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된 양식 참된 음료(요 6:53-58)
  • 조회 수: 253, 2013.06.15 07:29:09
  • 요한복음 4장에 수가 동네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자는 세상에 싫증이 난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습니다. 
    지금 있는 자도 남편에 대한 그 여인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여인의 겉만 보고 그 여인을 판단했습니다. 
    그 여인의 꿈이 무엇인지, 소원이 무엇인지 진심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여인을 찾아와 이루지 못한 꿈을 나누고, 아픔을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세상이 싫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남을 대할때는 겉모습만 보고 제멋대로 판단하면서, 다른 사람이 나의 진심은 보지 못하고 ,내 모습을 왜곡시켜 말한다고 탓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함부로 말해 나를 화나게 하고 내 가슴에 상처를 입혔다고 펄펄 뛰면서 자신은 그보다 몇배 더 악한 말을 하여 다른 사람을 실족케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자신은 보지 못하지만 남은 잘보는 것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두 사람이 만나면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일어날 소지(素地)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 사람들은 깊은 생각없이 단순하게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 자신의 입장(立場)만 생각을 합니다. 
    내 말과 내 행동과 내 결정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고려해보지 않은채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이 생각할줄 알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세상이 그러다보니 힘없는 사람들은 무시당하는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의 하는 일이 독단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힘 있는 사람들은 정직하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힘 있는 사람들은 뒷문을 열어놓고 부정한 거래를 하면서 그 부담을 힘없는 사람들에게 지우는 것입니다. 
    힘있는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보호하는데 열을 올릴뿐 선량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권익 보호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의 되어지는 일이 가슴을 짓누르듯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 살면서 여러분은 어떻게 살기로 결심하겠습니까? 
    여러분도 힘있는 사람이 되어서 힘있는 사람이 취할수 있는 이익을 얻는데 관심을 두며 살겠습니까? 
    아니면,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살겠습니까? 
    세상과 타협하면 세상으로부터 얻을수 있는 이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힘있는 사람이나 힘없는 사람이나 모두 "목마른 자"입니다. 
     
    목마른 자는 물을 찾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3,14) 
    우리가 찾는 것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물입니다. 
    육신의 갈증은 물을 마심으로써 해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갈증은 그냥 물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육신의 욕구가 충족되었다고 만족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영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혼의 욕구는 물질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영혼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게 됩니다. 
    경제가 발전했다고 의로운 통치가 이루어 지겠습니까? 
    과학이 발달했다고 진리를 찾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의와 진리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문명이 발달했다고 의와 진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영혼의 갈증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맺을 때 해소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어리석다고 비웃고 있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것은 경제를 발전시키고 과학을 발달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육신의 욕구가 채워지면 인간은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다시피 풍요한 물질과 기술의 발달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너와 나 사이에, 자연과 나 사이에 그리고 나와 나 사이에 아무런 화해와 용서를 이루어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참된 화해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루어집니다. 
    참된 용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그토록 갈구하는 의로운 사회, 검찰과 감찰이 필요없는 사회, 법이 공평하게 집행되는 사회, 악을 행하는 자가 발 붙이지 못하는 사회, 약자가 보호받는 사회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떡'이라고 자신을 말씀하신 것은 비유의 말씀입니다. 
    떡은 육신의 생명을 위한 양식을 말합니다. 
    떡을 먹지 아니하면 육신의 생명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떡은 육신의 생명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신의 생명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영원한 생명이 없으면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54절을 보십시오. 
    "내 살을 먹고 내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58절에서도 예수님은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시면 영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영생을 얻을 길은 없습니다. 
    53절에서 예수님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은 참되 양식이요, 예수님의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55절) 
     
    여러분!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말씀이 너무 괴이하고 끔찍하다고 생각되십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우리와 예수님과의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관계를 말합니다. 
    마음 속으로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겠다는 결심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야 할 성현(聖賢) 가운데 한 분으로 여기는 것으로도 부족합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인격적으로 내안에 들어오셔서 내 삶의 주인이 되셔야하고, 내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하고 말씀하셨습니다.(56절) 
     
    그러므로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의 피를 마신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씀을 실감나게 그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습니다.(47절) 
    예수님께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도 아니할 터이요, 영원히 목마르지도 아니할 것입니다.(35절) 
     
    오늘 우리는 성찬식을 통해 예수님의 살과 예수님의 피를 먹고 마십니다.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받아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6:26-28) 
    우리는 성찬의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 마다 "이것은 예수님의 살이요, 이것은 예수님의 피구나."하는 감격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떡을 먹고 잔을 마실 때 인격적으로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때 목마릅니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없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께서 영원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어떠한 때 목이 마릅니까? 
    부모가 누구인지 몰라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자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자녀요,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는 갈곳없는 방랑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언제 목이 마릅니까? 
    죽음을 의식할 때입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은 자는 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 목이 마릅니까? 
    세상에서 거짓과 불의가 득세하는데 그것이 바뀔 것 같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의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세상의 어떤 체제와 제도로도 목이 마를 수밖에 없으나 예수님께 오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안에 우리 영혼의 샘물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마심으로 활기찬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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