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으로 나아갑시다(빌립보서 3:18-25)
  • 2013.11.04 18:46:42
  • 오늘 우리는 1989년 새해 첫날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희망의 새해에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셔서 금년 한 해 여러분이 하시는 일이 형통하시고 승리에 찬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미 봉독하신 말씀 중에서 13-14절을 다시 읽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는 생활,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입니다. 추구하는 말은 목적과 병행합니다. 목적 없이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망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합니다. 

    냇물이나 강물은 모두 바다를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냇물이 흐르지 아니하면 늪이 되어 버리고 레오날드 다빈치가 말한 대로 “고인 물은 그 본래의 깨끗함을 상실하고 찬 데서는 얼어 버린다”는 말이 옳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이 그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되면 고여서 결국은 썩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삶이 분명한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생활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는 사는 것이 한낱 괴로운 짐에 불과할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을 상실한 사람은 자신을 경멸하고 혐오하게 되며 삶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눅 9:62)

    우리는 삶의 목표가 뚜렷해야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잘못을 저지르고 후회를 하고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며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런 삶의 변화가 없이 죄책감만을 느끼며 과거에 매여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입니다. 

    유명한 심리학자 William James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회개는 지난날의 죄에 대해서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의식을 떨치고 일어서서 선한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과거에 집착되어 후회하고 슬퍼하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어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제로 묵은 해를 보내고 오늘 새해를 맞이했습니다. 우리의 앞날은 후회가 아닌 새 결심의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잃어버린 세월의 일기를 보며 얼룩진 과거 때문에 눈물 흘리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과감하게 우리 생의 한 페이지를 넘겨 버리고 활짝 웃으면서 새해를 출발하십시다. 우리 앞에는 우리를 기다리는 1989년이라는 하얀 백지가 있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제가 갈보리 교회를 시작할 때 저를 돕는 집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을 잊지 않습니다. “목사님, 하얀 백지 위에 목사님이 바라시는 교회를 그리세요. 저희가 도와 드릴께요.” 저에게는 그 말씀이 얼마나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 갈보리 교회는 백지 위에 새롭게 그려 나아가는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일해도 힘든지 모르고, 의욕이 생기고, 활기가 찹니다.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우리는 아직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이가 말한 대로 “인생이란 성취가 아니라 추구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놀라운 가능성이 있습니다. 흔히 사람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발휘하는 능력은 25% 정도밖에는 안 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것을 믿고 각 사람에게 부여된 가능성을 꾸준히 개발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요사이 여러 가정에서는 자녀들의 대학 진학 문제 때문에 수고를 많이 하십니다. 전기 대학에 합격한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분에게는 실망하지 말라고 말씀드립니다. 다음 기회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시며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는 대학에만 진학하면 모든 것이 다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미국의 하바드 대학은 미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학이면서 명문 대학입니다. 그런데 이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연구 조사했다고 합니다. 베이커 장학금을 받은 가장 머리가 우수한 학생 1등에서 15등까지의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을 조사했는데 20년 전에 졸업한 사람 중에 절반 이상이 사회에 아무런 기여가 없이 그저 평범하게 지내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서울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가 좋다고, 지능 지수가 높다고 다 인생을 성공하고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개발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하게 될 수도 있고 악하게 될 수도 있는 양면적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위대한 성자에게는 가장 사악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극악 무도한 사람에게도 가장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잠재성이 있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람은 천사도 될 수 있고 악마도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재능은 선과 악의 양면으로 쓰여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어떤 환경에 태어나느냐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누구나 좋은 환경에 태어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에 태어나는 아기의 선택권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태어나는 환경에 구속받지 아니합니다. 

    구유 위에서 태어난 한 아기가 세상의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조그마한 통나무집에서 태어난 아브라함 링컨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세계인에게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아도 자신의 비참한 출생 환경을 딛고 일어선 위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문제는 우리 삶의 자세입니다. 어느 학교를 졸업했느냐? 어느 직장을 택했느냐? 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남을 위해 사느냐? 그렇지 않으면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장래를 어떤 방향으로 결정하느냐 하는데 따라서 인생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은 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꿈은 자가용 자동차보다 중요합니다. 자동차는 얼마 안 있으면 낡아집니다. 그러나 우리의 꿈은 유효기간의 한정이 없습니다. 꿈이 있는 동안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지칠 줄을 모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고, 의욕이 있습니다. 그러나 꿈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삶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꿈이 있는 동안 삶이 아름답습니다. 꿈이 있는 동안 힘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주도에 갔다가 제가 결혼 주례를 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결혼한 지 11년이 되었는데 2년 동안 같이 살고 9년 동안은 남편이 중동에 가서 일을 하면서 거기서 생기는 수입을 한국의 아내에게 보내 주는데 이 자매님은 남편에게서 오는 돈을 한푼도 낭비하지 아니하고 저축해서 제주도에 수천 평의 땅을 사서 귤밭을 만들고 농사를 하는데 만 10년  있으면 남편이 돌아오는데 금년 9월경에 온다고 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주변의 교인들이 하는 말이 육지에서 온 사람 치고 그처럼 열심히 사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고 칭찬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 자매님이 어떻게 그처럼 힘이 있게 아름답게 살아갑니까? 꿈이 있어서 그럽니다. 10년 동안 헤어져 있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이렇게 살리라는 꿈이 주춤거리지 아니하고 힘있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참아 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룰 수 있다고 믿을 때 놀라운 일을 성취할 수가 있습니다.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실패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대로 되리라.” 우리의 믿음이 이렇게 소중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어떤 일에 직면해도 “나는 못해.” “내가 어떻게 그런 것을 할 수 있나?” “그것은 해 볼 필요도 없어” 하는 말만 합니다. 부정적인 말만 합니다. 사실 우리가 믿고 구하지 않아서 얻지 못한 것이 수없이 많습니다. 

    여러분, 성역에 주신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마7:7)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 18:19)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고 말씀했습니다.(약 4:2)

    그러므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구해야 합니다. 무엇을 구할 것입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정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상력이라고 하는 대단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내게 좋은 것인지 혹은 남에게 해가 되는 것인지 그리고 지금 내가 그것을 성취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지 더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에 대한 긍정적인 확실한 대답이 나오면 이것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절대로 망설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준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반드시 실현될 날이 오리라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의 성취를 위하여 한 단계씩 실행해 나아가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결코 지름길이 아닙니다. 때로 신앙은 우리를 일으켜 일하도록 고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굳게 믿고 힘써 구합시다. 부모 된 우리는 자녀들이 잘 되기만을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세요.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해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볼 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우리 삶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선하게 보입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의 생 전체를 하나님께 바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요소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행하는 데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느낌이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느낌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느낀 대로 행동이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대로 대상에 대한 꿈이 있어야 하고, 감정이 움직이고, 행동이 수반됩니다. 어떤 사람은 그가 품은 꿈을 현실로 바꿔 놓습니다. 이런 사람을 성공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일을 시작하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중단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느냐? 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출발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나 홍해가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는데 바로 왕의 군대가 뒤쫓아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당황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모세를 향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했더니 밤새도록 큰 동풍이 불어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되어 육지처럼 마른 땅을 건너가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요단 물을 건널 때에는 요단 물이 갈라진 후에 건너 간 것이 아닙니다. 보통 때보다 물이 많아질 때 요단 강물에 들어서라고 했습니다. 언약의 궤를 멘 제사장들이 흘러 넘치는 강물에 들어서면 어떻게 합니까? 이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에는 모험이 있습니다. 물이 갈라져서 육지처럼 된 후에 건너간 것이 아니라 들어서면 갈라질 것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마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쳤다”고 했습니다. 그 순서를 보세요. 우리가 믿는 궤를 메고 가면 요단 물이 갈라진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궤를 메고 요단 물이 가로막혔을지라도 나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더니 물이 갈라졌습니다. 순종은 이적을 낳습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주저하게 되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요단 건너 저기에는 공의와 자유, 그리고 평화의 땅, 약속의 땅, 가나안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요단 물이 넘실거려도 앞으로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기다립니다. 

    야고보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했습니다. 사실 오래 참는 사람의 전형은 농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 오래 참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합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시간표를 작성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만사가 그 시간표에 따라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세익스피어가 ‘오델로’(Othello)에서 한 말대로 “여는 상처가 한순간에 아물어 낫겠습니까?” 이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어버리곤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처가 즉석에서 완치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인내가 필요합니다. 사실 우리가 기다리지 아니하면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본받아 인내를 기르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유익이 되는지 모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앞으로 나아가려면 뒤엣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우리의 실수와 실패, 그리고 죄를 잊지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죄뿐만 아니라 후회스런 일도 잊어버려야 합니다. 후회는 이중으로 약하게 하고 이중으로 불행하게 만듭니다. 지나간 과거는 우리 삶의 이정표이지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방향표는 되지 못합니다.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뒷거울을 잠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뒷거울만 들여다보면서 운전을 하면 지나온 길을 볼 수 있으나 얼마 못 가서 하수도에 빠지든지 전주를 받아 버리고 말 것입니다. 잠시 뒷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은 운전에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에 있는 길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제 한 일이 죄가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게는 오늘 가야만 하는 길이 있으며 또 미래가 있음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뒤엣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지나간 과거는 우리의 마음을 쓰리게 합니다. 여러분, 우리를 왜소하게 만드는 분노나 적개심 같은 것을 모두 없애 버리고 감사와 기쁨으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순간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는 더 이상 과거를 논할 필요가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새롭게 일어나 나아가야 할 시기가 왔음을 서로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이 말씀은 미래를 바라보며 꾸준히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돌아갈 필요도 없습니다. 과거에 잘 한 일 생각하면 교만하기 쉽고, 과거의 실수를 생각하면 낙심되고 좌절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오직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날은 오직 오늘뿐입니다. 시편 118편 24절에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즐거움과 기쁨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오늘을 어제의 회한에 묻혀 또 내일을 근심하여 산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성실한 자세로 임한다면 엄청난 능력을 얻어 우리의 삶을 승리로 이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신 사실을 생각하면 감사와 감격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일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충만하신 능력이 우리에게 힘이 되어 앞으로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 승리하는 이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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