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편 91:15-16/ 환난 당할 때 그와 함께하여
  • 조회 수: 443, 2017.05.12 16:18:53

  •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게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시 91:15~16)



    <서론>
    “환난 당할 때 그와 함께 하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이 세상에 문제없는 인생이란 어디가도 없습니다. 故 장영희 교수가 쓴「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라는 책에 보면, 사람은 누구나 등에 운명 자루를 하나씩 메고 살아가는데, 그 속에는 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가득차 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인생이 좋은 일뿐 아니라 어렵고 힘든 문제들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골짜기가 없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욥기 14장 1절에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고난의 배꼽을 달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여러분에게만 특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고난은 자기 잘못을 회개하게 하는 막대기인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게 되면 반드시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입니다.


    <본론>
    1. 고난은 회개를 위한 막대기이다
     우리는 고난의 막대기에 얻어맞을 때, 고난이 내 잘못으로 당하는 것이라고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무엇을 잘못했는가, 회개와 기도가 등한이 되었다는 것을 누구든지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를 게으르게 한 죄를 깨닫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시편 119편 59절로 60절과 71절에 보면 “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들을 향하여 내 발길을 돌이켰사오며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고난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율례를 한쪽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듣고 했는데 고난을 당하면 마음에 깨달음이 와서 하나님의 율법을 생각하게 되고 깊이 율법을 따라서 살겠다고 새로운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34편 17절로 19절에 보면 “의인이 부르짖으매 야훼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야훼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야훼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우리가 생각할 것은 세상에 환난과 고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환난과 고난이 있으면 그것을 건지는 하나님이 항상 같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환난과 고난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볼 수가 없습니다. 그릇이 있어야 물을 담을 수 있는 것과 같이 환난과 고난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그릇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환난이 다가오면 외롭고 괴롭다고 생각하지만 그때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때 여러분이 기도하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바로 환난과 고난인 것입니다. 기쁘고 좋고 평안할 때는 하나님이 필요 없으니까요.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내가 환난과 고난당하여 내 힘으로 일어날 수 없을 때는 하나님이 필요하니까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호세아 6장 1절에 보면 “오라 우리가 야훼께로 돌아가자 야훼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꼭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어릴 때 나쁜 짓을 해서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끌려가서 종아리를 맞고 난 다음에 피가 흐르면 어머니, 아버지가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주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무슨 생각이 나냐면 칠 때는 무슨 마음으로 치고 바를 때는 무슨 마음으로 약을 발라줘. 부모의 심정을 몰라서 그런 생각을 했지만 부모는 잘되라고 뜨거운 마음으로 자식을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2. 고난은 하나님께 기도하게 한다
     고난은 기도하게 하기 때문에 좋습니다. 영국의 기독교 작가 C.S. 루이스는 고난의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난이 있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일을 당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음성에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고난은 이런 인생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확성기다.” 아무리 말을 해도 몰라봐요. 안 들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고난이라는 확성기를 귀에다 탁 대고 이래도 안 들리느냐? 들리죠. 그러면 회개하게 되고 돌이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사는 사람치고 죄가 없는 사람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다 잘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달래서 올바르게 되기를 원하나 우리가 그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환난과 고난이라는 확성기를 대놓고 하나님이 고함을 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회개하게 되지요. 많은 사람들이 고난을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찾고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오랜 세월동안 목회하는 목사이면서도 고난을 당하면 더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편안할 때는 기쁘고 즐거움에 쌓여서 회개할 줄 몰라요. 그러나 고난을 당하면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고난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다가오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우리가 간절히 찾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자기 교만과 오만을 회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선지자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 만에 그 성을 멸망시키겠다고 경고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늘 침공하고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때문에 요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자 뛸 듯이 기뻤습니다. 이때야말로 앗수르를 멸할 수 있는 기회가 왔구나. 내가 무엇 때문에 원수의 나라가 회개하라고 경고할 필요가 있느냐. 그래서 니느웨로 가는 배를 타지 않고 정 반대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배 제일 밑칸에 내려가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배가 바다로 떠나가자 큰 파도가 쳤습니다. 하나님이 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온 배가 파선에 이르게 되니까 선원들이 잠자는 요나를 깨워서 당신은 누구이기에 잠을 자느냐? 당신의 하나님은 누구냐. 무엇 때문에 이런 풍파가 왔느냐. 요나가 내가 니느웨에 가서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 만에 망한다는 예언을 하라고 했는데 그것을 안 하고 도망치다가 이렇게 되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나를 들어서 물에 던져라. 죽더라도 니느웨에 가서 경고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유대민족들은 앗수르를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안되었지만 우리들이 살기 위해서 이 사람을 물에 던져야 되겠습니다. 물에 던지니까 하나님은 예비하신 하나님이라 큰 물고기를 예비해서 덥썩 삼켜 버렸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배가 고파서 요깃거리 없느냐. 배를 따라오던 물고기가 얼씨구나 좋다고 삼켜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같이 계시면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도 소화가 안돼요. 하나님이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하나님이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저녁에 늦게 누우며 고생이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하는 것같이 하나님이 같이 있어야 행복해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결과가 좋습니다. 하나님 없이 장관이 되어도, 지사가 되어도, 백만장자가 되어도, 별 수 없이 떠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이 계시니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도 소화가 안됩니다. 물고기는 소화를 시키려고 3일 동안 떴다가 내려갔다가 온갖 몸부림을 다 치는데 요나도 소화가 되었음 되었지 니느웨에 가서 복음은 전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소화가 되기는커녕 3일 동안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물고기가 하도 발버둥을 치니까. 그래서 물고기 뱃속에서 그가 회개를 하니까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회개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으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치는 것은 우리를 멸하기 위해서 치는 것이 아니라 회개시키기 위해서 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놓아 주시는 것입니다. 요나서 2장 1절로 2절에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야훼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야훼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회개하면 하나님이 들으시지 않습니까? 역대하 7장 13절로 14절에 보면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하나님은 우리의 잘못을 인해서 꾸짖으시되 잘못에서 돌아서기 위해서 꾸짖은 것이지 멸하시기 위해서 꾸짖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땅에서 회개하면 하늘에서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91장 15절로 16절에 보면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여러분,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부르시고 내세운 것이지 잘못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여러분을 내던져 버린 것은 아닌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보고 하신 말씀이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다.’ 하나님이 내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여러분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나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하나님, 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기쁘고 즐겁습니다. 많이 기쁘고 많이 즐겁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몸속에 기쁨을 가져오고 행복을 가져오는 호르몬이 분출되어서 굉장히 기뻐지고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의사들이 전문적인 지식으로 말하기를 우리 사람의 두뇌는 똑똑한 것 같아도 자기 입에서 말하는 것이 현실인지 말인지를 분간을 못한답니다. 여러분이 좋다. 그러면 실제 환경은 좋지 않은데 우리 두뇌는 좋다는 말을 듣고 아~ 좋은 호르몬을 내보내야지. 그래서 좋은 호르몬을 내보내서 엔돌핀이 솟아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평소에 좋다. 기쁘다. 즐겁다. 행복하다. 그렇게 말을 하면 뇌는 그것이 참말인줄 그래 그래. 좋은 호르몬을 자꾸 내주마. 즐겁고 기뻐하라. 그런데 여러분이 입술에서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나는 못 살겠다. 괴로워 견딜 수가 없다. 죽고 싶다. 그러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그래? 그러면 죽게 해주마. 스트레스 호르몬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우리 두뇌는 현실과 말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단호하게 말을 하면 뇌는 그것이 현실인줄 알고 그대로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생애 속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의 말을 자꾸 하면은 내 두뇌는 그것이 참말인줄 알고 여러분 모든 생활에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갖다주는 것입니다. 결코 부정적인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내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말을 할 때 우리와 같이 하셔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린다고 생각하면 안되는 것은 환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인 것입니다. 그릇이 없으면 은혜를 담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 고난을 당하고 쓰디쓴 고난을 당하고 있으면 그 쓰디쓴 고난의 잔을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주님이 은혜를 주어서 달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은혜가 고난을 달게 만드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어야 은혜를 줘요. 고난이 없는데는 은혜를 줄 필요가 없습니다. 은혜는 무엇을 하는 것이냐. 고난을 달게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약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했다고 버림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 내가 고난 중에 있사오니 나를 도와주셔서 은혜를 주시옵소서. 오냐, 은혜를 주마. 은혜를 부어 주시면 고난이 달아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백성이 된 사람은 좋을 데는 좋아서 좋고 어려울 때는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고난을 제어해줄 은혜를 부어주시매 좋은 것입니다.


    3. 고난은 우리를 깨뜨려 겸손하게 한다
     셋째로, 고난은 우리로 겸손하고 깨어지게 만들어 온유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도 못씁니다. 사람은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깨어지면 낮아지고 겸손해지지요. 깨어지지 않는 사람은 모든 것이 자기가 옳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해 볼 때 이 사람이 깨어졌나 안 깨어졌나를 알아볼 때는 대화를 해보면 아는 것입니다. 얼마 안 있다가 무엇이든지 자기가 옳다. 내가 옳고 너가 나쁘고 세상이 나쁘고 나라도 나쁘고 하나님도 나쁘다. 내가 옳다. 안 깨어진 사람인 것입니다. 깨어진 사람은 모든 면에 자기가 잘못했다. 자기가 돌이킨다. 자기가 변화되겠다. 자기가 더 노력해 보겠다. 낮아진 사람이 깨어진 사람인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었는데 맏아들은 열심히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밭에 가서 일을 하는데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아버지, 나에게 상속을 주십시오. 기왕 아버지는 죽을 것 아닙니까? 죽을 때까지 기다리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빨리 상속을 주십시오. 아버지가 생각하니 고약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놈이 너무 괴롭힙니다. 내가 나의 친구 목사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교회 참 착실하게 예수를 잘 섬기던 장로님이 세상을 떴어요. 그래서 그 집에 찾아가서 예배를 드리러 가니까 자식들이 3남 1녀인데 한 사람도 아버지 계신 곳에 없어요. 그래서 예배를 봐야 되는데 여기에 다 와 있어야 되는데 어디 갔느냐? 어제까지는 다 와 있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어디 갔느냐? 아버지 포켓트에서 몰래 감춰 놓은 10억짜리 통장이 나왔습니다. 통장이 나오고부터는 그 통장 돈을 가지고 싸운다고 아버지에게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법이 있느냐. 오라. 맏이, 둘째, 셋째, 딸 서로 모여가지고서 이 통장의 돈을 누가 더 많이 가질 것이냐. 몹시 흥분되고 싸웠어요. 그래서 잘 달래가지고서 장례식을 치르고 난 다음에 다시 위로하기 위해서 권사님 댁에 찾아가니까 아버지가 살던 집이 셋집인데 아버지가 갖다 놓은 전등불 전기 다마 하나까지도 다 뽑아가더라. 남은게 하나도 없이 다 가져가 버렸어요. 맏이가 가져가든지 둘째가 가져가든지 셋째가 가져가든지 가져갔지요. 그런데 안 가져간게 있어요. 무엇이겠습니까? 아버지 사진은 안 가져갔더랍니다. 아버지 사진만 덩그러니 붙어 있는데 그렇게 슬플 수가 없더라고.... 세상에 물질이 없으면 싸우지 않지만 물질이 있으면 사람들이 싸우게 되어요. 그러므로 이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잘 섬겨야지 물질을 섬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 둘째 아들이 아버지 보고 아버지 가산을 나눠서 내게 달라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가 하도 괴롭히기 때문에 재산을 나눠 주었어요. 이 놈이 재산을 가지고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삽니다. 돈이 있을 동안에는 친구도 많이 생기고 여자들도 많이 따르고 온갖 호화로운 일을 다 즐겼습니다만 그 나라에 기근이 와서 먹을 것이 없어지고 돈이 없어지니까 친구가 다 떠나고 직장을 구했는데 농촌에 가서 돼지를 치는 것입니다. 유대나라에서 제일 천한 직업이 돼지를 치는 것입니다. 돼지를 치는데 돼지가 쥐엄열매를 먹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그 쥐엄열매를 나눠 먹으려다 그 돼지에게 물려서 온 팔과 다리에 돼지 입자국이 났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집에는 종들이 있고 품꾼들이 있는데 먹을 것이 많은데 나는 소위 아버지의 둘째 아들이라고 하면서 이 먼 나라에 와서 굶어죽는구나. 내가 돌이켜서 회개하고 나는 이제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기를 원치 않고 종 중의 하나로 품꾼의 하나로 봐달라고 회개하고 돌아가겠다고 고통과 괴로움이 다가오니까 깨어진 것입니다.


    똑같은 둘째 아들인데 깨어지기 전에는 건방지고 오만하고 나쁜 놈이었는데 환경이 어려워지니까 깨어지는 것입니다. 자기가 회개하고 아버지 계신 곳으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나가고 난 다음에 마음속에 아들이 불쌍히 여겨져서 늘 아들이 돌아올까 싶어서 귀를 기울이고 바라보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인 것입니다. 열손가락 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습니까? 맏아들은 ‘나쁜 놈의 자식 잘 나갔다. 이놈의 자식 다시 돌아오기는 내가 맞이하는가 보아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아들을 왜 간절히 기다렸냐면 옛날 유대인의 습관에서 부모에게 불효하고 떠난 사람이 돌아오면 동리 사람들이 제일 먼저 보았을 때 잡아서 죽여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떠나간 사람은 돌아오면 돌멩이질을 해서 죽입니다. 그 아들이 맞아죽을까 싶어서 아버지가 아들 오기 전에 먼저 확인을 해야지 동리 사람이 먼저 확인을 하면 큰일납니다. 그런데 이 아들이 누더기 옷을 입고서 절뚝거리면서 오니까 아버지가 쏜살같이 뛰어나간 것입니다. 왜냐하면, 동리 사람 보기전에 아들 보호하려고... 쏜살같이 뛰어나가서 그 누더기 옷을 입은 아들을 끌어안았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심정인 것입니다. 맞아죽을까 싶어서... 그리고 난 다음에 종들을 불러서 종들에게 제일 먼저 말한 것이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아이고 목욕이라도 시키고... 목욕시킬 시간이 없다. 제일 좋은 옷을 갖다 입혀라. 그리고 신발을 신겨라. 종은 신발을 안 신습니다. 아들이니까 신발을 신겨라. 그리고 아들 된 표식으로 가락지를 끼워라. 그리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뼈가 앙상하게 나온 말라빠진 송아지를 잡으라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좋은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 먹고 즐기자.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으니 기뻐하자. 그런데 형님이 밭에서 일하다가 돌아와 보니까 집에 풍악소리가 나고 즐거워하고 있다 말입니다. 종을 불러서 무슨 일이냐. 당신 아들이 몸 성하게 돌아온 것을 기뻐해서 아버지가 살찐 송아지를 잡았다. 나 안 들어간다. 저런 나쁜 놈을 집에 들이는 아버지 같으면 나는 그 아버지 밑에 일하고 그 집에 살 필요가 없다. 안 들어간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야, 너는 늘 나와 같이 있었으므로 내 재산이 다 네 재산이 아니냐.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었으니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들어가자! 안 들어가요! 나는 저런 놈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알 수가 없어요. 이 아버지는 사랑과 은혜로써 자식을 대하지만 맏아들은 율법주의로 대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율법에 어긋난 것은 안 보겠다는 것입니다. 이 맏아들대로 하면 천당도 안 갑니다. 죄인을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를 내가 좋아할 턱이 있느냐. 나는 안 가겠다. 하나님은 율법주의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여러분을 사랑하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과거를 용서해줄 뿐 아니라 과거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출발을 하도록 함께 힘을 써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온 집안 식구들은 밖에서 있지 않고 살찐 송아지를 먹으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데 맏아들은 율법주의자들은 스스로 나는 그런 사람과 같이 있을 수가 없다고 안 들어가고 바깥에서 추워 떨며 있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보면 고난은 오만하고 교만한 사람을 깨어지게 해서 겸손하게 만들고 온유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열두 번도 더 변해요.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도 고난이 변화시키는 큰 역사를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로 3절에 보면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우리가 깨어지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되어서 가정에서 부모를 잘 공경하면 이 세상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은혜를 하나님이 보태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들에게 계명을 많이 주셨는데요. 그 계명에 축복의 약속을 붙인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 계명밖에 없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세상에서 잘 되고 장수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면 오래 살고 풍성하게 사업이 잘 되는 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겸손하고 깨어지게 만들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겸손하고 깨어지고 온유하게 만들기 위해서 고난당하는 것을 허락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4. 고난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한다
     넷째로, 고난당할 때 그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하신다.은혜를 그냥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은혜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렵고 고난당할 때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고난을 물리치는 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바울 선생이 고난당해서 환난에 죽게 되었을 때 주께 부르짖으니까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한 것입니다. 여러분, 고난당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 미워서 고난 준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은혜를 줄 때가 왔기 때문에 고난이 오는 것입니다. 고난이란 그릇은 반드시 은혜를 담는 그릇인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8절로 9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하나님이 여러분을 도와주실 때 일찌감치 도와주시면 좋은데 우리의 체험을 통해서 보면 떨어지면 낙동강, 떨어지면 낙동강 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믿을 수도 없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견딜 수도 없습니다. 이제 하나님 날 버렸어요. 이제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깜짝 놀랬지? 내가 여기 있어. 하나님이 그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서 참으로 인내하라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끝까지 참아라. 하나님께서 네 짐을 야훼께 맡겨라. 그리하며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실 것이라고 했는데 반드시 우리의 공의를 나타내 주실지라도 끝까지 참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올라가서 재단을 쌓아놓고 장작불을 피워놓고 자기 아들 이삭을 잡아서 재물로 드려 불로 태우려고 할 때 마지막에 칼을 들어서 목을 찌르려고 할 때까지 아무 말도 안했습니다. 칼이 목을 향해서 내려가니까 그만 그만! 네가 네 아들 이삭을 아끼지 않고 내게 내놓는 것을 보니 네가 나를 참으로 사랑하는 줄 알았다. 내가 이제 정말로 네게 복주고 복주며 번창케 하며 번창케 하리라. 제가 신앙이 어릴 때 이 성경을 읽으면 내 속으로 하나님이 왜 그런 장난을 하십니까? 본인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일찌감치 주님이 네가 정말 네 아들 이삭을 받치나 안 받치나 보려고 시험해 보았다 하시지 아니하시고 칼을 들어서 내리치려고 할 때까지 기다린 것은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너도 당해봐라. 제가 이 교회를 지을 때 제일 어려울 때 순복음아파트 7층에 밤새도록 잠을 못자고 하루아침에는 너무 괴로워서 여기에서 뛰어만 내리면 편안하겠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응답은 안 해주시고 나 혼자 이 교회를 이끌어갈 도리가 없으니까 7층에서 내 뛰어야 되겠다고... 여러분, 사람 마음이 좌절되면 세상에 그리운 것이 하나도 없어요. 겁날 것도 없어요. 그리고 죽는 것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 둘, 셋하고 뛰어내려야 되겠다고 싶은데 하나, 둘, 셋 뛰어내리려고 하는데 벌떼가 어디에서 그렇게 많은 벌이 날라왔는지 모르지만 내 얼굴에 확 덮칩니다. 벌들이 와서 죽는 것도 다 잊어버렸어요. 뭐 코로 들어가고 귀로 들어가고... 그래서 하나님 응답은 안 해주시고 벌은 왜 이렇게 보냅니까? 네가 이제 응답받을 때가 왔으니까 내가 하는 말이 조금만 더 참아라. 그때는 참는 것이 좋아보이고 사는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사람 마음이 그렇게 순식간에 달라질 수 있어요.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은총을 주시고 축복을 주셔서 이 교회를 무사히 지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이라는 그릇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살아지는 것입니다. 고난은 은혜하고 이콜(=)인 것입니다. 세상에 은혜 많은 사람은 고난도 많이 겪은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고난이 다가오면 여러분 버림받았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10절에 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사도 바울 같은 선생을 하나님이 사용하셔서 온 천하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려니까 굉장히 은혜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도 따르고 치료의 역사도 따르고 말씀도 깊이 증거하고 훌륭한 주의 종이 되어야 되겠는데 이 은혜를 담으려니까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보통은 은혜를 담을 그릇이 없어요. 고난의 은혜의 그릇이니까 바울 선생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고난을 당케 해야 은혜를 담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큰 은혜를 달라고 하나님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그러면 하나님이 물어보는 대답이 있습니다. 고난을 참겠느냐. 고난이 있어야 은혜가 담아지는 것입니다. 그냥 적당히 믿으려면 은혜 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적당히 믿으면 되는 것이지 큰 은혜, 마음에 하나님 나라가 충만해서 기도하면 하나님 음성이 들려오고 기도하면 계시가 나오고 진리가 깨달아지고 능력이 나타나고 하는 이런 것은 반드시 고난의 그릇에 하나님이 은혜의 계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선생보고 바울이 너무 고난을 당하여 괴롭기 때문에 세 번 기도했습니다. 이 육신의 고통을 면해달라고 세 번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은혜를 네가 계속 받아서 유지하고 싶으면 고난을 옮겨주마. 그러나 이 고난이 있어 계속 너를 낮추고 고통을 주면 네가 은혜를 구하기 때문에 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고난을 택했습니다. 오히려 내가 고난당하고 난 다음 하나님의 은혜를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 고난당해서 괴로울지라도 이것 없어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은혜 주시옵소서. 그는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우리가 약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동정을 받거나 흉을 받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은 반드시 그 고난에 같이 가는 은혜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반드시 은혜 줘요. 여러분, 미국에 백악관 장애인 차관보를 한 강영우 박사, 그가 내가 불광동에서 가마니 깔고 천막치고 예배드릴 때 우리 교회 교인이었습니다. 그 어머님이 다 돌아가시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여동생 하나, 남동생을 데리고 그 추운데 내복도 없이 여름양복을 입고 벌벌벌 떨면서 왔는데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안 와요. 태어날 때부터 장님이 아니라 학교에서 공차기 하다가 공이 눈을 때려서 눈이 멀어졌어요. 그런데 기도를 하면 성령께서 하신 말씀이 “이 강영우는 장애인이 되므로 큰 인물이 될 수 있다.” 그런 말이 자꾸 들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벌이 어디 있습니까? 장님이 되므로 큰 인물이 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내가 고쳐주면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살 것이고 장님이 되는 것을 참고 견디면 큰 사람이 된다. 그래서 제가 그 다음부터 안수기도를 안 해주니까 안수기도 안 해주는 교회 안 나온다고 하면서 떠나갔어요. 세월이 지나고 난 다음 보니까 미국 백악관 장애인 차관보가 된 것입니다. 우리 한국사람으로서 백악관에 그런 벼슬을 얻은 사람은 강영우 박사가 처음입니다. 아무도 그가 장님 되었다고 동정하는 사람 없어요. 다 부러워하지. 하나님 은혜가 그 그릇에 채운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면 그 고난이 여러분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참으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으니 알아서 하십시오. 견디면 하나님이 은혜를 팍 부어주시면 고난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5. 고난은 인생에 가장 귀한 것을 깨닫게 한다
     다섯째로, 고난당할 때 인생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이 세상에 부귀, 영화, 공명, 돈 이런 것이 최고로 좋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 사라질 것이 제일 좋게 보입니다. 그러나 고난당하면 그런 것이 다 일시에 물거품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 소용이 없어요. 조목사 저것 알지 못하고 저런 소리한다. 내가 알기 때문에 이런 소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캘리포니아에서 제가 집회를 했는데 마지막 날이라 아주 땀을 팍팍 쏟으면서 말씀을 증거하고 병자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다음에 호텔에 들어왔습니다. 호텔이 27층에 있습니다. 목욕을 하고 아주 잠속에 푹 빠졌는데 전화가 자꾸 울려요. 그래서 제가 누가 이렇게 자고 있는데 전화를 합니까? 빨리 내려오십시오. 호텔에 불이 나서 불이 호텔을 감쌌습니다. 지금 다른 사람 다 내려왔는데 목사님만 안 내려 왔습니다. 그 말에 잠이 번개같이 날라가버렸어요. 부리나케 일어났는데 잠옷 바람으로 일어났는데 아~ 여러분, 그때 유일하게 마음에 계신 분, 예수님 한분 밖에 안 계세요. 돈이나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자랑이나 칭찬이나 하나도 기억나는게 없어요. 예수님만이... 그런데 내가 잔 그 방에 문도 못 찾겠더라구요. 마음이 급하니까. 사람이 마음이 급하니까 어디를 가야될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예수를 부르니까 눈이 밝아지더라구요. 그래서 문을 열고 복도에 나가니까 연기가 꽉 들어찼는데 전기는 다 꺼져서 엘리베이터는 움직이지 않고 나처럼 늦잠 자던 노인들과 어린 아이들이 복도에 가득해요. 그래서 내가 나오니까 그 사람들은 어디를 갈지 모르고 찾지를 못해요. 나 혼자 예수님이 내게 은혜를 주시는데 그 연기가 나고 어두운데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해져서 내가 그 모든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내 뒤를 따르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에 비상계단이 27층에서 내려오는 비상계단이 있는데 비상계단 문을 열고 JESUS! JESUS! JESUS! JESUS!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하면서 내가 비상계단을 내려가는데 모두 다 따라 내려오면서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예수님! 전도 한번은 기가 막히게 잘했어요. 그런데 마음을 안정하면 어떤 어려움에도 해결해 나올 수 있는 것이 그렇게 연기가 나고 야단법석이어도 내가 예수님 이름을 부르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되게 나가고 사람들이 질서를 지키고 따라내려오니까 모두다 27층에서 밑에까지 내려왔다고요. 내가 그것을 지금까지 느낍니다. 사람이 위험을 당할 때 마음에 안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려야 돼요. 그러면 살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요. 막 싸이렌이 울리고 소방차가 요란스럽게 사이렌을 울리고 밑에서는 마이크를 들고서 살아있는 사람은 방안에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미친소리 아닙니까? 방안에 있었으면 다 죽었지! 그러나 나는 예수님이 내 마음속에 평안을 주시는데 기도가 그렇게 술술 잘 나오고 마음에 기쁘더라구요. 기쁘고 즐겁더라구요. 주님이 같이 계시니까. 내 뇌가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내 말이 진실인줄 알고 내가 기쁘고 즐겁다고 하니까 마음이 정말 기쁘고 즐겁더라고요. 그래서 JESUS! JESUS! JESUS! JESUS! 하면서 축제마당 한마당이 되어서 막 뛰어내려오는데 다 뛰어내려와서 밑에 내려오니까 사람들이 나를 끌어안고 JESUS! JESUS! JESUS! JESUS! 불난 호텔 로비에 부흥회가 일어났어요. 나는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고 그 사람들은 예수님! 예수님! 하고 박수를 치고 다른 사람들은 어리둥절 했는데 주님의 능력으로 살아난 것입니다. 그 고난당할 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귀한 것을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어려울 때 예수님이 가장 귀하신 분인 것입니다. 예수님만 계시면 다른 것은 그대로 다 따라오는 것입니다. 시편 23장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이사야 43장 1절로 2절에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주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있으면 주님이 은혜로써 우리를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이러므로 고난은 예수님을 모시게 만들고 가장 귀하게 만들고 그로 말미암아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을 허락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론>
    고난은 우리의 인생을 갈고닦아서 겸손하게 만들고 다른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동정할 수 있습니다. 고난당하는 사람 내가 고난당했으니까 동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삶을 홀로 살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고난 중에 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나중에 깨닫게 되는 것은 고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때 고난당하는 자에게 축복이 되도록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천사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마스크를 쓰고 여러분에게 나타난 천사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낙심하지 않고 참고 있으면 그 고난이 큰 은혜를 걸머지고 와서 여러분에게 부어놓고 가는 것입니다. 은혜는 고난과 이콜(=)하는 것입니다. 고난 없는 은혜는 없습니다. 고난 있는 곳에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17살 때 폐병 걸려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서 깊은 고난에 빠지지 않았으면 오늘날 주의 종이 되는 은혜는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고난이 있기 때문에 은혜가 와서 병을 고쳐주고 하나님을 알게 하고 지금도 제가 생각하면 희한합니다. 우리 집안이 모두 다 나 때문에 예수 믿게 되고 우리 큰집, 작은집, 사촌 동생 할 것 없이 다 예수 믿게 되었어요. 그 넘치는 은혜가 폐병으로 피를 토한 고난의 사건에 따라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반드시 나쁘지는 않습니다. 고난은 은혜의 축복을 걸머지고 온 변장한 천사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참으십시오. 주님께 감사하십시오. 나중에는 고난 때문에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여러분 더 큰 영광을 하나님께 드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복음성가 255장 한번 부르십시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힘이 없고 내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 주시며 늘 지켜 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잠시 동안 고개 숙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방언통역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딸들아, 내 종을 통해서 말한 것은 내가 너에게 말하는 것이니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으로 알아들을지어다.네가 낙심하고 탄식하며 슬퍼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 말을 전달하는 것이니 귀를 열어 듣고 용기를 내고 힘을 얻어 담대할지어다. 네 하나님은 너와 같이 계시고 너 위에 계시고 너 밑에 받치고 계시니 결단코 너를 버리지 아니하고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능력으로 너와 같이 계시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나님께서 너에게 상급을 주실 것이리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성령으로 같이 계시고 옆에서 함께 하시고 환난 때 은혜의 단비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감사드립니다.오늘 하나님 기적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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