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주님을 만나러 갑시다! (막16:1-8)
  • 조회 수: 109, 2021.12.13 10:05:29


  •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사신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성도 여러분과 가정 위에 예수부활의 새 생명 축복이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생활도 어렵고 일을 많이 해서 손마디도 굵고 늙으셨지만 얼굴만큼은 늘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하루는 할머니에게 어떤 사람이 "할머니, 무슨 좋은 일이 그렇게 많으시기에 늘 싱글벙글하십니까?" 묻자 할머니는 "예, 이 나이에 어찌 항상 좋은 일만 생기겠습니까? 그러나 내게는 행복을 지키는 한 가지 비결이 있답니다. 나는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속삭인답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사흘만 기다리자! 믿음으로 삼일만 참고 견디자! 그러면 좋은 일이 일어날거야...' 그러면 내 마음이 주님의 은혜로 한결 평안해 진답니다." 이 삼 일의 축복이 여러분에게도 일어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종으로써 우리의 죄 값을 치러 구속의 근거를 마련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시고 장사 된지 사흘이 지난 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의 증언을 통하여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을 따르던 12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자신을 보이지 않으시고 막달라 마리아 같은 여인들에게 자신을 제일 먼저 나타내셨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떤 분이 좀 유머스런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야 여자들의 입이 싸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남자들은 여인들을 이렇게 볼지 모르겠으나 우리 예수님은 열심 있고, 헌신적인 여인들을 높이 사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은 자들이라 예수님의 죽으심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까지 예수님을 쫓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운명하시던 날 저녁은 안식일이자 유월절의 시작이었습니다. 안식일에는 시체를 가까이 할 수 없는 당시의 율법적 관례를 쫓아 그들은 잠시 예수님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이 끝나고, 다음날 새벽 미명에..... 이것은 아직도 어둑어둑할 때라는 것입니다. 이 새벽미명에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아침 먹기를 기다리지 않고, 해 뜨기를 기다리지 않고..... 이는 그 여인들이 얼마나 이때를 간절히 기다렸는지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여인들이기에 예수님은 제일 먼저 자신의 부활을 그들에게 알려주신 것이라고 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로 주님을 위한 헌신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안식일을 지낸 여인들이 새벽같이 주님의 시신에 바를 향품을 준비하고 주님이 장사된 무덤을 찾았습니다. 이 향품은 시체 썩는 냄새를 중화시키는 일종의 방부제입니다. 이들은 금요일 해진 다음부터 시작된 안식일이 토요일 해가 지기 전 까지이므로 토요일 해가 진 다음 향기가 나는 기름 같은 이 향료를 어렵게 구입하였을 것입니다. 비록 장사된 후에라도 향유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 향품을 준비한 것입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이미 무덤에 들어가 버렸기에 꼭 향품을 바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 받은 여인들은 그대로 예수님을 보낼 수 없었기에 어렵게 밤길을 재촉해 향품을 구입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여인들의 사랑과 그 분을 섬기려는 정성스런 헌신은 참으로 배울 만하고 칭찬할 만한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고난당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위해 무엇으로 드리겠습니까? 이들은 참 믿음은 아직 없었겠지요. 그들이 우리처럼 부활을 알겠습니까? 단지 의리로 그리 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 그의 죽음이라도 우리가 최선을 다해 보살펴드리는 것이 의리가 아니겠나....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의리만도 못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오늘 부활절 감사헌금을 정성껏 잘 드립시다. 우리가 무엇을 받을지에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드립시다. 그리고 이제 부활의 소망을 가지게 되었는데 우리도 산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삶은 잠시이고, 우리가 부활해서 살아갈 삶은 무한 영생입니다. 그러니 이 땅 것 아끼지 말고 주님께 드리는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의리보다도 더 강한 헌신을 드립시다. 이것이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주님을 정말 사랑한다면 먼저 말씀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안식일 다음날 시신에 바를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가면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합니다. 당시 무덤 문을 닫아 놓은 문을 굴리기 위해 장정 3-4명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가면서 자기들의 힘으로 무덤 문을 굴릴 수 없기에 걱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또 그분의 일에 헌신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은 귓등으로 들어흘리고  전혀 부활은 생각도 못하고 우선 눈앞에 놓인 무덤문을 어떻게 열 것인가를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장애물입니다. 주의 말씀, 주의 약속 중에는 도저히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많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 보기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도마 같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옛날 예화 하나가 생각납니다. 교회 앞에 술집이 생겼습니다. 밤마다 술집에서 요란한 음악소리가 예배를 방해합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술집이 망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 못가서 잘되던 술집이 망했죠. 그러자 술집 주인이 목사님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한 것입니다. 목사가 기도해서 술집이 망했으니 보상하라는 것입니다. 목사가 재판정에서 증언합니다. 기도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 아니라 합니다. 판사가 술집 주인의 믿음이 목사보다 더 좋으니 둘이 서로 직업을 바꾸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받으시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그가 도덕적으로 의롭다 하거나, 박애주의 자여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십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신 말씀처럼 주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그 말씀이 진리인줄 믿고 하나도 빠짐없이 성취될 것을 의심치 않을 때 이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믿습니다. 

    셋째로, 우리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찾는 여인들에게 무덤 속에 있던 천사가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여인들이 무덤에서 찾는 예수님이 살아 나셨고 거기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으며, 따라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려는 사람들은 결코 주님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 인도에서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노방전도를 하고 있는데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것 하나를 가지고 있소” 그래서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이슬람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메카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들어있는 무덤이 있어서 우리는 정말 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당신네들은 예루살렘에 가도 빈 무덤 밖에 볼 수 없지 않소?” 이 말에 스탠리 존스 선교사는 “바로 그것이 당신네 이슬람교와 우리 기독교의 다른 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에 무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세상에서 성인이라고 부르는 공자나 석가나 플라톤이나 모하메드는 모두 죽었고 장사한 무덤이 있기에 죽은 자 가운데서 찾아야 하지만, 예수님만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기에 죽은 자 가운데서 찾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뭔가를 신성시해서 썩어질 것, 없어질 것으로 신을 표현합니다. 거기다가 죽은 성인들까지 찾아가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위대함이며 다른 종교와 다른 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죽은 가운데서 찾지 말고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기 원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 교제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신령한 부활체로 부활하여 영원한 영생의 복을 받아 영생의 복락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부활을 맞아 우리 모든 성도들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 물을 때 아멘으로 자신 있게 화답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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