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신앙은 질(質)의 변화(고전15:42-44)
  • 조회 수: 300, 2013.07.10 16:36:22
  •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음이 전제되어져야 합니다. 죽음이 없는 부활은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스도께서도 분명히 죽어 무덤에 장사한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에게는 부활이 죽은 이후에 문제니까 지금은 그리 중요하지 않겠거니 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기독교인이 부활을 자꾸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준비시키기 위해서일까요? 곧 죽을지도 모르니까 위로하기 위해서일까요? 물론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부활은 우리의 몸이 죽은 후에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생활 속에서 항상 체험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특징은 미래적이면서 또한 현재적인 것이지요. 죽어 천국 가기도 하지만, 현재에도 천국을 소유하며 천국의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활도 마찬가지 미래에 우리 몸이 죽은 후에도 부활하지만, 현재 내 생활 속에서 항상 체험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의 부활 신앙입니다.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리스도인의 부활의 특징을 알아봅시다. 
    부활은 죽었다가 본래의 모습대로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변화되어 다시 사는데, 그 변화는 모양이 아닌 질(質)의 변화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런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 나는 것"이 그리스도의 부활이고 그리스도인의 부활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쓸모 없는 것이 쓸모 있는 것으로, 형편없는 것이 아주 좋은 것으로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질(質)의 변화를 말씀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부활신앙은 곧 삶의 질(質)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아주 좋은 것으로, 최고 좋은 것으로 변화하여 가장 고상하고, 가장 멋진 삶으로 변화되는 체험을 가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체험을 가질 수 있습니까?

    고린도전서15:31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 말은 "날마다 부활을체험하노라" 라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말은 다시 "나는 날마다 변화하고 있노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새로운 것으로 변화되는 부활의 체험을 위해서 할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뜻과 자신의 욕망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죽으러 와야 합니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죽이기 위해 오는 것입니다. 내 뜻이 하나님 앞에서 죽어지지 아니하면 당신의 삶의 질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내가 이 예배를 드리므로 내가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리라는 욕망을 있을 때 예배를 통해 나의 삶의 질의 변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새벽기도를 50년이나 했는데 그 사람의 질은 변화되지 않았다고 어떤 목사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언제나 그의 기도는 자신의 욕
    망을 채우기 위해서였지, 자신을 하나님 앞에 그것을 죽이고자 아니 했기 때문입니다. 남선교회 회장을 수년간이나 했는데 변화가 없습니다. 여전도회 회장을 수년간이나 했는데 변화가 없습니다. 성가대를 10년이나 했는데 변화가 없습니다. 자신의 뜻과 욕망을 하나님 앞에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감히 당신 앞에 나올 수 없는 인간이옵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받게 하셨으니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할 때, 당신은 삶은 질이 변화됩니다. 예수 님의 삶이 그랬습니다.둘째는 날마다 죽는 것입니다. 날마다 죽으면 날마다 부활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루아침에 온전해지지 않습니다. 날마다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뜻과 욕망을 죽여 변화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예수께서 "너희가 나를 따르려거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누가복음9:23)고 하신 말씀도 "날마다 죽으라"는 것과 같은 의미이지요. 그리스도인이 질의 변화가 없다면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 믿더니 사람이 좋아졌어! 예수 믿더니 고집도 없어졌어! 예수 믿더니 겸손해졌어! 예수 믿더니 사람이 참 고상해 졌어! 예수 믿더니 사람이 멋쟁이가 되었어!
    "질(質)의 변화" 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뜻과 욕망을 날마다 죽이므로 질의 변화를 이루어 갑시다. 부활의 역사는 현재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활신앙으로 당신의 삶의 질의 변화를 이루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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