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합을 깨트린 이유(요 12:1-8)
  • 조회 수: 206, 2013.06.17 08:11:07
  •  오늘은 2000년 첫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맥추감사절기란 광야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경작한 첫 보리수확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 절기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있어서 맥추감사절기는 민족적인 대 축제였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예루살렘으로 모입니다. 모여서 그들은 일주일, 열흘, 어떨 땐 보름동안이나 이 절기를 축제의 절기로 지킵니다. 
    한마디로 이 절기는 대대적인 국가행사와 민족적인 대 축제였습니다. 그들에게 이 절기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① 과거의 하나님의 은총을 마음에 새겨두고자 하는 기념의식이였습니다.

    ⇒ 지금까지 베푸신 은혜 감사합니다. 크게는 내 평생 지금껏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적게는 1년중 반년을 지켜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② 현재의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보은의식이었습니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축복, 내가 받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 ⇒ 감사+보답하는 의식이었습니다. 

    ③ 미래에 임할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하는 소망의식이었습니다. 지금까

    지 은혜 베푸신 하나님은 앞으로도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은혜주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사 예물을 드립니다. 이런 마음으로 감사절기를 지킵니다. 

    이렇게 그들은 3박자로 감사절기를 지키는데 그들은 이 절기를 지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자손들에게 이 절기의 의미를 교육합니다. 

    어린 자녀들에게 어째서 이런 축제의 감사절기를 지키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 복을 받는 비결이라고 부지런히 가르칩니다. 그것이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입니다. 참으로 머리가 트인 민족이지요. 

    오늘 우리는 새천년에 첫 맥추감사주일을 지킵니다. 새천년 원년의 감사절기 - 의미가 큽니다 ⇒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해서 감사의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엿새 전에 베다니에 들리셨습니다. 베다니는 주님께서 매우 사랑하시는 동네였습니다. 그곳엔 사랑하는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죽은 나사로를 살려주셨고 문둥이 시몬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동네는 항상 예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시몬은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배설하였습니다. 참으로 흥겨운 잔치였습니다. 잔치 분위기가 절정에 달할 무렵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가 예수님께 가까이 왔습니다. 그리고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옥합의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는 것이었습니다. ⇒ 향유 냄새가 방안을 진동. 

    마리아가 300데나리온이나 되는 옥합을 깨뜨렸다는 사실! 이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처녀가 시집갈 때 가져가기 위해서 평생 모아놓은 재산입니다. ⇒ 장정 300명의 품삯임. 

    물론 처녀라고 누구나 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잣집에만 있습니다. 또 이것은 너무나 귀한 것이기에 돈 있다고 다 살게 아닙니다. 어쩌다가 시장에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마리아는 이것을 어떻게 해서 구했는지 성경에서는 침묵합니다. 그러나 여하튼 그녀는 이것을 소유 ⇒ 예수님께 아낌없이 드린 것입니다. 

    ex)영화! 저 하늘에도 슬픔이 - 참기름 때문에 가출 ⇒ 2000년전의 향유는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참기름과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비싼 향유로 오일 발 맛사지를 해 주었습니다. 

    또 자기 머리를 풀어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겼다는 사실! 이것도 엄청난 일입니다. 유대인에게 여인의 머리는 주님을 상징⇒ 나실인은 머리도 안 잘랐습니다. 그러니 여자가 머리를 푸는 것은 수치입니다 ⇒ 자기의 순정, 순결, 지조 모든 사랑을 드릴 님에게만 머리를 풀고 발을 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의 이 행동은 인간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께 최대의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마음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충격이 컸던지 잠시 가만히 있었습니다. 너무나 깜짝 놀라 누구도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향유의 진한 냄새만 온 방안을 진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가롯유다가 마리아의 하는 일이 못마땅하여 드디어 말문을 열었습니다. 

    "왜 비싼 향유를 이런 식으로 허비하오? 이것을 팔면 300데나리온은 족히 받을 텐데 그것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왜 주님 발에 부어서 낭비를 합니까?(요12:5)" 

    마28:8에 보면 이 말은 가롯유다만 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못마땅해서 수근수근 ⇒ 가롯유다가 대표적으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 못마땅한 생각은 똑같이 한 것입니다. 

    한 여자는 자기가 가장 귀하게 생각한 것을 주님께 아낌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쪽에서는 왜 귀한 것을 이렇게 낭비하느냐고 책망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마리아를 두둔해 주셨습니다.

    요12:7-8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태복음에선 더 자세하게 기록했습니다. 

    마26:11-13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이 여자의 행한 일 : 주님의 죽으심+장사를 기념 ⇒ 이 행동자체가 복음이라는 말입니다. 즉 복음이 전파된 곳에는 몸된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엔 성도와 일꾼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 모든 일꾼은 이런 마음, 이런 자세로 주님을 섬기라는 복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는 단순히 값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돕는 종교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긴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합니다. 그 말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본질을 모르는 가롯유다의 생각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마리아의 행동을 손님을 접대하는 예절정도의 행위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낭비요, 허비라고 오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이 행위는 예배의 행위요 경배 그 자체였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바침으로 그를 높여 드리는 찬양이었습니다. 

    먼저 이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잠시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마리아의 행위는 그녀의 예배요, 신앙고백이요, 헌신의 표현이었습니다. 영상에서 보다시피 마리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겐 아무런 말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고 비난해도 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예배요, 경배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통해서 감사와 연관해서 몇 가지 교훈을 얻어 보고자 합니다. 

    1) 사람은 은혜를 받을수록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것 : 인력으로 안됩니다.

    마르다 : 아무리 주님을 깊이 사랑하려고 해도 안됩니다. ㄴ 깊은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나 마리아는 별명이 발아래 여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발아래 앉아 언제나 은혜받는 일을 우선했습니다. ⇒아들을 아낌없이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자기 몸을 아낌없이 십자가에 던지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은혜는 말씀 속에 다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마치 자기만을 위해 임한 것처럼 착각 ⇒ 그렇게 은혜를 받고 보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생김. 사람은 사랑과 은혜에 감동되면 더욱 더 사랑하는 마음이 생김. 마리아가 그랬습니다.

    주님의 은혜+사랑을 경험하고 보니 그는 너무 너무 주님이 좋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강렬해집니다. 이것이 은혜 받은 자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은혜 받는 길에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①하나님의 은혜를 그냥 받음으로 받는 은혜입니다.

    이것은 보통사람이 받을 수 있는 은혜입니다. 

    ②주님을 더욱더 사랑함으로 받는 은혜입니다.

    이것은 아무나 받는 은혜가 아닙니다. 주님을 더 깊이, 더 뜨겁게 사랑하는 자만이 받음. 이 은혜가 더 깊은 은혜입니다.

    마리아는 이 두 은혜를 모두 받은 여자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먼저 은혜 받아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은혜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뿐 아니라 은혜 받은 우리는 더욱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더욱 주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더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주님의 은혜가 더 간절하게 임하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할수록 스스로 주님 사랑과 은혜가 나를 감동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더 주님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2) 주님을 간절히 사랑하면 그것이 감사의 마음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 받고 더 주님을 사랑하게 되면 감사하는 마음을 참을 길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자꾸 자꾸 뭔가 하나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헌신하고 싶습니다. 부족하지만 뭔가를 드려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싶습니다. 

    "나 같은 것을 하나님께서 이리도 사랑해 주셨는데 나는 주께 무엇을 드려야 한단 말인가? 나 같은 것을 주님의 자녀+일꾼으로 삼아 주신 것 생각하면 내가 무엇으로 주님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한단 말인가? 나 같은 것에게 이렇게 큰 축복을 베풀어 주셨으니..." 

    바로 마리아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었습니다. 

    "주님은 지금 곧 골고다로 올라가신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그 몸이 갈기갈기 찢겨 죽으신다. 그런데 그 분은 나를 위해 죽으신단다. 내 죄를 용서+나를 구원 ⇒ 나를 하나님 자녀로 만들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단다. 

    그분은 나 위해 몸+생명을 아낌없이 주시는데 나는 그분을 위해 무엇을 드릴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한단 말인가" 

    ┤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사랑이 너무나 감격하여 뭔가를 자꾸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까? 이 마음이 있는 자! 그 사람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입니다. 그 사람이 진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3) 진정한 감사의 결과는 기념될 만한 사건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은혜받은 자 ⇒ 사랑+감사한자는 주님께 뭘 자꾸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간+물질+몸을 드립니다. 주일만 돌아오면 늘 감사헌금만 드리고 싶습니다. 교회에 무슨 일이 있으면 내가 제일 앞장서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땐가는 뭔가 기념이 될만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내 생애에 최고의 감사를 드려 봐야지, 뭔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반드시 감동시키고 주님 앞에 꼭 기념이 될만한 감사를 드려봐야지! " 

    이런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주신 감동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성령의 감동에 따라 정말 기념이 될만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오늘 마리아가 그랬습니다. 그는 주님의 은혜가 자기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감동시켰습니다. 뭔가 기념되는 감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단했던 것이 두 가지였습니다. 

    ① 300데나리온의 옥합+향유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향유는 여인이 제일 아끼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행복을 아는 여자라면 이 향유를 시집갈 때 가져가서 사랑하는 님과 함께 쓸 것입니다. 이 향유는 틀림없이 남편과의 사랑을 더욱 증진시켜 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오라버니 나사로가 죽었을 때도 이것을 쓰지 않았습니다. 친오빠가 죽었는데도 안 썼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아낌없이 과감하게 주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제자들은 그것이 낭비요 사치요, 허비라고 생각했는데 왜 마리아는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마리아는 적어도 주님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주님의 위대함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존귀함을 알았습니다. 

    제자들은 향유를 돈의 가치로만 보았고 예수님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더 가치를 두었지만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가치를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얼마나 존귀하고, 얼마나 위대한가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였습니다. 

    바로 주님의 그 가치 때문에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기념이 될만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주님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가치, 그분의 존귀함을 모르고서는 기념될 만한 감사를 드릴수가 없습니다. 

    그분의 가치를 알아야, 그분의 진가를 알아야 아낌없이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릴수가 있고, 가장 기념될 만한 것을 드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그분의 가치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향유를 아껴둘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녀의 모든 것이 되었으니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그러니 무엇인들 못 드리겠습니까? ┤ 주 예수께 내 정성을 바칩니다. ⇒ 옥합을 깨뜨려 기념될만한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ex)헌금 : 돈보다 더 주님을 사랑한다는 고백+표현입니다.

    ⇒ 한빛은행 사건 : 주님이 취하소서. 

    ② 머리털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귀한 옥합+큰 물질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드렸습니다. 그녀의 모든 자존심, 순결, 지조, 온정성을 다 드렸습니다. ⇒ 마리아는 그런 마음으로 머리털과 함께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렸습니다. 

    참으로 기념될만한 헌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도 감동받으셨습니다 주님도 같은 감동을 받으시고 드디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막14: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

    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얼마나 감동되었으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기념될만한 감사는 주님을 감동케 합니다. 그리고 이런 칭찬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얼마나 기념이 될만한 감사를 드려 보았습니까? 감사절기 때마다 주님의 마음을 진정 감동시켜 본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기념될만한 감사는커녕 형식적으로 주님을 대해 왔지는 않습니까? 

    4) 감사는 최고의 행복을 가져 온다는 사실입니다. 

    성도가 언제 행복을 느낀줄 아십니까? 그것은 주님께 감사할 수 있을 때입니다. 그런데 최고의 행복, 더 큰 행복을 언제 느낍니까? 기념 될 만한 감사를 드릴 때입니다. 이때 성도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을 머리털로 닦는 마리아의 얼굴과 제자들의 얼굴을 비교해 보십시오. 제자들은 분을 내고 있습니다. 돈의 가치, 세상의 가치만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얼굴은 지옥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그녀는 오직 주님의 가치만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의 모든 것, 주님은 나의 모든 행복임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참으로 기념될만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녀의 얼굴은 천국같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념될만한 감사는 우리에게 최고의 행복을 가져옵니다. 왜 그런줄 아십니까? 

    ①그 자체가 마음에 행복을 가져오기에.

    행복은 받을 때보다 줄 때 더옵니다.

    ex)부모의 행복 ⇒ 성도의 행복 

    ②기념될 감사는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을 가져오기 때문

    재앙을 물리치고 축복을 도입 ⇒ 마음만 행복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행복하게 됩니다. 

    확실히 주앞에 기념될만한 감사는 주님을 감동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를 최고로 행복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엄청난 축복의 존재로 만듭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떤 감사를 하십니까?

    어떤 마음으로 주님께 왔습니까?

    마리아의 마음입니까? 유다의 마음입니까? 

    기념될만한 감사 ⇒ 주님을 감동+최고로 행복한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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