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리석은 인생!
  • 2013.08.27 06:54:27
  •   택자 구원을 위한 주님의 구속사의 발걸음은 분주하기만 했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여러 가지 교훈을 가르치실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습니다(눅12:1).
    이때 무리 중에 한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마 재산 상속 문제로 형제간에 불화가 생긴 것 같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재산의 상속은 형에게는 3분의 2가 주어지고 동생에게는 3분의 1이 주어지게 되었습니다(신21:15-17).
    여기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랍비에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율법 선생으로 오해하고 재산 상속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요구하였습니다.
    그는 형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기보다는 재물의 분배만을 구함으로써 그의 탐욕은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탐심이 가득한 사람의 요구에 예수님은 그를 책망하시면서 탐심을 물리쳐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오늘 본문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4복음서 중에서 오직 누가복음에서만 취급하고 있습니다.
    '탐심'은 '더 많은'이라는 말과 '소유하다'라는 말의 합성어로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탐심의 종이 되어 버린 인생들에게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다 같이 무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행복과 평안은 이 세상 재물에 달려 있지 아니합니다.
    사실 우리 중에 재물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정상적인 재물 소유에 대한 욕구는 인간에게 본능적이지만 탐심은 인간관계를 깨뜨리면서 죄악으로 몰아가고 맙니다.
    예수님이 경계하신 것은 자신의 소유를 획득하고자 하는 합법적인 열망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 이상의 것을 획득하고자 하는 죄악스러운 욕망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탐심으로 선악과를 먹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사단에게 저당 잡혔습니다(창3:1-6).
    에서는 팥죽 한 그릇을 얻기 위해 장자권을 쉽게 팔아 넘겼습니다(창25:27-34).
    우리는 참으로 돈에 미쳐 버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부정 부패를 일삼는 공무원들의 비리는 한시도 그칠 줄 모르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정말 탐심에 포로가 된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중심으로 '어리석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어리석은 인생!

    1. 자신만을 위해 사는 인생입니다.

    본문 17절에서 19절을 보면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한 부자는 어떤 도덕적 결함도 없는 자였습니다.
    그는 부정 축재를 하여 물질을 모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밭에서 부지런히 일하여 정당한 소출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한 소득이라 할지라도 부하게 되는 길에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수입을 늘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을 바르게 쓰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그는 철저한 이기주의자였습니다.
    본문 17절에서 19절까지 우리말 성경에는 "내가"라는 말이 6번 나오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내가"라는 단어가 8번 나오고, "나의(내)"라는 말이 4번이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가'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것은 생각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이 되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이었습니다.
    부(富)의 근원이 하나님이신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늘어나는 재산으로 말미암아 근심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17절에 보면 "심중에 ∼ 어찌할꼬"하면서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가 궁리 끝에 내린 결론은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곡간'은 '창고'의 의미로 사용되며, 여러 가지 물건을 취급하는 '큰 상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 단어로 볼 때 큰 농사를 지으며 상인으로서 물질을 모으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채울 수 없는 인간의 욕심! 그 욕심에는 결코 만족이 있을 수 없습니다.
    전도서 5장 10절에서도 어리석은 인생에게 이렇게 웅변하고 있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곡간이 크면 클수록 근심은 더 커지게 마련입니다.
    부자가 아무리 넉넉해도 그 넉넉한 것이 편안한 잠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그는 '내 곡간',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이라고 말하면서 땅의 모든 소산이 내 것이라고 하는 착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빌려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물건을 관리하는 청지기처럼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재산 관리에만 만전을 기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삶이 아닌 자기만을 위한 삶!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삶이 아닌 이기주의적인 삶!
    이것이 어리석은 인생이 걷는 멸망의 길입니다.

    어리석은 인생!

    2. 생명의 주인을 알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본문 20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삶의 자세는 물질에 의존하여 물질로 말미암아 쾌락을 즐기는 것뿐이었습니다.
    19절에 보면 이러한 사실이 증명이 되고 있는데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추구하거나, 가난한 이웃에게,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관심도 가지지 못하고 그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에 대한 감사도 없이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쾌락의 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는 육신도, 영혼도 모두 물질로써 해결되고 만다는 유물론적 인생철학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영혼이 육신의 재물로 만족하는 줄 착각했습니다. 영혼이 육신처럼 음식을 먹고 마시는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영혼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영혼을 살찌우는 것은 물질적인 부(富)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시119:103,딤후3:16).
    영혼이란 아무리 곡간에 곡식이 가득차 있다 할지라도, 그 창고가 아무리 크다고 할지라도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는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다고 장담하였으나 하나님은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겠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는 영육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육적 생각이 영혼을 지배하며 다스릴 줄 착각하였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생각은 실로 어리석고 허무한 것입니다.
    '오늘 밤'이라는 말이 그의 모든 계획을 완전히 수포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삶에 대해 용의주도하게 계획을 세운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어리석은 자'는 '정신없는 자', '무분별한 자', '생각이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는 유한한 피조물임을 망각하고 살았습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생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영혼을 소환할 때 항거할 힘도 없는 그는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도 없는 자였습니다.
    결코 인생은 죽음 앞에서 피하거나, 죽음을 지연시키거나, 취소시킬 아무런 힘도 없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좋은 계획이나, 부의 힘이, 권세의 힘이 하나님이 정하신 죽음을 제지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 해 쓸 물건을 쌓아 둔 재물이라 할지라도 오늘 밤 그가 죽게 되면 그것을 누가 사용할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다윗도 시편 39편 6절에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어리석은 부자는 생명의 주인을 알지 못했기에 자기만을 위해 물질을 모으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혹시 이 모습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은 아닙니까?

    어리석은 인생!

    3. 재물을 사용할 줄 모르는 인생입니다.

    본문 21절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가 소유한 재물로 그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외에 다른 선한 용도로 사용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였습니다.
    재물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전도서 5장 19절과 20절에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말미암아 주어진 재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에 사용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더욱 윤택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잠언 11장 24절과 25절에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물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그 자체는 죄악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부한 것이 나를 불신앙으로, 정욕으로 빠지게 한다면 그 물질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하나님이 누리게 하신 부(富)를 가지고 자기만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궁핍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는 남에게 줌으로써 얻는 기쁨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는 주는 데서 기쁨을 찾지 못하고, 지키는 데서 기쁨을 얻으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데서 오는 기쁨은 맛보지 못하고, 창고를 확장하는 일에만 정신이 집중되었습니다.
    마땅히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욕심이 가로막았습니다.
    마태복음 6장 20절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19절에서도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자신만을 위하여 물질을 모으는 자는 땅에 쌓아 두는 자요,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자는 하나님께 부요한 자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땅에 쌓아 두는 자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마땅히 드리며 모든 선한 일에 사용함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입니까?
    성도는 바른 물질관을 가지고 이 세상을 여유 있게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어리석은 인생이 어떤 자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리석은 인생은 자신만을 위해 사는 철저한 이기주의자입니다.
    어리석은 인생은 생명의 주인을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르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는 한 번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내 돈, 내 곡간, 내 쾌락을 부르짖는 소비적인 삶을 추구했지만 자기 계획대로 다 살지도 못하고 영혼의 호출에 그만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어리석은 인생은 재물을 사용할 줄 몰랐습니다.
    그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살았습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기에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전도서 5장 15절에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6:8)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탐심이 산산이 깨어지길 바랍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인생의 말로를 보았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인생으로 인생을 결산하면 안될 것입니다. 슬기롭고 지혜로운 자가 되어 하나님께 부요한 신령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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