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난을 이기는 능력(욥 23:10-17) [사순절 시리즈]
  • 2014.04.12 17:17:35
  • 이 세상에 아무 어려움도 겪지 않고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없습니다. 수고 없이 될 수 있는 것은 옥토 밭에 자라는 쓸모없는 잡초일 뿐입니다. 가만히 두어도 잘되는 것은 죄 된 것, 나쁜 것들뿐이죠. 오늘은 고난주간을 여는 종려주일입니다. 고난의 잔을 마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님을 위해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맞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주님께서는 종려주일을 통과하여 고난의 절정기라고 하는 고난주간을 거쳐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하여 영광의 부활새벽을 맞이합니다. 시편 110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원수들이 내 발밑에 깔리는 발판이 되기까지...." 주님께서는 길이 참으시면서 고난의 잔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 결과로 인류를 죄의 사슬로 동여메고 온갖 모략질을 일삼는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고 인류를 향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승리를 위한 이 십자가의 고난은 오직 주님만이 유일하게 감당하실 수 있기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난 주간을 맞는 우리 모두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크고 작은 고난들을 고난 그 자체로 생각하지 말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축복의 문을 열기 위한 그 동안의 수고의 여정이었음을 기쁨으로 고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는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한 일입니다.


    지난 주간 새벽기도를 통해 우리는 요셉이 자신의 고난의 여정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보았습니다. 45장 5절에서 요셉이 그 원수 같은 형님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사건을 하나님의 사건으로 바꾸었습니다. 믿음이 아니면 이렇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사건을 해석할 수 있는 힘입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상황을 잘 해석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피의 복수를 부르는 최악의 상황을 행복한 상황으로, 축복의 상황으로 바꾸어가는 요셉의 믿음이 돋보였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요셉을 흉내 낼 수 있습니까? 인간적으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죠. 어려운 상황도... 감사할 수 있고, 행복하고, 축복이 되는 그런 믿음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우리 삶이 행복하겠습니까? 오직 믿음으로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성경에 나타나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서 고난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욥은 하나님과 사탄의 중간에 끼여서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애매히 고난을 당하였기에 욥을 고난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욥을 믿었기에 사탄보고 건드려보라고 합니다. 아무리 건드려도 욥이 믿음을 배반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물론 욥기를 읽어보면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듯한 표현들이 나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서는 믿음으로 잘 견디고 승리하는 것을 보게 되지요. 욥도 사람인데 원통하고 순간순간 원망하는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감정들을 딛고 믿음으로 일어섰다는 것이 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욥이 얼마나 믿음의 사람인지를 우리가 잘 알 수 있습니다. 10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은 고난 중에서도 성숙한 모습으로 신앙의 지혜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욥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바라보며,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고 인내하기로 다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욥이 고난을 어떻게 믿음으로 대처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난을 연단으로 인식했습니다. 10절에 보니까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라고 욥이 고백하는 것을 봅니다. 금을 만들려면 어떻게 합니까? 산이나 들에서 금이 있을 만한 광석을 발견하여 바위를 깨는 기계로 바위덩어리로 만들어서 트럭으로 공장까지 운반하면 이를 다시 기계로 잘게 부수어 물과 청산가리를 썩어 진흙이 되게 하죠. 그리고 이 진흙을 흐르는 물의 과정을 통하여 가라앉는 광물을 채취하여 1,500도 되는 용광로에 넣어 녹이면 금만 따로 모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순도 90%의 금괴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순도100%의 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다시 여러 번 용광로로 가열하여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순도 100%의 정금이 만들어집니다. 자 돌덩어리가 정금이 되는 과정을 보세요. 몇 번이나 부서지고, 또 부서지고, 진흙처럼 또 짓이겨진 다음에 그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가야 금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것도 정금이 되려고 하면 여러 번의 용광로를 거침으로 이루어지니까 그 광석이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부서지고, 녹아져야만 합니까?


    이와 같은 원리로 욥은 자신이 당하고 있는 불가해한 고난을 자신을 정금처럼 단련하는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비난 욥뿐이겠습니까? 모든 사람은 고난을 받은 후에 더 강해집니다. 마치 나무가 강한 바람에 시달린 후에 아름다운 무늬를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욥은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것으로... 죄에 대한 심판이라기보다는 자신을 정금처럼 귀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받아드렸던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에도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라고 하시면서 고난을 통해 믿음이 정금같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받는 그 순간에는 근심과 두려움에 쌓이나 믿음의 눈으로 고난을 볼 때 그 고난을 통하여 얻게 되는 영육간의 엄청난 축복이 있음을 믿고 지금도 어려움, 시련 중에 있는 모든 성도님들은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2. 욥은 고난 속에서도 말씀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겼습니다. 11절에 보면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걸음, 길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적으로 말씀한 것입니다. 특별히 “바로 따랐다...” 고 하였고,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욥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조금도 치우친 적이 없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12절에 보면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정한 음식보다 그의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도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음식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히 여겼도다”는 것은 음식은 거르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한 번도 거른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영의 양식으로 알았기 때문에.... 얼마나 말씀에 대한 귀한 고백인지 모릅니다.


    이와 같이 욥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다윗은 시편 119편 71절에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라고 고백했죠. 우리가 평범할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잘 와 닿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 모든 것이 다 나를 향한 말씀이라고 받아드립니다. 평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다 다른 사람들이 읽고 들어야 할 말씀으로 생각했으나 고난의 때가 되면 모든 말씀이 다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받아드립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으로부터 고난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서 말씀을 붙들면 그 고난을 이기고 복을 받게 되고, 고난 가운데서 기도도, 말씀도 없이 원망하고, 성질만 부리면 그렇게 고난 가운데서 주저앉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말씀을 붙들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고난이 주는 엄청난 축복의 의미를 깨달아 알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고난 속에서도 욥은 하나님께 철저히 순복하였습니다. 13-15절까지 함께 읽어볼까요?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흔히 어려움을 당하면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는 가벼움을 드러내지만 욥은 15절에서 고백하기를 “내가 그 앞에서 떨며 지각을 얻어 그를 두려워하리라” 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고난 속에서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망하게 될 것 같아서입니까? 미래가 불안하고 보이지 않아서입니까? 사람들이 나를 무시할 것 같아서입니까? 아니면 나를 버릴까봐서입니까?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십니까? 욥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13절과 14절에 그 답이 나오죠.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키랴 그의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 말씀을 해석해 보면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내 삶에 뭔가를 이루시려고 작정하신 것 같은데 하나님이 한 번 작정하시면 아무도 그것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고난이 예사 고난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난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받아드리지 않으면 고난을 벗어나기 위해 인격이 망가지고, 거짓되고, 타락합니다. 그것도 잘되지 않으면 그냥 포기하며 술에 빠져 살고 현실을 잊어버리기 위해 탈선하게 됩니다. 그러나 고난이 나를 단련시키기 위해 오든, 내 죄 때문에 오든 고난이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알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죄가 있는가를 돌아보고, 회개하게 되고, 더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됩니다. 지금 이 고난이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주권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으니 얼마나 두렵습니까? 이 고난 가운데서 지금도 어려운데 하나님께서 고난의 줄을 더 꽉 조이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두려움이 있는 거죠. 지금 욥이 이런 뜻으로 고백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두려운 것입니다. 


    욥의 처지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생각하지 앞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조금만 어렵게 되어도 낙심하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해 쉽게 포기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욥은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섭리로 오는 이러저러한 환경에 온전히 순복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예비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의지함으로 우리를 감싼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진정 고난 가운데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고난 가운데 더 성장하는 신앙을 이룰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연유에서든 성도의 삶에 고난은 항상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베드로전서 2장 21절에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고, 히브리서 2장 18절에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누가 그런단 말이죠? 예수님이 그러시겠다는 말입니다. 또 로마서 8장 17절 말씀에는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고난은 이기는 고난이요, 상 받는 고난이며, 영광을 예비해 놓은 고난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고난은 한 순간에는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따르나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것이기에 예수님도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으심으로 결국은 원수 마귀의 머리를 깨시고 승리하셨단 말이죠. 고난주간을 맞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도 우리가 당하는 환란, 고난이 영광과 승리가 약속된 고난인 줄 확신하고 믿음 안에서 묵묵히 견디며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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