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첫 열매(고전15:20-22)
  • 조회 수: 257, 2013.07.10 07:53:24
  • 오늘 아침, 발인예배를 드렸습니다. 비단 그분들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내며 오열하고 관을 막아서며 억지쓰는 유족들을 바라볼 때면, 그리고 그 떠나가는 장례행렬을 힘으로라도 막아보려고 용쓰는 모습을 볼때면, 그래서 눈물로 몸으로 막을 수 있는 죽음이라면 유족들과 함께 온몸으로 막아보고 싶은 바램이 간절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1. 인류역사에 부활의 열매가 없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인정도 사정도 없이 무정한 불청객입니다. 4대 5대 독자들도 느닷없이 데려가며, 어린 것들의 어미를 사정없이 데려가 버립니다. 죽음은 어떤 영웅도 뿌리칠 수 없을만큼 강력합니다. 죽음이 얼마나 무서운 지 죽음의 방문을 받은 사람은 거절하지 못하고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소처럼 끌려서 가야했습니다. 지금껏 그 누구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무덤의 문은 너무 강하고 견고해서 누구나 한번 그 안으로 들어가면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가죽옷을 해 입히며 영생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담은 하와의 이름을 "생명"이라 지었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을 생명입니다. 그때부터 인생은 영생을 꿈꾸었고 영생하는 나라를 희망했습니다. 영생해버리면 죽음을 보지 않아도 되고 사랑하는 이들과 영영히 이별하는 아픔도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에셀나무(상록수)를 심으며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영생하시는 하나님, 다시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으면 살아날 줄 모르고 죽음이 얼마나 깊은 잠인지 누우면 일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사라가 127세로 죽었을 때, 아브라함은 아내를 잃고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그 시체 앞에서 일어나"(창23:2) 장사 지내었다고 했습니다. 이삭은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창 24:69)고 했습니다. 사라의 죽음 앞에서 남편은 남편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상심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멀리서나마 바라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영생을 믿었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분명 다시 만난다는 것을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부활 이전의 사람들이기에 부활의 모습이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를 몰랐기에 더욱 더 상심했을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부활의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재국 집사님이 15년 정도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아이를 얻게된 부모들이 너무 기뻐서 아이 이름을 "기쁨"이라 지었습니다. 만약 아담과 하와가 15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면 아이의 출생을 미심쩍어 했을 것입니다. 아이는 태어날 때 어디로 나오는 것이며 어떻게 나오는 것이며... 등등을 몰랐을 것입니다. 지구상에는 그들 두 사람 밖에 없었고 아이를 낳는 것을 구경해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기에 아이가 생긴다는 것도 알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와가 가인을 낳았습니다. 아주 잘 생긴 아들입니다. 두 눈, 귀, 머리카락, 열손가락, 열 발가락... 그것은 인류역사상 첫 출산이었고 출생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이제 아담은 출산의 첫 열매가 되는 가인을 보면서 출생의 신비를 체득했습니다. 앞으로 누가 뭐라던 아담은 아내의 출산의 능력을 믿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인이 나왔기에 그 다음 자식도 출산할 것으로 믿었습니다. 가인이라는 아들의 첫 열매는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도 출산의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바울이 지금 고린도교인들을 상대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절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아담의 죄로 사망이 왔습니다. 아담의 죄는 두가지를 건드려 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아서 영원히 사는 생명".
    죄가 영생할 수 있는 기능을 건드려 버리니까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 같이 죽게되었고 마치 유산되는 아기들처럼 죽은 후에는 되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아담 이후의 인류는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볼 때 믿음의 사람들조차 `부활은 있는 것일까?' `사람이 부활한다면 어떤 식으로 하는 것일까?'
    궁금했지만 자기의 생애에 부활의 열매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의아스럽게 여기며 한편으로는 기대도 하면서 죽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죽었고 일어나지 못했는 데 예수님께서는 왜 부활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에게는 죄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셨기에 인간의 모든 육신 그대로 입고 나오기는 했지만 죄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죽음이 삼켰고 돌무덤이 안에 가두었습니다. 인간 역사 속에 들어왔다 퇴장한 모든 사람들을 삼켰던 죽음이 예수님을 삼킨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블랙홀 속에 빠져들어간 것입니다. 죽음의 블렉홀은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다 감당하셨기에 죄인 중의 죄인의 모양이었고 그 죄의 맛스런 모양을 보고 덥썩 삼켰지만 완전히 삼킬 수는 없었습니다. 삼켜보니 죄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죽음은 죄가 없는 사람은 삼킬 수가 없습니다. 마치 큰 고기가 요나를 삼켰지만 삼킬 수 없어 뱉어내었던 것처럼 죽음도 예수님을 뱉어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음에서 돌아왔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이제야 사람들은 분명히 알게되었습니다. 사람들의 육신의 죽음은 열매맺지 못하는 꼭지처럼 땅에 묻히고 떨어져버리는 게 아니라 예수님처럼 다시 살아날 영생의 육체임을 알게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부활하심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얼일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테이프를 끊었으니 우리도 부활할수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신경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3. 부활의 희망으로 고난을 견디어냅시다. 

    어떤 단체에서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설문을 작성했습니다. 
    "신앙이 언제 가장 힘이 되었는가?"
    그 답은 죽음 앞에서였다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신앙이 없어도 견딜 수 있겠는 데 죽음 앞에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죽음의 쇼크가 강하다는 것이겠지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온갖 고초 당하시고 조롱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어서 장사되었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우리의 죽음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죽게되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창조의 권능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죽음이 그의 손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분이 죽음의 권세 속에 놓여있습니다. 죽음이 그를 삼켰고 그분은 무력하게 보이리만큼 체포당하고 죽어가셨습니다.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이며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까? 

    우리는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권력을 휘두르던 분들입니다. 자기들 말 한마디로 사형에 처할 사람들도 특사로 면죄해 줄 수 있는 권력을 쥐었던 분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자신들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얼마나 못견디었을까요? 일반 잡범이나 특수 사범들의 입장과는 다릅니다. 예수님 역시도 죽음은 너무 견디기 힘든 고통입니다. 영원전부터 지금까지, 지상에 내려오신 33년 동안을 잠시도 하나님에게서 그 시선이 떠나있지 않으셨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에게는 너무도 힘든 3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덤 속에서 잘 견디셨습니다. 부활을 아셨고 제 3일째 하나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실 부활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자 제자들은 절망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너무 힘들었고 두려웠고 허망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움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이 주는 가장 큰 고통은 바로 그리움입니다. 제자들은 죽음의 절망을 부활의 소망으로 견디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부활의 첫 열매를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꽃으로 환하게 그들 앞에 나타나신 것을 보았습니다. 

    (예화)
    어느 곳에 꽃파는 할머니가 살았습니다. 그 할머니는 항상 웃는 얼굴로 꽃을 팔았습니다. 누가 꽃 한송이를 사며 말했습니다.
    "할머니 너무 행복해 보이네요?"
    "행복하다마다요. 만사형통이랍니다"
    "근심 걱정을 잘 처리하시나보지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던 날은 온 세상이 가장 슬펐던 날입니다. 그러나 사흘만에 부활하셨어요. 기쁜 날이 되돌아온것이지요. 그래서 나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사흘만 꾹 참고 기다려봅니다. 그렇게 기다리다보면 신가하게도 모든 일이 제대로 풀리고 제 자리로 돌아온다오. 이 지혜가 나를 웃도록 만들고 행복하게 만든다오" 

    그래요!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위해서도 천둥은 먹구름속에서 그렇게 운다는 데 예수님의 부활, 그것도 인류의 첫 부활을 얻기위해서는 3일 간의 죽음의 고통, 선생님을 잃어야 하는 고통이 요구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오늘 여러분의 삶이 힘드시지요? 예수님처럼, 그 꽃파는 할머니처럼 3일만 참으세요. 3일만 참고 기다리는 심정으로 살아가세요. 장사한 지 3일만에 부활의 기쁨을 보았듯이 오늘 고통을 잘 이겨내는 이들은 새로운 부활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 결 론 >

    영국의 설교가 생스터는 고령에다 전신마비로 말도 제대로 못하고 누워서 살았습니다. 부활주일이 돌아왔을 때 그는 딸에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오늘이 부활절이구나. 부활절 아침에 일어나서 `예수가 부활하셨다!' 한번 큰 소리로 외쳐보고 싶었는데 아무리 부르짖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구나. 기가막힐 것 같아. 그러나 딸아, 이보다 더 기가막힐 일이 있다. 그건 목소리가 있는 데 `예수 부활하셨다!' 소리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일이 왔을 때 부활신앙으로 부활의 소망으로 인생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부활하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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