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신앙의 특징(고전 15:50-58)
  • 조회 수: 256, 2013.07.10 16:39:20
  • 생명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맞이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후 무덤 속에 장사되었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승리의 부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도록 고소했던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총독 빌라도에게 요청하여 무장한 군인들로 하여금 인봉한 무덤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안식후 첫날 이른 새벽에 천사가 내려와서 무덤 입고를 막고 있는 육중한 바위를 굴려내고 다시 사신 예수님이 무덤 속에서 밖으로 나오실 때 그 군인들은 모두 기절을 하여 쓰러져 있었습니다.
    얼마 후 몇 사람의 여인들과 제자들이 무덤을 찾아 갔을 때 이미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버렸고 그 자리를 지키던 천사가 예수님의 살아나신 사실을 일러 주었습니다.
    오늘도 예루살렘에 있는 빈무덤이 부활 종교인 기독교의 자랑스러운 유물로 남아 있습니다.
    본문 성경은 세기의 선교사요 신학자인 사도 바울이 기독교의 핵심인 부활의 도리를 논증한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사실을 확증하고 그것에 대한 성경적 의미와 나아가서 이 부활신앙을 가진 성도들의 승리적인 삶에 대하여 기록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신앙은 모든 것에서 이기게 하는 승리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57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뜻깊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경하하면서 이 위대한 부활신앙의 이론과 실제를 살펴 보기 원합니다.

    1. 부활 신앙의 내역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추상적인 이론이거나 근거없는 학설이 아닙니다.
    시간과 장소가 확실한 사건으로써 수많은 증인과 기록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1)부활 사건의 목격자
    누가복음 1:1-2절에 보면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되고 일꾼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으로 미루어 보아 복음서의 기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취급할 때 자기가 직접 목격하였거나 아니면 친히 목격한 사람들의 증거를 가지고 사실에 근거한 기록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8절에도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목격한 사람들이 열거되어 있는데, 수제자 베드로를 위시하여 열두제자들과 오백여 형제가 동시에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중에도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예수님을 거부했던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였고 바울 자신은 그리스도의 부활 증인을 박해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특별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직접 보게 되었습니다.

    (2)성경 예언의 성취
    고린도전서 1:3-4절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구약성경을 통하여 일찍이 선지자들의 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미5:2)과 죽음(사 53:4-5), 그리고 부활에 대한 예언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도 부활에 관한 글은 아론의 싹난 지팡이처럼(민 17:8)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욥은 "나의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고 하였습니다.(욥 19:26)
    신약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자신의 부활을 예고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4절에는 요나가 3일 밤낮으로 물고기 배 속에 있다 나온 것처럼 예수님 자신도 무덤에서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6:21절에는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무덤에서의 부활도 그대로 이루어짐으로써 성경계시의 신빙성을 확실하게 하여 줍니다.

    2. 교회 운동의 기초입니다.
    지상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최초로 교회 설립을 선언하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6:18)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무덤에서 살아나시고 죽음을 이기심으로써 음부의 권세를 무너뜨리신 것입니다.

    (1)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본체입니다.
    요한복음 1:4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생명의 근원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안에 참 생명이 있고, 그분이 바로 생명의 본체이기 때문에 사실상 죽음이 저를 붙들어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님이 되신 것은 그의 말씀 중에 직접적으로 언급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1:25절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실제로 그의 행적 가운데 죽음을 견제하거나 처리하신 일을 통하여 자신이 생명의 주체임을 증명하였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예수님은 잠자는 자를 깨우듯이 일으키셨습니다.(막 5;14)
    또한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서 상여에 실려 나가는 것을 보시고 "청년아 일어나라"라고 명령하였습니다.(눅 7:14)
    그뿐 아니라 죽은지 사흘이나 되어 썩어 냄새가 나는 무덤 속의 나사로를 이름을 불러서 일으키셨습니다.(요 11:44)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예수님 자신이 무덤에서 살아나신 일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제왕군주이거나 전쟁 영웅들도 모두 다 죽음 앞에 굴복하였고, 또 죽음 다음에는 그 명성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셨습니다.
    마귀의 최대 무기인 죽음의 권세가 예수님에게는 먹혀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2)복음 전도의 핵심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다음 전도의 사명을 받은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사실을 힘있게 증거하므로 교회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습니다.
    오순절 이후 성령 받은 베드로는 예루살렘 광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앞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무덤에서 살아나신 부활의 도리를 설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23-24절에 보면 "너희가 법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게 한 유대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그들의 조상 다윗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보고 알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는 예언을 하였다고 말했습니다.(행 2:31)
    그뿐 아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일에 증인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행 2:32)
    그는 또 "그런즉 이스라엘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와같은 베드로의 설교를 들을 때 무리들이 마음이 찔려 회개하고 돌아오므로써 예루살렘 교회가 불같이 일어나게 되었고 부흥되었습니다.(행 2:36-42)
    사도 바울도 가이사랴에서 총독 베스도와 헤롯 아그립바왕을 상대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변증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죄수의 신분으로 재판을 받게 된 것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다고 증거한 것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행 26:23)
    바울의 변론을 들은 베스도 총독은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는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고 하며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라고 하면서 끝까지 변증하였습니다.
    이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으로 전세계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고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3)그리스도 교회의 생명력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기초로하고 세워진 교회는 오늘날 오대양육대주에까지 확산되어졌습니다.
    그것은 위대한 부활신앙의 생명력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2천년 기독교 역사에 온갖 무신론의 세력과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박해를 가해왔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건재합니다.
    오히려 교회를 침해하던 세상 권력은 다 무너지고, 사멸되었으나 교회는 더욱 왕성하며 그 영역을 확대시켜 나왔습니다.
    그리스도 교회의 생명력은 그 어떤 세력으로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인에게 승리적인 삶을 보장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사는 동안 싸우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자기의 육신 속에 있는 정욕으로 더불어 싸우는 자요 밖으로는 그침없이 도전해오는 환난과 시련에 맞서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 싸움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살 소망까지 빼앗아 가기도 하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부활의 신앙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 이겨냅니다.

    (1)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깁니다.
    중생한 성도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싸움의 대상으로 여깁니다.
    바울은 자기 속에 보이지 않는 세력이 있어서 자기로 하여금 하나님과 원수되게 한다고 하였습니다.(롬 7:18-20)
    고린도전서 9:27절에는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안에서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이 다투고 있는 틈바구니에서 과감하게 육신의 정욕을 쳐부수고 자기를 복종시키는 용기야말로 부활 신앙을 생활로 실천하는 모범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디모데후서 2;11-12절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2)세상과의 싸움에서 이깁니다.
    성도는 세상이 유혹하는 온갖 정욕과 싸움을 하는 자들입니다.
    요한1서 2;16절에 보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4절에는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지 않고 더욱 가까워지기 위하여 항상 세상을 상대하는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 싸움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를 유혹할 수 있는 달콤한 요소를 가지고 마음 속에 파고 들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육신의 고통을 가져오게 하는 환난과 핍박으로 압력을 가해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굴하지 않고 굳굳하게 이길 수 있는 비결은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 했습니다.(고후 1:8-9)

    (3)죽음과의 싸움에서 이깁니다.
    인간실존에 있어서 죽음이 주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적용됩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예고없이 찾아옵니다.
    어떤 사람도 죽음과 싸워서 이기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불안해하고 공포에 떨게됩니다.
    이와같이 죽음의 횡포에 억압당하는 인간이지만 죽음을 향하여 큰소리 치면서 살 수 있는 비결이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입니다.

    로마에 가보면 [카타콤]이라는 지하 묘지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박해가 심해지자, 성도들은 이 카타콤에 폭 1m, 높이 3m 가량의 지하도로 미로를 만들고, 그 곳에 기도처와 은신처를 마련했습니다.  
    안내자 없이 그 곳에 들어가면 출구를 찾지 못하여 나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박해를 피해 그 곳으로 숨어 들어가 그 지하에서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그러다가 죽게 되면 벽을 파서 그 곳에 묻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에 산재해 있는 카타콤을 합치면, 그 전체의 길이는 880km에 달하고, 벽에는 약 700만 명에 이르는 기독교 신자의 시체가 매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초대 교회의 성도들은 박해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무려 250년 동안이나 박해와 순교를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을 이어왔습니다.
    자식에서 손자로, 또 손자의 자식에서 그들의 손자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오며 믿음을 지켜왔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두운 땅굴에서 숨을 죽이고 살아가는 그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카타콤의 순교자들의 일념은 믿음을 기키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무덤 같은 땅 속에서 250년을 살아왔다는 것은 정말로 믿기 어려운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이와 같은 힘이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재산과 명예와 자기의 목숨까지 버릴 수 있었던 까닭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부활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기서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여기서 죽는다. 그러나 오늘 나는 하나님 나라에 당도하게 될 것이다'  '나는 오늘 죽는다. 하지만 주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부활하리라' 하는 믿음이 있을 때 이런 힘이 나오는 줄 믿습니다.

    본문 성경이 말하는 기독교의 부활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 모든 성도들의 부활과 직결된다는 사실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성도의 부활을 알리는 '첫열매'라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와같은 부활의 도리를 확신하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그 이유는 죽어도 다시 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죽었다가 다시 살게 되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게되기 때문에 죽음을 불안의 요소로 보는 것이 아니라 희망에 이르는 과정으로 반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죽음을 향하여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라고 호령을 할 수 있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힘입어서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믿음으로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고전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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