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14:15~24)
  • 조회 수: 317, 2013.08.27 12:40:42
  •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바리새인의 한 지도자 집에 초청을 받아 음식을 대접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집에 초청을 받은 손님들이 윗자리에(상좌) 앉으려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초대를 받거든 상좌에 앉지 말라 주인이 와서 그 자리에 앉을 분이 있으니 좀 비켜주십시오 하면 부끄럽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차라리 말석에 가서 앉도록 하시오 그러면 주인이 와서 벗이여 올라 앉으시오 하게 되면 사람들 앞에 얼마나 영광이 되겠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를 초청한 주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하려거든 친구나 친척, 부한 이웃을 위하여 하지 말라. 그러면 너도 그들로부터 대접을 도로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잔치를 베풀 때에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을 초청하라. 그러면 네게 복이 있으리니 저들은 갚지 못하나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하나님이 대신 갚아 주실 것이다." 이 말을 듣던 한 사람이 문득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초청했던 사건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대성교회가 다음 주일을 "예수 초청 큰 잔치"의 날로 정하고 지금까지 온 성도들이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700명 초청 300명 결신"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전도대상자들에게 초청카드도 발송하고 이슬비 전도편지도 띄우고 노방전도도 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전도주일을 한 주간 앞둔 이 시점에서 예수님께서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신 명령을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면서 말씀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I.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큰 잔치에 초청장을 발부하시는 예수님


    본문에서 큰 잔치를 배설한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사람을 초청하여 오라는 집주인의 명령은 전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종들은 오늘날 먼저 믿은 성도들을 말하고 이 집은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종들을 보내어 사람들을 데리고 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성도들을 통하여 은혜로운 잔치를 배설한 교회로 초청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예수님의 분부를 받들어 초청장을 만들어서 전도대상자들에게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세인들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초청장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준비한 천국잔치는 모든 것이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는 잔치라는 사실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준비한 잔치에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영생의 문제를 비롯하여 각종 문제로부터 건짐을 받는 구원의 문제가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기본 구원 외에 질병과 사망과 환난으로부터 해방되는 생활 구원의 문제가 천국 잔치에는 마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왜 천국잔치를 큰 잔치라는 말을 사용하였겠는가를 나름대로 생각하는 중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실 세상에서 베푸는 잔치는 어떻습니까?


    아무리 유명한 호텔에서 잔치를 베풀고 겉으로 화려한 잔치를 배설하였다하더라도 거기에 인생의 중요한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고 즐겨보지만 그리 신통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잔치하다가 안 싸우고 끝나면 잘한다는 말까지 있으니까요. 아무리 잘 차렸어도 큰 잔치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주님이 베푸신 잔치는 큰 잔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구원과 관계가 있는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구원보다 더 크고 구원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오심을 기점으로 하여 역사를 구분하고 있지 않습니까?(B.C & A.D) 히브리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큰 잔치를 누구든지 와서 먹고 즐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good news)아니고 무엇이 복음이란 말입니까? 세상에서는 조금 거창한 잔치를 마련했다하면 아무나 참석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외국의 원수가 왔을 때 베푸는 만찬의 자리에 아무나 참석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런데 이게 왠 은혜입니까?


    이사야 선지자의 초청의 메시지를 들어봅시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평화가 그 나라에는 있습니다. 사랑이 있습니다. 희락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행복도 그 나라에는 있습니다. 주일은 바로 천국 잔치의 모형이어야 합니다. 주일은 축제(festival)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마시면서 그 기쁨을 서로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든 것이 풍성하게 준비되어 있는 천국 잔치에 기쁨으로 응하는 자들이 되어 우리의 심령이 물댄 동산처럼 윤택하기를 바랍니다.

     

    II. 한결같이 은혜로운 초청을 거절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니 잔치에 초청을 받은 사람들은 다 일치하여 사양을 하였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양을 한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 다 이유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살펴보면 한마디로 핑계에 불과한 구차한 변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저들의 마음에는 초청에 응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짓 핑계를 댄 것입니다.

     

    그 내용을 보자. 먼저 밭을 샀으니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아니, 농부가 자신이 농사를 지을 밭을 살 때 그것을 보지도 않고 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농부가 밭을 산 다음에 그것이 어떠한지 살펴보러 간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또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 시험하러 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소를 다섯 쌍이나 사는 사람이 그 소들의 상태나 조건을 살펴보거나 검사하지도 않고 무조건 소를 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야말로 구차한 변명에 불과합니다.

     

    또 하나는 장가들었는데 갈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신혼인데 어떻게 갈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도 가기 싫으니까 그렇게 이야기 한 것입니다. 아무리 신혼이라고 꼭 가야할 떄는 가지 않습니까? 만약에 생사를 좌우하는 중대한 잔치라면 그래도 신혼여행을 고집하겠습니까? 다 나름대로 이유를 달기는 하였지만 그 이유는 핑계거리에 불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초청을 거절하는 데는 세가지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극도의 개인주의 때문입니다. 자신의 길, 자신의 생각이나 처지를 앞세워서 예수 믿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둘째로, 물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합니다. 밭과 소를 사는 행위는 물질주의자들을 상징합니다. 돈 좋아하는 사람은 돈벌이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합니다.
    유대나라는 우리나라 경기도 정도의 크기인데 거의 대부분의 사람은 땅을 가지지 못합니다. 밭과 소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대단히 부유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하고 돈 가지고 부를 축적하는 데 정신 파는 사람들은 예수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이래도 밥 세끼 먹고 살고 저래도 밥 세끼 먹고 사는데 그것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셋째는, 쾌락 때문에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합니다. 세상의 재미와 즐거움을 끊고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세상의 영화와 향락에 빠져서는 어떻게 예수를 믿겠습니까? 어제(17일자) 신문에 보니 기가막힌 사연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인터넷에서 일본의 '부부교환클럽' 사이트를 방문한 뒤 이를 모방하여 컴퓨터 통신을 통하여 "부부교환 회원제"라는 대화방을 버젓이 차려 놓고 100.000원을 받고 회원을 모집하여 극도로 타락한 성행위를 일삼았다고 하니 정말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성 윤리도 갈데까지 간 느낌입니다.

     

    컴퓨터 통신에도 많은 문제가 있으며 컴퓨터가 분명 문명의 이기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조심하여야 할 대목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재미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초청에 응하겠습니까? 소위 신자들이라면서도 이러한 죄는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 돌아가는 재미에 빠져서 주일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이래저래 전도가 잘 안되고 복음의 거부반응을 보이는 자가 많은 것을 각오하여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사람들이 정치적인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를 가지고서는 서로 대립된 의견을 보이다가도 유독 복음의 초대를 받았을 때는 한결같이 거부의 반웅을 보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자연인의 특징입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는 말씀은 좋은 예입니다. 서로 원수지간이면서도 예수를 잡아 죽이는 일에는 서로 짝짜쿵이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보면 평상시에는 서로 견해를 달리하며 별로 가깝게 지내지 않다가도 무슨 이해관계가 얽힌 일이면 한 마음으로 믕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대성의 성도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주님 안에서 하나로 뭉치시기를 바랍니다. 과연 우리들은 예수님의 초청에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종입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대로 하면 됩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주인이 시키는대로 할 뿐이라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III.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명령을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21절에 보니 종들이 초청을 받은 사람들이 다 거부를 한다고 보고하자 주인은 노하여 그 종들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와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종들이 빈자리가 있다고 보고하자 주인은 종에게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강권하다"는 말은 강한 의지로 설득하는 것을 말합니다. 전도할 때 한번 두 번 해보고 안되면 포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집요하고 끈질기게 찾아가고 설득하고 매달리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종은 우리들을 가리킵니다. 이번 예수 초청 큰 잔치를 앞두고 주님은 우리들에게 길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3부 예배 후에 노방전도를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예 나가지도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지난 주 전도나간 분들이 많지 않음) 혹 나가서도 좀 간절하고 강권하는 태도로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여야 하는데 잠간 전도지 몇 장 돌리고 돌아오는 우리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예수 천당"으로 유명한 최권능 목사님이 평양에서 전도하러 다니시다가 어느 날 밤에 동네 가운데서 '불이야!'하고 외쳤답니다. 사람들이 당황하여 몰려들자 '예수 안 믿으면 지옥 불이야.'하고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별 미치광이 영감 다 보겠네'하고 외면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게 말씀이 전해진 몇 십년 후에 그 동네가 다 복음화되는 것입니다. "예수 천당 예수 구원"이라는 단순한 말씀이 놀라운 역사를 일으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 하셨는데 우리 주님이 우리들을 한 번 두 번 권고하고 우리들 마음대로 버려두셨다면 오늘의 저와 여러분이 되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도 예수님의 강권하시는 그 사랑에 이끌림을 받아서 빨리 나가서 죽어가는 영혼들을 교회로 데려옵시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군인은 명령에 죽고 삽니다. 우리들은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우리의 사령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절대복종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 민족과 개인의 사는 길이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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