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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활절에 일어난 일(막 16:1-16) [고난특새]
  • 조회 수: 605, 2014.09.24 21:40:46
  • 오늘 본문에는 부활의 새벽과 그 이후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 첫 날 늦은 저녁시간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엠마오로 내려갔다가 돌아온 두 제자와 기타 몇몇 성도들이 예루살렘 어느 교우의 집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결 같이 놀란 가슴과 깊은 충격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라고 믿었던 메시야, 나사렛 예수께서 엊그제 비참히 잡히시고 참혹하게 죽어간 현장을 생각하면 새삼스레 두려움이 엄습해오고 한 가닥 기대했던 희망이 무산돼버린 허탈감에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엠마오에서 올라온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반신반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살아나셨겠지만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아무도 문을 여는 기척도 없었는데 홀연히 주님이 그 방 가운데 서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혼란에 빠졌고 그 혼란 중에 떠오른 생각은 유령과 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설명할 수 없는 사실을 영적 현상으로 돌려버리고 싶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속을 훤히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것은 같은 본문의 누가복음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은 차례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져보았습니다.  못 박힌 손목과 발목을 만져보았고 어떤 사람은 창 자국 난 옆구리를 만져보았습니다.  “어떻게 죽었던 사람이 살아날 수 있을까? 엊그제만 해도 피 흘리고 기진하여 고통 속에 몸부림치던 사람이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살아날 수 있을까?” 오늘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갖는 의문을 그들은 행동으로 표현하였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사람이었던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 요일 1:1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할렐루야!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말씀하십니다.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황급히 제자들이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립니다. 예수님은 받으시고 맛있게 잡수십니다. 이것이 첫 번 째 부활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부활을 증명해 보여 주신 사건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 때문에 상심할 대로 상심한 제자들의 심령을 위로해주고 싶으셨습니다. 그래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승리하신 주님은 여유 있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모든 인간적, 지식적, 체험적 의심을 너그럽게 해소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심대한 낙심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모든 의심 사라지고 부활하신 주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부활신앙의 확신에 도달한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얼싸안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유머에 놀랐지만 그 유머 속에 있는 사랑과 확실한 소망 때문에 이제는 세상도, 죽음도, 내일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2011년 부활절을 맞이한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절에 보여주신 우리 주님의 증거를 믿고 받아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영만이 부활한 것이 아니라 영과 몸이 온전히 부활했습니다. 그 부활의 주님이 우리의 구주시오, 왕이시오, 우리들 모두의 부활의 보증이십니다.  

       우리가 해마다 부활절을 맞이해도 삶과 죽음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합니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첫째,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 둘째,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 노릇하는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히 2:14~15).  평생에 죽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사는 인생에게 이보다 실제적이고 요긴한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이제 강하고 담대하게 죄와 병을 다스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배수진으로 하여 뒤로 물러서지 마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까지는 넉넉한 치유의 강이 흐르고 있고, 죽음과 음부의 열쇠를 영원히 자신의 띠로 매고 계신 주님이 상황을 완전히 장악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질병도 두려워하거나 투병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도 바울이 말씀합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예수님은 우리 영혼과 생명과 삶의 절대적인 주인이요 영원히 책임지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우리 왕은 이 세상에 오실 때나, 십자가 위에 매달리실 때나, 부활 후에나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부활의 사실에 대하여 의심하고 기이히 여길 때 그 의심을 해소해 주시는 친절하신 분이십니다.  이 부활하신 주님의 영원불변하신 사랑의 넓은 품에 안기십시오. 그 품에서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리십시오. 믿는 여러분에게 부활의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과 위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기  도] 어둠과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 이 시간 우리 모두가 주님의 부활하심을 송축하며 경배 드립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흑암과 절망과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하는 연약하고 무능한 인생이지만 우리들에게 주님의 부활하심을 통하여 삶의 희망과 용기를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부활하신 주님, 주님은 우리의 죄의 값을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죽음으로 그 값을 대신 갚아주시고, 우리가 주님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죽음에서 부활하셨건만,  우리는 이 위대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은총을 아무 느낌없이, 남의 일인 것처럼 무감각하게 살았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나 오래 믿었기에 주님 앞에 나태하고 안일했던 것임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교만함과 나태함과 게으름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부활의 능력이 이 시간도 예배하는 우리 모두에게 역사하여 주시길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소망을 얻게 하시고, 위로와 힘을 얻게 하시고, 모든 묶였던 것에서 자유케 되고 놓임 받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향해 더욱 뜨거운 가슴이 되게 하여 주시고,  주님을 위한 우리의 결단이 재조정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 모두가 희망 속에서 뜨거운 가슴으로, 더 열심히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오늘 이 부활의 새벽에 주님 앞에 나아와 찬양하는 우리 자녀들... 주님께서 안수하시고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들이 일등 자녀들 되게 하시고, 1등 사회인이 되게 하셔서 다음세대를 다스리고 지배하며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는 귀한 미래의 주인공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말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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