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고전 15:3-8)
  • 조회 수: 447, 2013.07.10 07:32:56
  •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우리 모두의 찬송, 기도, 고백되어 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무덤 문을 여시고 예수님을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1874년에 찬송작가 로버트 로우리가 이렇게 찬송합니다.  ♬무덤에 머물러 예수 내 
    구주 새벽 기다렸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 어두움을 이기시고 
    나와서 성도 함께 길이 다스리시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수 년 동안 외국에서 
    수학한 박사학위를 받은 젊은 대학 교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 자기 몸에 그러한 
    병이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암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그의 유언대 
    로 시신을 화장을 하고 남은 뼈까지 다 부수어서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가 그를 애지중지 길 
    렀던 부모님들이 그 잿더미를 손에 쥐고 멀리 멀리 휘날려 버렸습니다.  손에 묻어 있는 잿 
    가루 까지 떨어 버렸습니다.  그의 젊음, 학문, 배경, 명예, 꿈, 미래도 부모님의 눈물과 함께 
    바람처럼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도대체 그는 어디로부터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 
    것이 인생의 전부라면 소망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은 인류의 소망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부활을 보장해 주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우리의 부활을 부활하 
    신 주님께서 보장하여 주신 것입니다.  역사 이래로 무덤에 들어갔다가 다시 살아 나온 사 
    람은 없습니다.  공자, 석가모니, 마호멧도 무덤에 한 번 들어가더니 썩어 나오지를 못했습 
    니다.  무덤에 들어갔다가 썩지 않고 다시 살아 나오신 분은 오직 한 분 예수님 뿐 이십니 
    다.  그래서 본문3절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라고 했고 본문 
    4절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라고 했습니다.  여기 '성경대로'란 말이 무슨 뜻 
    일까요?  기독교가 성경대로 종교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알파와 오메가는 '성 
    경대로'입니다.  가령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물었을 때 칼 바르트가 말하는 예수님을 말하 
    면 오류를 범할 수 있고 나인 홀드 니버가 말하는 예수님을 말해도 빗나갈 수 있고 삼각산, 
    계룡산에서 얻어들은 풍월로 예수님을 설명하다 보면 이상한 예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예 
    수님은 반드시 '성경대로' 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동정녀 몸에서 나시고, 애굽 
    으로 피난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 하셨습니다.  성경대로 믿고, 살고, 전해 
    야 합니다.  본문3절에 보면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라고 했습 
    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도 전인 대충 700여 년에 기록된 이사야53장은 우리 죄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사야53장은 예수님의 고난 
    의 장입니다.  이에 대하여 신학자 셀루치는 '골고다의 십자가 현장'이라고 말했고 칼빈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력서'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찔렸고, 상했고, 징계를 받았으며, 채찍에 
    맞았다.' 그의 표현들은 우리의 죄를 인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설명하 
    고 있습니다.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십 
    자가 지신 예수님께서 한 번 큰 소리를 발하시고 마지막 '다 이루었다'말씀하시고 숨을 거 
    두셨습니다.  그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났습니까? 휘장이 두 쪽으로 마치 구약과 신약이 갈라 
    지듯이 짝 찢어 두 갈래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 문이 
    열리고 잠자는 성도들이 일어났습니다.  왠 일 입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 오래도록 십자가에 머물러 있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에게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뭍일 무덤하 
    나가 없었습니다. 아리마대 부자요셉의 무덤을 빌려 안장 시켰으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께서 어찌 무덤에 오래도록 머물러 있어야 되겠습니까?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 
    문4절을 보면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 나사"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 종교입 
    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3월을 예수님께서 가게 하셨는데 다가올 4월을 
    막을 인생은 없습니다.  시인 엘릿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는데 이유는 꽃망울이 열리 
    고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에 비하여 젊은 청춘들이 인생을 허무다고 여기면서 자살하는 확률 
    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카렌다에는 '4월을 부활의 달'로 명령하고 있습 
    니다.  왜 그럴까요?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 
    디에 있느냐' 외치시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4월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무덤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을 평소에 자주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표 
    적 보여주기를 구했을 때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나가 어찌 
    했습니까?  3일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서 무덤 속의 시체처럼 있다가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유대인들이 보일 표적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그 
    리고 ' 내가 사흘동안에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성경대로 너희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그러나 성경대로 삼일만에 부활하리라'의 뜻입니다.  나사로가 죽어 벌 
    써 냄새가 납니다.  냄새 나는 시체 나사로를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 말씀하셔서 살게 하 
    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 
    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리고 물었습니다.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 
    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린도전서15:20에 보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 했습니다.  첫 열매가 있으니 
    둘째, 셋째열매도 있을 것 당연하지 않습니까?  첫 닭이 울어 보채면 둘째, 셋째 닭이 울어 
    보채고 마침내는 캄캄한 동녘 하늘이 태양처럼 밝아지기를 아니합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또 '내가 사니 너희도 살리라' 본문말씀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의 부활을 믿으라는 교훈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가 전한 예수님의 부활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했는데 믿음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조건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말씀 중에 두 개의 동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굳게 지킨다'는 동사요, 또 하나 
    는 '헛되이 믿지 않는다'는 동사입니다.  이것이 현재 진행형으로 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지속적으로 굳게, 헛되지 않게' 라는 의미입니다.  여기 '굳게' 라는 말은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뜻 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그 믿음이 흔 
    들리지 않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든 것 제쳐놓고 일생을 살아가면서 믿음 
    생활하는데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바람에 흔 
    들리는 갈대처럼 흔들리는 믿음이 되지 않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창수가 날지라도 요 
    동할 줄 모르는 믿음 가지고 주님을 위하여 순교라도 할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 
    다.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라는 교훈입니다. 
    고린도전서15장은 부활의 장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장이기도 합니다.  5절을 보 
    면 "게바에게 보이시고"라고 했으며 6절에 보면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라고 
    했습니다.  또 7절에 보면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또 8절에 보면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 
    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바울이 친히 본 것을 여기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았다'는 말은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지로 육신의 눈 가지고 친히 보았다는 말입 
    니다.  신화나 전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아침에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실제로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본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 
    을 베드로, 도마, 야고보, 오백여 성도들이 일시에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확실히 부활하 
    셨기에 사도들은 '눈으로 본 바요, 귀로 들은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 
    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역사의 페이지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꾸 
    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도덕적인 감화에 의하여 만들어진 감화설도 아닙니다.  특별히 본 
    문8절에 "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바울이 친히 간증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 자기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같다고 했습니다.  자신 
    을 비하시켜 겸손한 자세로 마치 자기가 십 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가 
    겨우 태어난 자라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 모두가 겸손 
    한 자세로 영접해야 합니다.  어는 큰 회사에 회장님이 계십니다.  주일이면 일찍 교회에 나 
    와 현관에서 손에 주보를 들고 오는 성도들에게 인사를 꾸벅꾸벅 하면서 주보를 날라줍니 
    다.  한 중역이 그 회장님에게 '회장님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제가할께요' 그 때 회장의 말 
    입니다.  '아닙니다. 나는 지금 회장으로 주보를 나누어주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장로로서 
    주보를 나누어주고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에서는 회장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회사에서는 회장이지만 교회에서는 장로라는 뜻입니다.  사회에서는 교감이지만 교 
    회에서는 교감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얻을 너도나도 같은 백성이라 
    는 말입니다.  교회에서는 겸손해야 되고 겸손한 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라는 교훈입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나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고 했 
    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이 사람들은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감격, 체 
    험, 놀라운 사실을 전파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었고 너무도 
    가슴이 뜨거워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다는 사실은 인생으로서 가장 
    멋진 사실이고 행복한 사건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축복을 욕심꾸러기처럼 나만 간 
    직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전파해야 합니다.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말입니다.  사도행 
    전4장20절입니다.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얼마나 확신 있는 전파 
    입니까?  스데반이 어찌했습니까?  원수들이 성밖으로 끌려가고 그리고는 돌을 던져 그를 
    죽였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는 어찌했습니까?  '예수님은 성경대로 부활하셨다'고 간증한 것 
    입니다.  바울이 어찌했습니까?  로마의 장교인 백부장, 천부장 앞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전파했습니다.  아그립바 왕, 로마의 황제 앞에서도 '예수님은 사셨네 사셨네 다시 사셨네' 
    예수님을 전파한 것입니다.  모든 인생은 죄 값으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 
    나 성경이 말합니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무엇이냐'예수님을 무덤가운데 가두어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덤 문을 여기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십니 
    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부 
    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 소망입니다.  이사야60:1을 보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어나서 빛을 발해야 합 
    니다.  앉은뱅이 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고 죄악의 잿더미에서 일어나야 하고IMF음지 속 
    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낙망하지 말라. 내가 세 
    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사망권세를 깨뜨렸노라' 우리는 죽음 앞에서 너무 옹졸한 자세를 취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이 나의 부활을 확증해 준 
    이상에 '사망아 오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도 순교자일 뿐만 아니 
    라 주님 앞에서도 순교자의 모습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일찍이 인도의 지성 타고르은 한 
    국을 '동방의 빛'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헐벅은 '살아있는 지성'라고 칭찬했습니다.  라인강 
    의 기적을 주신 예수님께서 한강의 기적을 주실 것도 믿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한국에서 재현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복음의 기운이 한국 
    의 도상에 있기 때문이고 일천 이 백만 기독교인의 가슴속에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고 있 
    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역사는 부활하신 이전은 야만 인 이었으나 그 이후는 빛, 생명, 자 
    유였습니다.  독일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있기 전에는 거지 백성이었지 
    만 그 이후는 라인강의 기적입니다.  미국의 역사가 어찌합니까?  어느 역사보다도 BC 와 
    AD가 뚜렷한 역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 문을 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민족의 구원이시고 인류의 메시야 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 
    며♬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기쁨, 소망이십니다.  지금 우리의 형편이 어 
    떻습니까?  어쩌면 앉은뱅이 백성인지도 모릅니다.  주저앉아 있는 지 너무 오래되지 않았 
    습니까?  T.V를 통해 사극을 볼 때가 있는데 이조 오백년 역사가 너무 가슴 아프게 하는 
    내용들을 본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외침이 무엇입니까?  앉은뱅이를 일으킬 때 
    우리 모두는 물질, 물질, 돈, 돈 하지만 이것으로 일으켰습니까?  아닙니다.  '내게는 은과 
    금이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말하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했더니 일어나지 않습니까?  일어나는 사랑하는 중앙교회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일설교                                                     1999. 4. 4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 
                                 (고전 15:3-8)                       변한규 목사

      하나님께서 무덤 문을 여시고 예수님을 다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인류의 소망이십니다.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우리의 부활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장하여 주신 것입니다.  기독교의 알파와 
    오메가는 '성경대로'입니다. 이사야53장은 예수님의 고난의 장입니다. '그가 찔렸고, 상했고, 
    징계를 받았으며, 채찍에 맞았다.' 그의 표현들은 우리의 죄를 인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서 마지막 '다 이루었다'말씀하 
    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 때 휘장이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 문이 
    열리고 잠자는 성도들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십자가 종교요 부활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무덤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을 평소 
    에 자주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것이 없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 내가 사흘동안에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성경대로 너희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성 
    경대로 삼일만에 부활하리라'의 뜻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전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 
    셨도다" 첫 열매가 있으니 둘째, 셋째열매도 있을 것 당연합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 
    어다' 또 '내가 사니 너희도 살리라' 본문말씀이 주는 교훈입니다.

      첫째, 예수의 부활을 믿으라는 교훈 
      사도바울은 그가 전한 예수님의 부활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는다 
    고 말합니다. 믿음은 구원의 조건입니다. '굳게 지킨다',  '헛되이 믿지 않는다'는 두 개의 
    동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굳게' 라는 말은 '흔들리지 않고 든든히'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 
    스도의 부활을 믿는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 믿음은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창수가 날지 
    라도 요동할 줄 모르는 믿음으로서 주님을 위하여 순교라도 할 수 있는 믿음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라는 교훈 
      고전15장은 부활의 장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장입니다. 이기도 합니다.  5절을 
    보면 "게바에게 보이시고"라고 했으며 6절에 보면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라 
    고 했습니다.  또 7절에 보면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또 8절에 보면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바울이 친히 본 것을 여기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았다'는 말은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지로 육신의 눈으로 목격했다는 말입니다. 
    부활하신 아침에 무덤을 찾았던 막달라 마리아, 또 베드로, 도마, 야고보, 그리고 오백여 성 
    도들이 일시에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확실히 부활하셨기에 사도들은 '눈으로 본 바요, 
    귀로 들은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친히 간증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부활 
    하신 예수님을 우리 모두가 겸손한 자세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 얻을 백 
    성이기에 교회에서는 겸손해야 됩니다. 겸손한 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축복을 주신 것 
    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라는 교훈 
      예수님을 무덤 가운데 가두어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덤 문이 열리고 예수님께서 부활 
    하셔서 지금 우리 모두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 소망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그대로 있을 수가 없어서 그 감격, 체험, 놀라운 사실을 전파했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었고 너무도 가슴이 뜨거워지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다는 사실은 인생으로서 가장 멋진 사실이고 행복한 사건입니다. 그 축복을 전파해야 합니 
    다.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말입니다. 행 4:20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 
    다" 스데반을 원수들이 성밖으로 끌려가 돌을 던져 그를 죽일지라도 그는 '예수님은 성경대 
    로 부활하셨다'고 간증하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의 장교인 백부장, 천부장, 아그립바 왕, 로마 
    의 황제 앞에서도 '예수님은 사셨네 사셨네 다시 사셨네' 예수님을 전파하였습니다. 사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일어나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앉은뱅이 된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 
    고 죄악의 잿더미에서 일어나야 하고 IMF음지 속에서도 일어나야 합니다. '낙망하지 말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사망권세를 깨뜨렸노라' 죽음 앞에서 너무 옹졸한 자세를 취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 부활이 나의 부활을 확증해 주고 
    있으므로 '사망아 오라'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도 순교자일 뿐만 아 
    니라 주님 앞에서도 순교자의 모습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기쁨, 소망이십니다. 베드로의 외침을 기억하십시다. '내게는 
    은과 금이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말하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 
    나라' 일어나는 신앙, 일어나는 중앙교회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 
    니다.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07 admin 623 2013.07.10
106 admin 238 2013.07.10
105 admin 291 2013.07.10
104 admin 840 2013.07.10
103 admin 289 2013.07.10
102 admin 260 2013.07.10
101 admin 773 2013.07.10
100 admin 383 2013.07.10
99 admin 624 2013.07.10
admin 447 2013.07.10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