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숙한 감사(합3:16-18)
  • 조회 수: 123, 2013.05.06 07:48:45
  • 1. 환난 중에도 감사(16-)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우리 나라의 역사와 비슷한 점이 참 많습니다. 이스라엘도 우리 나라처럼 단일민족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도 우리 나라처럼 나라가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솔로몬왕이 죽은 후 주전 931년 분단이 되었습니다. 931년부터 두 나라로 분단되어 지내다가 주전 721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했으니까 분단 되어서 110년 간이나 두 나라로 존재해 왔습니다. 우리 나라가 분단된지 52년이 되었으니까 110년은 대단히 긴 세월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할 때 남쪽 유다는 그것이 자기들 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아주 태연해 했습니다. 그들은 죄가 많아서 그렇게 되었지만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북쪽에는 성전이 없는데 자기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고 자기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있으니까 자기들은 북 이스라엘 하고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고, 그 성전에서 날마다 화려한 예배가 드려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껍데기만 남은 형식적인 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드리는 자위(自慰)적인 예배였을 뿐이었습니다. 

    하박국은 예레미야와 거의 같은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아서에 보면 그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상태가 어떠했는가 하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좀 더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렘3:1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어떤 여인이 남편을 떠나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다가 다시 그 본 남편에게 돌아온다 하자. 그러면 그 남편이 그 여인을 받아 들이겠느냐? 그러면 그 땅이 크게 더러워지지 않겠느냐?

    너희들이 가서 온갖 우상을 다 섬기고, 세상의 사랑할 것을 다 사랑하고, 즐길 것을 다 즐기면서 나에게 와 예배를 드리니 내가 어떻게 너희를 받겠느냐?' 고 하셨습니다. 

    또 렘4:3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여기서 묵은 땅은 굳어진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굳은 땅에는 씨앗이 떨어져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배는 드린다고 했지만 마음이 완악하게 굳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또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고 했는데 가시덤불이 있는 땅은 씨가 땅에 심기워져도 가시덤불이 기운을 다 빼앗아 가서 곡식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말씀을 받기는 받지만 이 세상의 욕심이 마음의 기운을 다 빼앗아가 말씀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마음 밭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받기는 받지만 세상의 것이 더 좋아서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입니다. 

    렘5:13에 보면 그들은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새로 번역된 성경에 보면 '사람들이 선지자들이 말하는 것은 허풍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번역을 보면 '공연히 지껄이는 바람같은 소리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쳐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도 거의 동시대에 활동을 했던 사람인데 겔12:2에 보면 그들은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았다'고 했고 33:30에서는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나)보자' 하고 모여서 선지자의 말을 그저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사람의 노래같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즉 그들은 귀로 듣기는 했지만 그대로 살려고는 전혀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또 렘6:10에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에게 욕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이런데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적으로 더 어렵게 한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은 평강이 없는데도 평강이 있다고 했고, 백성들은 그들의 멧세지만 좋아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만 렘26장에 보면 우리야란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그것을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렘28에 보면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2년 안에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꺽어 주겠다고 하셨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왕과 백성들이 예레미야나 우리야나 에스겔과 같은 선지자들의 말씀은 듣지를 않고 거짓선지자들의 말만 들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런 거짓 선지자들에게 넘어가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자신들이 교만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렘49:16 말씀을 보면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다'고 했고, 50:32에서는 '교만한 자가 걸려 넘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겸손하게 말씀을 받으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다시 렘7으로 가보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성전 문 앞에 서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성전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분명히 가르쳐 주라고 하셨습니다. 

    '나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한다. 너희의 모든 생활과 행실을 고치라. 그러면 내가 이곳에서 너희와 함께 하겠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아무리 너희들이 이곳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지만 하나님인 내가 그곳에 안있는데 어떻게 그곳이 성전이 될 수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7:23 이하에서 계속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너희가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자기의 악한 마음의 꾀와 강퍅한 대로 행하였으며 너희 열조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부지런히 보내었으나 너희가 나를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하고 관계 없이 살면서도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으니 자기들은 안전할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앗수르와 애굽을 제치고 강대국으로 부상한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일이 닥치자 사람들은 당황해하고, 불안해 했습니다. 그러나 당황해 하고 불안해 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사라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하박국은 기도했습니다. 

    하박국도 처음에는 하나님 '어찌하여, 어찌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면서 하나님께 항변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곧 그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1:6 하반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당신께서 바벨론 사람을 일으키신 것이라고 하박국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왕상11에 보면 솔로몬이 잘못했을 때 하나님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키셨고, 르손을 일으키셨고 또 여로보암을 일으키셔서 솔로몬을 대적하게 하셨습니다. 

    또 대상5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패역한 짓을 했을 때 '앗수르 왕 불의 마음을 일으키시며,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의 마음을 일으키셔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려움이 닥칠 때 그 어려움만 보아서는 안되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게 되자 하박국의 기도가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까 하던 하박국의 기도가 3장에 와서는 '하나님이여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은 당연하지만 진노하시는 중에라도 이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는 환난 중에 있지만 하나님께 감사하겠다고 했습니다. 

    어떤 장군이 전쟁 중에 적과 대치하게 되었는데 상황이 몹시 불리했습니다. 숫적으로도 그랬고, 무기로도 그랬습니다. 적장은 항복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아주 중요한 요충지였기 때문에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되는 곳이었습니다. 적의 마지막 총공세가 시작되기 직전, 장군은 요세에 남아있는 모든 병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불리한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한 후 장군은 지휘봉으로 땅바닥에 금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싸움에 나가기 싫은 사람들은 여기서 피하도록 해 주겠다. 그러나 조국을 위해 나와 함께 끝까지 싸울 사람은 이 선을 넘어 와라' 

    죽음의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혀 있던 병사들이 하나 둘 선을 넘어 장군에게로 건너갔습니다. 마침내 병사 한 사람만이 그 자리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큰 부상을 입어 움직일 수 없는 병사였습니다. 그 병사가 장군에게 말했습니다. 

    '장군님 저는 부상으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도 같이 싸우고 싶습니다. 제 뒤에 선을 다시 그어 주십시오' 

    그날 그 용감한 군인들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적의 공격을 막아내고, 조국에 큰 승리를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마지막 병사가 했던 말을 명심합시다. '나는 부상으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싸우고 싶습니다. 그러니 내 뒤에 선을 다시 그어 주십시오' 

    여러분들 중에 지금의 형편이 이 부상 당한 병사와 같은 사람이 있으시다면,

    '하나님, 지금 저의 형편으로는 감사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지 저도 감사의 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라고 말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러길 원하십니다. 


    2. 없는 중에도 감사 (17-) 

    17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나무의 열매와 밭의 식물과 양과 소는 당시에 있어서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해서 절대로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은 그런 모든 것들이 '없을찌라도' 했습니다. 

    어느 가난한 집의 아이가 있었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옷도 얻어 입지 못하고, 좋은 신도 얻어 신지 못하고, 좋은 음식도 얻어 먹지 못한 참으로 가난한 집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어버이날 고생 중에서도 자기를 기르시느라고 애쓰시는 부모님의 사랑의 그 수고를 알고,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어머니, 아버지 저를 키워 주시느라고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제가 빨리 커서 잘 모실께요.' 한다면 그 감사야 말로 얼마나 감동적이겠습니까? 

    제가 자주 말씀 드린 미우라 아야꼬 여사는 스물 네 살에 갑자기 패결핵에 걸렸습니다. 폐결핵이라는 것이 당시로서는 거의 불치의 병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이 병으로 그녀는 그녀의 나이 37살이 될 때까지 13년 동안이나 머리로부터 허리까지 기브스를 한 채로 지내야만 했습니다. 대소변을 가리는 일도 남의 손에 의지해야만 했고, 창밖의 풍경 마져도 손거울을 이용해야만 겨우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병중에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격해서 그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글을 쓰다가 정말 어마 어마한 작품들을 남기는 베스트셀러의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지금 77세인데 자기의 인생이 너무 힘든 인생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자신이 병으로 잃은 것은 건강 뿐이었다고 했습니다. 건강하지는 못했지만 너무 좋은 것을 많이 얻은 삶이었노라고 고백한 최근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것이 있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없어도 감사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풍성하게 채워주셨고 만족하게 해 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은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했고, 신앙의 선배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해서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찬송하며 살았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없을찌라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이 한해 동안 실패만 하고 아무것도 추수한 것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하박국과 같은 고백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실패 가운데 오래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드린 신앙의 선배들처럼 감사하며 살 수 있는 믿음과 능력을 반드시 주실 줄 믿습니다. 


    3. 하나님 때문에 감사(18-)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크게 두 가지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는 일반 은혜이고 또 하나는 특별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을 주셨고, 태양을 주셨습니다. 또 공기도 그냥 다 그저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보통 은혜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 은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은혜입니다. 하박국은 환난이 닥치고, 모든 것이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겠다'고 했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여기 '인하여' 할 때 '因'자는 '원인 인 자'입니다. 그러니까, 환난이 닥치고, 아무것도 없을찌라도 자기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겠다고 고백입니다. 

    골2:6,7에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받았으니......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쓴 이런 간증문을 읽었습니다. 제법 큰 중소기업을 경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병이 나서, 몇 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사업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더니, 퇴원했을 때는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더랍니다. 

    고생 고생하며, 먹을 것 못먹고, 입을 것 안입고, 모으고 모아서 이루었던 사업이었는데 그렇게 되고나니 너무나도 허무하고 낙심이 크게 되었습니다. 그날도 너무 너무 낙심되어서 삶의 의욕을 다 잃어버리고 있었는데 뒤에서 누가 자기 이름을 부르더랍니다. 

    돌아보니 사고로 양쪽 다리를 다 잃어버린 친구였습니다. 의족으로 절뚝거리면서도 반갑게 웃으면서 '왜 그렇게 맥이 빠져 있느냐'고 그러더랍니다. 

    그때 전광석 같이, 자기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더랍니다. '만약에 저 친구가 나의 건강한 이 두 다리를 살 수만 있다면,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다 들여서라도 사려고 하겠지!' 

    그후 그는 다시 재기해서 사업에 성공했고, 나중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 친구와 비하면 '나는 억만장자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리를 잃어버린 사람과 비교해서 생각했습니다만,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들입니다. 지금 어떤 형편에 살고 있든지 우리는 하늘나라가 보장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이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없습니다. 환경이 좋아져야만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박국 선지자처럼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시고 감사하시는 성숙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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