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자가 위에서(눅 23:26-46) [고난주간]
  • 2013.09.02 08:47:59
  •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의 마지막한  주간은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한 수난의 한 주간이었으며 부활하여  죄와  사망을 이기신 승리의 시간이셨습니다. 한 주간의 스케듈을 살펴보면 주일에는 예수님께서 아직 아무도 태워 본적이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하신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게 됩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야로 믿어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찬송하며  그를  영접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마21:1-11, 요12:12-19)                                  
                            
    월요일에는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아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 모의하기 시작합니다.(마21:12-13.눅19:45-46)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며 서기관과 대제사장, 바리새인들의 간교한 질문들에 답변하시며 성전의 파괴와 대환란, 종말의 징조들, 제자들의 박해받을 일과 재림 등을 예언하시며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으라"고 당부하십니다. 가룟유다가 유대인에게 예수님을 팔기로 결심한 것도 바로 이날이었습니다.(마26:1-5, 막14:1-11)                      
         
    목요일은 유월절 저녁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가정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시려고 제자들에게 준비할 것을 명하시고 그 때에 서로 누가 터 크냐는 논쟁을 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며 서로 섬겨야 할 것을  친히 보여주셨고 배반자 유다를 지적하시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세번 예수를 부인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 날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모든 인류의 죄의 잔을 받으십니다. 유다가  무리와 함께 올라와 예수님을 체포당하고, 그 밤에 대 제사장 가야바에게, 빌라도에게, 헤롯에게, 다시 빌라도에게 넘기어지게 됩니다. 이 때가 아마도 금요일 새벽쯤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마26:47-56, 요18:3-13)         
         
    금요일에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십니다. 유대인들의 요구로 바라바는 놓임을 받고 대신 예수는 사형선고를 받아 그날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고 아리마데 요셉의 새무덤에 장사 지내게 되십니다.(마27:1-2, 요18:28-38)                                   

    그리고 주일 새벽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에게 보이시고,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또 갈릴리 바다 등에서 여러 제자에게 나타나 예언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보이시고 증인의 사명을 주신 승천하셨습니다.(행8:1-7, 요22:11-17)  예수님의 한 주간을 생각하며 우리의 삶을 주님 닮은 삶을 살려고 힘써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이 시간은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Ⅰ.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예루살렘 거리는 완전히 폭동의 도시로 변하고 군중들의 입에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소리가 절규처럼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군중들의 요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가 없는 줄을 알면서도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허락합니다. 그리고 영문 밖 골고다 언덕에서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 때의 그 모습은 마치 힘없는 나약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만백성의 죄를 위해서 버리시는 것입니다.

     이제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님의 눈에는 갈릴리 바닷가 한눈에 보였습니다. 고기 잡는 어부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던 갈릴리! 그 평화로운 갈릴리를 바라보시던 예수님께서 십자가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아래를 쳐다보십니다. 거기에는 병정들이 자기가 입었던 옷을 제비뽑고 서로 자기가 가지려고 몸싸움을 하는 가련한 모습이 보입니다. 그 옆에는 관원들이 조롱합니다."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니 그리스도여 든 너도 한번 내려와 보라"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라고 십자가에서 첫 마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긍휼의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자기를 생각하기 전에 상대방을 생각합니다. 자기의 영광을 생각하기 전에 상대방의 가련함을 생각하고 기도하는 불쌍히 여기는 자입니다. 은혜 받은 스데반을 보십시오!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무릎을 끓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7:60)라고 하지 않습니까! 바울도 그랬고(롬9:3),모세도 그랬습니다.(출32:32) 은혜 받은 아브라함은 소돔성의 멸망을 위하여 얼마나 안타깝게 호소하였습니까! 우리 대선의 성도 여러분도 힘써 작정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니 은혜 받은 자들이 되시고 그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못 된 짓을 하여도 철저히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여야 할 텐데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고 멸시한 죄가 얼마나 큰 죄이겠습니까! 이런 죄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을 용서하고 있습니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며,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 뺨도 돌려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주며,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가 주라"고 가르쳐 주시더니 주님은 이것을 십자가에서 실천하시고 계십니다.(마5:39-42)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신앙은 성경 지식이 아니요, 신앙의 경륜이 아니요, 교회에서 어떤 직분이 증거가 아니요, 그 인격과 삶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남을 등쳐먹고, 사기 치던 삭개오가 주님을 만났을 때에 자기의 재산의 사분 일을 가난한 자를 위해 드릴 것이며,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기뻐하셨습니다.(눅19:1-10) 우리는 지금도 우리의 무서운 죄를 용서하시고 축복해 주시는 은혜를 깨닫고 우리도 남의 죄를 용서해 주고 축복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알지 못하면 무슨 짓인들 못하겠습니까! 알면 그렇게 행하겠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는 말씀의 의미를 깊이 마음에 새겨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Ⅱ.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갈보리 언덕에는 십자가가 세개가 서 있습니다. 가운데 십자가에는 예수님께서 달려 계시고, 그 좌우 편에는 行惡者 둘이 달려 있습니다.  마태와 마가는 이 사람들을 강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아직도 십자가 밑에서는 조롱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 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 와 보라!"(마27:40)라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희롱하고 대제사장도 서기관도 장로들도 희롱합니다.

    마치 이 모습을 보니 예수님께서 40일 금식 기도 후에 주리셨을 때에 마귀가 시험하던 말이 생각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 든 이 돌로 떡이 되게 해서 먹으라!"(마4:4) 한 그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죽은 지 사흘이나 되어 다 썩은 나사로를 살게 하신 분이신 데 말입니다. 바람도 파도도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신 데 말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지금 그것이 급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처리 할 때에 어떤 일이 더 중요한 지를 보시고 그 다음에 어떤 것이 급한지를 보시고 일의 우선 순위를 잘 지켜보십시오, 그래서 중요하고 급한 것을 먼저 생각하고 처리하십시오, 반드시 성공자가 될 것입니다.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실패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신이 그렇게 할 때에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겠습니까! 
         
    이제는 십자가 좌우에 있는 강도들을 보십시다. 마27:44에 보니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본래부터 십자가 오른 편에 있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요, 왼편에 있는 사람은 악당 중에 악당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라는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왼편(성경에 왼편에 있는 강도라는 표시는 없지만)에 있는 강도는 어떤 태도를 취하였습니까!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두사람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왼편의 강도는 끝까지 예수를 조롱하고 거역하고 믿지 않아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른 편에 있는 강도는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 주님과 함께 낙원에 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인류는 이렇게 두 종류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저주하는 자이든지! 아니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얻든지 입니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왼편 강도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들은 죽음의 때를 만난 것입니다. 인생의 종착역에 다 달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삼각한 마당에서도 회개를 하지 않습 니다. 끝까지 예수를 비방하고 욕을 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오른 편의 강도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 오른 편의 강도는 처음에는 몰라서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 멸시했습니다. 우습게 알았습니다.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상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주님을 알았습니다.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왼편 강도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 아니고, 오른 편 강도는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이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땅에 나기도 전에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택한 자가 되어 구원함에 이르렀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입니까!(롬9:7-18)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해 주십시오," 똑 같은 장소에서 똑같이 주님을 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예수를 조롱하고 저주합니다. 어떤 이는 그 예수님이 길 인줄 알고 그를 의지합니다. 오른 편 강도는 예수 외에는 구원받는 길이 없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하실 것입니다.

    Ⅲ.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

    지금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높이 달려 있습니다. 그 아래에서 울고있는 여인들이 있을 뿐입니다. 죽기까지 따르겠다던 제자들은 보이지 않고 유일하게 어린 요한이 있을 뿐입니다. 역시 여자들은! 아니 어머니는 용감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위대합니다. 그 곁에 있는 여인들은 ".....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서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막15:40, 마20:20, 막16:9, 눅8:2-3, 눅7:36)

    이때부터 여성도들이 큰일을 한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 목사도 필라델피아에 있는 장로회 여전도회에서 파송을 하고 그들의 소유로 선교사와 한국의 교회들을 섬겼던 사실을 우리 한국 교회는 잊어서는 안될 것이며, 그것을 우리가 배워야 할 것입니다. 이 여인들은 일만 달란트 빛을 탕감 받은 종과 같은 엄청난 은혜를 받은 줄 알기에 이렇게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물질만 드림이 아니라 지금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 당하시는 현장에 "지금"함께 있습니다. 교회는 이런 지체들을 통하여 주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여인들과 같이 예수님을 끝까지, 변함없는 사랑으로 예수님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마리아는 여인으로서, 어머니로서 참으로 불행한 여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원치 않게 임신하여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늘 받아야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남편 요셉에게 평생 미안한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들의 이해하지 못할 행동과 말로 인해 마음 고생이 컸을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배신당하는 아들이 마음 아팠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아들을 앞서 보내야만 합니다. 옛말에도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는데 지금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양손과 발에 쇠못을 받고 겉으로 피를 흘리고 계시지만 어머니 마리아는 지금 마음속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눅2:35에 시므온이 예언하기를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라고 말한 것은 마리아의 고통에 대해서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십자가 밑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껏 침묵하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밑에 애처롭게 눈물짓는 마리아를 향하여 입을 여십니다."여자여 보소서 아들입니다." 이 말씀은 제자 요한을 가리키며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제자 요한에게 말합니다."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말하셨습니다. 다른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이 말씀으로 충분합니다. 요한은 예루살렘에 있는 시온 언덕에 자기의 집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요한은 마리아를 11년 동안 모시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평안히 세상을 떠난 후에야 온 세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떠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Ⅳ.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아마도 그 때가 제 구시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오후 3시쯤입니다. 결국 주님은 6시간동안 십자가에 달려 계신 것입니다. 고통을 생각하면 6시간도 길지만 개중에는 여러 날 동안 십자가에 달려 있다가 죽는 사형수도 있다고 합니다.                                    

    오후 3시쯤 되었을 때에 예수님이 크게 소리지르셨다고 말씀하십니다."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아마도 그 시간이 십자가의 고통이 극에 달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제6시부터 온 땅이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제구시까지 그 어두움은 계속 되었습니다.이 현상을 보고 주위의 사람들은 긴장하였을 것입니다. 그들도 크게 두려워하였을 것입니다. 무슨 일이 꼭 일어 날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긴장의 세 시간입니다. 이 사실도 이미 시편 22편에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십자가에 일곱 마디 중에 네마디가 기도였다는 것은 예수님은 기도의 주님이신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으시는 것은 우리의 삶 중에 이렇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교훈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큰 고통은 육신적인 고통이기보다는 영혼의 고통이요, 정신적인 고통입니다. 버림당하는 고통의 절규인 것입니다."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버림받는 일이란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요즘 아이들이 왕따 당한다는 말이 많은데 그리스도인이 1/4이 된다는 이 나라에서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버림받는 일은 참담한 일이지만 가장 큰 참담함은 창조주 하나님께 버림당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일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 외침은 우리의 죄가 얼마나 더러운 것인가를 잘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정결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기뻐하지 않으시며, 죄를 미워하시며, 회개하지 않는 자를 징벌하시려고 칼을 가시는 분이시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시7:11,12) 그분 앞에서 호리라도 죄는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죄를 품고있는 자마다 하나님께서 주님을 외면하시듯 외면하실 것입니다. 그분의 버림받으심은 내대신 버림받으신 것입니다.

    Ⅴ. 내가 목마르다!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를 외치시던 주님께서 이제 다시 다섯 번째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목마르다!"(요19:28) 이는 저주스러운 지옥의 고통을 맛보신 후에 타는 목마름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까지 얼마나 많은 상처와 고통을 받으셨는지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입니다. 그리고도 지금 거의 여섯 시간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습니다. 주님의 몸 안에 있는 모든 피가 다 빠져나갑니다. 쇠못으로 인한 독이 전신에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 입술은 바짝 바짝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분은 생수의 근원이시오, 부요하신 분이요, 존귀하신 분이신데 지금 목마름이 웬 일입니까!  이렇게 궁핍하고 곤고하게 되신 것은 우리 모두를 위함이셨습니다. 그분이 가난하게 되시므로 우리가 부요하게 됩니다. 그분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을 지옥의 목마름을 그분이 대신 맛보신 것입니다. 히2:18입니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지옥의 목마름은 무서운 것입니다. 눅16장에는 부자가 지옥에 가서 타는 목마름을 어찌 할 수 없어 나사로에게 물 한 방울을 청하는 것을 보십시오! 거기는 불도 꺼지지 않고, 구더기도 죽지 못하는 곳, 사람도 죽을 권리를 박탈당한 곳이 지옥입니다. 꺼지지 않는 불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는 이 부자와 같이 우리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데 주님이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이 뜨거운 저주의 지옥과 상관없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목마름은 누구든지 저를 믿지 않는 자가 받을 진노의 저주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치 않는 사람이 받을 보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들은 하나님을 떠나 살게 되면 하나님 없는 목마름이 있음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실패하고 병들고 헐벗고 굶주리며, 외국에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되어 고생을 하며 목말라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였습니다. 그것은 너희가 "....생수의 근원이 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살아 보겠다고 자신을 믿고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판 것이니라."(렘2:13)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떠난 것이 절대적인 갈증의 원인이라는 말씀입니다. 

    인생은 주님이 주시는 물을 마실 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이 됩니다.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요7:38-39)                         

    Ⅵ. 다 이루었다.(It is finished)

    요19:30에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패배의 고백이 아니고 실패의 고백이 아니라 승리의 고백인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게 하시기 위해서 목숨을 거신 분이십니다.(마26:54) 탄생의 예언을 비롯하여 모든 약속의 성취를 다 이루심이요,  인류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성취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우리를 정죄에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것을 이 말씀 속에서 알 수 있습니다. 

    Ⅶ.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나이다.

    이 말씀은 눅23:46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양자의 영인 성령을 받은 자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롬8:14-16)  영혼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순간에 그의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였습니다. 주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영혼을 부탁하신 것은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모든 것을 부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영혼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간증입니다.(욥1:21, 눅12:18-21) 그리고 보면 내 영혼의 주인도, 물질의 주인도, 내 생명도 다 주인은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 그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신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 살 때에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여 구할 것은 구하고, 찾을 것은 찾고, 두드릴 것은 두드려서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다 주님 오라 하실 때 우리의 영혼도 주님께 맡기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댓글 0 ...

분류  제목  등록일 
고난주간 2013.09.02
고난주간 2013.09.02
고난주간 2013.09.02
고난주간 2013.09.02
고난주간 2013.09.02
고난주간 2013.09.02
고난주간 2013.09.01
고난주간 2013.09.01
고난주간 2013.09.01
고난주간 2013.09.01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