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 것이라(사60:15-22)
  • 2013.04.09 22:06:40
  • 일본의 한 여 변호사가 쓴 자서전인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남아"라는 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그 변호사의 이름은 오히라 미쓰요(36세), 그녀의 삶은 파란 만장했습니다. 
    중학교때 전학간 학교에서 "이지메"를 당했습니다. 
     
    이지메란 우리의 "왕따"와 비슷한 것으로서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녀는 이지메를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에게 복수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배를 다섯군데나 찔렀으나 죽지못하고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폭주족과 어울리는 불량소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열 여섯 살 때 야쿠자 두목의 아내가 되었지만 대체로 나이가 40,50대인 야쿠자 세계에서 형수로 인정받지 못하고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녀는 등에 문신까지 새기며 야쿠자 조직에서 살아남으려 애썼지만 결국 6년만에 이혼을 하고 맙니다. 
     
    그 뒤 호스티스가 되었습니다. 
    거기서 그녀는 아버지의 친구를 만나 그의 도움으로 새 삶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호스티스를 그만두고 직장을 구했으나 중학교 중퇴의 학력으로는 어디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먹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공인 중개사 자격증을 땄고 다음에는 사법서사 자격증을 땄으며 결국 사법고시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것은 집념과 의지의 결과였습니다. 
    영어의 관계대명사가 무엇인지도 몰라 가장 간단한 본문조차 해석하지를 못해 쩔쩔매던 그녀가 유수한 법대 졸업생들도 어려워하는 사법고시에 단번에 합격한 것입니다. 
    그녀는 지금 오사카에서 변호사로 개업을 했습니다. 
     
    오히라 미쓰요가 "나쁜 길"로 빠져들게 된 것은 아무도 자기를 이해해주지 않는 세상에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가 집단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을때 아무도 그녀의 편이 되어주질 못했습니다. 
    담임 선생님도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고 그녀의 부모님조차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그녀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저항과 불신과 거부와 낙심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그녀를 격려한 아버지의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라는 아버지의 친구로부터 처음으로 자신이 이해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주변은 우리에게 호의적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적대적인 것처럼 보일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호의적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살맛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적대적인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빨리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집니다. 
     
     
    오히라 미쓰요는 자기가 이지메를 당하고 있었을때, 왜 자기가 이지메를 당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사실 오히라를 왕따시킨 아이들도, 자기들이 누구를 왕따시키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단지 자기들의 성향에 맞지 않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그렇게 했을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라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도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분이 없습니까? 
     
    "나는 관심을 받지 못한다,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어" 
     
    "나는 소외되고 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다." 
     
    "사람들이 내게는 아는 체를 하지 않는다" 
     
    "자기들끼리는 잘 통하는 것 같은데 나한테는 아무 연락이 없어." 
     
    이 모든 생각들은 자신이 따돌림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따돌림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때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첫째는 나를 따돌리고 미워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나를 멀리하려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더 적극적으로 웃음띤 얼굴로 나가기도 하고 자신의 단점을 고치려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 처방이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듭니다. 
    비난한다고 고쳐집니까? 
     
    다른 사람을 보고 "하지 마, 하지 마"하다가 안되면 자신도 그 일을 하게 됩니다. 
    오히라가 잘못된 길로 빠져간 것은 그녀를 왕따시킨 아이들은 물론 담임 선생님과 부모님까지 불신했기 때문입니다. 
    남을 비난하면 그 화살은 내게로 돌아옵니다. 
     
    또한 자신이 따돌림을 받는 원인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다지 상황을 개선시키지 못합니다. 
    나를 싫어하고 따돌리는 사람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내게 적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단지 자기 감정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네가 싫다"고 하는 것은 그 싫어지는 감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 이유를 찾은것에 지나지 않는것입니다" 
     
    보십시요! 
    싫은 이유가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공부를 잘 해서 싫다" 
    "얼굴이 예뻐서 싫다" 
    "일을 잘 해서 싫다" 
     
    사실은 이런 것들이 따돌림을 받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싫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만하다"느니 "너무 튄다"느니 "협조하지 않는다"느니 하고 트집을 잡는 것입니다. 
     
     
    싫은데는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가 싫으니까 그의 전부가 싫은 것입니다. 
    이유가 있어 싫은것이 아니라 공연히 싫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에게 "잘하면 달라지겠지"하는 생각은 빗나갈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잘 해도 싫은 것을 바꾸지 못합니다. 
     
     
    여러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듯이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곧잘 "마음만 바로 먹으면"얼마든지 바른 삶을 살수있고, 성취적인 삶을 살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을 바로 먹는것이 문제입니다.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끝까지 마음을 바로 먹을수 없습니다. 
     
    우리 주변의 상황은 평온하지 않습니다. 
    비바람이 칩니다. 가뭄이 들기도 하고 질병이 엄습하기도 합니다. 
    배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그런 환경에 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버림받고 있으며, 소외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의지만으로 우리가 바로 선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수 없습니다. 
     
    자신의 힘만으로 자신을 구원할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공동체가 좋은 이유는 어려울때 서로서로 도움을 줄수 있기때문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서로의 삶 가운데,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오히라 미쓰요가 중학교를 중퇴한 호스티스에서 변호사가 될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친구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친구는 오히라가 "할수 있다"고 끊임없이 격려했습니다. 
    지난 날의 어두운 생각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과거에 매이지 말고 미래를 바라보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피폐하게 하는지 아십니까? 
    예전에 억울했던 일, 무시당했던 일, 부당하게 대우받았던일 모욕받았던일 그 밖의 어떤 것도 우리를 복되게 하지 못합니다. 
    기억하지 말라는 것은 용서하고 더 이상 그 상처를 되씹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의 그 험난한 고통을 이겨낼 수있었던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바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 그의 은혜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베드로가 그러했고,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20)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3,14) 
     
    사람은 연약합니다. 
    그리스도를 떠나면 죄악된 것을 생각할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행한 괴씸한 행동, 교회가 나를 대하는 불평등한 대우, 이 사회가 이 나라가 내게 행한 부조리, 이런것들이 나를 화나게 할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생각에 빠지지 않아야 됩니다. 
     
    우리를 도와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약속하십니다. 
     
    "전에는 네가 버림을 입으며 미움을 당하였으므로 네게로 지나는 자가 없었으나 이제는 내가 너로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게 하리니"(15절)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영한 아름다움과 대대의 기쁨이 되십니다. 
    "다시는 낮의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마칠것임이니라."(19,20절) 
     
    누가 우리의 영영한 빛이 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러면 "그 작은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것이라"(22절)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의 말씀을 들으면 힘이 생겨납니다. 
    소망이 생깁니다. 
    일할 의욕이 생깁니다.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우리 인생의 성패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우리의 귀를 쓸데 없는 말에 기울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기울입시다. 
    우리의 눈을 과거로 돌리지 말고 다시 오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둡시다. 
    "나는 할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도전합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직분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힘을주십니다.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룰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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