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개의 십자가(눅 23:32-43) [고난주간]
  • 2013.09.02 08:51:45
  •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 
    다음 주간은 무슨 주간입니까? (고난 주간) 
    우리 교회는 고난 주간마다 특별히 무슨 행사를 했었습니까? (한끼씩 금식하며 기도했고 금식미는 구제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사순절이나 고난 주간에 우리는 숙연한 자세로 믿음을 점검 해 보아야 하겠는데 꼭 이기간 만이라도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새벽 작정 기도와 금요 철야기도 입니다. 또 말씀을 많이 묵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몇 개의 십자가가 있었습니까? (3개) 못박히신 장소는? (해골이라는 곳) 해골은 "The place of skull" 이란 곳으로 "해골 곳"이며 Golgotha란 말도 같은 뜻으로 히브리어 입니다. 물론 갈보리도 같은 뜻으로 라틴어이며 헬라어로는 Kranion 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써 우리를 대신하여 이곳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마치 지형이 해골처럼 생긴 그 골고다 언덕에서 양쪽의 두강도 사이에서 인류의 모든 죄짐을 홀로 지시고 모진 고통을 참으셨던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 장면을 묘사한 그림을 보신적 있습니까? 갈보리 산 언덕에 세워진 세 개의 십자가는 높이가 똑같았습니까? 분명히 다릅니다. 
    양쪽 십자가 보다 가운데에 십작가는 더 높았습니다. 대적자들은 예수님을 보란 듯이 높이 매달아 광고 하려고 했지만 사실은 영적인 큰 의미가 있습니다. 양쪽의 두강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윤리와 법도에 미달해서 죽은 사람들인 것이요, 가운데 예수님이 못박히신 높은 십자가는 보통 인간의 윤리나 법도보다 더 높아서 인간들이 시기하여 죽인 십자가 입니다. 
    다음주일은 주님께서 그 모진 고난을 당하신 고난 주간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그 대속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복음적인 의미에서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세 개의 십자가의 의미를 생각하여 보아야 하겠습니다. 

    1. 한 개는 가장 불쌍한 사람의 십자가입니다. 

    두 강도중 한사람은 세상의 윤리와 사회 질서를 무시한 채 자신의 양심과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나는 온갖 죄를 자행하다가 국법에 의하여 사형을 집행 당했는데 죽으면서도 마음이 완악하여 뉘우치거나 회개할 생각을 하지 않고 끝까지 발악하며 공연한 예수님까지 비방, 조롱하다 죽었습니다. 본문 39절에 보면 "달린 행악자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고 하면서 조롱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상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자신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미친 사람이 왜 불쌍합니까? 자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미친 줄 아는 사람은 사실 미치지 않은 사람입니다. 또 누가 바보입니까?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암병으로 죽어 가는 사람이 자식걱정 마누라 걱정만 하고 있으니 곁에서 지켜보던 부인 이 오열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비극적인 것은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의 허물이 사회에 무서운 공적이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대수롭게 생각하기에 죄에서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이 한 강도는 목이 곧고 완악하여 끝까지 자기가 저지른 죄를 회개할 줄 몰랐기에 가장 불쌍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그 강도는 육신의 생명만 비참하게 죽었을 뿐 아니라 영혼까지 멸망 받고 영원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지옥의 안방 손님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2. 다른 한 개의 주인공은 죄를 회개하여 구원받은 십자가 입니다. 

    다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 하느냐" 하고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강도는 자기 잘못을 뉘우치며 진정으로 회개한 태도가 있음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요나는 풍랑을 만났을 때 " 이 풍랑은 나 때문이니 나를 바다에 던지라"고 하며 회개할 때 풍랑이 잔잔해 졌습니다. 그 결과 자기도 살고 다른 사람들도 구원했던 것입니다. 자기 죄를 뉘우친 이 강도는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그는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하고 의탁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흔쾌히 응답해 주셨습니다. 분명히 이 행악자는 구원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에수님이 거짓말 하실 리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달라기3:6 민23:19절 참조) 우리는 여기서 복음의 능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죄를 생각하며 구원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강도는 부끄러운 구원이나마 지옥행은 면하고 구원받았습니다. 지금 우리도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용서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 시간도 예수님은 죄인들이 회개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하시려고 안타깝게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가운데 높이 세워진 십자가는 남의 죄를 위하여 죽은 구원의 십자가 입니다. 

    가운데 우뚝 세워진 십자가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로서 자기의 죄 때문이 아니라 남의 죄를 대신지시고 죽임을 당하신 십자가 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십자가이며, 기독교의 영원한 표상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나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외쳤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한몸에 지고 가신 구세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숭고하신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던 순간 인류 역사 아래 막혔던 죄의 담이 무너졌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게 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예수님 만이 구원의 길이요 영원한 진리요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갈보리 산언덕에 유난히 우뚝 세워진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어야 합니다. 불쌍한 십자가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구원과 멸망은 백지 한 장 차이도 안됩니다. 고개를 아래서 위로 쳐들기 보다 더 쉽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한 강도처럼 끝까지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고집하면 지옥이요 다른 강도처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고난 주간을 앞두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보다 깊은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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