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 요한복음 14:01-12/ 근심하지 말라 [사순절 시리즈]
  • 2014.04.12 17:18:36
  •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근심, 걱정, 염려... 다 같은 말이죠. 우리가 이 세상에 살다보면 원치 않게 많은 근심으로 눌림을 받습니다. 옛날에는 근심 자체만으로 고통을 당했으나 요즘은 정보가 넘치다 보니 개인 스스로가 거의 의사수준이 되어 이 근심으로 생겨나는 스트레스가 자신의 건강을 치지 않을까 하는 염려까지 합니다. 잠언서에 보면 너무 많은 학문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성경말씀이 틀린 부분이 없음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제자들이 근심하는 것이 틀림없으므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제자들이 근심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때까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다 채워주셨지 않습니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배고픔까지 채워주시는 예수님이 함께 계시는데 염려하고 근심할 일이 무엇이냔 말이죠. 이런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왜 염려, 근심하느냔 말이죠. 지금 제자들의 염려, 근심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느냐.... 바로 예수님이 떠난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꾸 떠난다는데 그러면 자신들은 뭐냐는 것입니다. 아, 자신들은 주님 때문에 고기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그 잘나가던 세관에서 나오고.... 말하자면 생업터전까지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 나섰는데 주님이 떠나신다니까 바로 이런 사실이 제자들에게 염려와 근심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떠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느냔 말입니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아니겠냔 말이죠. 


    이렇게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격려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으면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제자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동격으로 생각하지 않는 데서 근심하게 된다는 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여러 번 "하나님과 예수님이 동격"이심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7절에 보면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고 하셨고, 9절에 보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10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이렇게 여러 구절들을 통해서 예수님은 자신과 하나님이 동격이심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6절에서도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라고 표현하심으로 바울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 다시 말 해 예수님 그 자체가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해 알게 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으로 존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칭하실 때 "우리" 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많이 나오고 있죠,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나오며, 오늘 본문에서처럼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다....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 나오죠. 이렇게 성경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특별히 성부 하나님이 많이 역사하신 시대이고, 신약시대에는 성자 하나님... 바로 예수님이시죠. 이 예수님께서 역사하신 시대이며, 이제 예수님이 떠나시면서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성령시대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는 계속해서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계시죠. 그러니 어느 시대에나 믿는 자들에게는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일을 온전히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고 하시면서 야곱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제자들에게도 더나지 않고 함께 하시리라고 지금 보혜사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믿는 우리에게도 성령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함께 하시겠다고 성경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그러니 만약 예수님을 제자들이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하등 걱정, 염려,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지금 예수님이 떠나신다고 근심하는데 사실은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오신 이 세상을 떠나셔서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회복하는 것이 제자들에게는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떠난다는 표현은 사실 정확한 표현이 아니고 지금까지는 눈에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셨으나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면 눈에 보이나 눈에 보이지 않으나 무슨 차이가 있느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부모를 떠나 타지에서 대학을 다닙니다. 물론 처음 부모에게서 떨어져 생활하는 것이라 조금은 불편하겠으나 떨어져 있어도 부모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려울 땐 전화로 대화를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부모가 찾아가죠. 그리고 필요할 때 돈, 음식, 옷... 다 붙여줘요.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가 가까이 없다고 근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잔소리 하는 부모가 없다고 더 편해 하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방학 때도 집에 내려올려고 하지 않는 아이들까지 있다고 해요. 얼마나 편하니까 그러느냔 말입니다. 뭐가 걱정입니까? 떨어져 있어도 다 채워주는데.... 부모가 불편해서 그렇지 자녀들은 하등 불편해 하지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 있는 부모라고 해도 자녀들이 이렇게 믿으니까 편한 것 아닙니까? 제자들도 주님을 이렇게 믿어야 한단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보이는 하나님으로 계셨지만 이제는 보이지 않는 영의 하나님으로 여전히 함께 계시니 근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하나님으로 제자들과 함께 하신 것이 비정상적입니다. 이런 비정상이 왜 필요했느냐.... 그 어려운 초대교회 시대에 이 땅 위에 강력한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한 배려입니다. 하나님은 가끔씩 초강력의 눈에 보이는 증거들을 통하여 믿음의 공동체를 굳게 세우고자 합니다. 흔히 이런 것들은 기적이죠. 기적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한 제자들은 이제 주님이 없이도 강력한 믿음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예수님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니까 그 자체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이신데 우리는 자꾸 눈에 보이는 예수님으로 함께 계셔달라고 하니까 지금 이 성숙하지 못하여 근심에 빠진 제자들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영적인 원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계속해서 제자들을 격려하십니다. 어떤 식으로 격려하시느냐.... 자 12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아멘이고, 할렐루야죠.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제자들이 이런 주님의 말씀을 믿기만 하면 그동안 주님이 하신 모든 능력을 제자들이 행하게 되고 그 보다 더 큰 일까지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주님은 고작해야 3년 동안 이 지상에서 일하셨을 뿐이지만 제자들은 그 보다 몇 배, 몇 십 배의 시간을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게 될 테니 당연히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의 분량에서도 그렇고, 그 능력에서도 주님의 것들을 압도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주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런 일이 제자들에 의해서 이미 일어났었고, 또 우리에 의해 이 시대에 일어난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그런 일을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몇 가지 해야 할 일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첫째,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명하여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그렇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의 정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는 것" 이것이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하나님처럼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아무리 인간적으로 가지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입니다. 믿는 채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확실히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마치 바람에 날리듯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런 채 하는 것이고, 인간적인 생각에 불과한 것입니다. 생각, 의지가 깨어지는 순간에 그런 믿음은 안개처럼 다 날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겨자씨 크기만 해도 산을 바다에 던지는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행하기만 한다면 제자들은 주님이 하신 일들을 똑 같이 하게 될 것이고, 분량에 있어서 주님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될 것이고, 더 큰 일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초대교회에 맞게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행하게 될 것이고 우리는 우리시대에 맞게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위대한 일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둘째,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하면서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3절, 14절에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말하자면 내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행하겠다, 내가 나서겠다... 이렇게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기도와 간구로 너희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려울 때에는 기도 밖에 없는 줄 믿습니다. 걱정, 근심, 염려할 시간에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생각에 근심의 구름이 다 물러가고 마음에 평안이 옵니다. 주님이 옆에 계셔서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기만 기다린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로 말씀을 지키고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기 전 14절에서는 기도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이 말씀을 하신 후 16절에서는 보혜사 성령님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요한복음이 잠언서처럼 한 구절 한 구절이 뚝뚝 떨어져서 그 자체가 독립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구절과 구절 사이에서 서로 연결되어져서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과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과 보혜사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과는 아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14절에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말씀하셨고, 16,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라고 하셨을 때 이는 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 중간에 15절...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는 말씀이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결국은 기도응답도, 성령의 내주와 역사하심.... 이 모두가 주의 말씀을 순종할 때 주시는 약속이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3-24절에서도 이 말씀을 다시 정리하고 계시는 것을 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첫째 주님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고, 이 믿음에 의지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 기도 가운데 역사하시며 보혜사 성령님의 내주를 통하여 제자들, 더 아나가서 우리들을 돕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믿음의 무장이 제대로 되어 있다면 더 이상 근심하지 않고 하늘의 평안이 우리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제 27절에서 주님이 이 요한복음 14장을 정리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 번 27절을 읽어볼까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할렐루야!! 세상근심, 염려로 가득 찬 우리 모두에게 주님이 주시는 이 하늘 평안이 충만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 0 ...

분류  제목  등록일 
사순절 시리즈 2013.09.25
사순절 시리즈 2020.03.04
사순절 시리즈 2014.04.12
사순절 시리즈 2014.04.12
사순절 시리즈 2014.04.12
사순절 시리즈 2014.04.12
사순절 시리즈 2014.03.22
사순절 시리즈 2014.03.22
사순절 시리즈 2014.03.22
사순절 시리즈 2014.03.08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