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한복음 20:11-18/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났습니까?
  • 조회 수: 488, 2013.10.29 19:04:41
  • 희망에 넘치는 이 부활주일 새벽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우리 주님의 무한하신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봉독한 요한복음에 보면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네 차례에 걸쳐서 사람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만나 주십니다 사실 이것이 우리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기독교는 죄의 값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 편에서 먼저 일하십니다. 인간의 노력이나 탐구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것을 받는 것이 기독교의 도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수난이요 십자가와 죽음입니다.
    더구나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렇게 감격 속에 지키는 부활 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위해 죽으셨다가 우리 위해 다시 사신 주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슬픔과 고독, 두려움과 의심 그리고 절망의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돌아서서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나셔야 합니다. 그때 기쁨과 담대함, 확신과 소망의 밝은 빛이 여러분의 마음을 비춰 줄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사신 주님께서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1. 슬픔에 잠겨 있는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요한복음 20 : 11-8)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광경을 보고 무덤에 묻는 것을 지켜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자로서 사람들에게 멸시와 냉대의 대상이 되던, 말하자면 인간 폐물이었습니다. 그런 여자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고침을 받고 완전히 새사람이 되어 주님이 전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고, 소망 중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소망이요, 생명이던 예수님이 참혹하게 세상을 떠나게 될 때 그의 마음을 뒤흔드는 슬픔과 고독은 무엇으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마리아에겐 예수님이 친구요, 선생이요, 부모요, 애인 같았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죽었습니다. 마리아는 한없이 울었습니다.
    빌라도의 궁전에서 심판을 받으실 때, 연약하신 몸의 예수님이 몸소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가시다가 쓰러지고 거꾸러지실 때, 무자비한 로마 군인의 채찍이 가해질 때, 종래는 십자가에 못을 박혀 운명하실 때 이틀 동안을 밤을 새워 울었을 것입니다.
    사흘째 되던 날 예수님의 시체가 있는 곳에라도 가보고 싶어서 새벽 일찍이 무덤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예수님의 시신마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무덤 옆에 서서 또 울고 있었습니다. 이때 다시 사신 주님이 나타나셔서 조용하고도 인자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그리고 누구를 찾느냐?" 여기 "왜"라는 말은 울 만한 이유가 이제는 없는데 왜 우느냐? 하는 뜻입니다. 
    "누구를 찾느냐?" 이 말은 이미 죽은 예수를 찾을 필요가 없고 죽었던 예수는 다시 살아 네 앞에 있지 않느냐? 하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입니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 큰 슬픔은 고독입니다. 외로움입니다.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때부터 찾아 드는 고독이란 무서운 병입니다. 현대인의 가장 심각한 병은 고독이란 병입니다.
    여러분, 슬픔과 고독에 붙잡혀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다시 사신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돌아서서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 슬픔과 고독은 안개처럼 사라지고 기쁨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슬픔과 고독 속에서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여러분을 찾아오셨습니다. 이 새벽 여기에 오실 때는 슬픔과 고독 속에서 오셨지만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나시므로 기쁨으로 돌아가시기 축원합니다.

    2.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요한복음 20 : 19-23)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자기들이 모인 집의 문을 모두 잠그고 있었습니다. "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나 무서워했을까 하는 것은 우리가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글쎄, 예수님의 제자들 가룟 유다를 내놓고는 평시에도 그렇게 담대한 사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겁쟁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원수들에게 잡히시게 되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예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큰소리치며 장담하던 베드로 "다른 사람은 다 선생님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저만은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맹세하던 베드로도 얼마 동안은 멀리서 따라가다가 예수님께서 가야바의 뜰에서 심문 받으시는 광경을 보고 겁이 나서 어린 계집종에게까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게 되니까 다음 차례는 자기들에게 화가 미칠 것이 내다 보였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떨면서 예루살렘 어떤 동지의 집에 모여 문을 다 잠그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말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굴이 시꺼멓게 되어서 숨을 죽여 가며 있었을 줄로 짐작합니다.
    사실 빌라도의 정치적 권력이 두려웠습니다. 가야바를 대표하는 유대교 신봉자들도 무서웠습니다. 더구나 3년간이나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이 세상에 어두워지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 따르던 사람들이라고 하면 누가 받아 줄까 하는 불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 방에 문을 잠그고 있는 그 자리에 다시 사신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처음으로 주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안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이 평안은 육신적인 평안이 아니라 두려운 생각을 없이하는 마음의 평안이었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께서는 용기와 함께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도 참 사는 길이 어떤 길인 것을 알면서, 의와 불의를 분명히 판가름하면서도 주위를 가만히 살핀 후 용기를 잃어버리고 겁에 질려 있는 분은 안 계십니까? 할말을 하지 못하고 자기 골방의 문을 잠그고 두려워 떠는 분은 안 계십니까?
    다시 사신 주님께서 이 새벽에 찾아오셔서 공포 속에서 움츠리고 있는 우리에게 참 평안과 용기를 주십니다. 이 새벽 여기 오실 때까지는 불안을 마음에 품고 오셨는지 모르지만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나시므로 성령의 능력과 함께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3. 의심에 잠긴 도마를 찾아오셨습니다(요한복음 20 : 24-29)
    도마는 다른 제자들이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났을 때 무슨 일로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다시 사신 예수님을 우리가 만났다"고 다른 사람들이 말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증거 하면 할수록 의심이 더해졌습니다. 

    "내가 직접 그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것이 당연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더라도 다시 살았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으나 이런 일은 도무지 없었습니다. 아무리 친구의 말이라고 해도 이치에도 맞지 않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실증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사신 주님이 의심하는 도마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전과 같이 도마에게도 "평안이 있을지어다" 하셨습니다. 이 평안은 의심하는 사람의 마음에 주는 평안입니다.
    왜요? 의심하는 사람의 마음엔 평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안이 없는 현대인이 살고 있는 이 시대를 회의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한 마음에 평안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너를 믿지 못하고 네가 나를 믿지 못하는 데서 불안이 생깁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반드시 바르고 의로운 사람이 잘되고 형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때는 악하고 불의한 자가 땅 위에서 잘되고 번영하는가 하면 의로운 자가 까닭 모를 고통을 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그런 때 우리 마음에는 풀리지 아니하는 의심이 가득하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면 세상을 이렇게 내버려둘 수 있을 까 하고 희의에 잠기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시인 롱펠로우의 말은 의미가 깊습니다. "하나님의 연자맷돌은 매우 천천히 돌아가나 아주 부드럽게 간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주 만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어떤 때는 그의 섭리와 경륜을 이루어 가시지만 어떤 때는 의심을 품을 정도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신 주님은 우리 모든 인간의 의심에 대한 분명한 회답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언제까지나 미움에게 배신당할 수는 없습니다. 빛이 어두움에 삼켜 있을 수 없습니다. 정의가 불의에게 눌려 있을 수도 없습니다. 진리가 거짓에게 조롱만 당할 수도 없습니다. 생명이 사망에게 패배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의심을 품고 이 자리에 오신 분 계시면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나시므로 확신과 평안을 소유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사신 주님은,
    4. 실망을 안고 실패를 거듭하는 사람들에게 찾아 오셨습니다(요한복음 21 : 1-14)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세상을 떠나신 후 베드로는 "3년 후에 얻은 것이 이것뿐이구나" 실망한 나머지 옛 직장인 갈릴리 바다로 갔습니다. 다른 어부 출신 제자들도 베드로를 따라 갔습니다. 그리고 삼년 동안이나 놨던 그물을 다시 배에 싣고 노를 저어 고기잡이하러 나가 밤이 맞도록 애를 썼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실망 속에서 그물을 들었으니 손에 걸리지도 않으려니와 정신도 별로 없었습니다.
    날이 밝아 동이 트기 시작할 때입니다. 다시 사신 주님께서 바닷가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다시 부르셨습니다. 가장 존귀한 사명을 버리고 떠났던 베드로를 불러 인간의 영혼을 기르는 때 사명을 맡기는 엄숙한 임명식을 거행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 생활의 실패로 말미암아 쓴잔을 마시고 있는 사람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새힘을 주시며 다시 일어날 기회를 허락하시며 더 좋은 삶의 목적을 위해 살도록 희망을 안겨 주십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실수를 추궁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실수가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것을 따지지 아니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과거를 묻지 않으십니다. 지금 우리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과거의 실수 죄악을 다 용서하시고 새롭고 위대한 사명을 맡기십니다.
    우리 가운데 실망하여 맥없이 사시는 분이 계십니까?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나셔서 새 희망을 가지시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주님, 슬픔에 잠겼던 마리아에게 나타나셔서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던 것처럼 이 새벽 우리에게 나타나셔서 주님 만난 기쁨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려워 떠는 제자들에게 성령의 능력과 함께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능력과 용기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마음속에 의심과 불안을 제거시켜 주시고 확신과 평안으로 가득 채워 주시옵소서. 과거의 실수를 용서해 주시고 실망이 변하여 새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기쁨과 능력과 확신 그리고 소망을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979년 부활절 연합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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