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마 21:1-9) [고난주간]
  • 2013.08.16 10:36:08
  •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마태복음 21장 1절로 9절의 말씀가지고,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따라하시겠습니까?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살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나고 이 세상에 왔지만은 단 한 분 예수님은 죽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예수님의 생애를 다룬 사복음서의 전체 기록의 삼분지 일 가까이가 마지막 일주일간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가복음은 이 마지막 일주간을 한 삼분지 이의 내용으로 다루고 있어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3년 반을 지내셨는데 30년 준비하시고 3년 반 공생애를 사셨는데, 33년 반 지내시는 동안의 마지막 일주일에 그 모든 주님의 사역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기록을 남겨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 오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십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예수님을 찬양하고 겉옷을 펴서 깔고 종려나무가지를 흔들었습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이 고난 주간 첫 번째 날이 종려주일이고, 내일 월요일이 예수님께서 성전에 올라오셔서 성전을 청결하시고 장사하는 사람 다 내쫓으시고, 화요일 날은 유대교 지도자들과 많은 토론을 하시고, 수요일 날에는 하루 종일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시며 예수님 기도하시고 준비하시고, 목요일 날 마지막 만찬을 베푸시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남기시고, 그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시다가 한밤중에 가룟 유다가 이끌고 온 병사들에게 붙잡힙니다.

    그래서 붙잡혀서 제일 먼저 가야바 대제사장에게 갔다가, 그 다음 안나스 대제사장에게 갔다가, 잠을 자고 있는 빌라도에게 갔더니 빌라도가 자기가 처리할 사항이 아닌 것 같으니 헤롯에게 보내고, 헤롯왕이 예수님을 희롱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와서 재판을 받고 사형언도를 받은 시간이 금요일 아침 여섯시입니다. 밤새 시달리신 거예요. 금요일 날 아침 여섯시에 사형언도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골고다까지 올라가셔서 십자가에 달린 시간이 금요일 오전 아홉시. 그리고 운명하신 시간이 오후 세시입니다. 여섯 시간동안 온 몸에 피를 쏟으시며 고통가운데 주님 계시다가 십자가에서 오후 세시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한 주간 지나면서 이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면서 또 우리가 금식도 하며 주님, 내 남은 여생 주님을 위해 살기를 원합니다. 사랑의 고백이, 헌신의 결단이 주님 앞에 드려지게 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어떠한 예수님이십니까? 이천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호하며 맞이한 예수님은 어떠한 예수님이십니까?

    1. 겸손의 종 예수 그리스도

    첫째로 예수님은 겸손의 종이셨습니다. 겸손의 종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마태복음 21장 5절에,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구약 스가랴 선지자가 예수님이 겸손의 종으로 오실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일반 왕들이 성에 들어오는 것처럼 예수님이 들어오시지 않고 어린 나귀를 타고 예수님이 들어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왕이 어린 나귀를 타고 궁궐에 들어온 적이 없어요. 신하들이나 또 아니면 하인들이 나귀를 탔지 왕은 백마를 타고 호위 군사를 거느리고 나팔 소리가 울리는데 위풍당당하게 입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님은 가장 겸손하신 모습으로 낮아지신 모습으로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의 모습 그 자체이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주님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여러분, 겸손한 사람은 어떠한 문제도 어려움도 다 이기고 잘 감당하고 주님 앞에서 인정받고 복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교만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다 교만이라는 것이 그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요. 왜? 그 죄의 뿌리가 교만이기 때문에. “아 저는 절대 교만하지 않습니다.” 그게 바로 교만이에요. 누구나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고 자꾸 더 높아지려고 하고 더 많은 것을 움켜쥐려고 하고 이러한 교만한 모습으로 삽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들의 특징들이 자기 혼자 잘되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남은 옆에서 어려움을 당하든지 피해를 입든지 상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교만을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교만을 물리치시는 것입니다. 우리 삶 가운데 교만을 깨뜨려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없이 낮아지셨어요.

    빌립보서 2장 6절로 7절을 보니까,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아지셨어요. 그리고 이 땅에 오셔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접받기를 좋아하고 섬김 받기를 좋아하는데 주님은 그 반대의 삶을 사셨어요.

    마가복음 10장 45절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교훈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을 하시고 갑자기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대야를 가져와서 제자들의 발을 씻는 것입니다. 깜짝 놀랐어요. 당시 발을 씻는 것은 종들이 하는 일인데 자기의 스승님이 앞으로 왕이 되면 자기는 옆에서 한 자리 하려고 하는데, 아! 그 예수님이 자기 발을 씻으시니 다들 놀란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요한복음 13장 14절 15절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마지막 가르침이 섬김이에요. 섬김. 따라하세요. “섬김”섬김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이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일생동안 그 삶 가운데 갖춰야 될 신앙의 자세인 것입니다. “주여, 섬기며 살기 원합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이 땅에서는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며 살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세계 대학생선교회 CCC 창설자인 빌 브라이트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1996년에 기독교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기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한 분입니다. 목사님은 우리 한국을 매우 사랑하셨어요. 김종욱 목사님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여러 번 오셨는데 1966년 전북대학교에 와서 명예 교육학 박사를 받으셨습니다. 한참 한국 CCC가 발전하고 있을 때였는데 한국에 와서 그 CCC 스텝들하고 밤늦게까지 대화를 나누고 그들에게 큰 은혜와 감동을 끼쳐주셨어요. 이른 아침입니다. 간사가 그를 수행하는 미국인 간사가 빌 브라이트 목사님 그 하루 일정을 의논하려고 문을 두드리고 들어갔더니 숙소에 안 계세요. “어, 어디 가셨나?” 방마다 가 봐도 목사님 안 계신 거예요. 2층에 계셨는데 2충에 안 계시고, 아래층은 우리 한국의 스텝들인데, 거기도 안계시고. “어디 가셨나? 어디 가셨나?” 하고 현관에 나가보니까 이 빌 브라이트 목사님이 거기서 쭈그리고 앉으셔가지고 우리 한국 스텝들 구두를 닦고 계세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니까 이 빌 브라이트 목사님이 싱긋 웃으면서 “나는 이렇게 헌신되고 신실한 한국 간사들로부터 넘치는 감동을 받았다네. 그런 내 마음을 이렇게 구두를 닦아 주는 것으로 표현하고 싶었네.” 아, 얼마나 겸손하신 분입니까? 이 이야기가 알려졌을 때 모두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사셨어요. 섬기며 사셨어요. 자기에게 들어온 모든 수입을 주님을 위해 다 바치고 그는 이 세상을 떠날 때 겸손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남겨 놓고 세상을 떠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 떠날 때 무엇을 남기고 떠나겠습니까? 예수님 사랑하는 그 흔적을 남겨 놓고 가시기 바랍니다.

    센다이 지역 가보니까요. 특별히 ‘이시노마끼’라고 이번에 쓰나미가 15미터짜리가 몰려 들어온 지역이에요. 1.5킬로미터까지 마을 안으로 들어와서 다 휩쓸어갔습니다. 거기 주민이 없어요. 주민이 다 쓸려가서 세상을 떠났든지, 아니면 대피소에 가 있고요. 지금은 봉사자들 또 자위대가 와서 그 지역을 복구하고 있는데. 그 곳을 쭉 둘러보면서 참 우리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것을 알게 됐어요. 세계에서 세 번째로 잘사는 나라라고 하는 일본인데도 쓰나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어요.

    여러분, 우리 인간이 아무리 능력이 많고 가진 것이 많고 배운 것이 많고 좋은 환경에 산다고 할지라도 자기 생명하나 마음대로 못 해요. 그 좋은 바닷가에서 물이 쓸려 들어올 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을 나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의 삶을 살아야 돼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원합니다. 겸손과 온유와 섬김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을 사는 것이 나의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최선의 삶을 살아야 되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합니다. 겸손과 온유와 섬김의 삶을 살기 원합니다.

    어떤 분이 주일 날 교회를 빠져가지고 집에서 낮잠 자다가 심장마비가 오면 어떻게 할 거예요. 그럼 “너 뭐하다 왔냐?” “예배 빠지고 잠자다 왔어요.” 물론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겠지 만은 그렇게 살면 안돼요. 정말 우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오스왈드 샌더스 목사님이『평신도 사역의 선장을 위한 20가지 영적 원리』를 말씀했는데 그 책 가운데 저명한 스코틀랜드 설교자 제임스 스튜어트의 말이 인용되어있습니다. 이 제임스 스튜어트 목사님이 이렇게 말을 했어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하여 인간의 능력과 자신감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의 약함과 겸손을 선택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평범하고 무력하고 자격이 없을 정도로 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영하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평범하고 무력하고 약하기 때문에 사용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평범하고 무력하고 약하기 때문에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라서 우리가 가진 것이 많아서 우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기 때문에, 연약하기 때문에, 능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를 통하여 주님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고 연약한 어린 나귀가 예수님을 모시고 들어갔을 때 환영을 받을 것처럼 우리가 어린 나귀처럼 무능력하고 여러 가지로 경험도 부족하고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지만 우리 등에 예수님을 태우기만 하면 주님을 통하여서 우리가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절대로 고개를 들면 안 된다고. 왜요? 예수님 때문에 영광을 받고 대접을 받는 것인데 고개를 들으면 그 뒤에 베드로가 따라오다가“어! 이 나귀가 정신 나갔나?”하고 탁! 등짝을 때려가지고 놀랠 것입니다. 성경에 없는 말이지만 그렇게 생각을 제가 한다 그 말이에요.

    여러분, 여러분 등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기 바랍니다. 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내 등위에 계십니다. 할렐루야. 이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2.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

    둘째로 구원의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 드리기 원합니다.

    저들이 다 주님을 환영할 때 21장 8절, 9절 보니까,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저들이 큰 소리로 외친 것입니다.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9절 보세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호산나라고 하는 말은‘주여, 구원하소서.’ 그런 말입니다. ‘구원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메시아시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저들은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줄 예수님을 바라보았어요. “우리를 이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정치적인 목적을 갖고 오신 분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천사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심으로 단번에 영원히 우리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우린 구원받고 저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 센다이 지역을 지나가는데 후쿠시마 옆을 지나갔어요. 그 쪽 지나가지 말라고 했는데 후쿠시마 옆을 (지나갔어요). 후쿠시마 이번에 원전 방사능 유출로 인해서 피해가 많잖아요. 체르노빌과 같은 그러한 그 피해가 예상된다고 하잖아요. 체르노빌에서 죽은 사람이 86년부터 지금까지 30만에서 60만이 죽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방사능으로 인해서 피해가 컸다고 하지만 방사능보다 무서운 것이 죄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매스컴이 앞서가는 것 같아요. 일본에서는 비가와도 눈 하나 깜짝 안하는데 우리는 비 온다고 학교까지 다 쉬었잖아요. 제가 갔을 때 비가 많이 왔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거기도 학교 있는데 학교 하나도 안 쉬더라고요. 정작 일본은 학교도 하나 안 쉬는데 우리나라는 150 몇 개 학교가 문 닫았잖아요.

    이게 참, 여러분, 우리가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긍정적으로 나가야 되요. 문제가 오기 전에 문제가 있다, 있다, 하면 내 마음 속에 문제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 우리의 죄에요. 죄, 죄. 이 죄사함을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와 죽음에서 벗어날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그런데 우리 인류의 죄를 사하기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에요.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할렐루야.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고 우리는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죄 사함을 받아요.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십자가의 복음이 위대한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바로 우리에게 주시는 유일한 구원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유일한 치료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유일한 축복의 복음인 것입니다. 십자가외에 다른 어떠한 구원의 길이 없어요. 십자가 외에 다른 축복의 길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게 되는 은혜 가운데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 언제나 부르짖어야 합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나를 구원하여 주옵소서. 구세주 되신 예수님, 메시아 되신 예수님, 나에게로 오시옵소서.”

    메시아라고 하는 말은 히브리말이고 헬라말로‘크리스토스’, 그리스도인데, 그 뜻은 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 구약시대에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 기름부음 받았는데 우리가 예수 믿고 나면 우리가 주님 은혜 가운데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구세주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으로 오시옵소서. 내 삶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3. 영원히 섬김을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

    마지막 세 번째로 우리가 믿고 섬기는 예수님은 영원히 섬김을 받으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겸손의 종, 구원의 종을 우리가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영원히 섬겨야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물질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세상 인기, 명예를 섬기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것은 다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허무하게 무너져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행복이요, 그것이 기쁨이요, 그것이 축복이요, 그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어요.

    마태복음 21장 2절에 보니까,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며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왜 나귀 새끼를 타셨을까? 아직 무거운 짐을 져본 일이 없고, 경험이 없는 어린 나귀인데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서는 그렇게 순수해져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모습, 정결한 모습으로 주님을 섬길 때 주님이 기뻐하시고 우리 삶 가운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모시고 살기만 하면 주님이 여러분의 길을 인도해 주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비록 경험이 없어 뒤뚱 뒤뚱 여러분이 잘 하지 못하지만 주님이 여러분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시고, 여러분에게 은혜를 내려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평안함을 주셔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제부터 내가 어린 나귀처럼 겸손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살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이 어린 나귀를 가져오려고 할 때 주인이 막았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러면 “주님이 쓰신다고 말을 해라.” 그랬더니 주인이 주님이 쓰신다면 “가져가세요.”

    누가복음 19장 34절 35절에,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그랬습니다. 주님이 쓰신다고 하면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우리가 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간도, 우리의 정성도, 우리의 재능도, 우리의 물질도, 우리의 건강도, 내 생명까지라도 주님이 쓰신다면 주님 받으시옵소서.

    아브라함이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어요. 왜. 백세 때 아들을 얻었잖아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 눈만 뜨면 이삭아! 이삭아! 이삭을 찾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어느 날 “아브라함아, 내가 네게 준 독자 이삭을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에 가서 제물로 바쳐라.” “아이 내가 뭐 잘못 들었나?” 그러나 아브라함은 망설이지 않았어요. 이른 아침 일어나서 이삭을 데리고 나무 단을 쌓아서 하인들과 같이 모리아 땅으로 간 것입니다. 가서, 산에 올라가서 아들을 묶고 칼을 들은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멈추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거기 이미 제물을 예비해 놓았다가 대신 제사 드리게 하시고 그에게 복을 내려주신 것입니다. 순종이 그에게 큰 축복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16절로 18절에, 이르시되 야훼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나님은 주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세요. 자꾸 따지는 은사가 있는 사람이 있어요. 이것도 따지고, 저것도 따지고. 따지다 보면 자꾸 비판하게 되요. 이것도 비판하고, 저것도 비판하고. 비판하다 보면 또 불평하게 되요. 부정적으로 말하게 되요.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멀어지는 거예요.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주님께 나가는 생활입니다. 믿고 깨닫는 것이지, 깨닫고 믿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머리로 예수를 믿으려고 하면 안 되요. 우리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그 다음에 주님이 주신 은혜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쓰임받기 위해서 “하나님 아버지, 순종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뭐라 말씀하시던지 내가 그대로 순종하겠습니다. 주의 말씀을 순종하고 주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하셨어요. 죽기까지. 보세요.

    빌립보서 2장 8절로 12절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레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바로 여기가 이 말씀의 바로 핵심 되는 말씀입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여러분이 주님 앞에 순종할 때에 여러분의 생각을 떠나서, 여러분의 계획을 떠나서, 주님의 뜻이라고 하면 무조건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예요.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이 있는데요. 이분은『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책을 썼는데 이분의 전기에 대해서『순종의 길』이라고 하는 책이 나왔어요. 그런데 이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의 일생의 목표가 뭐냐! 최상의 하나님께 최선의 것을 드립니다. 내가 가진 것의 가장 귀한 것, 최고의 것을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1874년 스코틀랜드의 애딘버 라는 곳에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심대에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어요. 그리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런던에 성경 대학을 세우기도 했는데 그의 삶에 변화가 다가온 것은 1901년 그러니까 27세 때 성령 체험을 합니다. 성령의 은혜가 임했어요. 그래서 이제 내 남은 인생 주님 위해 살기 원합니다. 내가 가진 것의 가장 좋은 것, 가장 최고의 것을 주님께 드리기 원합니다.

    그런데 제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니까 그는 YMCA의 소속 군목으로, 소속 목사로 전선에 나갑니다. 1915년 이집트에 가서 호주와 뉴질랜드 군대들을 위해서 사역을 하는데 이 분은 기록을 보면 매일 같이 새벽기도를 빠진 적이 없어요. 늘 새벽에 제일 먼저 일어나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은혜 갖고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군인들에게 나갑니다. 전쟁터에서 피투성이가 돼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합니다.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줍니다. 이분의 손길을 통해서 수천 명의 군인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왔어요.

    그가 세상을 떠났던 해에 남긴 글이 있습니다. “가끔 저는 제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이미 겪어왔거나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제 말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걱정합니다.” 그들은 어쩌면 “어떻게 그가 이러한 고통을 다 알 수 있겠어?” 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것은, 주께서는 사람이 겪는 그 어떠한 힘든 상황도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어떠한 힘든 상황도 능히 해결하시고도 남는 분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전선을 뛰어다니면서 다친 사람을 돌보고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던 그가 맹장염으로 맹장이 파열돼서 수술을 받았는데 그런데 이것이 후유증이 와서 1917년, 43세를 일기로 천국에 갑니다.

    그의 장례식에 수많은 군인들이 와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런데요, 그때 네 살 난 캐서린, 딸이 네 살이었는데 아빠의 죽음을 잘 몰라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 우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했어요. “아빠는 언제나 예수님 곁에 계세요. 아빠는 언제나 예수님 곁에 계세요.”

    여러분, 언제나 예수님 곁에 계시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예수님과 동행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 순간도 예수님과 함께 하면 우린 저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이 이 세상을 떠난 지 백년 가까이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그분의 책이 많이 읽기고 있고, 미국에서 60년 동안이나 베스트셀러로 이 책이 읽혀졌고, 미국 크리스천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어요. 앞으로 100년 후에 책꽂이에 꽂혀있을 책, 세권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그 중에 한 권이 바로 이『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이 책이 뽑혔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시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우리가 결단하고 순종하고 헌신할 때 우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그렇게 쓰임받기 원합니다. 나의 가진 최선의 것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기 원합니다. 주님께 영광 돌리기 원합니다. 나의 일생을 받아주시옵소서. 나의 남은 삶 전체를 드리오니 주님, 기뻐 받아주옵소서. 나의 생명까지라도 우리 주님이 원하신다면 기쁨으로 드리기 원하오니 나를 받아 주옵소서.

    이와 같은 순종과 헌신과 결단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댓글 0 ...

분류  제목  등록일 
고난주간 2013.08.19
고난주간 2013.08.18
고난주간 2013.08.18
고난주간 2013.08.18
고난주간 2013.08.18
고난주간 2013.08.18
고난주간 2013.08.16
고난주간 2013.08.16
고난주간 2013.08.16
고난주간 2013.08.16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