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15:20-24)
  • 조회 수: 289, 2013.07.10 07:52:21
  • 지난 한 주 동안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짜증을 많이 낸 한 주였다. 그것은 입당예배와 임직식 준비 때문이었다. 

    공사는 마무리 공사가 일정보다 늦어지며 잘 되지 않고 임직식에 필요한 음향, 영상, 기타 비품 등은 준비가 되질 않고 있는 상황 등이 힘들게 했다. 
    밤 11시가 넘도록 현장에서 조명을 확인하고 공사를 확인하는 등으로 심신이 피곤할 때 속이 상했다. 

    여러분도 지난 한 주를 사시면서 피곤하고 힘들어서 짜증이 나고 속이 상할 때가 있었을 것이다.

    왜 이 기쁜 입당식과 임직식을 위해서 수고하면서 속이 상할까? 왜 사랑하는 식구들을 위해, 내 장래를 위해 사업과 직장 생활을 하면서 짜증이 나고 괴로울까?

    저는 가끔 사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지나고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라고 질문을 해보곤 한다.

    특히 주변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친다고 표현할 만큼 애쓰는 모습들을 보면 더욱 생각해 본다. 동시에 근심과 걱정 속에서 사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런 근심 걱정, 두려움속에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늙으면 무슨 의미, 재미가 있을까? 죽음 앞에 가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본 론
    주님의 죽음은 주님을 따르던 모든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슬픔이었다. 동시에 모든 것을 빼앗아 가버린 좌절이요 실패였다. 주님의 죽음으로 인해 주님을 따르던 자들의 모든 희망과 꿈은 사라져 버렸다. 

    희망과 꿈이 무너진 그곳에는 그것보다 더 깊은 슬픔과 좌절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오늘 본문에 보면 고전15:22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주님의 죽음은 모든 것을 빼앗아 버렸는데 주님의 부활은 모든 사람에게 삶을 주었다고 하신다. 삶을 주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1. 제대로 사는 삶의 의미를 주었다는 것이다.
    고전15:32-35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히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을 앎이니라

    부활을 믿게된 사도와 성도들은 삶이 변화되었다. 

    가. 삶의 목표가 달라졌다.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각각 자기 나름대로의 목표가 있었다. 성공이라는 목표가 있었고, 사회적인 대접을 받고 싶은 자리에 서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권력의 자리에 서고 싶은 목표가 있었다. 호기심에 혹은 병고침을 받기 위해,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주님을 따르던 자들도 있었다. 지적 욕구 충족을 위해 주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고 따르던 자들도 있었다. 민족 해방을 위해 주님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 따르던 자들도 있었다. 

    즉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부활을 믿게된 후에는 자신들을 버리고 주님을 위해 사는 성도가 되었다.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그는 지금까지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예수를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기꺼이 드리는 자가 되었다.

    나는 지금 사는 목적이 무엇인가? 나인가? 주님인가?

    나. 삶의 자세가 달라졌다.
    이들은 주님의 죽음 앞에 모두 좌절했다. 슬픔과 두려움에 빠졌다. 그들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다. 주님을 따르던 목표가 한 순간 무너지고 말았다. 그들은 흩어졌다. 각각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났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제자들처럼, 다락방에 숨어서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전혀 꿈도 꾸지 못했던 다시 살아나신 부활이라는 사건을 접하게 된다. 이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은 기쁨과 동시에 의심이었다. 고기를 잡으러 내려가는 베드로와 같이 부활이 실감나지 않았다.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주님을 믿을 수가 없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 믿어지지 않는 부분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이 40일 동안 계속 나타나시고 만나 주심으로 그들은 부활을 믿게 되었다. 이 부활을 믿게된 사도들은 삶의 엄청난 변화가 왔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 사도들, 여인들, 주님의 부활을 지켜 보았던 모든 사람들은 좌절과 두려움, 슬픔과 절망에서 희망과 기쁨, 용기와 순종의 삶으로 변화 되었다.

    두려움에 벌벌 떨던 베드로였지만 부활 진리를 믿게되는 바로 그 순간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러한 증언을 한다. "우리의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2).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 . 

    부활하신 주님은 만난 사람들, 이 사실을 믿는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 어떤 핍박과 어려움 앞에서도 담대하게 살게 되었다. 재산을 빼앗겨도, 직장에서 쫒겨나도, 그들은 주님과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사는 길을 택했다.

    히11:35-38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같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주셨다. 그것은 바로 기쁨과 감사, 소망과 담대함이다.

    주님의 부활을 믿게된 성도들은 슬픔이 기쁨으로, 속상함이 감사로 변했다.좌절이 소망으로 변했다.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변했다. 

    우리는 사는 의미를 깨닫고 삶 속에 기쁨과 감사가 있는가? 소망이 있는가? 담대함이 있는가?

    2. 영생을 주셨다는 것이다.
    요 5:24-2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이 첫 열매로 부활 하셨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자가 다시 산 첫 사건이다. 그리고 그 부활은 모든 사람의 부활로 이어진다. 

    부활은 첫 번째가 예수 그리스도요 그 다음이 그에게 붙어 있는 자들 즉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요. 셋째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 부활한다고 하셨다.

    첫 번째 부활인 예수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사망의 감옥에 가셔서 죄값을 지불하고 나오신 것이다. 그 결과 예수를 믿는 자들은 죄값이 없어져서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죄에서 영원히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확증시켜 주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죄, 즉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뿐 아니라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이어받은 원죄까지도 주님께서 다 그 빚을 짊어지시고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셨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신 것은 당신의 죄 값으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와 같은 죄인의 빚을 갚기 위해서 들어가신 것이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모든 죄가 없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누구든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예수님 앞에 나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죄용서를 받고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죄의 채무를 벗어버리고 의로움의 의복을 받아 입고 하나님의 앞에 부끄럼없이 설 수 있는 확실한 은혜을 주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할 때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것 없이 모두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이 부활하는데 그들은 심판의 부활 즉 영원한 멸망을 위한 부활이다. 

    결론
    사람은 죽음 앞에 모든 것을 상실한다. 죽음 앞에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진다. 죽음 앞에 모든 것이 무너짐으로 인한 슬픔과 좌절과 두려움을 갖게 된다. 

    이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주님이 부활하셨다. 주님의 부활은 주님 개인의 부활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첫 열매였다. 주님의 부활로 인해 주님을 믿는 자들은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 영생의 부활을 하게 되었다. 

    이 영생을 얻은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산다.

    동시에 영생을 얻은 성도는 삶의 의미를 깨닫고 산다. 왜 사는지를 알고 산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산다. 

    동시에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기쁨과 능력으로 산다. 감사와 담대함으로 산다.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굽히지 않고 떳떳하게 산다. 영원한 생명과 상급을 바라보며 속상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기쁨으로 감사하며 산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게 진정한 삶을 주셨다. 영생을 주셨다. 영원한 생명을 얻음에 대해 소망을 갖고 남은 생애를 살자.

    동시에 이 세상에서 살면서 제대로 사는 삶과 삶의 기쁨과 감사를 주셨다. 
    부활의 그 날을 기다리며 감사와 기쁨으로 살자. 담대함과 소망을 갖고 살자.

    이 부활의 아침에 여러분들의 삶 속에 주님의 부활로 인한 복 주심이 함께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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