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시편 121: 1- 8, 마태복음 6:25-34)
  • 2013.03.14 20:18:43
  • 새해 첫아침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이 민족 위에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에는 영육이 아울러 더욱 건강하시어 어떤 세파(世波)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면서도 별로 즐겁지 않은 까닭은, 우리 나라의 경제적 형편과 더불어 그 신용과 위상이 형편없이 떨어져 우리가 우습게 보았던 북한이나 혹은 동남아의 빈국(貧國)과 같은 대접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위기도 위기이지만, 우리의 신용도가 떨어지므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작년 12월에 외국에 다녀온 사람들의 말로는 신용카드를 사용하기가 힘들었고, 부끄러워서 처신하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새해에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생활이 압박을 받는 해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아침 우리가 새해를 맞는 어떤 희망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어떻게 우리가 이 어려운 때를 뚫고 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보라

    오늘 읽어 드린 시편은 우리에게 큰 위로와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 시인은 도움이 필요로 한 때 그 도움이 어디서 올까 하고 산들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그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든 것은 그 도움이 평지에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의 일상적인 삶이 있는 평지에서 찾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구하였지만, 어디서도 그 도움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평지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환난이 닥쳐와 평화롭던 평지에 혼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누가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처지가 못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평지에 머물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 시련들을 극복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바로 그 순간 한참 잊어버리고 살았던 산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산에는 영감이 깃들여 있으며, 평지의 육적인 삶과는 다른 영성이 서려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평소에 이 산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저들은 평지의 문명에 몰두해 있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산의 영성(靈性)을 찾을 여념이 없는 것입니다. 산은 평지의 삶을 거부합니다. 거기에는 도시가 건설될 수 없기에 물질 문명이 형성될 수 없습니다. 물질 문명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지 않습니다. 따라서 산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곳에는 태초의 신비가 깃들여 있게 됩니다.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산에는 평지에서 맛볼 수 없는 고요가 있고 신비가 있으며, 평화와 본래적인 하나님의 질서가 깃들여 있습니다. 도시가 건설된 평지에서는 사라져 버린 창조의 신비가 산에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평지에 건설된 도시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아귀다툼을 하느라 싸움이 그칠 날이 없고, 온갖 불의와 부패, 거짓과 모략, 사치와 방탕으로 더러워질 때로 더러워져 그 본래 간직하였던 양심과 하나님의 형상을 모두 잃어버린 것입니다. 영성이 메말라 버리는 것입니다. 시편의 기자도 이런 평지에 길들여져 살다가 메말라 버린 자기의 삶을 돌아보면서 눈을 들어 산들을 바라본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탕자가 돼지우리 속에서 아버지의 집을 기억한 것과 비슷합니다.

    아버지 집을 생각할 때 거기에서 자기의 삶이 시작되었고, 온갖 풍요로움과 기쁨이 있는 곳임을 떠올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산을 바라볼 때 거기에 우리의 원초적인 삶이 깃들여 있고, 거기에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탕자처럼 형편없는 처지에 떨어졌을 때 거기서 빠져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기보다는 조용히 아버지 집을 떠올려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등한히 하였던 원초적 신비가 깃들이어 있는 높은 산을 다시 바라보고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영성을 되찾기 위하여 산에 올라야 하겠습니다. 너무 현실의 삶에만 파묻혀 잃어버리고 살았던 영적 삶을 되찾기 위하여 우리의 눈을 들어 높은 산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문제에만 치우쳐 정신없이 그것들을 추구하여 왔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우리는 오히려 그 모든 것을 잃게 될 위기(危機)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차라리 잘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기회를 통하여 이제는 물질 문명을 추구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전화위복이 될 것입니다. 새해에 새 정부가 당면한 경제적 난국을 풀어 가는 첩경(捷徑)은 그 속에 깃들인 모든 거짓을 몰아내고 거기에 하나님의 의를 세우는 일일 것입니다. 정치와 경제에 영성이 깃들이게 하여야 합니다. 도덕성이 그 중심에 자리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신뢰가 회복되고, 신뢰가 회복되면 경제도 자연이 회복되며, 정치도 안정을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릴 것이 아니라, 전혀 그 문제와 상관없이 눈을 들어 산을 바라보며, 그 산에 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하고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온 삶을 회개하면서 잃어버린 영성을 되찾고, 외면하여 살던 하나님의 의를 나의 삶 한복판에 분명하게 세워 가야 하겠습니다.

    새해에 우리가 가장 먼저 힘써야 할 부분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심어 주신 그의 형상(形像)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메말라 버린 신앙을 되살리고, 그 신앙이 목표하는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한 해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우리 속에 영성이 회복될 때 우리의 눈이 밝아지고 영적 분별력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평지에서 삶에 파묻혀 있을 때는 전혀 보이지도 않고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세계가 보이며,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지혜가 솟아나는 것입니다. 이 시인은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고 자신에게 물었는데, 곧 그 답이 나왔습니다.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해답은 우리가 보기에는 쉽게 나온 것 같지만, 산에 오른 영성이 없이는 나오기 어려운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경제적 난국을 해결할 열쇠를 미국이나 일본이 가지고 있다고 보고, 우리의 도움은 바로 그들에게서 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과 일본을 방문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아마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을 방문해서 구걸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 당장 급한 불을 끄기 위하여는 필요한 조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결코 미국과 일본이 아닙니다. 사실상 우리를 이렇게 파국으로 몰아간 나라들이 바로 그들이 아닙니까? 그들이 아량을 베풀어 채무기간을 연장해 준다고 해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더 그들에게 종속될 뿐입니다. 그들은 결국 우리를 완전히 파멸할 때까지 가차없이 우리의 것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도움은 야훼 하나님께로부터만 오는 것입니다. 미국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시며, 강대국들의 오만을 꺾을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강대국들을 향하여 자존심을 버리고 애원하고 구걸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울부짖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구원의 길이 될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산에 오르면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는 이미 평지에서는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좌절을 안고 산에 올랐기에 이제 남은 길은 오직 야훼 하나님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는 산에 올라 평지에서 상처받은 마음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가난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거기에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계신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때 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왜 진작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지 않았던가?' 마치 탕자가 그 고생을 하면서도 아버지 집을 떠올리지 못하다가 이곳저곳에서 냉대를 받고 돼지우리에 들어가 쥐엄열매를 먹으면서 비로소 아버지 집을 생각해 냈던 것처럼, 시인도 마지막 순간에 가서야 하나님을 찾았던 것이 아닐까?

    우리 인간은 대체로 우둔(愚鈍)하여 자기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 지쳐 넘어질 마지막 무렵에 가서야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드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일찍 하나님을 찾고 그에게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우리도 믿지 않은 사람들과 똑같이 자기 힘으로 해볼 때까지 해보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건성으로 드려질 뿐 하나님 이외의 어떤 해결의 방법도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마지막 순간에 도달해서야 진정으로 하나님께 울부짖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야훼 하나님! 그분 안에 모든 것이 있고, 그분 안에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며, 그분에 의해서 우리의 역사가 섭리되고 진행되고 있음을 일찍 깨닫고 그에게 간구만 한다면, 그가 지키시고 모든 재난을 면하게 하시며, 생명을 지켜 주시되 지금부터 영원까지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더하지 않으냐?" 공중에 나는 새를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지 않겠느냐는 말씀은 이 땅의 모든 생명을 하나님이 돌보고 지키고 계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돌보심을 알지 못한 인간의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사는 문제를 걱정한다면 먹을 것, 입을 것 위해 분주하게 뛸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께 나아가 그에게 매어 달리며 기도하면 그가 이미 해결의 길을 마련하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면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너를 지키시는 하나님

    2절까지는 '나'였던 주어가 3절 이하에서는 '너'로 바뀌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간 순례자에게 대제사장이 주는 메시지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확신에 찬 어조로 순례자의 지친 영혼에 새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너를 지키시는 분, 주님은 네 오른쪽에 서서, 너를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 주시니, 낮의 해도 너를 해치지 못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주께서 너를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시며, 네 생명을 지켜 주실 것이다. 주께서는, 네가 나갈 때나 들어올 때나, 이제부터 영원까지 지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너를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옛날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휴식 상태에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이 창조의 세계를 돌보시며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실 뿐 아니라 그 피조물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이 모르게 이루어지는 일은 없으며, 방심하여 실수하는 일이 없을 뿐 아니라, 피조물 가운데 지극히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모든 것을 일일이 살피시고 돌보시며 지키신다는 뜻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보잘 것 없는 '너'를 졸지도 않으시고 지키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세밀한 돌보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산상설교에서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은 지으신 만물을 주관하시는 책임적인 존재이심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가 지으신 것 가운데 그의 돌보심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공중의 새나 들의 백합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우리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의 피조물 가운데서 큰 존재입니다. 따라서 우리 중 누구도 그분의 관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나 같은 보잘 것 없는 존재를 기억하실까' 때로 의심을 가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나를 위하여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명하신 대로 열심히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맡아서 할 것이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빌 4:6

    새해 우리의 살림이 걱정이 되지만, 졸지도 않고 지키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감사함으로 그에게 기도하고,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그 의를 세워 나가는데 전력하십시오. 어리석게 이리저리 방황하지 말고 똑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며 그를 붙잡으십시오. 그에게 울부짖으십시오. 하나님만이 환난의 때에 도움이 되시며, 구원해 주실 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실 때, 낮이나 밤의 세력이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얼굴을 우리에게 향하고 계시는 한 미국이나 일본, 중국이나 어떤 강대국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땅의 어떤 세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눈길을 피하여 그가 보호하시는 사람이나 국가를 해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일도, 장래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롬 8:38-39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를 결단코 놓치지 않으십니다. 누구도 우리를 그 사랑에서 떼어 낼 수 없습니다. 금년 일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켜 주실 줄 믿습니다. 새해 이 백성이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고비를 넘겨 새로운 나라,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도시문명에 길들여진 평지의 삶에서 눈을 들어 산을 바라봅시다. 거기에 깃들인 창조의 신비를 영혼으로 호흡하면서 영의 세계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메말라 버린 영혼을 되살리고 잃었던 영성을 회복하여 맑은 분별력(分別力)으로 이 역사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거기에 깃들인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역사(歷史)와 영원(永遠)을 잇는 섭리와 사랑이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맑아진 영으로 이 역사를 바라보면 도움이 어디로부터 오는 지를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땅의 어느 누구도 우리를 도울 수 없을 때 우리를 도우시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뿐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그 하나님께 나아가 그를 붙잡기만 하면 모든 문제를 그가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새해 여러분의 각오와 다짐은 오로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일에 집중하십시오. 먹을 것 입을 것 걱정하던 데서 벗어나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하나님의 의를 이 땅에 실현시킬 것인가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이 한해는 여러분에게 참으로 뜻있는 은총의 해가 될 것입니다.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새해 여러분의 가정과 이 민족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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