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계 21:1-8)
  • 2013.08.22 11:43:51
  • 오늘은 1999년 송년주일이면서 동시에 천년을 마무리하는 주일입니다. 사람들은 2000년 첫해를 해외에서 맞을 것인가 설악산이나 한라산에서 맞을 것인가 동해바다 어디에서 해를 바라볼것인가 하면서 진작부터 계획들을 세우느라 분주합니다. 마치 1999년 마지막 날에 전해와는 전혀 다른 해라도 떠오를 것처럼 생전 해 구경을 못하고 산 사람들처럼 야단법석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한 생애에 두 세기를 경험하는 것도 신기한데 하물며 새로운 천년까지 맞게 되었으니 아무리 야단법석을 떨어도 과할게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서 지난 천년을 결산하고 새 천년을 설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고대하고 소망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한폭의 그림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오늘본문 말씀을 근거로 새 천년의 삶을 전망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헌것보다는 새것을 좋아합니다. 옷을 입어도 새 옷을 입고 싶어하고 음식을 먹어도 새로 차린 음식을 먹고 싶어합니다. 또 가구나 집, 자동차도 중고품보다는 새것을 갖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본문 1절에도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놀랍고 중요한 것은 사도요한이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사도요한은 단순히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것을 믿은 것이 아니라 직접 자기의 눈으로 영안을 통해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이사야 65장 66장에 나오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이사야 65장 17-18절에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이전 것, 즉 옛 하늘과 옛 땅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사야서에 예언되어진 말씀이 오늘 본문인 요한계시록 21장에서는 그 예언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만을 예언했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라고 했듯이 그것이 벌써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 3장 12-13절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옛 하늘과 옛 땅이 완전히 소멸되어진다는 말씀입니까? 이 지구가 완전히 소멸된다는 뜻입니까? 아닙니다. 이 말씀은 지구가 없어지고 이 세상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완전히 불에 타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변화되고 교체되어 완전해지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의 의미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새롭게 만들어 졌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질적으로 새로운 하늘과 땅이라는 뜻입니다.

     현 질서의 하늘과 땅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불행한 역사를 만들어 온 현 질서는 없어지고, 참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로운 질서가 펼쳐진다는 것입니다. 눈물과 고통, 슬픔의 역사가 없어지고, 신명나고 살맛나는 새로운 삶의 세계가 우리 앞에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1절을 다시 보면,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도 너무나도 영광스럽고 거룩한 것으로 변화되었기에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도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했습니다.

     왜 바다가 다시 있지 않다고 했겠습니까? 성경에서 바다는 파도가 흉융하게 치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풍랑이는 바다는 죽음을 예고하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는 바로 슬픔의 상징이요 고통의 상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바다도 있지 않더라"라는 말씀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없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다가 없다는 것은 고통과 슬픔이 없다는 것입니다. 눈물과 죽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고 다시는 죽음이나 고통, 슬픔이 없는 새로운 질서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질서가 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새로운 천년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맞으시기를 바랍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가 믿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만드실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좋은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살기 좋은 아름다운 동산을 만들어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동산안에 있는 모든 실과는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러나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아 사람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그 좋은 낙원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죽음과 고통, 슬픔으로 괴로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 지나든 것입니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어떤 곳인지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그 곳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둘째, 그 곳은 하나님의 장막이 함께 있는 곳입니다. 본문구절을 보면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하께 있으매"라고 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도 하나님의 장막이 함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사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언약이 완전히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최고의 소망입니다.

     셋째, 그 곳은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악의 근원이 되는 사탄 마귀가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 그 곳은 만물이 새롭게 변화되는 곳입니다. 본문 5절에 보면 "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했습니다. 여기 만물이란 말속에는 우리 자신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 자신의 성품과 기질 인간으로서의 능력의 한계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새롭게 변화됩니다.

     다섯째, 그 곳에는 갈증이 없습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마치 우리가 목마를 때 생수를 마시면 시원해지듯이 우리들에게 있는 모든 갈증들을 시원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갈증에는 물이 없어서 생기는 갈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지식에 대한 갈증, 물질에 대한 갈증, 권력에 대한 갈증, 욕망에 대한 갈증 등 많은 갈증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든 갈증들도 시원하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섯째, 그 곳은 사망이나 통곡이나 아픈 것이 없는 곳입니다. 본문 4절에 보면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고 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것만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은 누가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까?

     본문 7절에 보면, "이기는 자는 이것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주고 그 곳에 들어가 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싸워서 이기는 자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할 대적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대적은 사탄 마귀와 이 세상과 내 자신의 교만과 탐욕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3대적입니다. 이 3대적과 싸워서 이기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3대적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사람은 강한 것 같지만 정말 약한 존재가 사람입니다. 얼마나 어리석고 나약한지 지나고 보면 후회뿐입니다. 지나고 나면 죄를 지은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연합되기만 하면 우리는 사탄 마귀를 이기고, 이 세상을 이기고 내 자신의 교만과 탐욕을 능히 이기게 됩니다.

     이 일을 이루시려고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들 원수들과 담대하게 싸워서 이기게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게 하시려고 대장 예수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대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으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본문 8절을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자들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라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까?

     첫째,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두려워하는 자란, 하나님보다 세상이나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세상이나 사람이 두려워서 그들 앞에서 떳떳하게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나의 구세주입니다"라고 고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태복음 10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시면서 32절과 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일서 4장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앞에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 앞에서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돠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들이 곧 살인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짓말이란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성경을 걸로 진실임을 맹세하며 거짓말하는 것도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기말에 옷로비 사건을 통해서 너무나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보다도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잠시 잠깐이면 없어질 고통이나 괴로움, 어려움이나 슬픔 때문에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그 소망을 바라보면서 오늘도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양하시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힘입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시며 우리는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의 통치 아래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해 나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질서를 창조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이 교회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새로운 질서의 세상을 창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공동체가 우리의 꿈이요 이상입니다. 교회안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공동체는 더 이상 교회일 수 없습니다. 이제 새 천년의 역사 앞에 교회는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공동체로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슬픔에 젖어 눈물흘리는 사람이 없고, 사탕의 지배를 받아 죽음에 이르는 사람이 없으며, 억울함으로 애통하며 곡하는 사람이 없고, 상처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이 없는 공동체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받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이 와서 서로 무거운 짐을 서로 나누어지고 서로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병들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치유 받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억울한 사람들이, 소외된 사람들이, 눌린 사람들이 한을 풀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 새 천년의 시대가 열립니다. 새로운 틀안에서 새로운 질서 속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교회에 일꾼들을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2000년 교회의 일꾼으로 임명받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일꾼으로 부르시고 세우셨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고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쉬지않고 일하십니다.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파와 오메가의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어떤 분은 연초에는 열심히 일하십니다. 마치 토끼가 뛰듯 일합니다. 그러나 점점 식어집니다. 아예 사라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젊어서는 열심히 하다가 나이가 들수록 나태하여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청년시절에는 교회 봉사 잘 하다가 결혼 후에는 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젊었을 때는 세상에서 방탕하게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면서 후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알파와 오메가의 충성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시작도 끝도 아름다운 헌신을 기다리십니다. 선한 청지기는 교회를 섬기는 자세가 온유하고 겸손함으로 변함 없이 꾸준하게 섬기는데 있습니다. 변함 없이 꾸준하게 나에게 맡겨진 직분으로 교회를 섬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해 주신 주님을 섬길 때 평생에 변함 없어야 합니다.

     이제 새 천년의 시대에 교회의 일꾼으로 임명받는 여러분

     우리는 알파와 오메가의 믿음과 사랑, 소망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교회 일꾼으로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새 하늘과 새 땅을 유업으로 받는 승리자의 반열에 설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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