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주 나의 하나님(요20:24~31)
  • 조회 수: 337, 2013.06.22 21:38:05
  • 오늘날 우리 인생의 가장 큰 문제를 경제나 사회문제에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근본문제는 경제나 사회문제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불신앙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성령님을 보혜사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히 우리의 불행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도마는 대단히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복음의 동역자들이었던 제자들이 “우리가 부활의 주를 보았노라”고 했을 때 완강하게 그들의 말을 가로막았습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이 말씀은 단순한 복음에의 거부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3년 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면서 말씀과 기적의 능력을 수없이 체험했건만…. 그런 그가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은 그 마음이 얼마나 완고함과 교만함으로 가득 차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렇듯 도마가 주님의 부활하심을 믿을 수 없었던 데는 대체로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도마가 은혜의 자리에 있지 않은 것이 불신앙의 동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본문 24절 말씀을 봅시다.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그렇습니다. 그가 만일 제자들과 함께 있어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을 때 그 주님을 만났더라면 적어도 그는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둘째로, 도마가 주님의 부활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은 그의 실증주의적 사고 때문이었습니다. 본문 25절을 보면 도마의 완강한 불신앙적인 어투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실증주의란 이처럼 만져보고 체험해 보고 확인해 보고서야 믿겠다는 주의와 주장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체험을 더 중시하는 불신앙입니다. 

    기독교는 보고 믿는 종교가 아니고 믿음으로 보는 종교이며, 알고 나서 믿는 종교가 아니고 믿음으로 알아지는 역설적인 종교입니다. 그렇기에 요한복음 6장 69절 말씀에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 줄 믿고 알았삽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을 수 없다는 완곡한 불신앙에 빠져있는 도마를 향하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도마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것이 기독교의 현주소입니다. 

    그러면 이런 역설적 현상은 무엇으로 가능할까요? 그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한 히브리서 11장 3절의 말씀처럼, 믿음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진실한 역사적 사건임을 알게 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도마의 불신앙적 사건이 있은지 여드레가 지났습니다. 부활의 주님은 다시 찾아오셔서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주님께서 도마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심은 그로 하여금 주님의 부활사건 믿기를 거부하지 못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도마는 부활의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생히 들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로 인하여 모든 의심의 안개가 걷힌 도마는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28절).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레이놀즈(Reynolds)는 이런 도마의 신앙고백을 두고 “요한복음의 클라이막스였다”고 했고, 마이어(Meyer)는 “메시아적 신앙의 완전한 고백이었다”고 했습니다. 도마의 신앙고백은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이심을 고백한 것으로써, 이는 실증을 통한 열매가 아니라 믿음으로 얻어진 열매였습니다. 드디어 의심 많던 도마의 삶 속에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모든 의심과 불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인도복음화의 선구자가 되어 인도에 뼈를 묻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주되심과 그의 부활과 생명역사에 대하여 확신이 없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에 문제가 생긴 때문입니다. 믿음으로라야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도 예외일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 속에 믿음만 생기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부활사건의 신비는 아무 의심없이 믿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부활의 믿음은 들음에서 나므로(롬 10:17) 도마처럼 말씀을 보고 듣는 삶이 중요합니다(27절). 그래서 칼빈은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증주의는 인간 이성에 혼돈을 가져다주고 신비주의는 인간의 감성에 혼란을 주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부활신앙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는 신약성경 속에 100여 차례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기록한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부활사건이 성경의 중심 진리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존 웨일(John S.Whale)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인간들의 최후목표는 죽음이 아니라 부활이다. 복음서신들이 부활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 복음서신들을 설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현대인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 중에서조차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3절 이하의 말씀에서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해 볼 때 부활의 주님 앞에서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는 도마의 신앙고백은 구원에 이르는 고백이었으며(롬 9:9) “교회는 예수의 부활 위에 서 있다”는 필립 샤프의 말처럼 교회를 반석 위에 세우는 고백이었습니다.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생명력과 능력은 부활의 사실을 믿는 이들에게만 나타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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