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을 만나면 모든것이 바꾸어 집니다(요20:19~31)
  • 조회 수: 251, 2013.06.22 21:34:07
  • 저와 여러분은 세상적으로 볼 때 큰 재벌도 아니고 크게 출세하여 유명한 사람이 된것도 아니고 큰 권력을 가진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서 세상적 기준으로 보면 보잘것없은 사람으로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해도 구원의 은혜받은 우리는 큰 복을 받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다는 것 자체가 은혜요 축복입니다. 아무리 믿을려고 해도 안믿어지면 어쩔수 없는 거예요.
     

    구원받은 사람은 3가지가 믿어집니다. 

    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함 받았다는 사실이 믿어집니다. 조상이 지은 죄, 또 내가 스스로 지은 죄가 많습니다. 이 죄값을 예수님이 대신 지불하신 거예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2000년전 사건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 2000년전 예수님의 십자가가 어떻게 나의 죄를 씻어 주실수가 있나? 이성과 논리로 보면 당연히 안믿어지는게 정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이 믿어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나를 용서해 주심이 믿어지십니까? 이 말씀에 아멘 할 수 있다면 나는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② 구원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이 믿어집니다. 완전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는 사실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애써 부정할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럴듯한 이론을 꾸며냅니다. ‘사실 부활한게 아니라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은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예수님이 살아계실때 미리 「내가 죽게되며 또 사흘만에 살아나리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을 군인들로 하여금 철통같이 지키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시체를 훔쳐 갈만한 용기있는 제자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자 다 겁이나서 도망하던 제자들이었습니다. 가장 용감하던, 주님을 위해 죽겠다던 베드로도 작은 계집종 앞에서까지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필요할 때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죽으면서까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자들을 보면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나고 그 예수님을 증거할 때에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순교하면서까지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어떤 지시나 명령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하였기에 이들은 죽기까지 이 사실을 증거한 것입니다.
     
    아무리해도 예수님의 부활이 믿기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죽으신게 아니라 기절하신 것이다」→예수님의 죽음은 확인된 죽음이었음. 「너무도 마음에 그리다 보니 다시 사신 예수님을 본것이 아니라 환상을 본 것이다」→여러 차례 그것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똑같은 환상을 볼 수 있는지. 「아니다 무덤을 잘 못 찾아 갔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상상을 해 보고 이론을 펴 보지만 다 부질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살아 나셨다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③ 구원받은 사람은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할 것이라는 사실이 믿어집니다. 어떻게 땅에 묻혀 썩은 몸이 다시 부활할 수 있나? 어떻게 화장하여 가루가 된 사람이 다시 형체를 이룰수 있나? 상식으로,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육신의 일도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흰 쌀밥을 먹는데 우리 피는 왜 빨갛나? 어떻게 검은 머리가 나오나? 지구가 돈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인데 실제로 지구가 돈다는 사실이, 땅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느껴지나요? 죽은듯 보이는 번데기가 때가 되면 껍질을 깨고 나비가 되어 푸른 하늘을 나는 신비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육신의 일도 그리하거니와 영의 일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나의 한정된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영적세계에는 엄청나게 많은거예요.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먼저 부활하신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나도 죽더라도 다시 살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도 부활할 것이 믿어지면 나는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부활주일을 기념하며, 먼 과거의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오늘도 살아계신 주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을 만나는 체험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살아계신 주님을 심령 깊은 곳에서 만날 때 삶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에도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열명이 넘는 장정들이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있을만큼 그들은 두려워 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닐때는 겁날게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있는 말씀을 들으며 에수님의 기적을 보고 「야 이런 사람이 우리 왕이 되어서 로마를 처부수고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분이다」 싶어서 많은 군중들이 환호할 때는 제자들도 기세가 등등하였습니다. 그렇게도 믿었던 예수님이 처참하게 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맥이 빠져버린 거예요. 절망과 낙심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도 저렇게 비참하게 죽이는데 제자인 우리인들 가만 두겠느냐?」두려워 한 거예요. 그럴때 다시 사신 주님이 찾아 오셔서 “샬롬/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나는 유령이 아니다. 내손을 보라. 내 옆구리를 보라” 하십니다. 그래도 제자들이 의심을 하자 ”너희에게 무슨 먹을것이 있는냐? 가지고 와 보라”며 제자들 앞에서 잡수시기 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소명을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것 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21절). 그러면서 “성령을 받으라”며 영적무장을 시키는데 주님 만나고 주의 음성을 들은 제자들이 담대해 집니다.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있던 제자들이 새힘을 얻게 됩니다. 모든 두려움과 공포가 물러가버린 것입니다.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 이전에 생각하지 못하던 것, 이전에 갖지 못하던 것 갖고 담대해진 것입니다.

    길지않은 인생살이 인데도 걱정할 일 많고 염려할 일 많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앞날이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긴 터널이 언제까지 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기성세대 뿐만이 아니라 겁없이 인생을 살것같은 젊은이들에게 제일 큰 문제가 뭔지 아십니까? 두려움입니다. 장래문제에 대해 마음속에 은근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취직을 해야 하는데 어떤 직장을 알아보아야 하나? 갖가지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 하고 두려워하며 삽니다. 기성세대는 더해서 지금까지 몸바쳐 일하던 직장에서 언제까지 버틸수 있을지? 직장을 잃고나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앞날에 대한 걱정, 남편에 대한 걱정, 자식걱정, 돈걱정,건강걱정 … 끝이 없습니다.
     
    한 해 동안 우리나라가 건강식품을 수입하는데 쓴 돈이 1조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DHEA’란 약은 불로장생한다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미국에서 파는 소매가보다 15배나 높게 파는 바가지 요금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사먹어요. 무엇을 의미합니까? 마음에 두려움이 있는 거예요.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몸이 약해서 내가 하던일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나?」. 너무 염려하지 맙시다. 발버둥 친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진시황제는 어떻게 하면 안늙고 오래 살까 하며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많은 신하들을 보내었지만 몇살까지 산 줄 아십니까? 49세에 죽고 만거예요. 

    위기의 시대, 불안한 시대, 미래가 불투명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힘겨운 시대를 넉넉히 이겨나갈 뿐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거예요. 주님이 오신 것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게 함이요 우리에게 더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요11:25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질병의 두려움에서 죽음의 두려움에서 불투명한 미래의 염려와 앞날의 일로 불안할 때라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마음에 평안이 오고 걱정이 없습니다. 분명 문제가 있지만 넘어설만한 새 힘과 은혜를 주셔서 이기게 하시는 거예요. 이런 은혜가 이런 축복이 오늘 복된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16:33「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때로 세상에서는 고통을 겪을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으며 염려하고 두려워 할 때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모든 문제를 이기고 실패를 이기고 죽음까지 이기신 부활의 예수님만 만나면 우리도 결국은 이긴다는 것입니다. 힘들고 고달파도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복된 삶을 살면 우리도 결국은 승리한다는 것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축복된 말씀을 듣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심경속에서 체험되거니와 삶의 현장에서 날마다 체험되는 은혜와 역사가 여러분에게 충만히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생살이 별 것 없습니다. 어떤 인생이 좀 더 화려해 보이고 좀 더 고상해 보이고 좀 더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부러워 하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 보려고 몸부림 칩니다. 그러나 인생은 결국 마지막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가고 있는 거예요. 마치 비행기를 타면 퍼스트 클래스/비즈니스 클래스/이코노미 클래스가 있는데 어느 칸에 타느냐에 따라 주는 음식도 다르고 서비스도 다르고 앉는 의자의 넓이나 편안함도 다르지만 꼭 기억할 것은 모두 같은 행선지를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좋은칸에만 타면 되는 줄 알고 아둥바둥 해 보지만 편안한 자리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최종 도착지가 어디냐 하는 거예요. 이것 모르고 사는 사람은 헛인생 사는 거예요. 큰 돈 가져 보아도 화려하게 살아 보아도 인정받고 대우 받으며 살아 보아도 결국 이 모든 것이 헛것이구나 깨달을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다 지나가는 거예요.

    프랑스의 한 병사가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해 다리를 절단하게 됩니다. 군의관이 다리를 잃어서 안되었다고 위로의 말을 하자 이 병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다리는 잃은게 아니라 조국을 위해 바친 것입니다”. 주를 위해 헌신하는 젊음,건강,물질,재능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기억되는 것입니다.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중간과정이 어찌될런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주를 의지하며 주안에 사는 자의 종점은 최종 승리가 기다리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주를 믿고 부활하신 주안에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한 것임을 깨달을뿐 아니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렵고 힘든 환경속에서도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복된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도 말씀을 듣긴 듣는데 말씀을 들으면서도 잘 안믿어지는분 있을 거예요. 그런것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하고…. 말씀을 들을 때는 그런것 같았는데 막상 어려운 현실에 살아가다 보면 의심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약해질 수 잇습니다. 오늘 본문의 도마가 그랬어요.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주를 보았다」며 떠들어 댈때 도마는 ‘보는것 만으로 만족 못하겠다. 확실하게 손을 넣어 확인해 봐야 하겠다. 확인되면 믿겠다’고 했습니다.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일수록 회의주의자가 되기 쉽습니다. 세상일을 공식 가지고 모든것 설명할 수 있는게 아니잖아요? 문제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알기를 원하는 사람과 믿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늘과 땅 차이가 있습니다. 도마와 같이 의심하는 자는 만사를(모든일들을) 자기 잣대로 재어보고 믿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믿음없는 자가 되지말고 믿음있는 자가 되라」는 음성을 들은 도마가 후에 고백하기를 「나의 주시며 나의 구세주 이십니다」(28절). 이때부터 도마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결국은 복음을 전하다가 인도에서 순교합니다. 

    주의 음성을 들으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의심이 변하여 확신이 오고 비겁한 제자들이 누구도 못말릴 용기와 담대함을 갖게되며 방황하는 자가 분명한 인생길을 걸어가게 되며 발걸음에 힘이 생기는 거예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바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한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꺼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주님 만났기 때문입니다. 주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만나고 주의 음성 듣고 인생의 주인이 바뀐 거예요. 삶에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 부분이 아니라 생각,말,생활,속사람이 바뀌는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전부요/목적이요/의미입니다」이런 신앙고백이 없는 부활절 기념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 바로 주일입니다. 우리의 삶의 축이 주일이 되어야 합니다. 주일 하루를 위해 일주일을 사는 삶이 될때 우리의 생활도,직장도,사업도,가정도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은혜받기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고 간절히 사모하고 나오는 자들에게 주님이 예배를 통해 영광 받으실 뿐 아니라 주님 앞에 나올때 마다, 기도 할때 마다, 찬송 할때 마다, 말씀 들으실때 마다 넘치는 은혜와 능력으로 채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축복의 자리에 이미 나오셨습니다. 더 큰 은혜의 자리 더 깊은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시는 복된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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