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을 받을 자들이여(마25:31-46)
  • 조회 수: 169, 2013.05.31 07:53:20
  • 금년의 추수감사절은 새 밀레니엄을 40여일 앞두고, 또 지난 천년을 마
    감하는 감사절이라는 점에서 그 뜻이 깊습니다. 과거의 천년은 차치하고라도 
    우리 민족의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해방을 받았었으
    나 6.25 전란으로 이 땅은 황폐되었고 가난으로 인하여 생활은 더욱 어려웠
    습니다. 하지만 그후 경제건설을 성공적으로 이루었으며, 특히 IMF 관리체제
    의 엄청난 경제위기를 만났으나 온 국민이 해산의 수고를 통해 세계에서 유
    례가 없이 짧은 기간 내에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고 생각할수록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이 이 땅에 뿌리를 내려 1,200만 신자
    를 가진 나라가 되었고, 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교회를 이루는 축복을 받
    았습니다. 특히 우리 가정과 개인이 받은 축복은 생각해보면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러나 1989년 동구권의 몰락이후 세계화의 바람이 
    세차게 몰아 닥침으로 이제 세계는 하나가 되어, 말 그대로 지구촌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전쟁은 종지부를 찍고 새로
    운 약육강식의 경제전쟁이 더욱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려 거래자본의 움직임
    으로 경제 개발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아세아 각국이 무서운 금융위기에 시
    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새로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
    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과연 어떤 삶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며 기뻐하시는 삶인지,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통해 음성을 
    듣고 깨닫는 시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최후의 심판 날에 있을 판단기준에 대하여 우리
    에게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복 받을 자로 구별된 자에게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
    었을 때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마25:35-3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이 말을 
    들은 자들이 "주여, 제가 어느 때에 그런 일을 했나이까?"고 되묻자, 주님께
    서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그
    들에게 복 받을 자들이라 칭찬하시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진정으
    로 복 받을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함께 묵상하려고 합니다.

    1.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지난 해 IMF 경제위기를 만났을 때, 주변의 친구들를 만나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죽겠다"고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살겠다"고 말하는 사
    람은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요사이 IMF 체제에서 벗어나면서 경제
    가 많이 회복되어 간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밝은 얼굴을 하는 사람
    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실상 우리 주변에는 살맛 나는 
    일이라고는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밝은 얼굴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당연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신앙인이라면 그렇지 못한 가운데서도 언제나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욥'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 좋은 예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
    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1:1)였으며, 동방사람 중에 가장 큰 자였습니
    다. 또한 그의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은 산을 두를 만큼 많았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여 부족한 것이 없이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그가 하루아침에 자
    녀들과 많은 재산을 모두 잃고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
    니라,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온몸에는 악창까지 나서 도저히 견딜 수 없
    었으며, 아내와 친구들마저 그를 배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오히려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며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1:21)하고 고
    백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믿음 있는 자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감사하는 마음
    속 깊이 베어있는 위대한 신앙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
    자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그는 세상 것이 다 없어
    도 하나님 한 분 때문에 감사하며, 그 분으로 인하여 기뻐하면서 산다고 고
    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당하는 경제적 위기와 환난 가운데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하루에도 무수히 일어나는 사
    고와 위험 가운데서도 지켜주시고 미처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있는 때에도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생각할수록 감사할 뿐입
    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예수님를 믿고 영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로 살게 되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넘치는 감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국제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때 영국의 한 유명한 교수가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앞으로 아프리카 사람들은 초대하지 않
    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이유는 영국이 아프리카를 점령하고 난 
    후 예수를 잘 믿는 청년들을 뽑아서 영국의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등 우수한 
    대학에 보내서 공부를 시켜서 다시 보내면, 본국으로 돌아온 이 청년들이 그 
    곳에서 대학교수, 장관 혹은 사업을 잘 경영하여 재벌이 되기도 하고, 또 대
    통령도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성공한 그들 중에서 거의 95% 이상
    의 사람들이 예수님를 배반하고 만다는 것이었습니다. 일이 잘되면 주님께 
    감사하고 더욱 믿음을 지켜가야 할텐데 오히려 주님을 배반하거나 대부분 
    교회를 떠나 가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부의 위험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
    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4)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
    하다면 얼마든지 물질도 주실 수 있고, 성공하게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
    만 하나님은 인색하거나 감사치 못한 자들을 축복하지는 않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더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주십
    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10명의 문둥
    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병 낫기를 간구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10명 모두의 문둥병을 고쳐주셨습니다. 하지만 고침 받은 
    10명 중에서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며 사례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한 명 뿐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사람이 모두 깨끗함을 받았는데 그 아홉은 어
    디 있느냐고 찾으시며, 하나님께 돌아와 감사하는 사마리아인에게는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며 육신적인 병의 치유를 
    넘어서 영적 구원의 축복까지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오늘은 금세기의 마지막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이며, 감사하는 사람만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2. 남을 돕는 것이 습관화되어야 합니다. 

    저의 큰처남이 전북 익산에서 '이안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으면서 교회
    에서는 장로로서 섬기고 있습니다. 그 처남이 평생 모은 재산이 이리시내 중
    심가에 위치한 20억이 호가하는 빌딩입니다만 그는 그것을 YMCA에 기증을 
    하였고, 저는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보고 놀랐습니다. 정말 훌륭한 일을 했
    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많은 재산을 주님의 사업을 위해서 기꺼이 희사한다
    는 것은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정말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물론 어
    떤 사람들은, 그런 일도 돈이 많은 사람이나 그렇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지 우리 같이 돈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큰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선행을 베푸는 기준이 양의 많고 적음
    에 있지 않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
    을 잃지 아니하리라"(마10:42)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
    은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라는 것입니다. 실상 찬물 한 사발을 제공하
    는 것은 보잘 것 없는 아주 작은 것입니다. 어찌보면 선행의 가장 초보라고 
    할 만큼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중에 냉수 한 그릇 조차도 대접할 수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
    까? 하지만 그 냉수 한 그릇은 메마르고 무더운 팔레스틴의 기후 조건하에
    서는 곧 생명력 넘치는 환대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하찮게 보이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대접이라 할 지라도 그것을 제공받는 편에서는 귀중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상 이 정도는 누구라도 마음만 있
    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슈바이처 박사와 같이 의
    사가 되어 아프리카로 들어가 구제 활동에 헌신을 한다거나, 또 우리 교회에
    서 파송한 오세호 선교사와 같이 파키스탄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나, 또 큰 
    돈으로 헌금을 내지 못하는 것, 또는 남을 위해 자기의 신장을 떼어 주지 못
    하는 것 등만을 안타까워하면서 한탄하는 성도들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본문에서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비록 적은 것일지라도 작은 자 하
    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라고 칭찬하셨고, 또 적은 것이지만 오히려 남을 돕지 못한 것을 보
    시면서는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오른 편에 있는 자들이 천국의 상속자가 된 이유는 
    '이웃에게 선행을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진정한 의미에서 선한 일은 믿
    음의 결과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
    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4-17) 이제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로서 서로 나누어주고 베푸는 일에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
    다. 혹 이웃에게 줄 것이 없으면 따뜻한 마음으로라도 그들을 대해 주어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한 형제된 우리는 서로 사랑으로 인사
    하고, 손을 잡아주며, 어려운 형제들을 찾아 위로하고 도와야 합니다. 주님
    은 작은 것도 결코 잊지 않으시고 복 주시며 칭찬하실 것입니다.

    3. 지극히 작은 자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실상 우리는 세상적으로 볼 때 크게 출세한 사람에게는 잘하라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들 앞에서는 잘해줄려고 할 것입니다. 때로는 명절이 되면 
    세상적으로 크게 된 사람의 집에는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
    다. 그러나 출세하지 못하고 권세를 잃은 사람의 집은 찾는 사람이 없습니
    다.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실입니다.하지만 주님은 오늘 말씀에서 심
    판 날에 사람을 평가하실 때, 권세 있고 유복한 사람과 가까이 지낸 것으로 
    그를 평가하지 않으시고 오직 주린 사람, 목마른 사람, 나그네 된 사람, 헐벗
    은 사람, 병든 사람, 옥에 갇힌 사람등을 돌보아 준 사람에게 하늘 나라를 
    상속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력과 권위로 크게 성공한 사람을 만나거나 대하기는 
    어려워도, 우리 주변에 가난하고 고난 당하는 사람에게는 마음만 있다면 얼
    마든지 잘대해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부들, 세리들, 창기들과 병들
    고 가난한 사람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라
    도 귀하게 여기시며 그들을 섬길 것을 우리에게 당부하시고 또 친히 본을 
    보이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 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
    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12,13)

    주님은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에게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지식을 묻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또 어느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는냐
    고 묻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신앙에 대한 신학의 정통성 여부
    를 묻는다고 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지극히 작은 자라도 한 생명을 얼
    마나 귀히 여겼는지, 가난하고 어려움 당하는 사람을 얼마나 도왔는지를 묻
    겠다고 하셨습니다."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 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지극히 작은 
    자'라고 표현하신 것은 '가장 작은 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소외되
    고 궁핍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중에 가장 미미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은 
    그들과 자신을 일치시키시며 또 그들과 자신은 '하나'임을 강조하시는 것입
    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주님이 주신 십자가에 흘린 피 공로로 영생을 얻었으니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며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런 감사하는 사
    람은 우리의 이웃의 아픔을 그냥 넘길 수가 없을 것입니다. 먼저 내 옆의 성
    도들의 손을 잡아주고 우리의 따뜻한 말 한마디, 또 사랑스런 마음을 주변 
    어려운 이웃에게 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새롭게 다가오는 새 시대에
    는 주님이 원하시는 사랑으로, 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돼야 하겠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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