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망을 이긴 사람들의 삶(고전 15:50-58)
  • 조회 수: 402, 2013.07.10 16:44:16
  • 요즈음 방영되는 왕과 비라는 사극을 시청하시는 분 계실 것입니다. 힘없는 단종에게 대하는 한명회의 태도를 보면서 분노를 느끼는 분 계실 것입니다. 영월로 유배되는 단종의 모습을 보면서 힘 잃은 왕의 비극을 볼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뜻있는 사람들도 십자가의 비극을 보며 안타까워 했을 것입니다. 백성들과 당시 종교 지도자들과 야합한 부당한 권력에 의해 비참하게 처형된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정의가 죽었다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시기와 질투에 아무런 힘도 발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처형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래 사랑이란 별수 없군 결국 세상에서 승리하는 것은 사랑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승리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내려 오지못하고 비참하게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래 인간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제자들 마저 다 도망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일 만에 부활하였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였습니다. 죽음은 종지부가 아니요 단지 쉼표일 뿐이었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려 버렸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정의가 반드시 이긴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사랑은 결국 승리한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이 인류의 구세주 메시야 이심을 밝혀 주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세상권세를 이기셨습니다. 힘으로 그를 죽인 로마를 정복하였습니다. 주께서 부활하심으로 죄악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죽음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향하여 사도 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권면하고 있습니다. 

    1. 부활 신앙에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합니다(58).. 
    오늘 날도 마찬가지만 당시 고린도 교회에 부활에 대하여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두가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1)오늘날 사람들이 부활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예수님이 부활하였다고 말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12절 보십시오. 당시 교회에 다니는 자들입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죽으면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도 그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2)두번째 의문은 35절에 보십시오. 어떻게 부활하느냐는 것입니다. 부활 후 어떤 몸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회의적인 질문입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썩어버린 육체가 어떤 형태로 재생되느냐는 것입니다. 
    오늘날 왜 부활을 믿지 못합니까? 현대인의 머리를 지배하는 사고 구조는 비평의 원리, 유추의 원리, 인과의 원리입니다. 그것이 맞는가 맞지 않는가 따져 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어나지 않은 일은 과거에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우연에 불과한 것이지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자기 부모들이 무덤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피조물인 자연계의 법칙, 과학법칙에 가두어 놓고 하나님을 판단하는 교만과 오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고린도시는 헬라 문명이 꽃피는 중심 도시였습니다. 상업도시입니다. 부가 풍부한 도시입니다. 

    2)사도 바울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변합니까?
    (1)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된다고 말씀합니까?(12-19)
    ①우리의 전파하는 것이 헛것이고(14) ②너희의 믿음도 헛것이고(14,17) ③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고(15) ④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17) ⑤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고(18) ⑥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1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했던 수고가 헛된 것이 되고 만 것입니다. 나의 신앙, 교회에 다닌 것, 예배, 찬양, 헌금, 믿음, 기도, 사랑, 수고 모두가 헛 것이다는 말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진리가 모두 가짜가 됩니다. 천국도 사기가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처럼 아무렇게나 살지 못하고 절제된 삶은 산 것도 헛 것이 됩니다. 만약 천국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생입니다.

    (2)바울은 부활의 몸의 상태에 대한 답변을 합니다.(35-49)
    식물이 새로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씨앗들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가능하듯이 인간의 부활도 육체의 죽음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36). 그리고 씨앗이 죽어 새로운 형태의 식물을 만들어 내듯(37) 인간의 육체의 부활도 상태가 전혀 다른 것으로 새롭게 된다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다양한 형체를 주었듯이 인간에게도 신령한 형체를 주었다는 것입니다(38-41).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완전 새로운 형체로 부활합니다.(42-44)
    (1)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 납니다.(고전15:42)
    현재 우리 몸은 죽고 썩어질 몸이지만 장차 부활 우리의 몸은 영원히 썩지 아니할 몸입니다. 
    (2)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삽니다(고전15:43)
    현재 우리의 몸은 원하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욕된 몸이나(롬7:19) 장차 부활할 몸은 다시는 죄를 짖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3)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삽니다(고전15:43)
    현재 우리의 몸은 약하고 병들고 고생하고 상처 받는 몸이지만 부활할 우리의 몸은 질병이나 상처 때문에 다시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강한 몸입니다.
    (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것으로 삽니다(고전15:44)
    현재 우리의 몸은 마시지 안으면 목마르고, 과로하면 피곤하고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을 받는 육의 몸이지만 부활할 우리의 몸은 먹을 것을 위해 고생하고 목마름에 기갈하는 몸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신화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제자들의 신앙 고백적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일시 기절했을 뿐이며 장사를 한 후 정신이 되돌아와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기절설). 어두운 새벽길에 잘 못 찾아서 빈 무덤을 보고 주님이 부활한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입니다(무덤을 잘 못 찾았다는 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옮겨 놓고는 부활했다고 거짓을 퍼트렸다는 것입니다(도난설). 부활이 없었는데 돌아가신 후 죄송한 뉘우침에 부활을 말하신 것을 굳게 믿고 심히 피곤하여 머리 속에 그리다가 마침내 환상을 보고서 이것을 실제인양 퍼트렸다는 것입니다(환상설). 바벨론 신화. 동방신화에 나오는 부활설을 예수에 적용했다는 것입니다(신비설).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했다는 것이 사기이고, 환상이고, 착각이고, 꾸며낸 이야기이고 신화일까요? 제자들이 거짓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을까요? 한때 배신하고 도망갔던 그들은 비참하게 순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식구들도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는 믿지 않았고(요7:5) 심지어는 미쳤다(막3:21)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을 목격하고 주님 앞에서 기도합니다(행1:14). 부활의 신앙은 비논리, 비이성이 아니라 초논리, 초이성입니다. 진위 논쟁이 있지만 예수님을 처형한 장본인인 빌라도는 `빌라도의 보고서'에서 마지막에 "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나는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애놀드는 말하기를 "나는 여러 해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오는 중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표징, 곧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 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인류사에서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로슈 멕도르씨는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지금까지 사람들을 속여 오던 일 중에서 악랄하고 비도덕적이고 비양심적인 위선 중에 최대의 위선이라"고 했습니다.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사실이라면 인류 역사상 가장 기적적인 사건일 것이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 20:29)"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믿자니 좀 어리석은 사람같고 믿지 않자니 교회에 다닌 것이 아깝고 이래도 저래도 못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 억지로 끌려오는 남편들이 그렇습니다. 믿어야 손해되는 것없습니다. 어짜피 부인 죽을 때까지는 교회 안나오고는 못견딥니다. 확실히 믿으십시오. 이 믿음에 견고히 서고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같은 말을 반복함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부활의 신앙에서 움직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의 재림 시 부활할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50-57).
    1)예수님의 재림시 부활할 것을 확신하여야 합니다(50-56).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합니다(51). (마24:31; 계8:2 10:7)
    순식간에라는 말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단 시간 안에 눈깜짝할 사이에 홀연히 변한다는 것입니다.
    다변합니다. 이미 죽었던 자이든 주의 재림 때까지 살아 있는 자든 그리스도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모든 자들(살전4:16,17)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는 순간 죽은 자들도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살아서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신령한 몸으로 변합니다(52). 썩지 않는 것으로 입고 죽지 않는 것으로 입습니다(53). 부활하는 성도는 헌옷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새옷을 입듯이 옛 몸을 벗어버리고 새 몸으로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효력 상실합니다(54). 죽음은 인간이 죄의 지배 아래 놓여 있기 때문에 발생되는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리스도의 공로로 자기 백성을 썩을 것에서 썩지 않은 것으로 죽을 것에서 죽지 않는 것으로 만드셨으니 사망은 효력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55절처럼 부활로 인해 멸망할 사망을 향하여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에 있어서는 모멸이고 조롱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승리의 개가입니다. 사망은 그리스도께서 오기까지는 세상의 모든 인간에게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 폭군이었으나 그 절대 지배권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모든 성도는 이제 사망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망은 오직 죄를 통해서만 인간을 지배합니다. 죄가 없으면 사망은 인간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율법 앞에서 인간은 죄인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노릇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의인이 된 것입니다.

    2)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김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57). 
    여기서 이김을 주신다는 말씀은 한 번 이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승리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정의가 불의 앞에 패배한 것 같았습니다. 사랑이 미움 앞에 무릎을 끓은 것 같았습니다. 생명이 죽음 앞에 영원히 힘을 잃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생명의 승리, 정의의 승리, 사랑의 승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부활로 정의와 사랑은 이기는 것입니다. 죽음은 부활로 결국 실패하고 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부활로 죽음에서 승리하시고 악독과 증오로부터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믿음으로 승리를 보장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이요 부활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망으로부터 영원한 승리를 보장해주신 우리 주님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이야 말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세상에 감사할 일이 많이 있지만 이것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것이고 인간이 가장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받는 단계입니다.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고, 축복을 받는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는 감사의 단계입니다. 받은 것을 깨닫고 감사를 하는 단계입니다. 구원받아 감사, 은혜받아 감사, 축복받아 감사, 기도 응답받아 감사 그저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감사하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이김을 주시지 않습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허 업례 권사님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남편이 신앙을 갖기 위해 평생 노력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유방암, 맹장 수술, 디스크까지 앓았지만 남편은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6월 남편이 폐암 말기 진단을 받고 말았습니다. 30년 함께 살아온 남편이었습니다. 투병생활을 어찌할 수 없어 샘물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자원봉사하시는 분, 목사님, 간호사 늘 웃음으로 봉사했습니다. 소화기능이 망가져 대변을 못보고 고통받는 남편을 그들은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직접 관장을 시켜 주고 언제나 미소와 함께 돌봐 주었습니다. 짧은 4개월 남편은 그들의 사랑에 감복되었습니다. 권사님의 편생 소원 하나는 남편이 자신의 옆에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에서 마지막 보낸 주일 권사님의 남편은 웃으면서 말했답니다. 당신이 나가는 교회에 가서 당신이 늘 이야기 하던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함께 예배 드리고 싶다고 했답니다. 그날 부부는 함께 예배를 드렸고 교인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답니다. 그리고 하늘 나라로 가셨답니다. 그것이 남편과 함께 예배드린 첫 주일예배이자 마지막 예배였다는 것입니다. 그 권사님은 이 은혜에 감사하여 평생 호스피스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살고 있다고 간증해 주고 있었습니다.

    좀더 나아가면 이제 드리는 단계에 이릅니다. 
    세째 단계는 드리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감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단계입니다. 물질드려 시간드려, 건강드려 부활의 증인으로 자신을 드리는 삶을 사는 단계입니다.

    3.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58).
    부활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새 힘과 용기를 얻어 사는 삶이었습니다. 과거를 씻고 새 출발을 하는 삶이었습니다.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 인생관을 갖는 삶이었습니다. 가치관의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참 생명을 발견한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마지막 날 우리의 부활을 확신한다면 우리의 삶의 태도는 바뀌어야 합니다. 
    1)항상 힘써야 합니다. 한번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시작은 거창합니다. 그러나 항상 끝마무리를 짖지 못해요. 어떤 일을 맡겨 놓으면 하루면 할 것을 4일이 가도 끝이 안나요. 그리고 항상 무엇인가를 흘려 놓아요. 끝이 온전치 못해요. 누가 칭찬해주고 인정해 주면 잘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슬그머니 그만 둡니다. 영광받을 만한 자리에서는 잘합니다. 그러나 고난 받을 만한 자리에서는 손을 놓습니다. 항상 힘써야 합니다. 변함없이 힘써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귀합니다. 믿을 수 있습니다. 

    2)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내 이익에 맞는 일에만 힘쓰는 것 아닙니다. 내 취향과 성격에 맞는 일에만 힘쓰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일입니다. 나에게 손해가 되고, 내가 창피를 당하고 나의 자존심이 깎이고 내가 굶주리고 내가 어려움 당한다고 할지라도 주의 일이라면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3)더욱 힘써야 합니다.
    힘겨울 때 지칠 때, 피곤할 때,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비난받고 억울하게 당할 때가 있습니다. 잘 해주면 할아버지 수염잡고 늘어지는 손자처럼 참 한마디 해주고 싶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도 어떻습니까? 고린도 교인들이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한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뭐라고 말씀합니까?
    형제들아(50) 형제(5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권면하는 내용이 고린도 전후서입니다. 사도 바울 말년에 거의 모든 사람이 배신하고 도망갑니다. 그럴 때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딤후4:16절을 보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포기합니까? 17-18절을 보십시오. 저는 이 말씀을 통하여 때때로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어려울 때, 포기하고 싶을 때, 고통당할 때 그럴 때일 수록 더욱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활의 증인들은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고 주의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 안에 한 일은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 그 분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아무도 알아 주지 않아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수고라는 것은 지칠 정도로 일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쳐 쓰러질 정도 일한 것 결코 헛 수고가 아닙니다. 
    수고한 대로 상급을 받습니다.(고전3: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고전 3:8)"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고후 9:10)"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소자에게 찬물 한 그릇 대접한 것을 결코 상을 잃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망을 이긴 사람들입니다. 
    어떤 유혹이 온다하더라도 부활 신앙에서 흔들리지 맙시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시 부활할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며 삽시다. 그리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됩시다. 항상입니다. 주의 일입니다. 더욱 힘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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