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을 무르익게(벧전 4:12-19) [고난주간]
  • 2013.08.18 17:19:10
  • 오늘은 종려주일이자 고난주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당하신 성금요일을 정점으로 부활의 아침이 밝아오는 것입니다. 부활주일에 앞서 고난주일과 고난주간을 통해서 예수님의 고난의 의미를 살피고 그 고난이 가져온 승리의 아침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위해 이 땅에 33년 동안 머무신 것입니다. 영광의 하늘 보좌를 떠나셔서 그가 이 땅에 머무신 33년은 고난의 시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자마자 바로 십자가를 지시고 그리고 부활하시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완성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33년이나 기다리셨을까? 예수님께서 20세쯤 되셨을 때 공생애를 시작하시어 십자가를 지실 수도 있었을 텐데 왜 30년을 기다리셨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린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시기도 좀더 일찍 오실 수도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이미 그 시기를 정해 놓으셨고, 그 때에 맞추어 오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오셔서도 자기의 때를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가 30세가 되셨을 때에 드디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던 것입니다.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 막 1:15

     

      때가 찰 때까지 예수님은 기다리신 것입니다. 고난의 시기가 짧을수록 좋지만, 그러나 충분하게 그 고난의 때가 찰 때까지는 기다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급하게 행동하시지 않고 차분히 그 고난을 받아드리며 그 고난을 무르익게 하였으며, 충분하게 고난을 체험하셨던 것입니다. 그는 고난을 피하려 하시지 않고 고난을 정면으로 받아드리며 그 고난을 완전하게 소화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주어진 고난의 과정을 대충대충 지나가신 것이 아니라 충실하게 그 고난을 거쳐서 마침내 십자가에까지 나가신 것입니다. 그에게 주어진 이 고난의 사명은 단 한번 주어진 기회이기에 조금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서둘러서도 안되며, 대충 적당하게 지나가도 안 되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시험을 하였지만, 어찌 보면, 예수님의 생애 전체가 시험을 통과하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잠시라도 방심하면 잘못되기 쉽고 조금만 적당히 넘어가려 하면 결국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정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은 바로 그가 이 땅에 계셨던 33년의 시간이 대단히 힘들고 어려운 시험의 과정이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을 꼼꼼히 거치고 거기에 깃들인 모든 시험과 시련의 과정을 잘 통과하여 완수하신 것을 뜻하는 말이 바로 "다 이루었다"는 외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런 성실하고 확실한 고난의 여정은 완벽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하나님을 만족케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통해 만물의 죗값을 완전히 다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은 충분히 무르익었고, 그것은 모든 피조물의 죄를 대속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고난을 인내하라

      현대인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고난을 견뎌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삶을 깊이 있게 반성하고 우리의 영혼을 정화하는 힘이 있는 것인데, 현대인들은 그 고난을 쓸데없는 것, 재수가 없어서 닥쳐온 것, 그래서 어찌 하든지 빨리 벗어나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병이 걸렸을 때도 현대인들은 그 병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차분하게 생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기보다는 주사와 온갖 약이란 약은 다 동원하여 그 병에서 벗어나는 일에만 열심인 것입니다. 저는 이번 겨울에는 감기가 세 번이나 걸렸습니다만, 일단 감기가 걸리면 감잎차를 끓여 놓고 계속 마시면서 감기가 깊어지기를 기다립니다. 감기가 무르익어야 그 감기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그때까지 기다리며 쉬는 것입니다. 감기는 여러 가지로 장애를 가져오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 일주일 지내면서 나 자신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종기가 났을 때 서둘러 짜면 덧나기 쉽지만, 완전히 곪을 때까지 아픔을 참고 기다린 끝에라야 그 뿌리가 빠지면서 치료가 가능한 것입니다. 김치가 무르익어야 제 맛이 나듯이 고난도 무르익어야 그 꼭지가 떨어지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경제적 시련이 닥치자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빨리 벗어날 것인가라는 사실만을 골똘히 생각하고 바라는 것입니다. 이 시련이 왜 왔으며, 기왕에 닥친 시련인데, 이를 통해서 우리 자신들의 삶의 태도를 어떻게 바꾸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상 우리에게 닥친 시련은 지난날의 경제성장의 문제점을 돌아보게 하고 지나치게 방만해진 우리의 살림살이를 반성하게 하는 좋은 계기였음에 틀림 없습니다. 그래서 IMF 초기에 사람들은 바짝 긴장하고 허리띠를 졸라매는 듯 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또다시 전과 같이 정신 상태가 해이해지고 살림살이도 전의 상태로 되돌아가 버린 것 같습니다. 다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만 큰 고난의 짐을 짊어지게 되었을 뿐입니다.

      오늘 읽어드린 베드로전서 말씀에 보면,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사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여러분이 기뻐 뛰면서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4:12-13

    라고 하였습니다. 시련이 다가올 때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난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늘 있을 수 있는 삶의 과정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왔다고 놀라지 말고 차분히 생각하면서 오히려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기에 기뻐할 일이지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믿는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만, 믿건 안 믿건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고난은 '이상한 일'이 아닌 일상적인 것이며, 따라서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고, 깊이 생각하면서 그 고난의 의미를 새길 때 그 고난 속에는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큰 교훈이 있으며, 유익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 피하려고 전전긍긍할 것이 아니라 인내하면서 그 고난을 충분히 받아드리고 통과하는 지혜를 발휘하여야 할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가 만나려고 한다고 만나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어지는 것이기에 그 고난이 닥쳐왔을 때 자신을 돌아보며 새롭게 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그 고난을 정면으로 맞아들이면서 통과해 갈 때 거기에는 반드시 고난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은총이 있는 것입니다.


      욥의 고난을 생각하라

      우리는 고난을 이야기할 때 구약성경에 나타난 욥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몰려온 고난의 파도로 인하여 격랑에 휩쓸리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자녀들이 모두 죽고, 가진 재산들이 모두 없어지고 자기 몸에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종기가 나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 속에 빠지게 되자 사랑하던 아내가 그를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이 찾아와 욥과 더불어 고난의 문제를 놓고 논쟁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고난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친구들의 말은 어쩌면 욥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온 말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는 긴긴 내면의 갈등을 겪으면서 그 고난의 온갖 의미를 새기고, 고난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원하지 않았지만 주어진 고난 속에서 욥은 인생의 깊은 내면과 더불어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통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무렵에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생각을 넓혀 주시고 보다 넓은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욥은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주께서는 못하시는 일이 없으시다 는 것을,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주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저는 깨달았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주님의 뜻을 흐려 놓으려 한 자가 바로 저입니다. 깨닫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을 하였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너무나 신기한 일들이었습니다." 욥 42:2-3

    그러면서 유명한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욥 42:5

      욥은 고난의 시기에 깊은 사색과 갈등과 번민을 통과하면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는 직접 눈으로 뵈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고난이 아니었으면 이룰 수 없는 놀라운 변화를 이룩했던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한결 깊어지고 그의 신앙은 한결 높아진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시편도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이 시인은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과하면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난을 당한 것이, 내게는 오히려 유익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난 때문에, 나는 주의 율례를 배웠습니다." 시 119:71

      이들의 한결같은 증언은 "고난은 유익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고난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은 아무 유익이 없지만, 고난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거기에 마련하신 놀라운 은총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길을 피하여 가는 자들은 그 고난의 길에 묻혀 있는 보배를 결코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피하여 갈 길이 아니라 인내와 용기로 돌파해 가야 할 길인 것입니다. 그 고난의 길에 들어서서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구석구석을 살피면 의외로 많은 보배가 그 길에 묻혀 있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유익한 것이다

      그러면 그 고난의 길에 묻힌 유익함이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유익함이 거기에 있습니다. 시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내가 고난 당할 때에, 나는 주님을 찾았습니다. 밤새도록 두 손 치켜들고 기도를 올리면서, 내 마음은 위로를 받기조차 마다하였습니다." 시77:2

    "주님은 나에게 응답해 주실 분이시기에, 제가 고난을 당할 때마다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시86:7

    "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나에게 응답하여 주시고, 주께서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다." 시118:5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게 하는 유익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되어가기에 특별히 기도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고, 결국 그는 교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은 사람들을 그 교만함에서 끌어내려 겸손하게 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무릎 꿇어 부르짖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고난은 소원(疏遠)하였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민족에게 주시는 고난도 이 민족으로 하여금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하시기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당한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우리는 그의 구원의 은총을 받아 이 땅에 평화를 이룩하며,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게 될 것입니다.

      고난 당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들으시고 고난 당하는 자와 함께 하시며, 그 고난에서 건져 더 좋은 은총의 세계롤 인도하여 가실 것입니다.

      둘째로, 고난의 유익함은 하나님의 계명과 그 말씀을 깨닫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시편 119편의 말씀이 바로 그것을 지시합니다. 고난 당한 것이 유익함이 된 것은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율례를 알게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뵈옵게 된 것처럼, 고난은 우리의 신앙을 깊게 만들어주며,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게 하며, 그의 이루는 구원의 은총을 깨닫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의 약속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려야 하는 시련을 통과하면서 그는 "여호와 이레" 즉 준비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니 아브라함은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사랑과 그 약속과 그 구원의 경륜을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련은 아프지만, 잘만 통과하면 폭 넓은 하나님의 은총의 세계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고난의 유익은 우리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될 때 우리는 그 고난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며, 그래서 마침내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롬 8:17)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이 왔을 때 그것이 나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고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여 그 고난의 깊이와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우리는 부활의 영광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고난은 어떻게 보면 필수적인 것이기에 고난이 임할 때 기쁨으로 맞아 그 고난을 끝까지 통과해 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고난의 끝에서 그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의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고난은 유익한 것이므로, 고난을 피하여 갈 것이 아니라 고난을 무르익게 하여 고난 끝에 오는 영광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끝까지 고난의 길을 인내함으로 걸어가신 것처럼 오늘 우리에게 당한 고난을 인내함으로 걸으며,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며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고난 당할 때에 낙심하는 대신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으면서 멀리 하였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당할 때 저주하고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함과 기쁨으로 그 고난을 자기 변화의 계기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33년 동안 고난을 무르익게 하여 완전하게 그 고난을 통하여 죽음을 정복하신 것처럼, 여러분에게 고난이 다가올 때 그것을 은총의 기회로 생각하면서 차분차분히 그 고난 속에 숨겨진 은총의 보배를 찾아내면서 동시에 그 고난을 통해 더 강해지고 더 큰 확신과 소망을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성급하게 고난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따라 이리저리 뛰는 대신에 조용히 그리스도의 고난을 명상하면서 그 고난이 가져올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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