.... 이 말씀이 굉장히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이 지상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지상을 보호할 그 어떤 당위성도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광야로 피했고, 참 성도들은 주님과 함께 들림 받았고.... 그러니 하나님이 더 이상 이 땅을 보호할 책임이 없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신 땅, 마귀의 천국입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없는 곳은 지옥입니다.
여기에서 논쟁이 되는 것은 하늘에서 전쟁이 있는 후 사단이 하늘에서 쫓겨난 시기가 언제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성경적인 답은 단12:1절을 근거로 하면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사단은 최후의 심판이 임박한 때에 하늘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단의 역사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고 이 땅에서는 마치 제 세상인양 발광을 하면서 사람들을 핍박하게 되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배겨내겠습니까? 그러니 광야로 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으로 쫓겨난 사단에 의해 극악한 후 3년 반의 짐승의 통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단이 영이라면 적그리스도로 표현되는 짐승은 육적으로 가시적인 존재입니다. 그가 누구일지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이 사단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9절에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사단이 4가지 칭호로 불리우고 있는데 용, 옛 뱀, 마귀, 사단이라고 합니다. 엡 2장에는 공중권세 잡은 자. 여기서는 천하를 꾀는 자, 미혹하는 자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 사단은 온 천하에 부지런히 다니면서 교회와 성도를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욥2:2) 무엇하러 돌아다니겠습니까? 교회를 흔들고, 성도들을 망하게 하는 그런 일입니다. 벧전 5:8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사단이 하는 일과 주님이 하는 일은 극과 극입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병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두루 다니는 이 사단을 우리가 조심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삶에는 보이지 않지만 영적인 전쟁이 한창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마귀가 틈타면 사람이 이상해집니다. 그래서 사단이 난다 그러잖아요. 사단이 나고....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제정신이 아니고.... 뭔가 홀린 듯이 무슨 일이 막 일어나고.... 그래서 미쳤다, 미쳤다 그래요. 사실 요즘 사람들이 미쳐 날뛰는데 잡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냥 피합니다. 옛날에는 그래도 어른들이 뭐라 그러면 좀 못마땅해도 겉으로는 예... 하면서 고치거나, 자리를 피하거나 그러는데 요즘은 어른이라도 기분 나쁘면 아이들이 어른을 죽을 듯이 팹니다. 학생이 선생을, 청년들이 노인들을 그냥 아무 가책도 없이 주먹을 휘둘러 됩니다. 누가 그래요. 설상가상, 엎친데 덮친격... 파죽지세로 사단이 공격하니까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단이 역사하는지 몰라요.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단의 손에서 어떻게 벗어나겠습니까?
이 사단의 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11절에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 하였도다” 하나는 어린 양의 피 입니다. 어린 양의 피는 바로 예수님의 보혈의 피죠. 계시록에서 어린양은 30번 반복에서 나오는데 이 어린양은 유월절 어린양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의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 장자를 치는 재앙에서 사용되었는데 이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뿌린 이스라엘 집은 모두가 죽음의 사자가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이 어린양의 피는 구원의 피죠. 죽음의 사자를 넘어가게 한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를 흘리신 우리 주님의 보혈의 피를 예표하는 것이며 바로 이 피가 사죄의 은총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래 모두가 죄인 된 인간은 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 능력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는 그 어떠한 힘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을 참소하는 마귀와 대적하여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복음을 증거함으로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마귀와의 싸움에서 말씀으로 이기었죠. 40일 금식 기도한 후 사탄의 싸움에서 3번이나 말씀으로 이기셨는데 이 주님의 말씀은 성도의 무기입니다. 주님의 말씀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요 성도의 공격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도가 죄와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길 유일한 성도의 공격 무기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6:17)” 말씀이 불이요 불망이입니다. 렘 23:29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결론적으로 교회와 성도가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십자가의 피와 하나님의 말씀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마지막 때에는 마귀가 공중에서 쫓겨나서 이 땅에서 날뛰는 때입니다. 그래서 12절에 보니 “땅과 바다는 화있을 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땅과 바다는 이 세계를 말하죠. 그 만큼 땅에 사단이 42달 통치하는 기간은 핍박과 박해가 있다는 것인데 이때를 어떻게 견디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신앙생활을 해서 이 환란이 오기 전에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가야 합니다. 참 교회에서 떨어져 있다가 뒤늦게 신앙에 철들면 몇 배나 더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뭐든지 남 할 때 같이 가야지, 혼자 뚝 떨어져 있다가 뒤늦게 남 따라 가면 힘들어요.
귀신은 귀신이 안다는 세상적인 말이 있습니다. 사단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결국은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고 멸망당할 존재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 살아남아 있는 성도들에게 괴롭히고 끝까지 미혹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9번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고 1번 영적인 싸움에서 지면 승리했다 말 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끝까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 할 수 있도록 방심하면 안 됩니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없을 때에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13절에 보니까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본 절은 용이 성도를 핍박하는 이유입니다. 핍박의 대상은 남자를 낳은 여자인데 앞에서 이미 언급하였다시피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자들이며, 종말의 시대에 예언의 말씀을 붙잡고 세상에 가서 외칠 증인들이 바로 여자에게서 난 남자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여자는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를 의미하는데 이는 마귀가 참 교회를 집중적으로 핍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14절에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뚜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이는 용의 핍박을 피하여 여자가 도망하는 모습입니다. 독수리 두 날개를 받아 광야로 도망한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출애굽기 19:4 말씀을 참고해야 합니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개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구약성경은 이외에도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인도하시는 방법을 독수리의 날개로 비유하였습니다. 독수리의 두 날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입니다. 슬기로운 5처녀가 신부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기름과 등이 있어야 하는데 등은 말씀이고 기름은 성령을 의미하겠죠. 즉 말씀의 권능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1:19) 종말의 시대에 신부된 성도는 반드시 등불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뱀의 낯을 피하는 곳은 마귀의 영향권에 벗어나는 곳입니다. 참 교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광야에서 피신하였다고 하였다고 하였습니까? 예언은 말하기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하였습니다. 참 교회가 광야에 피신하였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란 얼마나 긴 기간이며, 그 핍박의 기간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가? 같은 장 6절에 그 해답이 있다. “여자가 광야로 도망가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12:6)
이 ‘1260일의 핍박 기간’은 성경에 7번 (다니엘서에 2번, 계시록5번)언급되어 있습니다. 먼저 한 가지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이 있는데, 이 1260일의 예언은 성경에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곳에는 “3년 반”으로 어떤 곳에는 42달로 표현되어 있고, 어떤 곳에는 1260일로 기록되어 있으나 그 기간은 다 같은 기간입니다. 성경 예언을 해석할 때, 하루는 일 년인데, 한때라는 상징어도 일 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단11:13에 “북방왕은 돌아가서 다시 대군을 전보다 더 많은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성경은 “한 때”를 “한 해” 라고 설명하여 주고 있는데 이처럼 한 때 두 때 반 때는 3년 반이며, 곧1260일입니다. 이 1260일 기간은 아주 중요한 기간으로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단 7:25)는 즉 사단이 이 땅을 통치하며 핍박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물을 강같이 토해냈다는 것은 거대한 홍수를 연상케 합니다. 성경에서 “ 큰 물, 홍수”는 재앙, 또는 고난을 말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큰물이 나를 엄몰치 못하게 하시면... 이런 식으로 표현했죠. 고난의 의미가 함축된 압도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무자비하게 삼켜버리는 사단의 공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라고 하고 있습니다. 땅이 무엇인가? 좋은 의미인지, 아니면 나쁜 의미인지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땅에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은 좋은 것도 쓰시지만 때로 악한 것도 선을 위해 쓰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16:4)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43:2) 하나님의 인도와 양육의 방법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합니다.
17절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자손과 용의 싸움을 예언하고 있는데 사단은 일차적으로 여자가 낳은 아이를 죽이려 했고, 두 번째, 미가엘과의 싸움에서도 패배한 다음 땅으로 쫓겨나다 세 번째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지만 그 역시 무산되고 맙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자손을 핍박하지만 그 역시도 무산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남은 자들은 또 누구를 뜻합니까? 남은 자란 의미를 ‘remnant' 로 사용했는데.... 고대에는 옷감을 파는 집에 가면 천을 큰 두루마리로 말아놓은 것이 있는데, 그 두루마리의 마지막 남은 조각을 가리킬 때에도 이 ’remnant‘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래서 이 Remnant는 두루마리의 첫 번째 천과 동일한 천으로써 맨 마지막에 남는 조그만 천 조각을 의미하는 말로 대 환란이 시작되면서 믿기 시작한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이들은 뒤 늦게 믿은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참고로 대환란의 날까지 성도들을 분류해 보면 이방인교회가 있습니다. 유대인을 제외한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유대인들이 고집스러워서 주님을 받아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은 잠시 동안 유대인들을 옆으로 제쳐두고 이방인들 안에서 교회를 세웠습니다. 물론 초대교회 속에서도 유대인들의 교회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주 미미했죠. 사도 바울도 통탄을 하면서 이방에게로 가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부터 지금의 교회시대의 교회는 바로 유대인들 편에서는 이방인의 교회라고 부를 수 있죠. 그래서 대환란의 때에 주님의 부름을 받아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들어갈 성도들이 바로 이방인 교회입니다. 그 다음에는 7년 대환란이 시작되면서 생기게 될 이스라엘의 교회입니다. 이들은 전 3년 반의 환란 기간을 통하여 예수를 믿고 핍박을 받다가 후 3년 반의 환란의 절정기에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광야에 피난하여 보호를 받는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기 남은 자들이 바로 이방인 중에서 뒤늦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성도들은 바로 교회 시대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라고 할 수 있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아 죽인 죄가 있고, 또 말씀을 알고도 메시야를 적극적으로 거절한 죄가 있기 때문에 그 죄 값을 받는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극한 환란의 시기에 들어서서 그 때서야 하나님을 믿게 된 성도들은 어려워요. 대 환란 후 3년 반의 시기를 견뎌야 하니까 이는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흥선 대원군 때에 받은 핍박은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시기를 어떻게 견디겠어요? 그러니 이 시기에 주님께 돌아온다고 해도 아주 극소수의 숫자만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12장을 통해 결론을 몇 가지 내려보면......
1. 편안 할 때 주님을 잘 믿지 않으면 나중에는 주님을 믿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이 대환란 전에 참 교회를 부르러 오실 때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제일 쉽게 예수 믿는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의 편이 되다가 심판 날에 불 못에 던져지던지..... 뒤 늦게 이게 아니다 싶어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거기에는 성령의 역사도 없고, 마귀의 역사만 판을 치는 곳이고, 대환란 끝까지 극한 핍박을 감당하면서 예수를 믿어야 하니까 이는 도무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괴로운 일이니까... 아예 지금 잘 믿어야 합니다.
2. 마귀의 역사를 우리가 잘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때가 기울수록 어둠의 먹구름이 몰려옵니다. 이는 마귀의 역사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분별력을 잃고, 성적으로 문란하고, 폭력이 난무하고, 귀신에 씌인 것처럼 사람들의 하는 행동들이 이상해지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다 귀신에 씌인 것처럼 보여요. 정말 사람이 무서워요.
그러나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냥 삽니다. 주님은 때를 분별하며 살아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남은 날을 계수하는 지혜를 가져라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때를 분별할 지혜가 없습니다. 곤충과 동물들은 지진이 나고, 태풍이 불고... 하는 이런 재앙이 일어나면 그 일어날 징조를 보고 먼저 피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항도교회 성도들은 다 때를 분별하여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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