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인 열명으로 살자 (창18:22-32)
  • 2013.01.09 16:18:27
  •     오늘 새 천년 새 세기를 여는 첫 주일 아침에 희망에 가득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미래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21세기에는 초고속 비행기가 완성되어 아침은 서울, 점심은 뉴욕, 저녁은 파리에서 먹을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 암이나 에이즈 등의 불치병이 퇴치되어 사람의 수명이 평균 100살이 넘게 살게 된다는 이야기, 유전자 구조가 밝혀져서 슈퍼 베이비가 탄생이 되고 인간 복제기술이 발전되어 자기와 똑 같은 사람을 만들어서 자신을 영원히 살게 만들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 2050년에는 화성으로 신혼여행을 가게 된다는 이야기 등등 희망적이고 밝은 이야기들을 기분좋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이야기들도 많습니다. 한가지만 예로 들면 지금의 젊은 세대가 환갑을 맞이할 때는 방독 마스크를 자녀들로 부터 선물로 받게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공해로 공기가 무섭게 더러워질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새해첫 주일의 성경 말씀이 기분 좋지 않은 이야기,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즉 소돔과 고모라 도시들의 소름끼치는 범죄 이야기이고 그 처참한 심판의 이야기입니다.
     
     
        저들의 죄악의 실상의 한 단면이 창세기 19장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요약하면 외부 세계에서 온 미남 두 천사들을 남색하겠다는 무리들의 죄악상입니다. 4절에 보면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든 남자가 몰려 와서" 라고 기록된 것을 보면 도시 전체가 타락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시대이건 그 시대의 부패와 타락상은 성적인 문란으로 상징화되고 대표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파괴된 봄베이 흔적을 가서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인간의 타락을 보여주는 모습들은 성적 문란입니다. 사회의 무질서와 이기욕과 탐욕과 불의와 부정과 배금주의 등이 판치는 모습들이 성적인 타락으로 들어납니다. 소돔성이 단지 성적인 타락때문에 멸망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모든 불의와 부정과 악들이 저질러지는 암흑의 도시가 되어서 더 이상 하나님이 참을 수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유황의 불로 곧바로 멸망시킬 수도 있었지만 자기의 피조물 인간을 사랑하셔서 먼저 두 천사를 지구촌에 파송했습니다. 저들이 경고를 받고 마음을 고쳐먹고 행동을 바로 잡으면 용서하시고 새로운 은총을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신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이들 두 천사들이 멸망의 소식을 전하기 앞서서 희망과 구원의 소식을 먼저 전한 것입니다. 수태할 수 없었던 나이 많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아들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미 바다의 모래알 처럼 번성할 후손들을 약속하신 하나님이셨기에 그것을 가능케 할 아들을 천사들을 보내서 확약하셨습니다. 천사는 한 손엔 희망을, 다른 한손엔 저주를 가지고 그 땅에 갔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중성을 봅니다.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끝까지 고집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시는 심판의 하나님이심을 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마음 즉 소돔성을 멸망시키겠다는 계획을 알았을 때 하나님께 간청하였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안타깝게 간청하는 내용은 의인들만을 생각하고 그들만을 살려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들은 죽어도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은 죽이고 의인들만을 살려 달라는 그런 요청이 절대로 아닙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염려하는 것은 자기 동족 전체, 자기의 공동체 전체를 살리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악인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진리를 무시한 것도 아닙니다. "주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23절)하는 아브라함의 질문에서 악인을 죽이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일단 인정하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경고하고 주의를 주었지만 고집하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고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고 순응하는 자세를 아브라함은 가졌습니다.
     
     
        이미 몇 차레 하나님의 백성들이 징계를 받은 것을 그는 알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었기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 가인이 자기의 동생 아벨을 죽였기에 그 핏값을 치룬 것,등 등을 아브라함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땅위에 번성하면서 죄악이 땅에 관영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크게 사람 만드신 것을 후회하시면서 홍수로 쓸어 버리신 사건도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들이 하늘에 까지 오르려고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이 놔두지 않으시고 언어를 혼잡하게 하신 사건도 그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지금 그가 사는 이웃 동네, 특히 조카 롯이 사는 소돔과 고모라 도시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을 자주 들으면서 마음에 근심이 많았습니다. 저러면 아니 되는데! 저러다가는 하나님의 벌을 받는데! 늘 조마 조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때로 조카와 의논하면서 저런 망녕된 일을 못하도록 백성들을 말리기도 하고 책망도 하면서 달래 보았겠지요. 그러나 좀 처럼 저들은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진노가 조만간 올 것이라고 마음을 조리면서 안타까와 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가 예상대로 오늘 온 것입니다. 그는 공의의 하나님의 공의로운 무서운 심판을 인정하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그는 몹씨도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해서 첫째는 자기 조카의 식구들을 생각하면서 괴로워 했을 것입니다. 롯은 그에게 어떤 조카입니까? 고향을 떠나 오면서 데리고 온 피붙이입니다. 외로운 땅에서 타향살이의 고독을 그 조카와 더불어 서로 위로하고 도와주면서 살았습니다. 조카를 사랑하여 더 좋은 목장을 내어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조카와 그 식구들만을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공동체 가족 전체를 염려하면서 괴로워 하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천사로부터 들었을 때 자기의 조카네 식구들과 가까운 사람들만을 따로 뽑아내어 도피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남은 사람들은 어찌합니까? 그는 도저히 그런 잔꾀를 부릴 소인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오늘만은 하나님과 담판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입니다. 감히 하나님과 담판하려고 마음 먹은 아브라함의 강직하면서도 떨리는 모습을 23절에 "가까이 나아가서" 라는 표현이 알려줍니다. 의인들을 빗대어 온 공동체의 생명을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의인 50명 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마십시오" 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제안에 선뜻 동의하였습니다: "의인 50명만 그 성에 있어도 나는 그 성을 멸망하지 않겠다." 의인 50명만 살려 달라는 간청이 아님이 이 말씀으로 확인됩니다. 오냐! 50명만 살려주고 나머지는 죽이겠다 그런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람함의 진심을 하 나님은 아신 것입니다. 온 민족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보겠다는 아브라함의 강렬한 의지를 하나님은 아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에 감격하여 소돔성의 조카와 함께 백방으로 의인 50명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의인 50명을 아무리 손을 꼽아도 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급히 제안을 수정하여야 했습니다.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구합니다. 5 사람이 부족하더라도 온 성을 멸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대답: "그렇지 않다 45 명의 의인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않겠다." 다시 롯과 같이 45명을 세어 보았 으나 자신이 없습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40명만 의인으로 판명되 는 경우가 있을 지 모르겠는데 그땐 어쩌시겠습니까?" 하나님은 40명만 의인이 있어도 그 성 전체를 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관대한 허락을 받고나서도 자신이 없습니다. 만약 40명이 아니 되면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동안 들은 소문으로는 쓸만한 사람도, 똑똑한 사람도 거의 모두 시대의 흐름에 휩쓸려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겉은 점잖은 척 하면서도 사람들이 못 보는 곳에서 무슨 악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니 자기가 계산에 넣은 사람들중에 자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못하다고 생각이 들자 또 불안해 졌습니다. 만약에 40명이 아니되는 날에는 모두 죽는데! 그는 염치 불구하고 또 간청했습니다: "하나님! 노하지 마세요. 만약 의인 10명이 모자라서 30명의 의인들만이 있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그때도 그 성을 멸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30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받아는 놨지만 또 다시 불안했습니다. 만약 30명을 채우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그는 또 다시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께 감히 엎드려 간구했습니다. "30인이 모자라서 20명의 의인만 있으면 어찌하시겠습니까? 제발 부탁합니다. 20명만을 보아서도 성을 멸망시키지 마시고 저 불쌍한 생명들을 살려 주세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진실되고 사랑으로 가득찬 마음을 보시면서 또 다시 허락하셨습니다. "20명의 의인이 있어도 그 성과 사람들을 멸하지 않겠다." 50명에서 20명까지 수를 내려 놓는데 성공은 했으나 또 다시 불안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부패되고 타락한 소돔 성안에 과연 20명의 의인들이 있을까? 만약 그 수에 차지 아니하면 저들은 다 죽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만족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또 한 번의 간청을 드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못을 박고는 "하나님 노하지 마십시오. 마지막 요청입니다. 10명의 의인만 있더라도 저 성을 멸하지 말아 주십시요. 마지막 소원이요 간청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기 공동체를 향한 뜨거운 사랑에 감동되어 마지막 소원까지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마. 10명의 의인만 있어도 그 성을 멸하지 아니하겠다." 그러나 그 성에는 아브라함의 마지막 소원의 숫자인 의인 10명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 성은 결국 유황의 불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그 공동체는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공동체가 무너져 내렸으니, 그것도 유황불로 태워 없애버렸으니 아브라함의 고통의 깊이를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의인 열사람만 있었어도! 의인 열사람만 있었어도! 하면서 땅을 치고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제3의 밀레니움, 천년의 아침을 맞이한 우리들, 새로운 세기인 21세기의 문이 활짝 열린 이 첫 주일 아침에 우리들이 바라고 결단할 일이 무엇일까요? 기분에 들뜬 사적인 어떤 소원입니까? 가문의 이름과 전통을 드높이려는 어떤 계획인가요? 사업이 잘 되어서 재물이 곡간에 많이 쌓아지는 소원인가요? 우리들의 가족들을 위한 애뜻한 사랑의 어떤 소원인가요? 물론 그런 소원의 간구도 있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더 근원적인 소원과 결단이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나와 나의 가족들과 나의 재산과 가문의 전통 등의 안전과 번영을 근본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우리 민족공동체와 더 나아가서 서로 숙명적으로 얽혀있는 지구촌 전체 공동체가 먼저 건실하고 탄탄하여야 합니다. 우리 민족 공동체뿐만 아니라 지구촌의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는 길이 우리들이 제일 먼저 바라고 소원하고 결단하여야 할 과제입니다.
     
     
        이 지구촌이 평화로와야 합니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저만 살겠다고 이기주의로 치닫는다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면하지 못합니다. 지나간 한세기 100년간의 전쟁과 기아와 죽음이 그 유가 아닙니다. 이번 세기에는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지구촌 전체가 쑥밭이 됩니다. 수십억의 생명들이 한 순간에 죽어갈 것입니다. 지구촌에 지금 쌓아놓은 핵폭탄이 유황불을 대신할 것입니다. 남과 북이 싸울 때는 삼천리반도가 세계지도위에서 살아집니다. 며칠전 신문에 주한미군들과 미국 기업인 가족들에게 까지 독가스에 대비한 산소마스크가 지급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북의 화학전에 이미 대비하고 있습니다. 무서운 독가스와 핵탄이 한반도에서 터지면 그 땐 우리 모두는 끝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유황불 심판이 그 유가 아닙니다. 환경오염으로 지구촌이 끝장난다는 말은 심심치 않게 듣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기, 새로운 밀레니움 첫 주일에 희망적인 말씀을 전하지 못해서 송구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의 핵심을 이해하실 줄 믿습니다. 이상의 말씀을 뒤집어서 이야기하자면 앞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100년간을 평화의 은총을 누리면서 살자는 말씀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는 일입니다.
     
     
        지금 이 땅에서 재행되고 있는 죄악들이 지금의 속도로 쌓여지는 날에는 이곳이 하나님의 진노를 면키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이 땅의 사람들이 모두 의인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의인 10명을 보시고 소돔성 전체를 진노하지 않고 살려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우리들의 희망이 있습니다. 비록 소수이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의인으로 살면, 하나님은 이 지구촌을 진노에서 면하게 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의인 열사람으로 사는것인가요?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면서 사는 길입니다. 그 본은 예수님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 처럼 하나님의 말씀만을 순종하면서 정직하고 진실하고 사랑하면서 살아 가십시다. 그런 큰 뜻을 가지고 금년의 우리 교회 표어를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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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등록일 
27 2013.03.14
201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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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013.01.13
23 201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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