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천년을 향한 새로운 교회(사65:17-25)
  • 2013.04.11 06:37:47
  • 1. 새 천년의 도래

    서기 2천년 첫 주일을 맞이하였다. 산술적 연대 계산과는 상관없이 온 세상이 새 세기, 특히 새 천년을 맞이하였다고 온통 야단들이다. 말하자면 대망의 2천년을 맞이하였다. 이 기념할 만한 새 천년의 첫 주일에,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서부 교회 온 성도들에게 예비하신 새로운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시기를 축원한다. 이 세초부터 세말에 이르기까지 주께서 항상 여러분을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승리하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겠다.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으로 확실히 믿는다. 오늘 이사야 65장 본문의 말씀대로 새 창조의 기쁨, 예루살렘의 즐거움,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소위 밀레니엄 베이비를 갖겠다고 촉진제까지 쓰면서 극성을 부리는 통에 아마도 어제오늘 온 세계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엄청난 해산의 진통을 겪었을 것이다. 살전5장에 보면 말세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하는 고통이 임하듯" 한다는 말씀이 있기는 하지만 엉뚱하게도 이런 집단적 해산의 고통이 임할 줄은 미쳐 몰랐다.

    날짜 변경선에 가까이 있는 지역에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태양을 보겠다는 사람들로 법석을 이루고, 서기 2천년 1월 1일에는 피라미드에서 신비한 기가 나온다고 이집트의 모든 호텔도 초만원이라는 소식들이다. 우리 나라의 동해안 해돋이 구경도 이만저만이 아닌 것은 다 잘 알고 있는 일이다. 분명히 새 밀레니엄은 이 시대를 사는 인류에게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게 해주고 있다.

    12월 31일이라고 해서 천체 운행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일년을 살아온 감회에 취하게 된다. 그리고 1월 1일 자정이 되면 새로운 각오와 흥분을 일으킨다. 특히 금년에는 한 세기, 그리고 한 천년이 지나고 새로운 세기, 또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그 정도가 훨씬 지나치다는 것은 오히려 이해할 만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역사를 살아오면서 볼 때 0이나 9로 끝나는 해에는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도 했고 또 사람들은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심리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서기990년에는 유럽의 카톨릭 신도들이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믿었었다. 또 서기 천년에 제위에 오른 오토대제는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책임진 제왕이라고 자처하기도 했다. 그는 불과 2년후에 사망했지만 서기 천년은 유럽이 단일 문화권으로 인식하게 된 첫 해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1000년이 지난 1990년 유럽연합 즉 EU가 탄생하게 된 것은 실로 1000년전의 꿈의 실현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50년에 6.25가, 1960년에는 4.19혁명, 1980년에는 광주 항쟁이 일어났다.

    이런 예를 들자면 한이 없지만 하여간 이런 의미에서도 서기 2천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우 상징적인 한 해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이른바 컴퓨터 인식 오류라는 Y2K와 함께 어쩌면 엄청난 재난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상당한 호기심과 함께 기다려 온 해이기도 하다.

    원래 "밀레니엄"이라고 일컫는 '천년 왕국' 사상은 성경에 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시고 제 7일에 안식하셨다는 창세기의 기사에 근거하여 인류역사를 7단계로 나누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대로 구약 4천년, 신약과 교회 시대 2천년이 지나면 제 7천년은 안식일에 해당하는 천년 왕국이 온다고 믿었다. 또 실제로 요한 계시록 20:에는 사탄이 잡혀서 천년 동안 무저갱에 던져지고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성도들이 악의 세력에 대하여 마침내 승리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요, 구원의 결정적인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이 천년 왕국에 관한 이론은 여러 가지로 전개되었지만 한결같이 지복의 천년 왕국을 사모하고 소망하여 온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맞게 되는 현실적인 새 천년은 우리에게 화려한 꿈을 주는가 하면 몸서리치는 공포를 안겨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과거에는 전쟁을 하면 폭탄을 투하하여 한 성읍을 폐허로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다면 새 천년에는 아예 지구 자체를 태양계에서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인간들이 전쟁으로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기술을 발전적으로 개발하여 번영과 평화를 이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기와 해양, 토질의 오염으로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삭막한 지구가 될 수 있는가 하면 반대로 생명 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노화를 방지하고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킬 열쇠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꿈만은 아닌 세상이 될 것이다. 특히 정보화 시대라는 말과 함께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이제는 세상의 질서와 삶의 구도를 근본부터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이런 시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를 믿고, 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렇다고 할 때 과거와 전혀 다른 시대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으며, 교회가 어떻게 그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 이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가 아닐 수 없다.

    2. 새로운 세상과 교회

    (1) 어떤 사람이 뇌일혈로 쓰러졌다. 다행히도 며칠만에 의식을 회복하고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가 의식을 회복하여 눈을 뜨면서 이제는 자기가 죽어 천국에서 깨어나는 것을 착각을 했다. 그래서 감격스런 가슴을 안고 두리번거리면서 "이제 내가 천국에 왔으니 하나님은 어디 계실까?"하고 찾아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자기가 천국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 것을 알았다. 그런데 다시 깨어난 그의 눈에 비쳐진 세상은 정말 전혀 새로운 세상이었다. 햇빛과 하늘, 산과 들, 사람과 창 밖의 도시와 집을 둘러보면서 그는 밀려드는 경이로움과 감탄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옛날에 김소월에 시에 "달이 저렇게 밝아도 처다볼줄을 예전엔 미쳐 몰랐다."는 표현처럼,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은 그가 죽음을 겪기전 예전에 전혀 상상도 못하였던 일이었다. "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답다니! 모든 것이 기적이구나. 만물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것을 보고 있다는 것!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그는 죽어서 천국에 간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기 때문에 세상이 천국처럼 아름답게 바뀌어졌던 것이다.

    그는 얼마 뒤에 퇴원을 하게 되었는데 길거리를 지나면서 사람들을 볼 때 얼마나 그 사람이 귀하고 사랑스러웠던지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아, 안녕 하십니까?"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는 살아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격에 넘쳤고, 이 삼라만상이 존재하고 그 가운데 자신이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놀라웁고 또 기뻤다. 그리하여 그의 가슴에는 사랑이 물결쳤다. 정말 그 어디나 하늘나라로 바뀌었다. 오늘 이를테면 21세기, 아니 새 천년의 새 아침을 맞이하는 성도 여러분에게 이런 감격, 이런 기쁨이 넘치기를 축원한다. 이것이 소위 거듭남의 감격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새 천년이 어떠냐 보다 우리 심령이 이렇게 거듭나는 것이 얼마나 더 중요하다는 이 사실에 착안해야 하겠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바로 이런 인생을 주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2) 옛날에는 높은 벼슬하던 사람들이 가마를 타고 길을 가게 되면 그 앞에서 큰소리치며 길을 열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휘- 물럭거라." 하고 호통을 치면 길을 가던 사람들은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모두 그 자리에 엎드리든지 아니면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고 가마가 지나가기까지 한 자리에 머물러 서 있어야 했다.

    이런 권력의 잔재가 해방되고 소위 민주국가를 이루었다고 했던 지난 세월에도 있었다. 대통령이 지나가면 온 시민들과 학생들이 손에 태극기를 들고 나와 환영해야 했던 그런 때를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오직 권력을 위해 존재했을 뿐이었다. 그 권력에 대한 향수가 아직도 이 땅에는 짙게 남아 있다. 그래서 모두 한자리에 여념이 없다. 금년도 국회의원 선거 철이 되면 또 순진한 유권자들을 어떻게 자기 앞에 엎드리게 할까 온갖 작태가 연출되어 질 것이다. 권력을 잡은 측에서는 내어놓지 않으려 하니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할 것이요, 또 다른 측에서는 그것을 잡으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역시 유권자인 국민들은 자기들을 황금 가마에 태워 줄 도구로밖에는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새 천년에는 이 땅에 민주주의가 활짝 꽃이 피도록 우리가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이 나라에 정말 새 하늘 새 땅이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민족의 통일도 운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만일 이 민족의 통일만 이루어진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정말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천년 왕국에 버금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누가 이런 막중한 사명을 감당하겠는가?

    (3) 우리 나라는 아직도 교통사고 사망률 세계 제 1위라는 수치스런 기록을 벗지 못하고 있다. 누구나 느끼는 일이지만 이 나라의 도로 사정은 보행인들에게 3가지 어려운 것, 즉 보행삼불이란 말까지 생겼다. 즉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리하게 되어져 있다는 것이다. 온통 길바닥을 가득 메우고 질주하는 차량 때문에 사람이 마음놓고 생활할 수가 없는 것이 오늘 우리 나라 실정이다.

    그것이 자동차든지, 컴퓨터든지 할 것 없이 기계 때문에 인간이 오히려 인간 이하로 전락된다든지 기계화되어 간다면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21세기, 그리고 새 천년 대에는 과학과 기술은 고도로 발달할 것이지만 거기 인간이 설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이것은 이미 현실이 되어져 있다.

    우리가 어릴 때 부르던 노래 가운데 "찌르릉 찌르릉 비켜나세요 / 자전거가 나갑니다 찌르릉 , 저기 가는 저 노인 꼬부랑 노인 /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 납니다"라는 노래가 있었다. 정말 그때는 자전거 한 대가 "찌르릉-" 요령을 울리며 달려오면 짐을 지고 가던 사람도, 연세 많은 노인들도 길가로 비켜서야만 했었다. 그러면 자전거를 탄 사람은 뻐기면서 휙 지나간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것이 고급 승용차 일수도 있고, 호화 주택 일수도 있고, 온갖 물질 만능의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 때문에 사람이 사람 노릇 못하고, 사람이 사람 행세 못할 뿐만 아니라, 어딘가 한쪽편으로 비켜 설 수밖에 없는 주객이 전도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지난 시대가 우리에게 남겨 준 잘못된 유산이라면 새 시대에는 사람이 사람으로 자기 위치를 찾는,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이 제대로 회복되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앞장서서 감당하기 위하여 교회가 존재하고, 그리스도인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3. 새로운 교회

    아무리 새 시대라고 하지만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근본 문제는 변함이 없다. 컴퓨터 앞에서 온통 사이버 세계를 섭렵하는 사람도 여전히 구원받아야 하는 죄인이다. N세대니, Z세대니 하여 비록 신 인류라는 말을 듣는 신종 인간들도 다 구원받아야 할 죄인임에는 예외가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여전히 이 땅에서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하고 저들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 교회는 너무 부패하고 타락하였다. 머리 깎인 삼손처럼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세인들이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의 존립의 기반마저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가 새로워져야 한다. 어떻게 새로워 질 수 있는가?

    (1) 그것은 성경이 보여주는 원래의 교회 상을 회복해야 하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생동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져야 한다. 성령이 충만한 교회, 그리스도께서 주인이신 교회가 되어져야 한다.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지는 교회, 그래서 말씀 앞에 "어찌할꼬!" 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서로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뜨겁게 사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오직 하나님께서만 영광을 받으시는 교회가 되어져야 한다. 그리고 땅끝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저하는 전도의 불이 붙어서 타오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교회는 바로 성경이 보여주는 그런 원색적인 교회를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2) 오늘 우리 주변에는 뿌리도 없이 불쑥 솟아난 정체 불명의 교회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서 많은 교인들을 혼란케 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답게 되려면 우선 역사적인 교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성경에 근거하고, 초대 교부들이 터를 쌓았으며, 종교 개혁자들에 의하여 본질을 밝힌 역사성을 지닌 교회로 자리 매김 해야 한다. 이것이 반석 위에 세워지는 교회이다. 사회 풍조에 흔들리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어떤 도전도 극복하고 사명을 감당하고 승리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이 우리 서부 교회가 지향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역사성이 있는 교회이다.

    (3) 그러나 새 시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엄청난 변화를 예상해야 하고, 이미 그런 변화는 시작이 되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런 변화에 재빨리 적응해야 한다. 모든 변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해서 복음 증거와 사명 감당을 위하여 활용해야 한다. 새 술을 담기 위한 새 부대를 마련하는데 결코 게으를 수 없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며 유형 무형의 개혁적 시도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서부 교회 온 성도들이 서부 공동체라고 하는 일체감과 정체성을 확립해서 오직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주의 나라를 위하여 충성할 때 새 천년을 향하는 우리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게 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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