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첫열매 (고전 15:20-24)
  • 조회 수: 183, 2013.07.10 07:54:32
  •  오늘 부활주일을 맞으면서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영육 간에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지난 고난주간에 모든 구역들이 연쇄촛불기도회에 참여하여 열심히 기도하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고난주간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우리에게 주는 큰 기쁨은 죄의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큰 기쁨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누구라도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은 사랑하는 식구들과 친지들과 그 동안 쌓아 놓은 모든 것들을 일시에 잃어버리는 것이요, 죽음은 무서운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기 나이가 연노하신 분들 중에 쩍하면 '빨리 죽어야지. 왜 이렇게 목숨이 모질어서 오래 사는지 모르겠다. 오늘밤이라도 칵 죽었으면 시원하겠다.'고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 분에게 가서 '할머니, 여기 죽는 약을 가져왔습니다. 소원대로 빨리 잡숫고 돌아가세요.'라고 한다면 펄펄 뛰시면서 '이 놈이 날 죽으라고 한다.'고 역정을 내실 것입니다.

     나이가 많은 분이나 젊은 분이나, 수양을 오래 쌓은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건강한 자나 병든 자나, 큰 인물이나 소시민이나 죽음 앞에는 누구나 다 두려워합니다. 어느 분은 죽음 앞에서 벌벌 떨면서 고함을 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도 누구 하나 죽음을 피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죽음은 우리들 누구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이 죽음처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누구나 다 죽음 같은 것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고 있다'고 했고, 레만 이라는 분은 '죽음은 모든 사람의 문을 두들긴다. 황제의 문도, 거지의 문도 예외가 없다'고 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어느 누구도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신선(神仙)을 공부하던 노자(老子)도 한 줌 흙으로 돌아갔고, 성자라는 공자(孔子)도 자기의 죽음이 임박한 때에 뜰을 거닐면서 태산이 무너지는 것같다고 탄식했다고 하며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던 당대의 세력가 진시황도 죽음이 부를 때에는 피해지 못했습니다. 나포레온이라는 영웅도 죽을 때 '나는 불행했다. 프랑스 군대, 조세핀'하면서 초라하게 죽었습니다.
     회교(回敎)를 창시한 마호멭의 묘지는 일년에 수백 만 명의 회교 순례자들이 찾고 있는데 그 묘지에 가면 루비,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로 장식해서 회교도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지만, 이미 썩어져 아무 흔적도 안 남은 자의 무덤은 아무리 보석으로 장식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더 한심스러운 것은 우리 인간이 죽은 후에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한 분만이 그 두려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죽은 후에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분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 후에 영생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요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요11:25-2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시면서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의 생전에 많은 자의 죽음을 해결하기도 하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향해 손을 잡고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라고 명하시자, 12살 짜리가 살아났고,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서 모든 사람이 슬피 울 때에 예수님은 모든 자에게 울지 말라고 하신 후 손을 대시고 "청년아, 내기 네게 명하노니 일어나라"라고 하시자 죽었던 자가 일어나 말도 하는 사건이 생기었습니다.

     또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의 오빠 나사로가 죽어서 장사지낸 지 3일 만에 예수님은 오셔서 무덤의 돌을 옮기라 하시고 명하시기를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시니 시체가 수족을 동인 채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장면이었을까요?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자신이 죽으신 후에 반드시 3일 만에 부활할 것은 강조하셨습니다. 어느 의미에서 앞에 이야기한 야이로의 딸이나 나인성 과부의 독자나 나사로는 그냥 죽었다가 살은 것에 불과하다고 기독교 반대자들이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온 몸에는 매를 맞으시고 양손과 양발은 못이 박히고 옆구리는 창으로 찔리어서 모든 피, 모든 물이 다 빠져나갔고 3일 동안 무덤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과학적으로 사신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무덤에서 문을 여시고 부활하신 후에, 11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고 500명의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게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요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영만이 산다는 것이 아니라 육신도 부활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 성도들이 부활할 때에 어떠한 몸으로 부활합니까? 
     1.부활하신 예수님과 똑같은 몸으로 부활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과나 배, 복숭아 등, 과수나무를 심으면 몇 년만에 첫 열매가 열릴 때는 적게 열립니다. 그러나 그 다음 후에는 많이 열립니다. 그런데 첫 열매와 똑같은 열매가 매년 열립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죽었다가 부활할 때에는 예수님과 같은 몸이 되므로 공중으로 새처럼 나르기도 하고 벽을 통과하기도 하는 등, 신비한 몸을 입게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에 빌3:21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2.우리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할 때는 지금의 몸과 비슷한 몸을    입습니다. 
     우리 성도가 죽어 무덤에 묻힌 다음, 주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의 몸을 입는 데 그 몸의 모습이 우리가 무덤에 묻힐 때 그 형체대로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데살전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몸 그대로 보전되었다가 부활되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어느 분은 '그러면 우리가 키가 작거나 못 생겼거나 얼굴이 얽었거나 한 대로 돌아갔으면 부활할 때도 그 몸 그대로인가?'라고 물을 것입니다. 또 어느 분은 '무덤에 묻힌 자는 그대로 부활되지만, 화장하여 불에 태운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라고 물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여기 호박이나 콩을 땅에 심으면 씨의 껍질은 썩어 없어집니다. 그러나 그 속에 배아(胚芽)라는 생명체가 있어서 그것이 새몸을 입고 지상으로 싹을 내고 꽃을 피는 것처럼 인간은 매장했거나 화장했거나 육신은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있는 영이라는 생명체가 새 몸을 입고 부활하게 됩니다. 호박을 심으면 호박이 나오고 밀을 심으면 밀이 나오듯이, 내 모습을 옛 육신은 없어지지만 영 안에 이미 입력되어 있는 몸의 모양대로 부활하되 최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나 꽃이 여러 가지로 그 조화된 아름다움이 최고인 것처럼 천국에서도 가지가지 인간의 모습이 최고의 아름다움을 나타낼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3.부활할 때에 우리 성도들은 썩지 않는 몸, 신령한 몸, 영화로     운 몸을 입습니다.      
     고전15:42-43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입는 부활의 새 몸은 다시 아프고 병들고 약하고 썩어지는 몸이 아닙니다. 또한 그 육신은 정욕과 시기, 혈기와 자만으로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는 몸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의 부활하셔서 첫 열매가 되신 것처럼 우리도 반드시 그런 영광스러운 몸을 입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자, 그러므로 죽음에 대해서 도무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늘밤에 우리가 죽음에 임한다 할지라도 두려워하는 대신 우리 할 일은 예수님께 붙어 있는 자, 예수님의 줄기에 붙어 있는 가지가 되어 있으면 됩니다. 고전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라 했습니다.

     우리가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으로 주님께 붙어 있는 삶을 살다 보면 어느 날 죽음이 문 앞에 이를지라도 주님을 통해서 영원의 세계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죽은 끔직한 날에도 하늘을 우러러 볼 때에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발견하고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감격적으로 외치면서 순교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요한 웨슬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고 고백했고, 마틴 루터는 '우리 하나님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하며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어제 이현용 집사님이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셨습니다. 62세 나이로 돌아가셔서 너무나 아쉽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위로가 되는 간증은 이현용 집사님은 어느 날 난데없이 부인되시는 김길지 권사님에게 '주님이 열흘 있다가 오라고 하신다'고 하시더니 과연 그 말을 한 다음, 10일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죽어도 내일은 주님의 품안에 있게됨으로 우리 기독교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 모두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처럼 우리도 어느 날인가 분명히 부활할 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못 박히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우리도 어느 날 신령하고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믿고 살든지 죽든지 주님께 더욱 붙어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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