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영의 세계를 믿는가? 이 영의 세계는 성령과 악령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영과 사탄의 영이 지배하는 세상인 것이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믿으면서 영의 세계를 믿지 않으면 믿음의 실체가 없는 것이다. 이 영의 세계를 믿지 않고,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겉도는 것이다. 사람의 뒤에, 환경의 이면에 역사하는 이 영의 세계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사람과 싸우고, 환경과 싸우면서 심령이 서서히 고갈되다가 나가떨어진다. 그러나 영의 세계를 보게 된다면 사람과 싸우면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사람과 싸우면 영이 메말라간다. 환경과 싸우다 보면 그 환경을 도데체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절망하고, 좌절하고, 결국은 포기하고 마는데 사실은 환경에 포기하는 것 보다는 사탄에게 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배경에 역사하는 사탄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다투고, 싸우고, 절망하는 대신 기도하게 된다. 기도하면서 영적인 전투를 치르게 된다. 기도는 영적 전투인 것이다. 믿으시기 바란다.
에덴의 비극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누구인가? 그 사랑하던 아담과 하와가 언제부터 책임을 떠넘기고, 상대방을 고발하기 시작하였는가? 사탄이 그들의 삶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아담과 하와에게 그렇게 했다면 우리라고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사탄은 아담과 하와 뿐만 아니라 예수님까지도 시험했다. 마태복음 4장 3절에 사탄을 ‘시험하는 자’ 라고 표현하였고, 11절에는 마귀가 예수를 떠났다고 표현했다. 사탄이 떠나니까 천사들이 수종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 여기서도 사탄과 천사가 나타나고 있다. 이게 영의 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사탄은 겁도 없이 예수님도 공격했다. 예수님도 시험했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다 사탄의 공격대상이다. 이걸 모르고 있으면 우리는 내가 마귀가 틈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태복음 16장 21-23절에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셨는데 ‘사탄아 물러가라’ 외쳤다. 베드로보고 사탄이라고 했다. 우리가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기겁하고, 분노하겠는가? 이런 욕이 어디 있나 싶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런 소리를 들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도 사탄이 될 수 있는데 이는 사탄은 신, 불신을 가리지 않고 이용한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27절에 보니 "조각을 받은 후 곧 사단이 가룟 유다에게 들어갔다" 라는 표현이 있다. 가룟 유다 자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사탄이 들어감으로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버린 나쁜 사람이 된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 사람을 대적하지 말고, 그 사람을 악하게 하는 사탄을 대적하여 사랑과 기도로 싸워야 한다. 그리고 내가 사탄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기도하라, 대적하라.
그런데 사탄은 어떤 때 사람을 틈타는가? 벧전 5장 8절에 “사탄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는다”고 하였다. 사탄은 두루 찾는다고 하였다. 노린다고 하였다. 그리고 사탄은 사자와 같은 강자이다. 한 번 발견한 먹이감은 놓지지 않는다.
첫째, 고난 가운데 사탄은 찾아온다. 고난뿐만 아니라 어려움, 질병.... 다 사탄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니나 반드시 사탄이 역사한다. 사탄이 그런 호기를 놓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난의 때에는 더욱 더 기도해야 한다.
둘째, 사탄은 세상 가운데 빠진 자에게 찾아온다. 엡 6:10-12에 사탄을 공중권세 잡은 자로 표현되고 있다. 이는 이 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자란 뜻이다. 옛날에는 군주, 왕이 가장 권세 있는 자였으나 오늘날은 유행과 문화이다. 그래서 옷, TV드라마, 영화, 인터넷, 컴퓨터, 스마트폰.... 여기에 가장 마귀가 역사한다. 오늘날 인간정신을 망가뜨리고, 어른이고, 아이들이고 죄악으로 삼키는 거의 모든 도구가 이런 세속문화에 있다. 이런 세속 문화 가운데서 영혼이 병들고, 죄 짓고, 타락하게 된다. 오늘날은 특별히 분별력과 영안을 가져야 한다.
셋째, 요한계시록의 증언을 보면 종말로 갈수록 사탄의 역사가 강해지므로 이 세상이 끝난다고 했다. 사도바울은 딤후 3장 1-5에 말세의 증상을 표현하고 있는데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 시대와 비교해보라. 딱 맞는 말이다. 악이 강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임박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이렇게 파죽지세로 공격하는 사탄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사도 야고보는 “대적하라”고 했다. 최고의 수비는 공격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사탄을 알아야 공격하지 않겠는가? 사탄인 줄 모르니까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기 자신을 향해 외쳐라. 다른 사람을 향해 외치면 큰일 난다. 자기 자신을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이렇게 외치기 바란다. 마음이 악해질 때, 원망과 불평이 일어날 때, 마음이 사나와질 때.... 자기를 역사하는 이 사탄을 향해 공격하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자기 배우자나, 심지어는 자녀들에게 해도 안 된다. 굉장히 큰 상처를 받는다. 그러나 나를 향해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내 안에 있는 사탄이 듣도록 크게 외치라는 것이다. 크게 외치고, 찬양하고, 기도하라. 그렇게 하다 보면 그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자식을 기르는 부모는 자식이 나쁜 친구를 사귈까 걱정한다. 자식이 잘못되는 것은 나쁜 친구의 영향력이 큰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그 배후의 사탄 때문에 일어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탄과 싸워 실체를 폭로시켜야만 한다. 싸워야 하는데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대적할 것을 사도바울이 엡 6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싸워서 강한 자를 묶는 것만이 우리가 영적으로 살 길임을 믿고 오늘 이 시간에 단순히 기도만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는 영적인 전사로 선포하면서 이 교회를 두르고 있는, 연약한 자들 이면에 역사하는, 그리고 이 사회의 온갖 습진 곳, 그늘진 곳, 방탕한 곳, 음란한 곳에서 역사하는 사탄의 실체를 다 까발리고 이 사탄을 결박하여 이 사회가 교회가 사탄의 결박에서 풀려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