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28:01-10/ 굴려진 돌의 의미
  • 조회 수: 371, 2013.10.30 21:13:02
  • 오늘 생명과 희망의 부활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주님의 부활의 권능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부활의 사실을 빼놓는다고 하면 기독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종교가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탄생이 중요합니다. 그의 고난이 우리에게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이 땅에 존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신지 사흘째 되던 날 새벽입니다.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따르던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라도 발라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새벽 미명에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무덤을 찾아 올라가면서 이 여인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무덤에 가면 무덤에는 큰 돌로 무덤 문을 막아 놓았을 것이고 거기에는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을 터이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으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고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거기에는 로마 군인들 밖에 없을 터인데 그들이 우리를 도와주기나 할까? 

    우리의 간절한 사정을 말해서 아무런 다른 의도는 없다고 설명하고 그들을 납득시켜서 거기에 성공하면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라도 발라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덤 가까이 갔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줄까?” 이 질문은 온 세상에 대한 슬픔을 자아내는 물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온 인류의 한숨 소리를 표현한 말같이 들려지기도 합니다. 

    인간의 행복의 길에는 거대한 바위가 놓여 있어서 그 큰 돌이 인간의 가는 길을 막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가 이 큰 장애물을 옮겨 놓겠습니까? 

    누가 이 굉장한 돌을 들어올리고 생명과 영혼 불멸의 빛을 보게 할 수 있었습니까? 모든 사람을 삼켜버리는 무덤은 수많은 사람을 삼켜버렸습니다. 

    어제가 바로 한식(寒食) 이어서 그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도 무덤을 찾아 성묘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무덤 앞에서 침통하게들 지냈습니다. 절망적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누가 무덤 저 너머로 소망을 갖다 줄 수 있겠습니까? 

    부활의 속삭임이 있지만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아니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덤 앞에서 허무와 절망을 씹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어두움에서나 빛에서나 사람들은 진리에 대하여 두려움과 의심을 가지고 “누가 우리를 위하여 이 돌을 굴려 줄까?”고 걱정하며 묻고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과 우리가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 구약 욥은 욥기 14장 14절에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 하였습니다. 죽으나 다시 살아나는 것은 모든 인류의 소망이요, 염원입니다.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운명의 강을 건너서 어떠한 소망이 있다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말 사람이 한번 죽고 무덤에 묻히고 그래서 얼마 후에는 뼈와 살이 흙으로 되어 버리고 그것이 전부라고 하면 인간처럼 허무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온 인류가 겉으로 내놓고 묻는 것은 아니지마는 마음 속에서부터 “오실 분이 어디 계십니까? 예정되신 구원자가 어디 계시고 그이가 누구시며 우리를 위하여 이 무덤의 돌을 굴려줄 분이십니까?”고 계속 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여인들에게는 무덤의 돌을 옮긴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예수님의 무덤을 막고 있는 돌 자체가 여인들이 옮기기엔 불가능할 만큼 컸습니다. 

    죽음이란 그 자체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그 어떤 힘으로도 움직일 수 없는 거대한 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질 쳐봐도 이 돌을 굴려낼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권세도, 과학도, 금력도, 이 돌을 굴려낼 수 없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을 율법이라”고 사도 바울은 갈파하였습니다. 죽음이란 분명히 인간이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형벌로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어떻게 옮겨질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무덤의 돌에 인봉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죄의 대한 벌로 죽음을 주었고 붉은 도장으로 무덤 입구 돌에 인봉을 하였는데 누가 이 인봉을 뜯을 수 있겠습니까? 누가 그 돌을 굴려낼 수 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무덤에는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악마의 세력과 지옥의 권세가 도난을 막기 위하여 무덤을 지키고 있으니 누가 감히 마귀와 맞서서 사자의 입에서 먹이를 빼앗듯이 우리의 영혼을 빼앗아 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요 두려운 일이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에서 이 돌을 굴려줄까? ”

    이처럼 마른 뼈들이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서 떠나버린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왕들과 현인들에게 물었으나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 

    옛날 공자 선생이 “사람이 죽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겠습니까?”고 묻는 제자의 질문에 “이 사람아 사람이 살아 생전에 될 일도 다 알지 못하고 사는데 죽은 후의 일까지야 어떻게 알겠는가?”고 오히려 반문한 것은 너무 유명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현인 군자라고 하더라도 죽은 후의 일에 대해서는 일체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했고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던 이 여인들은 해답을 얻었습니다. 저희들은 그리스도의 무덤을 찾아갔었으나 무덤은 벌써 비어 있었습니다. 왜요?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 누워 계시지 아니하시고 그가 말씀했던 대로 사흘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세상의 질문에 대한 완전하고 시원한 답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예수님께서 오라비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이렇게 증거하였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다음 열매로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통곡하는 라헬이 위로받기를 거절할 때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이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하였습니다. 

    슬퍼하시는 여러분이여, 

    무덤 주변에 더 이상 슬픔이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마십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또한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으십시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의 무덤이 더 이상 슬픔의 장소가 될 수 없으며 단지 영혼 불멸의 곳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무덤은 영혼이 잠시 동안 지상의 여정에 필요한 옷을 벗어 놓고 밝은 내일에 다시 입을 장소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가오는 밝은 내일은 이 세상에서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희게 빛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생명이 약동하는 부활 주일에 다시 사신 주님에 대하여 같이 생각하는 가운데 축복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무덤에서 굴러난 돌이 주는 의미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돌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들으십시다. 성경을 읽어보면 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많습니다. 

    1 . 굴려진 돌은 무덤의 문이 옮겨진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의 장막은 거대한 돌로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하늘의 천사가 그 큰 돌을 옮기고 다시 사신 예수님은 무덤에서 나오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삼일 삼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무덤 속에서 주무시다가 그의 강한 능력으로 일어 나셔서 무덤의 철문을 옮겨 버리고 모든 빗장을 부셔버렸습니다. 

    감금시키는 돌을 옮기셨다는 것은 우리 주님께서 무덤의 눈을 옮겨 버리셨다는 것의 모형입니다. 이렇게 죽음의 요새가 드러나고 지옥의 바닥이 드러났으며 이제는 아무런 힘이 없는 곳으로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하자면 하나의 저당물로 무덤에 갇혀 있는 셈이 됩니다. 

    “그가 우리의 죄로 인하여 죽으사.” 하나의 부채와 같이 그리스도에게 지워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우리대신 빚을 갚으셨습니다. 그는 우리가 받을 큰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대신 그가 죽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이 완전히 열납되어질 때까지 저당물로서 무덤 속에 남아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역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의 입으로부터 나온 이 말씀은 하나님의 판결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예수님은 자유를 얻게 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일어나신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덤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 남겨 두지는 아니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의 구원의 사역은 영원히 완전 무결합니다. 이 큰 돌이 무덤 문에서 굴려진 것은 마치 주님께서 아주 효과적으로 사역을 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무덤 속에 다시는 감금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사람에겐 죽음이 더 이상 죄에 대한 형벌이 될 수 없게 되었고 오히려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하나의 관문과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는 말하자면 무덤의 문을 막고 있던 큰 돌이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죽음과 절망의 포로로 감금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죄는 이제 영원히 굴려졌고 이제부터 죽음이란 더 이상 어둡고 두려운 지옥의 대기실이 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무덤 속에 우리를 가두던 돌은 굴러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가 우리를 가둘 수 있습니까? 모든 장애물은 제거되었습니다. 

    2 . 굴러진 돌은 기념비와도 같습니다. 

    무덤의 돌이 굴러진 것은 우리 신앙의 안목으로 볼 때 죽음의 권세에 대한 그리스도의 영원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이 돌은 그리스도의 승리의 기념비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무덤에 장사지내게 되었을 때 그의 원수들은 그리스도를 이긴 것으로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정복했다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은 거짓이 진리를 이긴 것이요, 미움이 사랑을 무색케 하였고 불의가 정의를 짓밟았으며 어두움이 빛을 삼킨 것이요, 죽음이 생명에게 개가를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현상이 오래 갈 수 있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동안 이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발꿈치가 옛 뱀에게 물리었으나 부활의 아침에 그는 용(龍)의 머리를 깨부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진리가 거짓을 이기며, 사랑이 미움에게 승리하고, 정의가 불의를 누르고,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고, 생명이 죽음에게 개가를 부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굴려진 돌 위에 앉아 있는 천사를 바라볼 때 이 돌은 사망과 지옥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를 위하여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줍니다. 

    그리스도의 승리는 우리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죄와 싸워야 하지만 그 죄를 정복하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십니다. 우리는 사탄에 의해서 시험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사탄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는 얼마 안 있어 이 육신의 장막을 벗어버릴 것입니다. 주께서 속히 오시지 않으시면 우리도 우리 조상들과 같이 발을 모으고 하나님을 만나 뵈러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음을 정복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런 염려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다. 

    그리스도의 군사된 여러분이시여! 

    여러분은 정복된 적을 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겨놓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승리는 우리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장이 되셔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장되신 그리스도께서 마귀를 정복하시고 죽음을 이기실 힘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 우리는 믿음의 눈 앞에 그 돌로 승리의 기념비를 세우십시다. 

    3 . 굴려진 돌은 믿음의 초석을 의미합니다. 

    이 돌은 무덤에서 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에 대한 대표적인 확증으로서 기독교 신앙의 초석이 된 것입니다. 부활의 사건은 기독교의 근본 교리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가 전혀 없어지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너희의 믿음이 헛것이고 너희도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자들도 역시 멸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전하는 모든 것이 속임수와 미혹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역사상 어떤 다른 사건보다도 더욱 명백한 사건입니다. 여기 성도들의 확신이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 예배 시간에 신앙을 고백하신 것처럼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는 이 주님을 의지합니다. 우리는 이 주님을 믿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는 모든 사람들 중에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그의 속죄도 만족할 만한 증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진리를 세우게 되고 우리의 모든 확신이 부활의 진리에 기초하여 우리는 그 진리를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그의 피 공로로 죄사함 받으신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사실과 진리에 믿음의 기초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그리스도의 산 돌 위에 여러분의 믿음의 집을 지읍시다. 

    4 . 굴려진 돌은 경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가두었던 무덤의 돌이 굴려날 때 수직하던 사람들이 놀라서 마치 죽은 사람같이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반면에 돌 위에 앉아 있는 천사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너희는 무서워 말라 너희가 예수를 찾는 줄 내가 아노라”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여인들이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때 굴려진 그 돌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그리스도를 찾는 자와 미워하는 자 사이에 그리고 그리스도의 친구와 원수들 사이에 정해진 경계석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원수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됩니다. 그러나 주의 백성들에게는 모든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승리요, 기쁨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사람, 구원 얻는 사람을 갈라놓았습니다. 

    이 부활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애굽 사이에 세워놓은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에게는 흑암이 있었으나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광명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큰 고통을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확신과 능력과 위안과 축복이 됩니다. 

    오늘 이 뜻깊은 부활 주일에 우리 자신을 자문해보는 기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곁에는 부활의 경계석이 있습니까?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소유하고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여러분도 부활하실 것을 믿습니까? 그러면 두려워 마세요. 천사가 여러분을 위로할 것이고 주님이 여러분을 기쁘시게 하실 것입니다. 

    이 의미깊은 부활 주일에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신령한 눈으로 굴러진 돌을 바라보시며 천사의 음성을 들으시고 확신을 가지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뵐 때 놀라운 우리 생애에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부활을 담대하게 확신을 가지고 증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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