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과 피를 주신 주님(요6:52-59)
  • 조회 수: 132, 2013.06.15 07:27:19
  •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일은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주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준다는 말을 우리는 실감나게 경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잉태하고 생명을 분만하는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는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준다고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남자들보다 훨씬 더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분당에 있는 어느 병원에서 임상목회학을 공부할 때에 산부인과 병동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산부인과 병동에 들어서니 많은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산부인과에 웬 남자들이 이렇게 많을까?  요새는 남자들이 분만을 하는가? 하는  농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그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실제로 남자들도 새생명을 분만하는 일에 간접적인 참여를 하고 있었습니다.  
      분만실 밖에서 생명을 출산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면서 아내가 진통을 할 때에는 그 고통의 소리를 들으면서 아내와 같이 아파합니다.  아내가 소리를 지르며 진땀을 흘릴 때에는 남편도 함께 손에 땀을 쥐며 마음을 조이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응아'하는 소리와 함께 새생명이 분만되는 순간, TV를 지켜보고 있던 남편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환하게 됩니다.  그리고 분만실에서 나오면 그 분만실 옆에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만날 수 있는 만남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내는 누워있고 남편은 그 침대 곁에 서서 위로하며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남편과 아내가 함께 만나는 그 공간을 바라보며 일종의 신선한 거룩함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낀 적이 있었습니다.   그 공간 안에서 여러 부부들이 서로 고통의 순간을 뒤로 한 채, 손을 잡고 새생명을 출산한 기쁨을 함께 하며 아내를 위로하며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생명을 나누어주는 위대한 어머니의 위대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생명을 출산한다고 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이 없으며 또 기쁜 것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위의 어머니를 통해서 늘 자신의 생명의 조각을 나누어줌으로써 끊임없는 생명들이 대를 이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생명을 나누어주는 일은 인류의 역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신비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생명을 주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주어서 세상으로 하여금 새생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은 생명을 나누어주기 위해서는 진통과 고통을 거쳐야만 합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생명을 주어서 우리 인간들이 영생을 얻고 살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고뇌하셨고, 진통하셨고, 아파하셨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 위에서 기도하시기를 "아바,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거두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고 기도하셨습니다.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다고 했습니다.  생명을 나누어주는 것은 진통과 고뇌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자신의 영혼 밑바닥으로부터 올라오는 두려움과 맞서 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통은 십자가 위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6시간 동안 십자가에 매달리는 아픔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채로 6시간 동안이나 진행되는 전율이 흐르는 고통 속에서 예수님의 생명의 불꽃은 점점 시들어갔습니다.  육체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 예수님은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하고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외치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나를 버리셨다고 하는 그 무서운 십자가의 외로움과 고독이 예수님을 지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불꽃이 그 빛을 점점 잃어가면서 인간에게는 구원의 새생명의 소리가 세상에 들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인류에게 나누어주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흔히 기독교를 가리켜 생명의 종교라고 합니다.  
     유대교에서는 생명보다는 의식 자체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유대교에서는 생명은 죽어도 율법은 지켜져야 합니다.  안식일 법을 어기면 그 생명의 가치를 잃어버립니다.  용서가 없고 관용이 없습니다.  율법의 심판만이 있을 따름입니다.   정결예법을 지키지 않으면 심판을 면하지 못합니다.  마음을 씻고 인간의 중심을 회개하는 일보다도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경건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유대교에는 의식과 율법을 있을지 몰라도 생명은 없습니다.  

     헬라인들은 생명보다도 지혜를 먼저 구합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생각의 산물입니다.  정신적인 고뇌의 결정체를 말합니다.  명상의 결과로 얻어지는 열매를 말합니다.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지혜는 하늘이 주신 최고의 선물로 알았고 지혜를 통해서 인간은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이나 지혜를 통해서 인간에게 구원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주심으로써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주신 것입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주신다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사건은 하나님에게 드려지는 제사의식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과 피를 나누어주신 것은 명상과 깨달음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인류에게 주어지는 생명은 하나님 자신의 몸과 다를 바 없는 예수님의 육체의 생명의 조각을 분배받아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은 오늘 본문 말씀을 두고 기독교를 몹시 비난했습니다.  특히 로마의 박해가 매우 심해서 모든 기독교인들이 땅속에 만들어 놓은 카타고움으로 들어갔을 때입니다.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배를 드릴 때 사람의 고기를 먹고 피를 마신다는 소문을 퍼트린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사람을 잡아서 그 살과 피를 먹는다는 소문을 퍼트린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퍼진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회를 가리켜서 '흡혈귀의 단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그렇게 좋지 않은 소문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성만찬의 의식을 계속해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라 함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함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살과 피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야를 몹시 대망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그들을 구원할 메시야는 곧 정치적인 독립을 의미했습니다.  로마인들을 몰아내고 독립된 정치적인 왕국을 세우는 것이 메시야가 이 땅에 와서 해야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갈릴리 출신의 예수라는 사람이 하는 일은 유대인들의 생각과는 너무도 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고 하여 하나님과 등등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예수를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자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수의 살과 피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 있어서도 예수님의 살과 피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특히 헬라인들은 이원론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이원론적인 사상에 의하면 영혼은 선하고 거룩한 것인데 비해서 인간이 지닌 육체는 악하고 천한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현설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더러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실 수가 있느냐고 생각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그의 영혼만 못 박힌 것이고 부활하신 것도 영혼만 부활했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은 분명히 육체를 지니고 이 땅에 오신 분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철학적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철학적으로 따른다면 아마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윤리나 도덕을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으로 세상을 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하나의 신앙인이라기 보다는 우리 생활의 윤리 실천가들과 비슷할 것입니다.  아마 유교를 지키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또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앞서서 선한 행위를 함으로써 공적을 남겨주신 스승으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착한 일을 한다고 해서 우리 인간이 다 천국에 가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죄인이기 때문에 그 행위가 착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착한 일을 해서 그 공적을 책으로 적어서 놓는다고 해도 그것을 통해서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선한 것이 있고 인간에게 세상의 도를 깨우칠 수 있는 불심(佛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에 참여할 때에만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명이 아닙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생명도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생명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함으로 인간이 영생을 얻으며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영생은 하늘 아버지께서 주신 하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은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서 주어지는 열매가 아니며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선한 행위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심으로 우리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율법을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철학적 사고를 예수님의 생명보다 더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한 행위를 구원을 받기 위한 일차적인 수단으로 강조하지를 않습니다.  기독교의 생명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나를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정하신 인류 최대의 나눔의 식탁을 대합니다.  세계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공통으로 참여하는 인류최대의 식탁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생을 위해서 나누어주신 살과 피를 나누는 식탁일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죽음을 기억하며 주님께서 제정하신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는 이 성만찬의 의식에 참여함으로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며 예수의 종교인 것을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식에 참여함으로 생명을 나누어주시기 위한 주님의 고통을 마음속에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이 예식에 참여함으로 십자가 위에서 절규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에 참여함으로 더욱 구원의 확신 가운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구원사건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 예식에 참여함으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생명을 낳아주신 부모가 선한 뜻을 따라 올바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뻐하듯이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어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제 성도 여러분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거룩한 삶과 순결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 배 부 름

    우리의 기도와 찬송을 받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허물 많은 우리에게 오늘도 하늘의 자비와 한없는 사람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세상을 살 수 있게 허락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전에 나왔사오니
    영생과 진리의 길을 저희들에게 보여주옵소서. 
    하늘에서 들려오는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우리들이 드리는 찬양이 천사들의 소리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찬양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베풀어지는 성만찬에 참여함으로
    참다운 예수공동체를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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