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태복음 06:16-18/ 금식훈련 [사순절 시리즈]
  • 2014.03.22 17:05:00
  • 오늘부터 사순절을 마치기까지 경건훈련의 주제들을 한 가지씩 두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순절에는 많은 성도님들이 금식기도를 통해 믿음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순절 기간 동안은 하루에 한 끼씩의 금식을 하며 그 식사비용을 구제헌금으로 돌리자는 의미에서 하루 한 끼 금식운동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식기도에 대한 나름대로의 규명이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오늘은 금식기도에 대해 알아보고 금식기도의 유익과 금식기도의 방법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신앙생활의 한 부분으로 복음서에서 금식기도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으며, 구약에서도 선지자를 통하여 참된 금식기도의 의미와 정신에 대해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앙의 활동으로 헌금, 구제, 기도... 이런 것들을 주제로 다루셨던 것처럼 금식기도도 똑 같은 주제로 다루고 있음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로만 캐톨릭에서는 하나님께 나아가며 자신 스스로를 절제하는 방법 중의 가장 흔한 것으로 이 금식기도를 상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타종교에서도 이 금식이 자기절제의 훈련으로 많이 권장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 이후로 개신교에서는 형식적 경건을 많이 배척하다 보니까 금식기도는 신앙의 활동이나 훈련으로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특별히 기도의 응답이 절실한 몇 몇 그리스도인들만이 사생결단 식으로 금식기도를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가르치는 금식기도의 의미는 과연 무엇입니까?


    1. 금식은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겸허히 낮추는 행위입니다. 이사야 58:3-5...“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가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이 구절에서 보면 금식은 자기를 괴롭게 하는 날입니다. 자기를 괴롭게 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고, 그 죄가 힘들고, 아픈 것이라는 것을 신앙고백으로 드리는 것이 금식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금식은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는 행위입니다. 왜? 스스로가 죄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2. 초대 교회부터 자기 육체와 싸우는 방법의 하나로써 금식을 장려합니다. 육체의 욕망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바로 식욕, 배고픔입니다. 우리가 어쩌다가 한 끼 모르고 지나가지만 사실 건강한 사람은 그 한 끼를 넘겨도 바로 육체가 반응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식기도야 말로 가장 큰 인간의 욕구를 다스리고자 하는 신앙의 도전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40일 동안 금식을 하신 후 사탄의 시험에 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탄의 시험 중 하나가 식욕이 아니었습니까?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로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이 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결국 신앙이란 인간의 욕구를 잠재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인데 그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이 금식기도란 것입니다. 그래서 금식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한 많은 분량의 성경을 읽습니다. 지금은 없지만 한 20년 전만 하더라도 동래 식물원 가까이에 금식 기도원이 있었습니다. 한 주간 동안 그 금식기도원에 들어가 금식하면서 성경을 일독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는데 많은 그 당시 분들이 금식을 하면서 성경을 완독했던 것으로 소문이 났습니다. 사실 금식을 하면 잠도 잘 오지 않기 때문에 기도와 성경 읽기에 많은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금식기간 동안 성경을 많이 읽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사순절에는 금식을 통하여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스스로 제어해 보는 것이 참으로 유익한 경험이 될 줄로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는 것”은 혹시라도 자신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버림이 될까 하는 염려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품을 힘입기 위해 육체적 정욕은 빼고, 신앙의 열정을 더욱 더 강하게 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금식기도훈련을 자주 해야 할 줄 믿습니다.


    3. 금식은 하나님께 나의 기도가 절실하고, 절박함을 호소하는 행위입니다. 더 나아가서 금식기도는 ‘내가 생명을 걸고 지금 기도합니다’ 라는 의미도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많은 인물들은 아주 중요한 일을 앞두고 금식기도를 하였습니다. 에스더 왕비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금식기도를 해 달라고 하면서 자신도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에스더 4장 15-16절에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그리고 느헤미야도 이스라엘의 황폐화된 소식을 듣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기도는 성경에 수도 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식음을 전폐한 간절한 기도, 부르짖는 기도.... 이런 기도는 즉각 응답을 받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을 만나 하만을 멸하고, 모르두개를 달려고 준비한 장대에 하만을 달았습니다. 느헤미야는 금식하여 기도한 결과 절대 권력자의 지지로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일을 성공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이룰 수 없었던 큰 일, 위대한 일들이 목숨을 거는 절실한 금식기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혹시 지금 당장 이루어야 할 일들이 있습니까? 정말 금식하며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금식기도의 큰 장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식기도는 위험성이 다분히 있습니다. 어떤 위험이 있습니까?


    1. 자기 과시용으로 금식기도를 하는 경우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에게도 금식기도는 굉장한 신앙의 덕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신앙의 덕복을 스스로 나타내기 위해 유대인들은 자주 금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금식기도를 할 때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고자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금식하는 것을 표시내고자 얼굴에 수심으로 가득 채우고, 모습은 수척해보이도록 단정치 못하게 해서 다닙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들 마다 왜 그러냐 하면 금식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말을 준비하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아, 저 사람은 굉장히 경건한 사람이구나... 하는 존경심을 나타내겠지요. 그래서 주님은 그것을 금하신 것입니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깨끗이 씻고, 수염을 깎고... 금식하는 티를 보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듯 금식에 대해 경계하신 것은 은혜가 크고, 복이 많을수록 거기에 틈타는 마귀의 역사도 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신앙에 대한 과시욕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과시욕이 참 큽니다. 배우면 배운대로 과시하고, 있으면 있는대로 과시하고, 뭐든지 과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신앙, 경건... 이런 것들도 과시하려는 욕망이 있어서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감당하기 힘든 것이 경건의 교만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다 경건의 교만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이런 점에서 금식기도는 신앙의 큰 덕목이기 때문에 자기과시의 유혹이 많으니까 이런 점을 주의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 과시를 막기 위해 철저하게 죄를 자복하며, 애통하는 심정으로, 겸허한 마음과 태도로 금식할 때 그 금식은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큰 은혜와 복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2. 자기가 감당할 이상으로 금식기도 함으로 스스로가 유혹에 빠지고, 위험에 처하기도 합니다. 금식은 일종의 서원기도입니다. 금식기도를 하는 분들은 흔히 금식기도 하기 전에 나는 3일, 나는 1주일, 나는 한 달... 이런 식으로 정하고 금식기도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것은 스스로의 결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결정을 하고서 스스로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여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어기게 되죠. 그것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감당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득 불 하다가 탈이 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40일 금식기도를 하다다 돌아가신 분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금식기도를 하려면 경험하자들과 의사들의 지도를 받아 해야 합니다. 금식기도 하다가 사고가 나면 오히려 덕스럽지 못하고, 아니한 만 못한 결과가 되죠.  


    하여튼 금식기도는 장점이 큰 신앙의 행위입니다. 이걸 잘하면 우리에게 오는 유익이 엄청납니다. 단 그만큼 큰 위험도 도사리고 있는 셈이죠. 무엇이든 작은 가치는 작은 위험이, 큰 가치에는 큰 위험도 함께 도사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이 금식기도를 잘 준비해서 하게 되면 우리에게 여러 가지 유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순절에는 한 끼 금식 이것 하나라도 제대로 실천하여 영육 간에 큰 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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