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좋은 소식(고전 15:1-8, 17-70)
  • 조회 수: 339, 2013.11.01 20:04:28
  •  영광스러운 이 부활 주일에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신 우리 주님의 크신 능력과 은혜와 축복이 사랑하는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1967년 아프리카에 있는 케이프 타운의 크리스천 버나드 박사에 의해서 세계 최초로 심장 이식 수술을 시작한 이래 오늘까지 수많은 심장병 환자들을 수술해서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려 하고 있으며,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미국의 치과의사 바니 크락크 박사가 인공심장 이식 수술에 성공해서 세계의 화제와 관심을 모았지만 결국 112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과학의 발전은 놀랍습니다.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아직까지 인류의 가장 큰 적입니다. 사실대로 말하면 사람은 이 세상에 나는 순간부터 죽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옵니다. 이것은 생명을 가진 우리로서는 절대로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것”(히 9 : 27)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공포와 전율을 느낍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물질과 기숙을 동원해서 이 무서운 원수에게서 해방을 받아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죽음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절망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근 2천년 전, 육신이 죽어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셔서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서 허덕이는 우리 인류를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선포하시고 우리 인류의 위해서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선포하시고 우리에게 귀한 삶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말씀하신 주님께서는 친히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그가 우리를 얼마나 살아하셨는가 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6-8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는 지난 주간에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기념하며 주님의 그 크신 사랑과 봉사 그리고 희생에 대하여 눈물 없이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그것으로 끝나 그 몸이 보통 사람들처럼 썩어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하면 문제는 아주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과 희생에 대하여 감사 감격할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좋은 소식이요, 복음의 기본 메시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6-8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했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는 지난 주간에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기념하며 주님의 그 크신 사랑과 봉사 그리고 희생에 대하여 눈물 없이 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그것으로 끝나 그 몸이 보통 사람들처럼 썩어 흙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하면 문제는 아주 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과 희생에 대하여 감사 감격할 것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소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의 좋은 소식이요, 복음의 기본 메시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전 15 : 3-4)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져 오고 있는 확실성입니다. 이것은 어떤 전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신도 아닙니다. 근 2천년 전에 일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의미를 가집니다. 인류의 모든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이요, 의미 있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에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밖에 없다고 하면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특성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세상에 다른 여러 종교가 있지만 거기에는 부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종교, 철학적인 종교는 될 수 있어서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수양과 훈련을 하는 데 도움이 될는 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생명과는 아무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실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뿐만 아니라 엠마오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두 제자, 그밖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죽으셨고 다시 사셨다는 일에 대한 증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원수들은 이 사실을 전적으로 부인합니다. 만들어 낸 이야기,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셨던 그 무덤이 비어 있는 사실에 대해서 증명하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활이란 너무너무 놀라운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으면 그만이지 다시 살아난 일을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우리의 경험과 이성 그리고 상식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기적으로 받아들일 일입니다. 기적은 설명이나 증명이 사실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일어난 사건을 현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제 부활의 좋은 소식이 주는 몇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예수님이 죽으신 사실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사실일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는 예수님이 완전히 죽었던 것이 아니라 피를 많이 흘려서 기진해 실신상태에 있다가 회복하게 되어서 다시 기운을 차리게 된 것이라고 합리적인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완전히 죽으셨습니다. 로마법에도 십자가에 못박으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완전히 죽기 전에는 십자가에서 내리지 아니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 당하신 사실은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는 여섯 시간 동안을 십자가 위에서 고통 당하셨다고 복음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이 와서 다른 사람의 발을 꺾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죽은 지가 오랜 것을 알고 다리도 꺾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피와 물이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쏟아지고 만 사실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피는 생명이므로 몸에서 피가 다 빠지면 살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그때 로마 병정이 사람이 죽었는지를 확인하지 않고 처리할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무덤으로 옮겨지고 그 무덤은 아주 큰 돌로 막아 버렸습니다. 여러 사람이 간신히 옮겨 놓을 수 있는 무거운 돌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로마 정부의 도장이 찍힌 것으로 인봉을 했기 때문에 누구도 여기에 손을 댈 때는 로마 정부에 대한 반역행위로 인정해서 무서운 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것 가지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무덤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직업적인 여러 군인들로 하여금 엄히 지키도록 했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운명하신지 사흘되던 날 새벽입니다.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따르던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라고 발라 드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새벽 미명에 무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이 여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무덤에 가면 큰 돌로 무덤 문을 막아 놓았을 것이고 거기에는 로마 군인들이 지키고 있을 터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리는 아무 힘이 없으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고,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거기에는 로마 군인들밖에 없을 터인데 그들이 허락이나 할까?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말해서 아무런 다른 의도는 없다고 설명하고    그들을 납득시켜서 성공하면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라고 발라 드려야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덤 가까이 갔습니다.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줄까?” 라고 기록했는데, 이 질문은 온 세상에 대한 슬픔을 자아내는 말이 되기도 합니다. 이 말은 온 인류의 한숨 소리를 표현한 말같이 들려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했고 예수님의 무덤에 찾아갔던 이 여인들은 해답을 얻었습니다. 저희들이 예수님의 시체가 묻혀 있는 무덤을 찾아갔는데, 그 무덤은 이미 비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덤에 누워 계시지 아니하시고 그가 말씀했던 대로 사흘만에 부활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세상의 질문에 대한 완전하고 시원한 답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일직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위해서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온 예루살렘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수들은 루머(rumer)를 퍼뜨렸습니다. 군인들이 졸며 잠자는 동안 예수님의 제자들이 돌을 굴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내다가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거짓말로 선전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예수님이 다시 사신 사실은 여러 사람들이 친히 본 일입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이 다시 사신 것을 본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다시 사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같이 있던 두 마리아도 보았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보았습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다락방에 제자들이 모여 있고 도마만이 없을 때 다시 사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도마가 있을 때 다시 나타나셔서 확인했습니다. 디베랴 바닷가에 있던 제자들에게도 나타났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는데 그 중에 태반이 그 편지를 쓸 때까지 살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습니다. 그 후에 바울 자신에게도 보이셨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음식을 같이 잡수셨습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환상이 아닌 것입니다. 주님 자신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시면서 손과 발의 못 자국을 그리고 옆구리의 창 자국을 손으로 만져서 확인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본 사람들에 의해서 이 믿기 어려운 사실을 증거하고 전파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변화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제자들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워졌습니다. 제자들은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자기들이 모인 집의 문을 모드 잠그고 있었습니다. 사실 빌라도의 정치 권력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다시 사신 주님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처음으로 주신 말씀이 “너희에게 평안이 있으라” 하셨습니다. 이 평안은 육신적인 평안이 아니라 두려운 생각을 없이 하는 마음의 평안이었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용기와 함께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담대해졌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비자 앞에서도 겁이 나서 주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한 비겁한 베드로도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난 후 새로운 능력을 얻어 이제는 때 제사장 앞에서도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담대하게 외치게 되었습니다. 
     
     무덤에서 주님의 시체를 찾으면서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가 기쁨에 넘쳐 뛰어내려와 외친 말이 무엇입니까? 부활의 좋은 소식, “예수 다시 사셨다”입니다.
     도마라는 제자는 다른 사람들이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났을 때 무슨 일로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는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할 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증거하면 할수록 더욱 의심스러웠습니다. “내가 직접 그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친구의 말이라고 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실증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다시 사신 주님이 의심하는 도마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평안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평안은 의심하는 사람의 마음에 주는 평안입니다. 의심하는 사람의 마음엔 평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도마는 예수님을 만져보고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의심이 확신으로 변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지요? 예수님이 다시 사셨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직접 만나 뵙지 못한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등지고 맥없이 엠마오로 향해 내려가다가 길가에서 어떤 행인과 같이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어 가니 하룻밤 쉬어 갈 생각으로 그 행인과 같이 여관에 들어가서 떡을 떼는 순간 예수님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어요.

     길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예수님인 것을 몰랐다는 것은 저희가 얼마나 실망했으면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할 정도입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이 두 사람은 소망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와 부활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어떻게 이처럼 달라질 수 있습니까? 불안과 공포에 싸여 있던 사람이 평안과 안심을 가지게 되고, 비겁하던 사람이 담대해지고, 슬퍼하던 사람이 기뻐하게 되고, 의심에 싸여 있던 사람이 확신을 가지게 되고, 실만에 빠져 있던 사람이 소망을 가지게 됩니까? 다시 사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변화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좋은 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도 그와 같이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장 20절에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첫 열매가 무엇입니까? 농사를 지어보신 분은 이 말씀의 뜻을 잘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첫 열매는 추수의 때가 온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첫 열매가 있으면 그 다음 열매가 뒤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9절에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언젠가는 죽음의 문을 통과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다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와 같이 부활하는 경험을 하게 되는 데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부활을 약속하십니다. 이 주님을 우리가 영접하고 그를 의지함으로 죄의 용서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뿐더러 부활의 몸으로 옷 입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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